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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현의 바둑경영] 아무리 돌발사태라도 매번 허둥댄다면… 

충격 추스르고 재빨리 대응책 찾는 바둑 고수의 대응법 배워야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WHO 합동평가단이 10일 서울 삼성병원을 찾아 메르스 감염 관련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 사진:보건복지부 제공
병원을 몇 군데 갔더니 정말 한산하다. 간호사 숫자가 내원객 수보다 많은 곳도 있었다. 강연회나 친목모임도 줄줄이 취소되었다. 예측하지 못한 메르스 변수로 나라가 또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 있다.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이 바이러스에 한국이 이처럼 허둥대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스가 유행할 때도 한국인은 끄떡없었지 않았나. 그랬던 한국이 이번에는 메르스로 상당한 경제적 손실을 입고 있고 국제 무대에서 체면도 구겼다.

예기치 못한 사건이니 어쩔 수 없었다고 볼 수도 있다. 사실 갑자기 몰아닥치는 돌발사태는 아무리 선진국이라고 해도 대비가 쉽지 않다. 지진이나 토네이도 같은 자연재해가 스쳐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곤 한다. 이런 재해는 어느 정도 예견된 것임에도 대비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복병처럼 소리 없이 다가오는 돌발변수에 어쩔 수 없이 당해야만 하나? 메르스 사태와 같은 예상치 못한 사건이 벌어질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에 대한 대책이 없다면 우리는 또 허둥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칫하면 이런 사건이 국가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다. 일본처럼 재난관리에 철저한 나라도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원전 파괴로 국가의 존립마저 문제시되고 있다. 방사능에 오염된 지역이 늘어나면서 먹고 살수 있는 안전한 터전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바둑은 변화막측한 게임


그렇긴 하지만 메르스 사태는 우리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점이 있는 것 같다. 비슷한 사태가 벌어질 때마다 이처럼 허둥댄다면 심각한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돌발사태가 흔하게 벌어지는 바둑과 비교하며 우리의 문제점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바둑경기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변화가 많고 앞날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고요한 호수처럼 잔잔하게 시작했다가도 갑자기 광풍노도가 몰아치는 일대 사건이 벌어진다. 멀쩡하게 살아 있던 대마가 태풍의 여파에 밀려 목숨을 잃는 일도 일어난다. 확실한 집으로 알고 있던 곳이 상전벽해가 되어 갑자기 떠돌이 신세가 되기도 한다. 예상치 못한 이런 사태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면 패배를 당하기 쉽다. 대마가 잡혀 더 이상 승부를 하기가 어렵거나,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어 집으로 대항하기 어려운 지경이 된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수를 당했을 때 사람들은 실의에 젖어 일찌감치 돌을 거두기도 한다. 젊은 나이에 요절하는 것처럼 단명국으로 끝나버리는 것이다. 바둑에서 예측불허의 사태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예를 하나 보기로 하자.

[1도]는 예전에 기타니 미노루 9단과 우칭위안 9단이 쟁투를 벌인 십번기 시합의 장면이다. 흑은 우상 일대에 40집, 하변에 30집 정도의 현금 같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백은 좌변 일대의 광대한 진형과 우하귀의 집모양으로 대항하고 있다. [2도]의 좌변 백진에서 싸움이 벌어졌는데 이런 모양으로 귀결이 됐다. 흑이 백돌 ◎ 다섯 점을 잡고 백진을 깨뜨린 형국이다. 그러나 백도 1·3으로 좌상귀 일대에 70집을 확정하여 불만은 없다. 이 상황을 보면 흑과 백의 영토는 거의 확정된 것으로 보인다. [3도]에서는 그러나 상상하기 어려운 변화가 나타났다. 철옹성 같던 우상귀 흑집 속으로 백이 깊숙이 침략해 들어왔다. 반면에 흑은 좌상귀와 우하귀 백집 속에서 삶을 확보했다. 바둑의 신이 있다고 해도 1도의 상태에서 이런 식으로 사태가 전개되리라고 예측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처럼 바둑은 예측불허의 사태가 흔하게 벌어진다.

