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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시장 들썩이게 만든 구로다 일본은행 총재] 환율 변동성 줄이려는 ‘신의 한 수’? 

엔화 상승보다는 급격한 엔저 막으려는 목적 

일본 경제 주간지 주간동양경제 특약, - 번역=김다혜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6월 10일 ‘엔화 가치가 더 하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했다가 구설에 올랐다.
‘구로다 쇼크’가 외환시장을 강타했다. 6월 10일 열린 중의원 재무금융위원회에 참석한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실질실효환율로 봤을 때 엔화 가치가 더 이상 하락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한 마디에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24엔 중반에서 122엔 중반으로 급락했다. 헤지펀드도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알 수 없는 사람’이라며 두려워하는 구로다 총재다웠다. 지난해 10월 말 발표한 ‘바주카2(추가 금융완화책)’처럼 깜짝 뉴스를 제공하는 걸 즐기는 그는 이번에도 순식간에 외환시장을 가볍게 움직였다.

일주일 뒤 “환율 방향성 내다본 것 아니다” 해명


구로다 총재는 지난해 가을부터 고조된 엔화 하락세가 수입물가 상승과 저소득층의 개인 소비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을 우려했다. 그의 발언 역시 엔화 하락 속도를 늦추려는 목적이지 엔고를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실제로 엔화 상승과 더불어 주가 하락까지 불렀다. 어째서 그런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구두개입(금융당국이 실제 시장에 자금을 투입하지 않고 말로만 정책을 유도하는 것)’을 하려 했을까(※구로다 총재는 이 발언에 대해 6월 16일 참의원에 출석해 “지난주 의회에서 한 발언은 명목환율 방향성을 내다본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실질실효 환율에 대한 질문이 있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설명한 것”이라며 “앞으로 환율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겠다”고 해명했다).

구로다 쇼크가 발생하기 3일 전, 독일 남부의 휴양지 엘마우에서 열린 주요 7개국 수뇌회의(G7서밋)에서는 한바탕 시장을 뒤흔드는 소란이 있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달러 강세는 문제’라고 발언한 것이 일부 미디어에 보도돼 일시적으로 달러 가치가 소폭 하락했기 때문이다. 곧바로 백악관은 이를 부정하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진상은 오리무중이다. 사실 달러 강세에 대한 견제 움직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미국은 4월 9일 재무성이 발표한 ‘환율보고서’를 통해 ‘세계 경제는 미국을 유일한 성장엔진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그런 식으로는 강하고 지속 가능하며 균형 잡힌 세계 경제가 될 수 없다’고 강한 어조로 각국에 의사를 밝혔다. 이에 대해 미즈호 종합연구소의 오노 마코토 이코노미스트는 “자국 통화 하락으로 이어지는 대규모 금융완화로 경기를 자극하는 것은 불충분하며, 재무적으로 나설 수 있는 국가는 이를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라며 “일본이나 독일을 꼭 집어 비판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지난해 7월 이후, 달러 강세는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외국 통화에 대한 대외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의 명목실효환율은 과거 10개월 사이 12%나 상승했다. 원래대로라면 5월 하순에 개최된 G7재무상·중앙은행총재회의나 앞서 말한 G7서밋에서는 달러 강세에 대한 견제가 있었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금융완화를 통한 유로 하락을 즐기려는 유럽 국가들의 소극적인 자세로 가만히 지켜만 봤다.

