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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노총은 상위 10% 기득권 지키기 급급” 

노사정 대타협 결렬 


▎박병원 경총 회장.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시작한 노사정 대타협 협상이 지난 4월 9일 최종 결렬됐다. 지난 6개월여의 협상 기간 동안 정부·기업·노조는 서로 자신의 입장만 주장한 채 이견을 좁히는 데는 실패했다. 누구의 탓이랄 것도 없다. 논의보다는 주장이, 타협보다는 억지가, 설득보다는 강권이 난무했다. 협상 결렬로 김대환 노사정위원회 위원장과 최영기 상임위원이 동반 사퇴했다. 노동 현안을 논의할 장은 완전히 깨졌다. 언제 다시 협상 테이블이 꾸려질지 아무런 기약도 없다. 협상 결렬의 배경과 앞으로 노동시장의 전망 등을 듣기 위해 경영자 측 입장에서 협상에 참여한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만났다. 재정경제부 차관과 우리금융지주 회장·은행연합회 회장 등을 지낸 박 회장은 합리적이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능력이 뛰어나 이번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 인물로 평가받았었다.

경총 회장을 비상근직으로 맡은 이유는.

“은행연합회 회장을 마치고 쉬고 싶었다. 트레킹을 다니려 여행 계획을 세워놨는데, 경총 회장이 되면서 모두 취소했다. 2월 말에 뉴질랜드 밖에 다녀오지 못했다. 경총 회장은 좋은 나라를 만들어보자는 선배들의 설득을 거절할 수 없어 불가피하게 맡은 측면이 있다. 덕분에 또 다시 명함을 파게 됐다. 2~3년에 한번씩 명함이 바뀌는 것 같다. 다만, 어차피 매일 출근하지 않고, 업무가 촘촘하게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상근으로 할 필요가 있나 생각했다. 여태까지 상근으로 했던 것을 비상근으로 못할 이유는 뭐가 있겠는가. 여유있게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상근을 안 한다고 했다.”

노사정 대타협이 결국 결렬됐다.

“앞으로 일정은 기약이 없다. 노총 측과 협상의 합이 전혀 맞지 않았다. 노사정 대타협은 불가피하게 노조의 양보를 받아야 하는데, 노조는 노동법 체계에 따라 자신들의 지위가 확고하게 보장되고, 이 기득권을 지키는 데 급급하다 보니 협상 자체가 되지 않았다. 대타협의 본질은 서로 조금씩 양보해 무언가를 추구하자는 것 아닌가. 선진국의 경우 일자리가 위협받는 상황이라면 노조가 임금을 양보해서라도 협상에 나선다. 그러면 정부와 기업은 구조조정 없이 노동 시장을 개혁하고, 실업 수당을 늘린다거나, 재취업 교육을 강화할 수 있다. 우리의 노조는 일말의 위기 의식도 갖고 있지 않는 것 같다.”

협상이 원만하게 진행되지 않은 이유는.

“협상이라는 것은 무언가 잃을 것이 두려운 사람들이 다른 무언가를 얻기 위해 하는 것이다. 서로 주고 받는 것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년은 보장돼 있다. 사법부는 근로시간 단축이나 통상임금 문제를 모두 해결해줬다. 노조 입장에서는 더 이상 쟁취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제3자가 노조에 다 퍼주는 바람에 정부와 기업은 내줄 것이 없었다. 경총 회장으로서 협상장에서 제시할 카드가 아무 것도 없었다. 노총 위원장 역시 협상장에서 아무런 권한이 없었다. 노총 위원장은 중앙집행위원회의 승인을 받은 사안만 결정할 수 있어 어떤 결론을 내릴 권한도 없었다. 협상장에 없는 중앙집행위원회가 협상장 밖에서 사실상 모든 것을 결정했다. 노총 위원장과 일부 합의안을 만들어 놓고도, 다시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번복되고, 다시 합의하면 번복되길 반복했다. 우리 경제가 벼랑 끝에 몰리기 전까지는 다들 위기의식을 못 갖는 법이다. 다른 나라도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움직였다. 현재 노동 시장 구조로는 한국 경제가 한계에 왔다고 본다.”

한계치를 100으로 본다면 현 시점은.

“거의 한계에 임박했다고 본다. 물론 개별 노동자마다 느끼는 정도는 다를 것이다.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 노동자들은 한동안 여유가 있을 것이다. 높은 급여를 받고, 당장 해고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노조가 구성된 상위 10% 대기업들이 망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문제는 취약 계층이다. 취업이 안 된 젊은이들부터 중소기업 종사자들까지. 아래에서부터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할 것이다.”


올해 기업의 신규 채용이 줄어들 것이라는 경총 보고서가 나왔다.

