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Life

[골프 메이저 대회의 ‘깜짝 우승’ 톱10] 英 거장 꺾은 美 청년, 골프 열풍 일으켜 

전인지는 한 해에 한·미·일 메이저 우승 ... 존 댈리는 대기 선수에서 영웅으로 

남화영 골프칼럼니스트

▎신지애에 이어 한 해에 한·미·일 메이저 우승 기록을 세운 전인지. / 사진:중앙포토
19세기 후반 골프가 미국에 전파됐지만, 초기엔 영국풍의 과시적인 레저로 여겨졌다. 1895년 US오픈이 시작됐어도 영국 선수나 스코틀랜드 이민자들이 우승을 독식했다. 브리티시오픈은 1860년부터 시작되었고 링크스 코스에서 나고 자란 프로들이 영국엔 넘쳐났지만, 미국 골프는 이제 걸음마였다. 1913년에 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US오픈을 우승한 선수가 바로 프란시스 위멧이다. 그것도 약관의 나이의 골프장 캐디 출신 아마추어 골퍼였다. 대회장은 그가 살던 브루클라인의 도로 건너편에 있던 더컨트리클럽이었다. 스포츠용품점 점원인 위멧은 그 해 메사추세츠아마추어 골프대회에서 우승하고, US아마추어선수권에서 4강에 오르면서 US오픈 출전 자격을 얻는다. 그는 점장의 허락을 간신히 얻어 출전했다. 마침 그 해 US오픈은 브리티시오픈 5회 우승자 해리 바든과 전년도 우승자인 테드 레이를 초청하기 위해 대회 일정을 6월에서 9월 중순으로 연기한 터였다. 3라운드까지 선두에 5타 뒤지던 위멧은 4라운드에서 79타를 치면서 바든과 레이와 동타를 이룬다. 다음날 영국의 두 거장은 듣도 보도 못한 ‘듣보잡’ 아마추어인 동네 청년과 연장전을 겨룬다는 자체가 스트레스였는지 몰라도 자멸하면서 5, 6타 차이로 지고 만다. 미국 청년이 영국의 거장들을 꺾었다는 건 빅 뉴스였고, 신문들은 대문짝 만한 기사를 냈다. 이후 미국에서 골프는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아마추어 골퍼가 브리티시오픈 우승자 이겨


▎US여자오픈 70년 역사상 최초의 아마추어 우승자 캐서린 라코스테.(왼쪽) US오픈에서 영국 거장들을 꺾은 캐디 출신 아마추어 프란시스 위멧.
지금도 종종 기행을 일삼는 이혼 4번 경력의 존 댈리는 메이저 대회에서 2승을 거뒀다. 처음은 PGA투어에 데뷔한 루키 해에 거둔 PGA챔피언십이고, 4년 뒤에 브리티시오픈에서 우승을 추가했다. 남아공투어와 지역(3부) 투어를 전전하던 댈리는 1991년에 꿈에 그리던 PGA 1부 투어에 데뷔했다. 하지만 23개 대회에 출전해 예선 탈락만 11번을 한 중하위권 성적의 그에게 메이저 출전권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는 대기 선수 중에서도 마지막 순번인 9번째였다. 대회를 하루 앞둔 수요일 오후에 닉 프라이스가 첫째 아이가 태어난다면서 돌연 대회를 포기하자 조직위는 대체 선수를 찾았고, 기적처럼 댈리에게까지 기회가 왔다. 그는 대회 전날 연습라운드도 못했고, 첫날 아침에야 대회장에 간신히 도착했다. 댈리는 처음 도는 코스를 캐디의 설명을 들어가면서 공략하더니만 장타를 과시하면서 결국 12언더파 276타로 브루스 리츠케를 3타차로 따돌리고 우승했다. 당시 미디어들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그의 우승 기사를 ‘무명에서 영웅(Zero to Hero)’이라고 적었다.

