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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권하는 정부, 위태로운 가계빚 - 빚더미에 올랐는데 갚을 능력은 떨어져 

국내외 경고에도 정부만 ‘아직 괜찮아’ … 내외부 쇼크 오면 ‘와르르’ 우려 

티끌이 모여 감당할 수 없는 태산이 됐다. ‘갚을 수 있겠지’라며 가계가 빌린 빚이 나라 경제를 위협할 만큼 쌓였다. 안심전환대출 40조원을 풀어도 1100조의 ‘가계빚 걱정’은 그대로다. 산사태가 마을을 덮치기 직전인데, 오히려 빚은 더 빠른 속도로 불어난다. 그동안 ‘문제 없다’던 정부는 뒤늦게 대책반을 만들어 부산을 떨지만, 다른 편에선 경기 살릴 목적으로 ‘싼 이자로 빌리라’며 여전히 빚을 권한다. 반강제로 팔을 비틀어 은행 곳간도 더 열었다. 쏟아지는 우려와 경고도 남 얘기다. 정부가 두고두고 후회할 길을 가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누군가 빚이 1억원 있다고 치자. 1억원은 ‘누군가’에 따라 상대적이다. 100억원 자산가에는 소액 대출이고, 가진 것이 2억원인 사람에겐 엄청난 부채다. 자산이 2억원뿐인 ‘누군가’도 빌린 1억원을 잘 불리고, 이자를 잘 내고, 제때 갚으면 문제가 안 된다. 빚은 갚지 못할 때 재앙이 된다. 국가·기업·가계 모두 마찬가지다.

1100조원이라는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어떤 ‘빚’일까. 이 돈을 빌린 ‘가계’는 자산을 늘리고, 이자 꼬박꼬박 내고, 만기가 오면 문제없이 갚을 수 있을까. 정부는 ‘그렇다’고 믿고 싶어하는 것 같다. 2011년 초 가계부채가 800조원이 넘을 때도, 2013년 말 1000조원을 돌파했을 때도, 정부는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관리 가능하다’는 것은 ‘가계가 빚을 갚을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정부 논리는 이렇다. ‘전체 가계부채의 50% 정도가 소득 상위 20%에 몰려 있고, 75%가 상위 40%에 분포돼 있어 상환에 문제가 없다.’ 줄곧 낮게 유지된 대출 연체율도 정부가 자신하는 근거다. ‘잘 갚는데 뭐가 문제냐? 경기 부양이 먼저다.’

그래서 정부는 빚을 더 권했다. 부동산 경기가 살아야 경제가 돌아간다는 확고한 믿음으로 ‘빚내서 집사라’라는 정책을 폈다. 수십 차례의 부양책에도 뜻대로 되지 않자, 지난해 8월에는 ‘마지막 보루’라는 대출 규제(LTV·DTI)까지 풀었다. 물론 간간이 가계부채 대책도 내놨다. 이명박 정부는 2011년 6월 ‘가계부채 연착륙 방안’을 발표했다. 금융회사 대출을 죄고, 대출 구조를 바꾸겠다는 내용이다. 올해 박근혜정부가 내놓은 2·26대책(가계부채 구조개선 촉진방안)과 맥락은 같다. 2012년 7월(가계부채 연착륙 및 서민금융 강화방안), 2014년 2월(내수회복 위한 가계부채 구조 개선 촉진방안)에도 비슷한 대책이 나왔다. 결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다.

고삐 풀린 가계 빚


가계빚은 ‘빛의 속도’로 증가했다. 부동산 규제가 풀리고, 대출 금리는 낮아지고, 여기에 돈을 빌리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몰린 이들이 몰리면서 가계부채는 급증했다.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액은 지난해에만 38조5000억원이었다. 전년 대비 3배 가까운 규모다. 특히 지난해 8월 정부가 대출 규제를 완화한 이후 완전히 고삐가 풀렸다. 지난해 증가한 가계대출 중 약 70%가 8~12월에 몰렸다. 저금리와 부동산 부양책이 맞물리면서 8월 이후 예금은행에서 나간 대출 중 95%는 주택담보대출이었다.

