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도 의지도 있는데 일이 없는 세대. 베이비부머가 주축인 ‘50+ 세대’가 맞닥뜨린 냉엄한 현실이다. 자식 교육·결혼 등으로 돈 들 일은 많은데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어쩔 수 없이 창업전선에 내몰리지만 노후를 편하게 보내기보단 빚더미에 오를 확률이 더 높다. 이러다 보니 이들의 경험과 능력이 사장되기 일쑤다. 그렇다고 이들을 방치하면 사회 전체적으로 짐이 될 게 자명하다. 서울시가 전국 지자체 최초로 이들을 돕고 활용할 체계적 시스템과 프로그램을 들고 나왔다. 재단을 만들고 교육프로그램을 짜고 창업연계 정책도 편다. 50+ 세대에 주목한 해외 사례와 대안적 삶을 제시하는 50+ 세대도 만났다.
대기업에 근무했던 김용탁씨(가명)는 지난 10월에 55세의 나이로 정년을 채우고 퇴직했다. 먹먹한 마음에 스스로를 돌아봤다. 아직 일할 의지도 능력도 충분했다. 생계를 위해서라도 회사에서 매달 주는 월급이 절실했다. 그러나 회사 입장에선 연봉은 높은데 효율은 떨어지는 존재에 불과했다. 김씨는 결국 사회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당장 돈은 없고 마땅한 일자리도 없다. 나이가 적지 않은 김씨로선 전공을 살릴 이직도 꿈 같은 일이다. 퇴직금 말고는 아무런 안전망이 없다. 연금을 받기까진 10년도 넘는 세월이 남았다.김씨만의 고민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5분의 1가량의 사람이 짊어진 고민이다. 이른바 ‘50+ 세대’가 맞닥뜨린 냉엄한 현실이다. 조금 거칠게 이야기하면 퇴직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쏟아질 베이비부머(1955~1963년 출생)가 50+ 세대의 주축이다. 물론 이들이 전부는 아니다. 정년이 60세로 연장됐지만 그 때까지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세계적 경기 침체 속에서 우리 기업의 실적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인수·합병이나 인력 감축이 다반사로 이뤄지면서 정년을 채우기는커녕 당장 구조조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러다 보니 50줄에 접어들면 ‘내일의 내 일’을 걱정해야 한다. 이뿐만 아니다. 예전과 달리 60세가 넘어도 힘이 팔팔하지만 일자리는 고사하고 일감을 찾기도 쉽지 않다. 노령인구로 진입하기 직전인 64세까지의 사람도 50+ 세대의 범주에 든다.50+ 세대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통계청에 따르면 2014년 기준 50~64세 인구는 1047만명이다. 대한민국 전체 인구(5150만명)의 약 20%에 해당한다. 아동으로 분류되는 14세 미만이나, 노인으로 분류되는 65세 인구보다 많다. 통계청 자료를 바탕으로 현대경제연구원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50+세대 중 임금근로자는 약 449만명이다. 전체 50+ 세대의 42.9%가 임금근로자로 일한다. 나머지는 자영업으로 생계를 꾸리거나 직업이 없는 사람이다. 임금근로자 중 38.5%는 비정규직이며, 42.3%는 원하지 않는 일자리에서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하고 있다. 그나마 정규직은 퇴직을 앞둔 경우가 많다. 임금근로자의 25.3%가 단순노무, 18.9%가 서비스·판매업에 종사하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것이다.50+ 세대의 일자리 문제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단어가 ‘경비원’이다. 경비원은 50+ 세대의 인기 직종 중 하나다. 나이 50 넘은 퇴직자들이 새롭게 찾을 직장은 많지 않다. 노동 강도가 높은 직업은 체력적으로도 문제가 있을뿐더러, 굳이 힘 좋은 젊은 사람 대신 나이든 사람을 쓸 이유도 없다. 그나마 특별한 기술 없이도 구할 수 있는 일 중 하나가 ‘경비원’이다. 한 중소기업 사장은 경비원 자리도 줄을 섰다고 말한다. “회사에서 오래 경비로 일하던 분이 그만두 게 됐어요. 새로 사람을 구해야지 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여기저기서 청탁이 들어오더군요. 친구·친척은 물론이고 직원의 지인까지 일주일 동안 전화통에 불이 났어요.”이러다 보니 경비원 자리에 고학력자나 전문직 출신이 늘고 있다. 그런데 경비원이 되는 순간 그의 경험과 재능은 무용지물이 된다. 박봉에다 일에 대한 만족도마저 높지 않게 마련인데 ‘처절한 을’이 되기 십상이다. 어지간한 감정 노동자 이상의 부당함과 억울함을 견디기도 해야 한다. 얼마 전 부산의 한 아파트 주민들이 경비원에게 90도 인사를 요구해 물의를 일으킨 게 대표적 사례다.
