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News

[美 시장에 도전하는 中 자동차] 저가에서 고가 모델로 전략 선회 

고급 세단 볼보 S60 앞세운 中 지리자동차 … 물류비용 부담 크다는 지적도 

홍창표 KOTRA 중국지역본부 부본부장

▎볼보를 인수한 리수푸 중국 지리자동차그룹 회장은 중국에서 생산한 볼보 자동차를 미국에 수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 사진:중앙포토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10년 봄. 전 세계 자동차 업계를 깜짝 놀라게 한 소식이 전해졌다. 이름마저 생소한 중국 지리자동차가 미국 포드로부터 볼보 승용차 부문을 18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발표한 것이다. 역대 중국 자동차 업계의 해외 인수·합병(M&A)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볼보를 전격 인수하면서 지리자동차는 글로벌 시장에 이름을 널리 알리는 동시에 고급 자동차 시장에 본격 진출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게 됐다.

당시 ‘뱀이 코끼리를 삼켰다’며 놀랐던 업계는 지리자동차의 이후 행보에 대해 궁금증을 가졌다. 과연 ‘제대로 소화를 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이다.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얼마 전 개최된 디트로이트 오토쇼에서 볼보자동차는 중국 쓰촨성 청두 공장에서 생산된 볼보 S60L 모델 1500대를 미국으로 수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올해 중반부터 미국에 수출될 ‘메이드 인 차이나’ 볼보 차는 중국산 자동차의 사상 첫 대미 수출로 기록될 전망이다.

중국산 자동차 최초로 미국 진출

그동안 중국산 자동차의 미국 시장 진출은 간헐적으로 시도되어 왔다. 그러나 빈번이 좌절을 맛보았다. 2005년 체리 자동차는 2007년까지 미국에 자사 브랜드 자동차를 수출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현재까지 감감무소식이다. 같은 해 지리자동차 역시 2008년에 소형차를 판매하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2007년에는 창펑자동차가 미국 진출의 꿈을 이루겠다고 출사표를 던졌지만 결국 그 꿈을 접고 말았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당시 글로벌 경제를 얼어붙게 한 금융 위기 여파로 미국 자동차 시장 수요가 크게 위축된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이와 달리 중국은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으로 등극하며 로컬 메이커가 자국 시장에 전념해도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중국 정부 또한 서방 선진국의 품질·안전 기준에 부합하는 자동차를 생산할 때까지 중국 차량의 해외 수출을 의도적으로 늦춰 왔다. 중국 로컬 메이커가 폴크스바겐·GM·포드 등 글로벌 자동차 업체와 합작으로 법인을 설립하고 있는 것도 미국 시장 진출의 걸림돌이 되었다. 이들 외국 기업이 자국 공장의 노조 반발을 우려해 스스로 중국산 자동차 수출을 자제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볼보의 미국 시장 진출은 지금까지 상황과는 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우선 볼보가 가지고 있는 강점인 브랜드 파워를 들 수 있다. 볼보는 ‘안전성’을 가장 중요한 브랜드 파워로 내세운다. 볼보라는 브랜드 가치로 중국산 자동차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인식을 타파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 소비자의 볼보에 대한 인지도를 볼 때 기본적인 판매량은 문제없다는 자신감을 표한다.