올 들어선 더 심각하다. 금감원에 따르면 2월 말 기준 가계부채 잔액은 522조원이다.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 신용대출을 합한 수치로 전월 대비 3조4000억원 증가했다. 역대 2월 가계대출 증가액으로 따지면 2002년(5조8000억원) 이후 최고치다. 가계대출에 판매신용을 포함한 가계신용 잔액은 이미 1100조원을 돌파했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는 1089조원이었다(한국은행).

지금도 여전히 금융회사 대출 창구 앞에는 대기표를 든 이들이 줄지 않는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돈 잘 벌고 자산이 많은 이들보다는 절박한 사정으로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빚을 갚기 위해 빚을 지고, 전세난에 떠밀리고, 구멍가게라도 차려볼까 하고, 당장 생활비가 없어 대출을 받으려는 이들이다. 부채의 질이 악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정부 인식은 여전히 안이하다. 정부는 국무총리를 수장으로 하는 범정부 차원의 가계부채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도 모자랄 판에, 기획재정부 차관보를 반장으로 하는 대책반(가계부채관리협의체)을 뒤늦게 꾸려 부산을 떨고 있다. 신임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내정자 시절 “경제성장에 따른 가계부채 증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말로 비난을 샀다. 이러는 사이 한국은 세계 가계부채 7대 취약국(맥킨지 발표)에 이름을 올렸다.

세계 가계부채 7대 채무국


정부 말대로 국내 가계부채는 관리 가능한 수준일까? 앞서 말했듯이, 가계부채의 위험성은 ‘빚이 얼마나 많은가’보다 ‘제대로 갚을 수 있느냐’에 달렸다. 가계가 상환 여력이 있고, 금융회사가 손실을 흡수할 능력이 있다면, 소비가 좀 줄어도 견딜 수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해 내놓은 ‘가계부채의 위험에 대한 이해와 위험관리체계의 설계방향’이라는 보고서를 보자. 보고서는 ‘부채를 보유한 국내 가계의 소득과 순자산을 기준으로 볼 때 상환 여력이 비교적 양호한 편’이라고 분석한다. 그런데, 이런 분석은 ‘별 일이 없었을 때’라는 전제에서만 통한다. 예상치 못한 내외부 충격이 발생할 경우 고소득층이 진 빚은 더 큰 화가 될 수 있다. 보고서를 작성한 김영일 KDI 연구위원 역시 “상환 여력이 양호한 가구라 해도 유동성 위험에 취약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김 연구원은 ‘가계부채 중 만기일시상환 대출이 비교적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만기 때 차환 위험이 증폭될 가능성이 있다’고 썼다. 지금처럼 상환 만기를 연장하는 방식으로 버티다, 어느 시점에 신용경색이 발생하거나 주택 가격이 급락하면 고소득층 부채가구도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는 얘기다.

더욱이 고소득층 채무자 중에는 여러 금융회사에서 대출을 받은 다중·고액 채무자가 많다.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다시 집을 사고, 대출 한도가 차면 제2금융권에서도 빌린 이들이 적지 않다. 이와 관련,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외부의 충격 때 채무 이행을 위해 필요한 소득이 높아지는데, 이것이 부채가 많은 부유층 계층의 소득을 넘어선다면 채무 불이행이 발생하고 그 이후는 미국과 유사하게 주택가격 추가 하락을 거쳐 경제 위기를 부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현재 은행권 담보대출의 약 30%만이 원리금 분할상환을 진행 중이다. 상호금융권의 경우 이 비중이 1% 수준에 불과하다. 대출 차입자들이 상환 압력을 덜 받고 있기 때문에, 덜 위험해 보이는 것 뿐이다.

저소득층 부채 늘고 상환능력 악화

소득이 적고 자산이 많지 않은 계층이 제2금융권 대출 창구로 몰리는 현상은 특히 우려스럽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0~2014년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가구의 담보대출은 78.3% 늘었다. 같은 기간 1~5분위 계층 중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반면, 상위 20%(5분위)에 속하는 가구의 담보대출은 14.9% 증가했다. 가계부채 문제가 더욱 심화된 2013~2014에도 1분위 가구 담보대출은 29% 증가했지만 5분위 가구는 3.1% 늘어나는데 그쳤다.

