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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대화 | 이상헌 국제노동기구 사무차장 정책특보] 노동이 퇴락하면 삶도 병든다 

‘우리는 소비자이자 노동자’ ... 획기적 변화 없인 저성장 탈출 어려워 


노동은 우리 삶과 맞닿아 있지만 체감도는 낮다. 약간의 빈틈만 생겨도 곳곳에서 문제가 발생하는데도 그것이 ‘나의 것’이 아니면 심각성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럼에도 관심을 놓아선 안 된다. 노동은 단순한 밥벌이를 넘어, 즐거움의 원천이자,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는 노동과 인간다움에 관한 깊은 이해를 담은 책이다. 저자인 이상헌 박사는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차장 정책특보다. ILO에서 일하는 한국인 중에서 최고위직이다. 그는 “노동과 경제는 내가 늘 안고 살아가는 화두지만 경제학과 끊임없이 불화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숫자와 통계로 제대로 분석되지 않는 슬픈 현실에 늘 마음이 아프다. 이 책은 노동과 경제를 넘어 ‘사람’과 ‘행복’을 다룬다. 제목만큼 생소한 내용들로 가득하다. 그만큼 우리가 모르고 살았던 거다. 멀리 스위스 제네바에서 일하는 그와 e-메일로 만났다.


▎저자 : 이상헌 / 출판사 : 생각의힘 / 가격 : 1만5000원
밖에서 보는 한국의 노동환경은 어떤가?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는 일이다 보니, 보고 듣는 것이 많다. 피는 못 속이는지 자연스레 한국을 떠올리게 된다. 예전에 비해 임금도 높고 노동환경도 좋아졌지만, 개선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다. 커진 경제 규모만큼 노동자의 삶이 좋아졌느냐는 질문에, 아무래도 후한 점수를 주기는 힘들다. 가령 산업재해로 귀한 생명을 잃는 숫자는 세계적으로 부끄러울 정도다. 비극을 막을 돈과 기술이 있는 대기업에서 이런 일이 생긴다는 것은 더더욱 이해하기 힘들다. 평균적으로 개선됐다고 할 수 있지만 노동 환경의 격차도 커졌다. 자본과 노동 간의 격차도 커지고, 노동 간의 불평등도 커진 셈이다. 최근 산재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은 대부분 비정규직이다. 한 인간이자 시민으로서의 노동자에 대한 존중이 사라지고, 설익은 경쟁논리만 들이대는 상황이다.”

최근 한국에선 감정노동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시도되고 있다.

“이 책에서 이런저런 관점으로 다룬 문제다. 여론이 뜨거운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매우 반가운 일이다. 우리는 노동자이자 소비자다. 말하자면 한 몸인데,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이 두 가지가 쉽게 분리된다. 개인주의와 소비중심문화의 보편화 등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경험을 통해 확신하는 것은 기업이 노동자를 무시하고 존중하지 않으면, 고객도 그리 한다는 것이다. 가령 어느 식당에서 식당 주인이 직원에게 험한 얘기를 하고 닦달한다면, 손님도 그 직원에게 비슷하게 행동한다. 손님이 직원을 괴롭히면 주인이 못하게 해야 하는데 오히려 직원을 야단친다. 이는 한 시민의 인권을 짓밟는 범죄행위다. 소비자와 노동자는 서비스를 매개로 한 거래 관계다. 즉 동등한 관계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때로 이것이 권력 관계로 바뀐다.”

노동조합의 중요성은 재차 언급할 필요가 없지만 한국에선 일부 대기업 노조에 대한 불만도 크다.

“민감한 문제다. 노조는 노동자가 개별적으로는 약하기 때문에 힘을 모으는 조직 형태다. 핵심은 연대다. 그런 면에서 연대하지 않는 노조는 ‘노조가 아닌 노조’다. 같이 일하는 일터에서 고통 받는 비정규직이 있는데 ‘모르쇠’로 일관한다면 진정한 노조라고 하긴 힘들 것이다. 또 다른 역설도 있는데 구조적 차별과 저임금에 직면해 있는 취약 노동계층이야말로 노조가 가장 필요한데 정작 이들은 노조를 결성하기 힘들다. 걸림돌이 너무 많다.”

자본주의와 주류 경제학의 실패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단적으로 이 저성장의 시대가 오래 갈까?

“짐작만 할 뿐이지,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는 문제다. 금융위기 이후 IMF를 비롯한 국제기구들은 ‘내년부터 좋아진다’를 반복해왔다. ‘양치기 소년’이 된 것이다. 나는 지금의 세계 경제전망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 생각한다. 이런 낙관의 배후에는 시장의 신속한 교정 또는 회복 기능에 대한 기대가 깔려 있다. 그러나 예측이 맞지 않는 것은 단순히 학문적 문제가 아니다. 이를 기초로 정책을 만드는데, 그러다 보면 항상 정책이 불충분하다. 현재 경제 모델의 근본적 변화 없이 세계 경제의 획기적인 유턴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가오는 G20 정상회담문에 이런 우려가 부분적으로 반영돼 있다. 흥미롭게도 불평등이 경제 성장을 저해한다는 문장도 포함될 예정이다. 아주 중요한 변화다.”

소득불평등 해소와 분배는 성장만큼 중요한 것이지만 한국에선 이런 목소리를 내는데 벽이 매우 높다.

“정치나 정책 쪽에서 불평등에 관해 목소리를 높이는 대표적인 인물이 스티글리츠와 크루그먼이다. 이 두 사람이 항상 하는 얘기가 있다. 문제는 결국 ‘정치’라는 것. 불평등은 당연히 다른 한편에 점점 더 부유해지고, 힘이 세지는 집단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들은 이렇게 커진 힘과 돈을 지키기 위해 정치를 포섭하려 한다. 따라서 정치를 이들의 손에서 구출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일리 있는 얘기다. 그러나 쉽지 않다. 그래서 이 두 사람도 때로는 시민사회를 적극적으로 조직하고, 정치를 움직이는 방법 밖에 없다고 말한다. 최근 미국의 샌더스와 영국의 코빈은 이런 시민조직에서 발굴해 낸 인물이 아닐까?”

그래서 노동이란 무엇인가?

“노동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뭔가 낯선 것, 또는 비장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말 그대로 노동은 일하는 것이다. 그냥 우리의 삶 그 자체다. 공기다. 공기가 오염되면 호흡이 힘들고 병에 걸린다. 노동이 오염되고, 퇴락하면 우리 삶도 같이 병들어 가는 것이다. 잘 관리하고, 나눠 써야 하지 않겠나?”


-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ins.com

1310호 (2015.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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