50~64세가 ‘50+ 세대’더 큰 문제는 이들에 대한 체계적 연구나 고민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노인이나 청년 못지 않게 어려운 상황에 놓였는데도 그들만큼 사회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낀세대’인 것이다. 그나마 최근 서울시가 팔을 걷고 나선 게 위안거리다. 좀 더 체계적인 50+정책을 만들기 위해 재단을 만들고 프로그램도 짜고 있다. 서울시는 50+ 세대의 특징으로 3가지를 꼽았다. 능력·의지·경제력을 가진 세대로 이들을 규정했다. 서울시가 최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의 50+ 세대 중 35.6%가 대학교 재학 이상의 학력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돈을 벌며 각자의 분야에서 쌓은 전문성도 만만치 않다. 이들의 평균 은퇴 시기는 52.6세로 조사됐다. 아직 충분히 사회에 기여하고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나이다. 그만한 학력과 능력도 갖춘 세대가 50+다. 전국의 50대 평균 자산은 4억3000만원, 부채는 8000만원으로 어느 정도 경제력도 갖췄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일자리를 고민하고 있지만 당장 굶어 죽을 만큼 어려운 사람도 적다는 뜻이다.‘당장 굶어 죽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복지정책에서는 뒷전으로 밀리는 경우가 많다. 연금을 수령할 수 있는 시기는 까마득하게 남았는데, 일자리는 알아서 구해야 한다. 정부의 일자리 정책 대부분이 청년실업 문제 해결이나 노인 일자리 마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50대는 노인들이 받는 무료 교통비 혜택이나 별도의 생활비 지원도 받을 수 없다. 기업은 이들을 퇴물로 여겨 사회로 몰았는데, 사회는 이들에게 자생(自生)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처절한 을’로 전락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 필요이들이 과연 쓸모 없는 퇴물일 뿐일까? 의지와 능력을 갖춘 사회 구성원이 그에 걸맞은 역할을 하지 않으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다른 세대가 짊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그나마 낫다. 이들이 지금처럼 방치된 채 노인세대로 접어든다면 더 큰 짐이 될 확률이 높다. 많은 선진국이 이들 세대를 주목해 대책을 내놓은 이유다. 서형수 풀뿌리 사회적기업가 학교장은 “50+ 세대는 빠르게 노인 세대로 진입할 것”이라며 “지금 이들을 위한 체계적 시스템을 마련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아무리 많은 비용과 노력을 쏟아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남경아 서울시 인생이모작지원단장은 “50+ 세대는 풍부한 잠재력을 지닌 세대”라며 “이들이 가진 능력과 자산을 잘 이용한다면 한국 사회에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50+ 세대를 위한 체계적이고 시스템화된 복지가 필요하다. 지금도 50+ 세대를 도와줄 몇몇 정책은 있다. 일자리 정책에도 장년층을 위한 제도가 있고, 퇴직을 앞둔 세대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창업을 하거나 자원봉사 프로그램에 지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제도가 중구난방이다. 50+ 세대의 문제를 인식하고 필요한 지원책을 찾는 데 도움을 줄 제대로 된 통계도 없다. 여러 제도와 지원을 하나로 모아 체계적으로 관리할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50+ 세대를 양지로 끌어줄 공간도 마련돼야 한다. 막 퇴직한 50+ 세대는 직장의 조직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새롭게 펼쳐진 환경에 적응하기 쉽지 않다. 당장 늘어난 시간을 보낼 마땅한 장소도 없다. 여가 생활에는 돈이 든다. 지갑이 얇아진 탓에 여가에 쓰는 몇 만원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정부나 지자체가 마련한 무료 복지 공간에는 노인이 주축이 된 견고한 커뮤니티가 형성됐다. 50+ 세대의 상당수가 이런 복지공간을 찾는 것 자체를 껄끄럽게 여긴다. 무능한 존재로 낙인 찍히는 느낌이 강해서다. 많은 50+ 세대가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고립무원에 빠지는 이유다.50+ 세대의 당면한 과제는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이다. 기존의 이해관계를 벗어나 서로 돕고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 때로는 위로와 조언을 해줄 상대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시 일할 용기와 아이디어가 샘 솟을 수 있다. 자신이 가진 재능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사회에 환원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50+ 세대가 가진 잠재력에 주목해야 할 시점이다.- 박성민 기자 park.sungmin1@join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