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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의 ‘실록으로 읽는 사서’] 아무리 작은 마을에도 인재는 있다 

인사를 통해 리더의 수준 가늠 … 인재를 통해 구성원의 자발적 복종 유도 

김준태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전통사회에서 지식인들의 필독서였던 사서(四書, 논어·맹자·중용·대학)는 지금도 동아시아의 소중한 고전이자 인문 교양서다. 그러나 원문이 한문인데다 본질적이고 철학적인 내용을 주로 다루다 보니 다가서기가 쉽지 않다. 이 시리즈는 사서의 내용과 구절이 구체적인 현실, 특히 정치 현장에서 어떻게 읽혔는지를 다룬다. 왕과 신하들이 국가 비전을 논의하고 참된 리더의 자격을 되새기고 올바른 삶의 원칙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사서가 어떤 방향성을 제시했는지 실록을 토대로 살펴본다. 사서가 ‘박제된 고전’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고전’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길 기대한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지난 내용에서 인재 등용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훌륭한 인재를 찾아내 마음껏 능력을 발휘하게 해야 비로소 조직의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고,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으며, 리더십 또한 권위를 갖출 수 있게 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그런 인재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주위에서 ‘사람이 없다’ ‘인재 찾기가 힘들다’라는 말을 쉽게 하고, 또 듣는다. 적임자를 자리에 앉히고 싶어도 그 일을 맡을 만한 사람이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인재 육성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데다, 있다 하더라도 ‘조건이 너무 까다로워서’ 혹은 ‘일이 너무 어렵고 대우가 좋지 않아서’ 기피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정말로 적당한 인재가 없을까?

세종 “인재는 항상 있지만 몰라서 못 쓰는 것”

공자는 논어의 〈공야장(公冶長)〉편에서 ‘열 집이 사는 작은 고을에도 반드시 충직하고 신의가 있는 자가 있다(十室之邑必有忠信)’고 했다. 인재는 어디에든 존재한다는 것이다. 정조 때 우참찬을 지낸 황경언에 따르면 ‘그럼에도 인재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인재를 선발하는 사람이 자신의 편견을 고집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노나라의 열 집 밖에 안 되는 고을에도 반드시 충직하고 신의가 있는 사람이 있는데, 하물며 왕의 땅이 천리인 나라(조선)야 두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전하께서 보위에 오르신 후로 아직 어진 선비를 한 사람이라도 초빙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으니 참으로 개탄스럽습니다”라며, 이는 왕이 주관적 잣대와 선입관을 가지고 인재를 등용하려 들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정조1.1.11). 그 관직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을 찾으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사람,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으려 들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인재가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인재를 찾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지 않아서다.세종은 “언제나 인재는 있어왔지만 다만 몰라서 쓰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했다(세종20.4.28). 그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며 “대저 열 집이 사는 작은 고을에도 반드시 충직하고 신실한 사람이 있는 법이거늘, 하물며 온 나라 안에 어찌 사람이 없음을 걱정할 것인가. 다만 구하기를 정성껏 못하고, 천거하기를 조심하지 않았는지 각별히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세종20.3.12). 좋은 인재를 찾기 위해 임금은 항상 진심과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국가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임금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성종은 “옛날부터 제왕은 어진 신하를 구하기 위해 수고로웠으니, 어진 사람을 얻어야 비로소 편안해 질 수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성종15.11.10).

하지만 좋은 인재를 가려낸다는 것은 요순과 같은 성군들도 어려워한 일이었다. 더욱이 임금 혼자서 수많은 사람을 모두 관찰하고 평가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임금 개인의 주관이나 편견이 작용하며 상황을 왜곡시킬 수 있다. 성종이 인재 선발을 담당하는 전조(銓曹, 이조)의 적극적인 역할을 당부한 까닭이다.