이런 현상은 정부나 일부 학자들이 ‘가계부채는 위험하지 않다’며 내세웠던 근거를 뒤흔든다. ‘고소득층 부채가 많아 위험하지 않다’는 논리는 물론이고, ‘가계부채가 자산 거품을 동반하지 않은 불황기 부채이기 때문에 부실 위험이 작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잃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저소득층 가구는 대출을 받아 생활비나 사업자금 마련, 부채 상환에 쓰는 비중이 매우 크다. 이에 대해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저소득층 가계부채는) 부족한 생계비 또는 영세 자영업자들의 사업자금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아 자산가격 급락 없이도 부실화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고 분석했다.

빚을 갚을 능력이나 상환 부담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갔다는 점도 엄연한 사실이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의 싱크탱크로 불렸던 국가미래연구원이 최근 내놓은 보고서 내용은 이렇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과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 비율을 볼 때 가계부채가 임계치에 육박하고 있다. 특히 저소득층·자영업자 등 일부 계층을 중심으로 가계부채의 질적 수준이 점차 악화되고 있어 앞으로 경제 여건이 크게 개선되지 않는다면, 가계부채 규모가 더욱 늘어나고 그 취약성이 악화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개인가처분소득(NDI) 대비 부채비율은 138%다. 이 비율은 1년간 실제로 쓸 수 있는 소득으로 부채를 상환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 지표다. 2005년 105%에서 10년째 상승했다. 또한 자금순환 통계 기준으로 개인(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빚과 가처분소득을 비교한 비율 역시 164%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은 136%다.

저소득층의 상환 능력은 심각한 수준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빚이 있는 가구가 1년간 갚은 원리금은 1175만원이다. 전년 대비 16% 늘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 부채가 있는 가계의 가처분소득은 234만원(6.1%) 증가하는데 그쳤다. 쓸 수 있는 소득 중에서 빚(원리금) 갚는데 쓰는 비율인 DSR은 전년 24.5%에서 26.9%로 늘었다. 더욱이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가계의 DSR은 무려 68.7%에 달한다. 가처분소득 100만원 중 68만원을 원리금 상환에 써야 한다는 얘기다. 2분위(소득 하위 40%) 역시 36.9%에 달했다. 일반적으로 DSR이 40%를 넘으면 상환능력이 의심되는 고위험 부채로 분류된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기준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가계부채 한계가구 분석’에 따르면,

현재 자산으로 빚을 갚기 힘든 한계에 달한 가구는 금융부채 보유 가구의 12.5%인 137만 가구에 달한다. 또한 DSR이 40%를 넘는 가계는 234만(19.4%) 가구에 이른다. 더구나 가계부채의 약한 고리로 지적되는 자영업자 대출, 다중채무자 문제, 고령층 대출 등은 통계도 제대로 잡히지 않는 실정이다.

현 정부 임기 내에는 관리 가능?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우리나라 가계빚에 대한 경고는 끊이지 않는다. 맥킨지글로벌연구소(MGI)는 3월 초 한국을 네덜란드·캐나다·스웨덴·호주·말레이시아·태국과 함께 ‘가계부채 잠재적 취약국가’로 분류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은 부채 구조조정에 나섰는데, 오히려 가계부채가 급증한 나라들이다. OECD는 최근 ‘한국의 높은 가계부채에 대한 논의’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한국 경제성장률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3~4%로 둔화 됐음에도 가계부채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경기 침체 가능성을 키운다’고 경고했다. 노무라금융투자는 3월 24일 특별보고서를 내고 ‘(한국의) 주택담보대출 원금상환이 2019년부터 급증해 가계의 상환능력이 2020년 초부터 급속히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미온적이고 대증적인 대처로 일관한다. 빚의 총량뿐 아니라, 가장 핵심인 상환 능력이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많은 지표에도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말을 되풀이한다. 행여 그 말이, ‘박근혜 대통령 임기 내에는 관리 가능한 수준’을 말하는 것일까. 정부가 곧 터질 수 있는 폭탄에 화약을 쟁여 넣고 있다.

1280호 (2015.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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