하수들은 뜻밖의 사태가 벌어지면 당황해 하며 심할 경우 패닉 상태에 빠진다. 이렇게 마음이 흐트러진 상태에서는 판단력이 흐려져 악수를 둘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악수는 악수를 부른다’고 한다. 하수들의 일반적인 악습은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는데도 미련이나 자신의 관념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희망이 없는 돌을 살리려고 이리저리 발버둥치다가 회복불능의 상황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위기십결] 즉 바둑 십계명을 지은이는 ‘봉위수기(逢危須棄)’를 강조한다. 위기에 처하면 버리라는 것이다.

고수들은 예기치 않은 사태가 벌어졌을 때 대처하는 방식에서 하수와 차이가 있다. 하수와는 달리 고수는 심리적 충격을 빨리 추스르고 최선의 대응책을 찾는 데 주력한다. 예측하지 못한 사태로 피해가 불가피하지만, 그 상황에서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회복할 수 있는 방향을 찾는다. 왕년에 일본의 최고수였던 린하이펑 9단의 예를 들어보자. 린 9단의 별명은 ‘오뚝이’였다. 녹다운이 될 위기에서 쓰러질 듯하다가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는 힘이 강하다는 뜻이었다. 면도날 사카타 에이오 9단과 싸울 때 폐부를 도려내는 듯 예리한 사카타의 펀치를 맞고도 린하이펑은 오뚝이처럼 일어나 결국 사카타의 왕국을 무너뜨렸다. 린하이펑의 비결은 어려운 사태가 왔을 때 좀 당하더라도 피해를 줄이고 정상을 회복하는 전략에 있었다. 린 9단의 전략과 비교해 본다면 우리는 메르스 사태의 피해를 최소화 하기보다 확대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메르스에 너무 겁을 먹어 평상시의 활동을 취소함으로써 메르스로 인한 마이너스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는 셈이다.

메르스가 사망을 불러올 수도 있으니 조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손자병법의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처럼 메르스라는 적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대처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메르스는 위험성이 독감의 절반 정도라고 한다. 호흡기 질환이 있고 면역력이 약한 사람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정된 프로그램을 취소하는 것은 다소 지나친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독감이 유행한다고 모든 활동을 접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적의 실체를 알고 냉정하게 대응하는 것이 승리하는 길임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바둑격언에 ‘반전무인(盤前無人)’이라는 말이 있다. 바둑판 앞에 상대가 없는 것처럼 여기고 두라는 뜻이다. 상대방에게 겁을 먹어 제대로 바둑을 두지 못하는 우를 경계하라고 지어낸 격언이다.

적의 존재도 모르고 습격 당해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우리가 이 바이러스에 대해 거의 무지한 상태에 있었다는 점이다. 멀리 중동에 있는 세균이 한국까지 오겠는가 하고 방심한 면도 있지만, 메르스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안 사람이 거의 없었다. 적의 존재를 모르는 상태에서 습격을 당했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관련 기관에서는 위험요인에 관한 정보수집을 하고 국민들에게 사전에 교육시킬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사건이 생기면 뒷수습을 하려고 전전긍긍하기보다 미리 교육을 하여 예방을 한다면 효과가 더 클 것이다.

바둑에서는 위기에의 대응과 관련된 내용을 많이 가르친다. 미생마 근처에서 싸움을 걸지 말고, 함부로 약한 돌을 만들지 말라고 한다. 집 속에 수가 있는지 확인하고, 잡고 있는 대마가 달아날 수도 있으니 한 수 더 들여 그 가능성을 막으라고 한다. 사전에 예방한다면 위기의 개연성이 훨씬 더 줄어들 것이다. 메르스 사태에서의 문제점과 교훈은 국가적 차원뿐만 아니라 기업이나 개인의 삶에도 적용이 되는 것 같다. 유사한 돌발사태가 발생했을 때 사태의 본질을 냉정하게 파악하여 의연하게 대처하는 자세를 갖도록 하자.

정수현 - 1973년 프로기사에 입단한 후 1997년 프로 9단에 올랐다. 제 1기 프로신왕전에서 우 승했다. 한 국프로기사회장, KBS 일요바둑·바둑왕전의 해설자를 역임했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둑 읽는 CEO』 『반상의 파노라마』 『인생과 바둑』 등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

1290호 (2015.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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