“당연히 채용은 줄어든다. 기업 입장에서는 더 이상 채용을 늘릴 이유가 없다. 정년을 채우고 나가는 직원이 있어야 새로운 직원을 채용할 텐데, 신규 채용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 현재 돈을 버는 기업이 별로 없다. 은행·증권사·통신사·공기업 중 어느 곳이 돈을 벌고 있는가. 심지어 공인중개사 수수료까지 반 토막 났다. 내수를 살리기 위해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많은데, 그 임금은 누구의 임금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은행의 이익이 박살이 났는데, 임금을 어떻게 올려주며, 대다수 기업이 적자를 내고 있는데 어떻게 새사람을 뽑을 수 있는가. 다들 공인중개사 수수료가 줄었다고 좋아하는데, 수수료를 왜 상대방의 소득으로 생각하지 않고 비용으로만 여기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는 서비스업에 대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재화라고 모두 비용으로 치부해버리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기업이 고용을 늘리기 위한 방안이 있는가.

“현재로서는 없다고 본다. 현대·기아자동차가 국내에 마지막으로 공장을 지은 것이 1995년으로 벌써 20년 전이다. 해외에는 공장을 15개나 지을 동안에 한국에는 공장을 짓지 않았다. 체코나 중국에서 생산비를 낮출 수 있는데 굳이 한국에 공장을 만들 필요가 있는가. 한국에서는 현대·기아차에서 일하는 한 줌의 근로자들을 위해 모든 국민이 희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노조 때문에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삼성과 현대·기아차처럼 돈 잘 버는 기업에게 투자와 고용을 늘리라고 다그쳐도 한국에는 투자를 안 한다. 임금 문제를 해결해야 일자리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지금 노동 문제가 아니어도 일자리가 생기기 어려운 환경이다. 각종 규제 때문에 아무도 돈을 벌지 못하는 환경이다. 중국 관광객이 늘어 호텔을 늘리자고 해도 반대가 너무 심하다. 학교가 200m 안에 있다고 호텔 못 짓게 하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 국립공원 안에 케이블카를 설치 못하게 하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 정부가 기업 손목을 비틀어 투자를 늘리면 무엇 하겠는가. 수요가 부족한 상황인데, 공급을 늘리면 공급 과잉은 더욱 심해지게 마련이다. 수요 부족 때문에 경기가 안 좋으니 임금을 더 주고 가처분소득을 늘리라고 하는데, 그러면서 또 투자를 하라고 독려한다. 이런 모순이 또 어디 있나.”

전 정부 때는 잡 셰어링(Job Sharing) 같은 정책도 내놨다.

“잡 셰어링은 궁여지책으로 만든 것인데, 결국 근본적인 대안은 아니었다. 근로자 개개인의 일자리를 나누자는 것인데 어느 누가 동참하겠는가. 그 정책을 만든 사람이 옆에 있다면 핀잔이라도 주고 싶다. 잡 셰어링이란 새로 생겨나는 파트타임 같은 일자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마트 캐셔 종사자들 대부분은 주부들인데 가사 등의 이유로 하루 종일 일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오전이나 오후, 저녁에 3~4시간씩 일을 하고, 한 달에 60만~70만원의 월급을 받는 일자리를 선호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수요·공급의 판이 바뀌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5년 임기 동안 일자리가 126만개 늘었는데, 그중에 사회·복지 파트타임 일자리가 65만개나 됐다. 이런 것을 두고 잡 셰어링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 우리나라는 정상 근무시간에 받는 월급으로도 부족해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을 자랑하지 않는가. 지금 자신의 일자리를 남에게 나눠줄 정도로 급여가 많은 사람은 드물다. 그만큼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심각하다. 노조가 조직된 대기업 근로자는 전체 근로자의 10%에 불과하다. 나머지 노동자들은 전혀 다른 상황이다. 노조의 주장이 노동자 전체를 대변하지 않는다. 노조는 10% 이익을 지키는 집단일 뿐이다.”

중소·벤처 기업이라고 채용에 적극적이지는 않다.

“노조는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대신해 정년 연장이나 기타 대가를 얻고 싶어하는데, 기업 입장에서는 걱정이 먼저 들 수밖에 없다. 현재 노동법제는 노사 간 합의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노사 간 합의의 주체는 노총으로 돼 있다. 여기에서 벗어나 법인과 개인 간에 합의가 가능하게 해야 한다. 벤처기업이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지만 비전을 보고 취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해야 한다. 반대로 벤처기업의 성장을 위해 경영이 어려워지면 근로자를 쉽게 자를 수 있어야 한다. 노동경직성에 대한 문제인데, 개인과 법인의 판단과 선택을 두고 왜 제도가 막고 있는지 모르겠다. 옛날에야 근로자를 보호하는 길이었겠지만, 현재는 상위 10%의 노총이 강고하게 기득권을 지키고 있어, 나머지 90%가 원하는 것을 해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90%는 훨씬 더 유연한 시장을 원한다. 벤처기업이 성공한다면 근로자들도 구글의 창업공신처럼 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1284호 (2015.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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