그런데 인재를 찾아냈다고 해서 그것으로 일이 끝나지 않는다.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성종이 인재를 “자격 요건에 구애되지 말고 서열을 뛰어넘어 쓰라”고 지시한 것은 그래서이다(성종15.11.10). 인종 때 송인수도 ‘하늘은 그 시대의 일을 감당하기에 넉넉하도록 사람을 내지만, 그 인재들의 재능을 남김없이 다 쓰지 못하므로 제대로 다스려지지 못하는 것이다. 더욱이 절차만 지키고 자격에 따라서만 임용하려 드니, 그러고서 어찌 잘 다스려질 수 있겠는가?’라는 정자(程子)의 말을 인용하며 인재 등용 방법의 혁신을 주장했다(인종1.4.13). 선조 때에도 “인재 선발 방식을 과거(科擧)로 국한시키고 혹은 자급(資級)으로 제한하여 관례에 따라 빈자리를 메우며 순서만 따르게 하니, 비록 세상에 드문 현명한 사람이나 출중한 인재가 있다 하더라도 어떻게 모두 쓰일 수 있겠느냐”며 정형화된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인재를 선발, 배치하라는 요구가 나왔다(선조29.7.2). 인사제도의 형식과 절차를 고집하다가는 자칫 좋은 인재를 놓치게 된다는 것이다.

요즘도 일을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인데 인사 규정에 따른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해서 탈락시키고, 업무능력과 성과가 탁월한데 연공서열로 인해 승진이 누락되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이런 곳에서 인재는 결코 자신의 능력을 최대치로 이끌어내지 않는다. 미련 없이 떠날 수도 있다. 이는 인재 자신을 위해서나 조직 전체를 위해서나 매우 불행한 일이다.

끝으로, 인재는 어느 곳에든 존재한다는 공자의 말이 ‘완벽한 인재’가 무조건 있다는 뜻은 아니다. 모든 분야에 탁월한 인재가 많다는 것도 아니다. 하나의 특출한 능력을 가졌거나, 좋은 인재가 될 잠재력을 보유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사람이란 모든 것을 겸비한 자를 꼭 구할 수는 없는 것이니, 비록 한 가지 기예를 가진 사람이라도 마땅히 구하여서 써야 한다”(성종24.11.11). 또 인재를 발견하는 것 못지않게 ‘인재 후보군’을 발탁해 육성하는 일도 중요하다. 중종 때 김구(金絿)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성품은 본디 착하나 기질이 아름답고 나쁘고의 차이가 있습니다. 상지(上智, 태어나면서부터 최고 수준의 재능과 지혜를 갖춘 사람)는 스스로 능력을 발휘하지만 얻기가 쉽지 않고, 중지(中智, 교육에 의해 재능과 지혜를 개발하는 사람)는 임금이 어떻게 배양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중종13.10.28)인재 육성을 위한 리더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도 중요

박지원이 쓴 [허생전(許生傳)]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자고로 묻혀 지낸 사람이 어디 한 둘이었습니까? 졸수재 조성기 같은 사람은 적국(敵國)에 사신으로 보낼 만한 인재였지만 베잠방이로 늙어 죽었고, 반계거사 유형원 같은 사람은 군량을 총괄할 만한 재능이 있지만 바닷가나 거닐지 않았습니까? 지금 집정자들의 수준을 가히 알 만 합니다.’ 탁월한 인재가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하고 불행하게 생을 마쳐야 한다면, 이는 공동체 전체에도 크나큰 불행이다. 리더는 “인재를 구하되 혹시나 내가 놓치는 인재가 없을까 늘 두려워해야 하고, 인재를 등용하되 과연 적합한 사람인가를 항상 염려해야 한다.”(중종5.12.19). 그리하여 자신의 조직 안에 조성기나 유형원처럼 능력을 사장시키고 있는 인재는 없는지, 리더는 항상 주의 깊게 살펴야 할 것이다. 열 집이 사는 작은 고을일지라도 인재는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김준태 -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성균관대와 동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와 동양철학문화연구소를 거치며 한국의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사상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등이 있다.

1290호 (2015.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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