아이오와 농부의 아들인 잭 플렉은 어린 시절 캐디를 하면서 골프를 배웠고, 커서는 동네 시립코스의 헤드 프로로 레슨을 하면서 연명했다. 1955년 결혼도 하고 34세가 되자 ‘나도 한번 벤 호건과 같은 최고의 프로가 돼보자’는 야망을 품고서 딱 2년간 투어 생활을 하자면서 도전해 투어 프로가 됐다. 그럭저럭 성적을 내 샌프란시스코 올림픽클럽에서 개최되는 US오픈 출전 자격까지 얻었다. 플렉은 첫날 76타를 쳐 선두와 9타 차였으나, 이튿날부터 69-75-68타로 경기를 마치고나니 3오버파로 그의 영웅인 벤 호건과 동타였다. 다음날 가진 연장전에서 일방적으로 호건을 응원하는 팬들 속에서 플렉은 3타차로 호건을 제치고 첫 우승 트로피를 안았다. 이후로 투어 생활을 계속해 시니어투어 2승까지 포함해 생애 7승을 거두었다. 아직도 팬들은 플렉의 우승보다는 호건의 좌절로 이 대회를 기억한다.

잭 플렉과 비슷하게 뒤늦게 골프로 인생 역정을 가진 이가 오빌 무디다. 그는 한국 골프사에도 족적을 남겼다. 주한 미군으로 14년간 군복무하면서 1959~60년의 한국오픈, 1959년과 1966년의 KPGA선수권까지 4승을 거뒀다. 무디는 제대한 뒤로 35세 나이에 지역 대회를 뛰면서 기량을 쌓아 1968년에 투어 프로로 데뷔한다. 프로 첫해 상금 랭킹은 103위에 그쳤다. 이듬해도 성적이 부진해서 지역 예선을 통해서 US오픈에 출전하게 된다. 무디는 장타력은 있지만 퍼팅은 극도로 약했는데 마침 그해 코스는 파70에 6967야드로 길었고, 그린은 비가 많이 와서 한참 느린 것이 천우신조였다.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순위가 올라갔고 마지막 라운드는 선두에 3타 뒤진 2위로 시작했다. 결국 72타로 1오버파 281타로 1타 차로 2위 그룹을 제치고 우승하게 된다. 이후에도 무디는 투어를 꾸준히 출전했으나 시니어투어에 갈 때까지 더 이상 우승컵은 들어올리지 못했다.

국내 메이저 대회에서의 첫 출전 우승은 지난 1998년 한양 CC에서 열린 한국오픈에서 서라벌 고등학교 2학년인 아마추어 김대섭이 최연소(17세2개월20일)로 달성했다. 내셔널타이틀 대회라서 아시안투어 선수들도 다수 출전할 수 있었지만 초청받은 외국 선수가 불참하면서 얻어낸 성과였다. 김대섭은 마지막날 64타를 치면서 최종 11언더파 277타로 2위 최상호보다 6타나 앞선 압도적인 우승을 일궈냈다. 골프를 시작한 지 5년 만에 거둔 대박이었다. 그는 3년 뒤에 대학 2학년 아마추어 자격으로 출전한 이 대회에서 2승째를 거뒀다.

박세리는 한국여자오픈과 인연 없어


여자 골프 사상 처음 출전한 선수의 가장 놀라운 우승은 1967년 US여자오픈을 꼽는다. 프랑스인 캐서린 라코스테는 올해까지 70회를 거친 이 대회 역사상 유일한 아마추어 우승 기록을 세웠다. 그것도 초청받아 세 번째로 출전한 프로 대회였다. 버지니아핫스프링클럽에서 개최된 대회에서 첫날 71타로 시작한 라코스테는 줄곧 선두를 지켜 최종 10오버파 294타로 수지 버닝, 베스 스톤에 2타차로 우승한다. 그녀는 프로로 전향하지 않고 1969년 8월까지 미국·영국·프랑스·스페인 여자아마추어 선수권을 모조리 휩쓸면서 아마추어의 전설로 남았다. 패션 브랜드인 라코스테를 창업한 윔블던 테니스 2회 우승자 르네 라코스테의 딸이기도 하다.

박세리가 미국에 진출할 때의 롤모델이자 가정과 투어 생활 모두에서 존경받는 선수는 낸시 로페즈다. 멕시코계인 그녀는 1978년 21세 나이에 LPGA투어에 데뷔해 루키 시즌에 9승을 거둔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대회 코스에 적응해야 하는 팍팍한 투어 생활 첫해에 성적을 내기 힘들지만, 낙천적인 그녀는 투어 생활을 오히려 즐겼다. 첫해 9승 중에 하이라이트는 5연승 기록과 함께 메이저인 LPGA챔피언십 첫 우승이다. 6월 중순 오하이오 잭니클러스센터에서 열린 LPGA챔피언십에서 13언더 275타로 2위 에이미 앨콧을 6타차로 제치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로페즈는 이듬해도 8승을 거두면서 승승장구했으니 그녀에게 2년차 증후군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26년간 LPGA투어에서 통산 48승, 메이저 3승을 거뒀으나, 가장 빛난 해는 신인상, 올해의 선수상, 최저타상, 상금왕을 휩쓴 루키해였고 그 정점이 LPGA챔피언십이었다.

