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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삼의 ‘테드(TED) 플러스’] 바이오닉스로 부활한 댄서의 꿈 

장애 없는 세상을 여는 융복합 신기술 … 6백만불의 사나이는 이미 우리 곁에 

박용삼 포스코경영연구원 산업연구센터 수석연구원
미국의 비영리 재단인 새플링에서 운영하는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는 ‘널리 퍼져야 할 아이디어’라는 모토로 경제·경영·사회·과학 분야에서 세계적 저명 인사들의 동영상 강의를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TED 웹사이트에 등록된 강의(1900여건)는 대부분 한국어 자막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뭔가 부족하다. 시사성 있는 강의를 선별해 소개하고, 그 의미를 해석하고 설명한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DJ나 VJ처럼 LJ(Lecture Jockey)로서 테드 강의를 돌아본다.

▎ⓒted.com
스티브 오스틴 대령은 우주선 추락 사고로 한쪽 눈과 한쪽 팔, 양쪽 다리를 잃었다. 미국 정보부는 6백만불을 들여 손상된 그의 신체 일부를 생체기계로 교체하기로 한다. 그는 시속 60마일의 속도에 15m 수직 점프가 가능한 다리, 20배의 줌과 적외선 탐지 기능을 장착한 눈, 그리고 불도저를 넘어 몇 천 마력의 힘을 지닌 팔을 갖게 됐다.

제이미 소머즈는 스카이다이빙 사고로 오른 귀, 오른 팔, 그리고 두 다리를 잃었다. 미 정부는 그녀의 귀에 아주 먼 곳의 소리도 들을 수 있는 인공 달팽이관을 삽입하고 팔과 다리는 기계로 대체한다. 그녀는 스티브 오스틴 대령과 호흡을 맞추며 악당들을 물리친다(둘이 나중에 진짜 사귄다).

첨단 기술의 도움으로 초인적 능력을 갖게 된 이들은 더 이상 TV드라마와 영화 속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바이오닉스 기술의 발전으로 이미 현실에서도 바이오닉 교수·군인·경찰관들을 만날 수 있다. 급기야 바이오닉 댄서까지.

신체의 기능 확장시키는 장치 만드는 기술

바이오닉스(Bionics)는 생물학(Biology)과 전자공학(Electronics)의 합성어로, 생체공학 혹은 생체정보공학이라고도 한다. 쉽게 말해 생물학과 전자공학의 원리를 적용하여 신체의 기능을 확장시키는 장치를 만드는 기술이라고 보면 된다. 흔히 말하는 융복합 기술의 대표격이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미디어랩 바이오메카트로닉스(Biomechatronics) 연구팀을 이끄는 휴 허(Hugh Herr) 교수는 바이오닉스 분야의 선구자인데, 기술의 힘으로 모든 장애를 없앨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신경이식(Neural implant)을 통해 시각 장애자가 앞을 볼 수 있고, 다리 마비 환자가 외골격 신체(Exoskeleton), 즉 인공의족을 이용해 걸을 수 있는 세상 말이다.

휴 허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생체공학에는 세 가지 인터페이스가 중요하다. 우선 기계적(Mechanical) 인터페이스는 인체와 인공의족을 잘 결합시켜 이질감이나 불편함을 없애는 것이다. 신체와 의족 사이의 결합부에는 인조피부를 붙이는데, 그 속에 센서와 스마트 기기를 삽입해서 접합부의 굳기가 상황에 따라 달라지게 만든다. 걸을 때는 전압이 없어 부드럽고 유연하다가도, 뛸 때는 인체 조직과 인조피부가 서로 압력을 받는 정도에 연동하여 딱딱해진다.

다음은 역학적(Dynamic) 인터페이스인데, 인공의족이 마치 살아있는 팔다리처럼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상적인 몸 상태를 가진 사람들이 서거나 걷고, 뛰는 동작에 따라 근육이 하는 일, 그리고 척수에 의해 근육이 어떻게 제어되는지를 연구한다. 그는 생체공학적으로 가장 적합한 추진력을 낼 수 있도록 발목·무릎·엉덩이 같은 곳에 가해지는 토크와 힘을 컴퓨터로 계산해 의족을 정밀제어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정상인의 경우, 종아리 부근의 힘줄이 작용하여 힘을 조절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마지막으로 전기적(Electrical) 인터페이스는 생체공학적 의족이 몸의 신경체계와 소통하는 방식이다. 즉, 마음 먹는 대로 의족을 자유자재로 컨트롤 할 수 있어야 한다. 의족을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하면 다리 전체를 뒤덮은 전극이 머리로부터 근육에 전달된 전기 신호를 측정하고, 그 신호가 다시 의족에 전달된다. 전기 신호를 약하게 하면 의족이 힘을 거의 받지 않고 쉴 수 있다. 전기 신호를 강하게 하면 토크가 커져 걷고 뛸 수 있는 힘을 낸다.