6월 5일 발표된 5월 미국 고용통계에 따르면 민간 부문의 증가를 배경으로 고용자 수가 과거 5개월간 크게 늘었다. 시장의 예상을 크게 웃돌았다. 겨울에 잠시 저조했던 고용자 수가 다시금 증가세로 돌아서면서 9월 금리 인상 확률은 급격히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세계 시장관계자들이 마른침을 삼키며 기대하는 대형 이벤트가 종료됐다. 6월 16~17일 열린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다. ‘9월 금리 인상’에 관한 메시지가 명확히 나타날 것인가에 관심이 쏠렸는데 특별한 이슈 없이 비교적 조용히 마무리됐다. FOMC는 인상 속도가 점진적일 것이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시계바늘을 한 달쯤 되감아 일본의 골든위크(5월 초) 직후로 돌아가 보자. 유럽의 헤지펀드와 다양한 인맥을 지닌 이케다 유노스케 노무라증권 수석환율전략가는 ‘뭔가 있다’며 경계 태세를 취했다. 헤지펀드로부터 일본에 관한 문의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일본은행이 뭔가를 꾸밀 가능성은?’ ‘엔저가 진행되면 정부가 견제하지 않을까?’ ‘일본은행에 대한 시장의 기대 심리는 바뀌었나?’ 등 헤지펀드가 엔화 매도 검토를 시작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 후 5월 22일 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강연에서 “연내 금리 인상을 개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히자 엔화 매도와 달러 매입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때까지 달러당 120엔 전후였던 시세는 6월 5일에는 2002년 5월 이후, 13년 만에 최저 수준인 달러당 125엔 86전으로 떨어졌다. 9월 미국 금리 인상이 분명해지면 FOMC 개최 전후로 달러당 128엔까지 환율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러한 전망은 구로다 쇼크로 사라져버렸다. ‘현재 투기성 엔화 매도는 집중되기 어려운 상황이라 1달러=122~124엔대 추이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이케다).

구로다 총재의 발언은 FOMC 회의 후 달러 강세를 억제하는 구세주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구로다 총재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완만한 엔화가치 하락이지 엔화 상승이 아니다. 만일 엔화 상승이 추진된다면, 아베 신조 정권의 높은 지지율 기반인 주가 상승이 와해되고, 수입 물가 하락으로 2% 인플레이션 목표 달성도 먼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엔화 상승과 급격한 엔화 하락을 피해 안정적인 엔저를 실현하는 좁은 길을 돌파할 수 있을까? 불확실하긴 하지만, 구로다 총재는 급격한 엔저만 회피한다면 자연스럽게 안정적인 엔저에 접어들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최대 포인트는 급격한 달러 강세(엔저)가 진행되면 미국의 금리 인상이 좌절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게 달러 강세는 가솔린 가격 하락 등을 통해 개인 소비를 활성화 시키기도 하지만, 수출 분야나 글로벌 기업의 수익성 감소와 같은 불이익도 크다. 예를 들어 4월 23일 미국 구글의 2015년 1분기 실적 발표에서 패트릭 피체트 당시 CFO(최고재무책임자)는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2% 증가했으나 달러 강세 영향이 없었다면 17% 증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애플이나 캐터필러(건설기계업체), 제약회사 등 많은 기업도 실적 발표에서 달러 강세의 악영향을 언급했다.

달러 강세 억제하는 구세주?

달러 강세가 더욱 진행된다면 기업 수익성 악화가 주가 하락으로 파급돼 개인소비 침체로 직결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올해 1분기 달러 강세가 자본재나 자동차 관련, 공업용품 수출 침체에도 일부 영향을 미쳤고, 석유화학 업계의 신규 시설투자 감소로 이어지기도 했다. 지금은 미국이 순조로운 경제지표를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는 얘기다. FRB 고위 관계자들은 달러 상승이나 해외의 수요 침체가 미국 경기 회복을 방해하고, 금융 정책 정상화를 지연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만일 미국이 금리 인상에 실패하면, 다시금 금융완화로 후퇴할 것이며, 금리 격차 축소로 인해 일본은 엔화 상승으로 돌아설 것이다. 이건 일본과 미국 모두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다. 한편, 미국의 금리 인상이 진전되면 일·미 금리 격차는 확산되어 엔화 상승이 어려워진다. ‘구두개입을 해서라도 급격한 달러 상승, 엔화 하락만 저지한다면 목표인 안정적인 엔화 하락을 꾀할 수 있다’ 아마도 구로다 총재의 진의는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 일본 경제 주간지 주간동양경제 특약, - 번역=김다혜

1291호 (2015.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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