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야간 비행> ‘통제의 환상’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착각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정찰비행단 소속 조종사로 활약하던 때의 생텍쥐페리. / 사진:중앙포토
리더는 매번 판단을 내려야 한다. 누가 도와주지 않는다. 오롯이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책임을 져야한다. 그래서 외롭다. ‘오늘밤 내 비행기가 두 대나 날고 있으니까 나는 하늘 전체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 저 별은, 이 군중속에서 나를 찾고 또 찾아내는 신호다. 그래서 나는 좀 어울리지 않고, 좀 고독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우편비행의 총책임자인 리뷔에르도 다른 리더들과 상황이 다르지 않다.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날아오는 세 대의 비행기와 이곳에서 떠나 유럽으로 갈 한 대의 비행기를 총괄 책임진다. 회사의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야간 비행까지 결정했다. 만약 이 시스템이 적시에 작동되지 않는다면 자신은 물론 회사가 입을 타격도 크다. 매번 긴장의 연속이다.

1931년 발표된 <야간 비행>은 생텍쥐페리를 작가로 키운 소설이다. 평소 비행기 운전을 즐겨하던 생텍쥐페리는 비행사로서 하늘에서 겪었던 자신의 경험담을 담아냈다. 자신의 비행 체험을 문학 체험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생텍쥐페리의 작품은 ‘행동문학’으로 분류된다. 생텍쥐페리는 1929년 아르헨티나 우편 항공회사 영업 주임으로 일했다. 소설 속 주인공인 리뷔에르는 ‘디디에 도라’라는 실존인물을 모델로 삼았다.

리뷔에르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항공소장이다. 파라과이·칠레·파타고니아 등 세 곳에서 우편기가 야간 비행으로 날아오고 있다. 이 3대의 비행기가 도착하면 유럽행 우편기에 우편을 옮겨 실은 뒤 떠나보내야 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날씨는 좋다. 칠레에서 온 비행기는 잘 도착했다. 하지만 파타고니아에서 와야할 비행기는 오지 않는다. 엄청난 폭풍우를 만난 조종사 파비앵은 최선을 다하지만 끝내 통신이 끊긴다. 휘발유마저 떨어진 시간, 추락이 확실하다.

비행 체험을 문학 체험으로 승화

계기가 별로 좋지 못한 초기 비행기로 야간 비행은 위험하다. 불 빛 하나 보이지 않는 하늘은 언제나 조종사의 목숨을 위협한다. 리뷔에르는 이같은 위험을 엄격한 규율과 규칙으로 돌파하려 한다. 지각해서 출발하는 비행사에게는 일절 정시출발 수당을 주지 않는다. 안개가 낀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라도 예외는 없다. 조종사가 기체를 파손하면 무조건 수리비용을 받는다. 감독관인 로비노가 조종사인 빨르랭과 친하려 하자 꾸짖는다. 조종사에게 명령을 내릴 때 친분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리뷔에르는 비행기 엔진 정비를 잘못한 직원 리샤르를 해고한다. 20년된 오랜 동료 로블레도 자른다. 로블레는 아이가 있는 가장이지만 얄짤없다. 자신은 오래된 동료를 자른 것이 아니라, 동료가 일으킨 고장을 벌한 것이라고 자위한다. 리뷔에르는 냉혹한 리더지만 실은 여린 사람이다. 자신의 냉정한 결정에 끊임없이 고민한다. ‘나는 공평한가, 불공평한가? 모르겠다. 다만 내가 벌을 주면 사고가 줄어든다. 만약 내가 아주 공평하게 된다면, 야간 비행은 매번 치명적인 모험이 되고 말 거야.’