다음으로 기존 중국 메이커가 중저가 모델 위주로 미국 시장을 노크하던 것과는 달리 럭셔리 모델을 선보인다는 점도 차이점이다. 볼보 S60L모델은 기존 S60모델보다 휠베이스가 길다. 중국의 부유층을 겨냥해 개발한 맞춤형 차종이다. 미국 시장 역시 휠베이스가 기존 모델보다 긴 제규어의 XJ모델과 아우디의 A8모델이 인기를 모은 바 있어 미국 소비자에게 호응을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리쇼어링으로 대변되듯이 미국의 견고한 경제성장으로 연간 자동차 판매량이 금융위기 전 수준으로 회복되는 등 호황을 맞고 있다는 점도 호재다. 볼보는 청두 공장을 ‘기술 및 장비, 노동환경, 안전 및 환경 기준이 유럽 공장과 동급’이라고 발표하면서 미국 공략에 강한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완성차 업계뿐만 아니라 자동차 부품 업계도 미국 시장 진출에 적극적이다. 중국의 상당수 자동차 부품 업체들은 단순히 부품 수출에 만족하지 않고, 미국 시장 직접 진출을 확대해나가는 중이다. 중국의 급속한 임금 상승으로 제조 코스트가 올라가고 있는데다, 멕시코가 자동차 생산기지로 대두되면서 상대적으로 생산기지로서의 메리트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업체들의 미국 현지 진출은 크게 두 방식으로 나뉜다. 첫째 현지 자동차 부품기업들을 사들이는 방식(인수·합병)과 현지에 미국 법인과 생산공장을 설립해 현지 생산기지를 만드는 것이다. 미국 공략의 기치를 내걸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이 완샹그룹이다. 중국 최대 자동차 섀시 전문 기업인 완샹은 미국의 친환경 자동차 업체인 피스커와 전기차 배터리 업체인 A123 시스템즈를 인수하면서 미국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피스커는 하이브리드 자동차 카르마를 출시하며 한때 테슬라 전기차와 경쟁을 벌였으나, 계속되는 재정 악화로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 지난해 경매를 통해 1억4900만 달러에 피스커를 사들인 완샹은 브랜드명을 Elux로 바꾸고, 내년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미국 시장에 출시할 계획이다. 모델 가격을 13만5000달러로 책정해 고급 자동차 시장을 공략키로 했다.

중국 최대 자동차유리 제조 업체인 푸야오그룹은 GM 생산 기지가 있던 미국 오하이오주에 2억 달러를 투자해 생산 공장을 건립 중이며, 올 여름 본격적인 생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이 외에도 지난해 중국 자동차 플라스틱 연료 탱크 제조 업체 야프는 테네시주에 본사를 둔 ABC 연료시스템사를 인수했고, 완펑(Wanfeng) 역시 전 세계 자동차 마그네슘 캐스팅산업 최대 기업인 메리디안을 사들였다. 중국 자동차부품 업체 양펑의 경우 미국 주요 자동차 Tier-1 업체 중 하나인 존슨 콘트롤과 75억 달러를 쏟아 부어 합작투자 공장을 추진하는 등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에서는 아직 중국산 자동차 및 부품의 품질에 대한 우려가 많아 낮은 가격에도 시장 진출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산 볼보의 미국 진출은 중국 자동차 업계의 경쟁력 테스트를 위한 ‘리트머스’ 시험지로 여겨진다. LMC Automotive의 제프 슈스터 애널리스트는 “이번에 중국산 볼보가 미국 시장의 엄격한 기준에 부합하는지 정밀한 검증이 이루어질 것”이라며, 이는 중국이 자동차산업에서 글로벌 플레이어로 발돋움하기 위한 첫 번째 시험무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일본 브랜드와 경쟁할 것

하지만 볼보가 시험을 통과하더라도 중국산 자동차의 미국 시장 점령이 쉽지 않을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IHS Automotive의 이안 플레쳐 애널리스트는 ‘저가라는 매력 때문에 중국산 자동차가 미국에 어느 정도 침투하겠지만 자동차산업의 특성상 중국산이 장악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자동차는 물류비용이 높아 한국이나 일본의 자동차 업체 역시 70%이상을 미국에서 생산하고 있다며, 중국 브랜드의 자동차가 미국 시장에 진출할 경우 한국과 일본 업체와 경쟁해야 하는데 현재 중국 자동차는 한국과 일본의 브랜드와 비교해 수십 년 뒤떨어져 있다는 게 플레쳐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중국 업체들의 본격적인 미국 시장 진출은 우리나라 관련 기업에게 상대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이는 중국 업체들이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현지화를 통해 시장 대응력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업체 상당수가 뒤떨어지는 기술력을 저렴한 가격으로 커버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한국 기업은 기술력 제고와 지속적인 품질 개선으로 파고를 헤쳐 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1286호 (2015.05.25)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