국내에서 가장 큰 여자대회는 내셔널 타이틀이 걸린 한국여자오픈이다. 1987년 시작해 올해 29회를 치렀다. ‘오픈’이란 이름이 걸린 만큼 프로 대회에 첫 출전하는 국가대표 아마추어들이 선배 언니들을 깜짝 놀라게 한 스타들의 등용문이기도 했다. 첫 주자가 1993년 140타로 우승한 정일미였다. 용인 골드CC에서 66명이 출전해 3일의 경기를 펼쳤으며, 비로 인해 이틀 성적만 집계됐다. 이후 1995년에 김미현, 1997년 장정, 2003년 송보배가 아마추어로 우승했다. 이들 중 정일미(2002년)·김미현(1996년)·송보배(2004년)는 프로 데뷔 이후에 다시 우승했고, 이지영(2005년), 신지애(2008년), 그리고 올해 우승한 박성현은 프로에서 거둔 첫 우승이 한국여자오픈이었다. 아이러니컬한 건 박세리다. 그는 지난 1992년 15세 나이로 라일앤스코트여자오픈에서 우승한 것을 시작으로 1995년까지 아마추어에서 6승을 거두고, KLPGA에서 통산 14승을 거두었지만, 아직도 한국여자오픈 트로피는 들어올리지 못했다.

전인지가 유러피언여자투어(LET)까지 우승하면…

한국 선수가 LPGA투어 메이저에서 처음 우승한 건 1998년 박세리의 LPGA챔피언십이지만 가장 예상 못한 깜짝 우승은 벙커샷 버디로 뒤집기에 성공한 ‘버디킴’ 김주연의 2005년 US여자오픈이다. 김주연은 2004년 LPGA투어에 데뷔했으나 출전한 20개 대회에서 컷을 통과한 건 고작 세 번뿐이었다. 시드를 잃자 연말 퀄리파잉스쿨을 통해 투어에 재입성했다. US여자오픈 이전에 가장 좋았던 성적은 5월의 톱10에 한 번이 고작이니 체리힐스CC에서 열린 US여자오픈 우승은 어느 누구도 예상 못했다. 마지막 홀인 18번은 459야드의 긴 파4로 세팅되어 4일 동안 버디가 고작 3개뿐, 평균 타수도 4.667타로 최고 난이도를 보였다. 이 홀에 챔피언조로 모건 프리셀과 김주연이 동타로 올랐다. 김주연의 두 번째 샷은 그린 옆 벙커에 빠졌다. 가망이 없었다. 폭발하듯 모래를 사방으로 흩뿌리고 벙커를 빠져나온 볼은 그린을 타고 한참 굴러가더니 마술처럼 홀에 빨려 들어갔다. 그 광경에 프리셀은 보기로 무너지고 김주연은 2타차로 우승컵을 들어올린다. US여자오픈 사상 가장 극적인 승부샷으로 지금도 회자된다.

최근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전인지 역시 올해 처음 출전한 대회에서 거둔 우승이다. 원래 2013년 한국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면서 지난해도 US여자오픈 출전 자격을 얻었다. 하지만 한국여자오픈 일정과 겹치면서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출전하느라 미국행을 포기했다. 올해는 한국에서 이미 3승을 올렸고, 일본에서 열린 메이저 JLPGA챔피언십에서도 첫승을 거두고 미국 대회에 출전했다. 한 해에 한·미·일 3국의 우승을 휩쓴 건 2008년 신지애 이후 처음이지만 전인지에게는 아직 절반의 시즌이 남아 있다. 국내 메이저 우승을 추가하거나 유러피언여자투어(LET)를 우승하면 그것 또한 놀라운 새 기록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깜짝’이 아니고 ‘위대한’이란 단어를 써야 할 것이다.

- 남화영 골프칼럼니스트

1295호 (2015.07.2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