세계 인구의 반 이상이 어떤 형태로든 감각기관이나 운동기관의 문제로 고통 받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기술 부족의 이유로 이러한 고통이 치료되지 못하고 장애와 빈약한 삶의 질을 초래했던 것이 현실이다. 휴 허 교수는 생체 기능을 기본적 수준에서 유지하는 것은 인권의 일부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사람은 원하기만 하면 장애 없는 삶을 살 권리가 있고, 기술적인 혁신이 모든 장애를 극복하게 한다는 것이 그의 확고한 믿음이다.

그는 강연을 마치며 아름다운 여인 한 명을 소개했다. 아드리안 해스렛-데이비스(Adrianne Haslet- Davis)는 춤이 삶의 전부인 무도회 댄서였는데, 2013년 보스톤 테러 사건으로 왼쪽 다리를 잃고 말았다. 어느 재활병원에서 그녀를 만난 휴 허 교수는 그녀가 다시 춤출 수 있도록 돕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MIT 내 의족, 로봇공학, 기계학습, 생체기계학 전문가들을 불러 모아 200일 이상 춤에 대해 연구했다. 정상적인 댄서를 초청하여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춤을 출 때 바닥에 어떤 힘이 가해지는지를 연구했고, 그 자료를 생체공학적 의족에 내장시켜 그녀의 잘려진 왼쪽 다리에 연결했다.

장애 없는 삶을 살 권리


▎MIT의 미디어랩 바이오메카트로닉스 연구팀을 이끄는 휴 허 교수는 등반 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다.
보스톤 테러 사건의 폭발에는 3.5초가 걸렸고 그 짧은 순간 비열한 테러리스트는 아드리안에게서 춤을 빼앗아갔다. 휴 허 교수팀은 비록 200일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녀를 다시 춤의 세계로 돌려보낼 수 있었다. 테드 무대 위에 등장한 아드리안은 남자 댄서 한 명과 함께 ‘링 마이 벨(Ring my bell)’이라는 음악에 맞춰 멋진 춤을 선보였다(측은한 눈길은 필요 없다. 정상적인 댄서와 전혀 구분이 안 된다).

휴 허 교수는 학문적으로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대단히 존경스럽다. 원래 그는 공부와는 거리가 있는 암벽등반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1964년생인 그는 이미 8세 때, 캐나다 로키 산맥의 템플 산(3544m)을 올랐고, 17세에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등반가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다. 그런데 1982년 1월, 뉴햄프셔주 워싱턴 산에 있는 헌팅턴 계곡에서 빙벽 등반을 하던 중 눈보라를 만났고 심각한 동상으로 양쪽 다리를 모두 절단해야 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가 맞다. 그가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것은 순전히 다시 등반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밀러스빌 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MIT에서 기계공학 석사, 하버드 대학에서 생체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바이오닉스 의족 개발에 매진했고, 지금은 자신이 직접 개발한 의족을 착용하고 다시 산에 오른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는 (1991)라는 제하의 책에 자세히 소개되었고, 2002년에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헤어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를 만들기도 했다. 2011년 타임지는 그를 ‘바이오닉 시대의 리더’라고 선언했다.

그의 신조처럼 ‘그 무엇도 인간을 굴복시킬 수 없다(Human being can never be broken).’ 지금도 엑소바이오닉스, 사이버다인, 바이옴(2007년 설립), 리워크로보틱스 등의 업체들이 사고나 질병으로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제 2의 삶을 열어주는 외골격 로봇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전쟁터나 극한 산업현장에서 인체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다양한 장치들도 속속 개발 중이다. 눈 앞에 펼쳐지는 바이오닉스 신세계, 이제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6백만불의 사나이’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아, 잠깐. 그런데 6백만불은 어디서 구하지?

박용삼 - KAIST에서 경영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전자 통신연구원(ETRI)을 거쳐 현재 포스코경영연구원 산업연구센터 수석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분야는 신사업 발굴 및 기획, 신기술 투자전략 수립 등이다.

1290호 (2015.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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