리뷔에르는 많은 것을 직접 챙긴다. 3대의 비행기가 모두 도착하기 전까지 착륙장을 거니며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일일이 비행기에 전보를 보내 위치를 확인할 것을 지시하고, 이들이 어디쯤왔는지는 항공지도를 펴 직접 확인한다. 회계와 직원에 대한 상벌도 꼼꼼히 챙긴다. 그는 자신이 직접 챙겨지 않으면 사고가 날 것 같아 불안한 게다. 그러니 매일밤 늦게 들어가고, 연애를 제대로 해본 적도 없다. 그는 생각한다. ‘내가 보살피지 않고, 잘 마련된 일들이 그저 제 갈길을 가게 내버려 두면, 그때에는 이상하게도 사고가 생긴다. 마치 내 의지 하나로 비행 중에 있는 기체가 절단이 나는 것을 막고, 폭풍우가 비행 중에 있는 우편기를 지연시키는 것을 막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CEO라면 뤼비에르의 심정을 십분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도가 지나칠 경우에는 의심해봐야할 심리가 있다. ‘통제의 환상’이다. 통제의 환상이란 실제로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인데 통제하거나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는 심리를 말한다. 예를 들어 로또 번호를 기입할 때 자동번호보다는 내가 직접 적어야 왠지 더 잘맞을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자동번호로 하거나 자신이 직접 번호를 선택하거나 당첨될 확률은 비슷하다.

1965년 젠킨스와 워드는 실험을 해봤다. 두 개의 스위치를 마련한 방에 실험 참가자를 넣고 전등을 켜도록 했다. 전등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 방에 들어간 사람들은 스위치를 더 강하게 눌렀다. 더 세게 누른다고 전등불이 들어오지 않지만 힘주어 누르면 왠지 불이 들어올 것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미국의 한 학자도 참가자 A, B를 모집한 뒤 피실험자들이 소음에 얼마나 견디는지를 실험했다. 소음이 최고조에 이를 때 소음을 줄일 수 있는 붉은 스위치가 A방에는 없고, B방에는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같은 소음을 줬을 때 A가 더 빨리 방에서 튀어나왔다. B는 좀 더 참았다. 사실 두 방 다 붉은 스위치는 작동하지 않았다. 자신이 소음을 조절할 수 있다고 믿은 B는 고통을 참는 한계도 더 커졌다.

2003년 카드채 사태의 교훈

‘통제의 환상’을 ‘플라시보 버튼(위약 버튼)’이라고도 부른다. 맨해튼 횡단보도 앞에는 신호등을 작동시키는 버튼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버튼을 누른 뒤에는 파란불이 바뀔 때까지 불만 없이 잘 참아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작동하지 않는 버튼이었다. 대형 빌딩의 사무실에는 종종 가짜 온도조절기가 있다. 온도조절기가 있다고 믿은 사람들은 더위와 추위에 더 잘 견뎠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때때로 ‘통제의 환상’에 빠진다. 특히 계획경제를 성공적으로 해본 정부일수록 통제의 환상에 쉽게 빠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3년 카드채 사태다. 당시 정부는 “카드채가 전체 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며 “설혹 카드채가 문제가 되더라도 우리가 처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막상 카드채 사태가 터지자 금융시장뿐 아니라 재계 전체가 긴장했다. 특히 당시 LG카드는 자칫 LG그룹을 위기에 빠뜨릴 뻔했다.

최근 가계부채가 폭증하는 데 대해 금융당국은 ‘잘 관리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변동금리를 고정금리로 바꾸고,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로 바꿔주면 리스크가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과연 미국발 금리 인상으로 가계대출 금리가 뛰어오를 때 정부는 안정적으로 가계부채를 ‘통제’할 수 있을까? 정부가 편성키로 한 추경도 마찬가지다. 재정이 조금 나빠지겠지만 관리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중앙정부의 국가채무는 490조원이지만 공공 부문 전체를 합치면 1958조원이라는 한국경제연구원의 보고도 있다. 우리 재정은 정말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일까? 그 답은 정부도 모른다. 사건이 터져봐야 알뿐이다. 기업 분석과 세계 경제 분석을 잘하면 주식 투자를 성공할 수 있다고 맹신한다면 ‘통제의 환상’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주식 가치와 세계 경제는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1295호 (2015.07.2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