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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메가뱅크는 지금] 뜨는 중국 저무는 영국 고군분투 미국 

M&A, 합작법인 세워 해외 영토 확장 ... 비이자 부문에서 고수익 


▎사진:중앙포토
“영국 은행이 글로벌 무대에서 사라지고 있다.” 글로벌 은행정보사이트 ‘더뱅커’가 지난 6월 세계의 은행 업계 최신 순위를 발표하면서 밝힌 내용이다. 실제로 영국을 대표하는 대형 은행 HSBC홀딩스가 세계 은행 순위 9위에 올라 간신히 10위권에 진입한 것을 제외하면 상위권에서 유럽 은행은 전무하다. 지난해 5위였던 HSBC의 순위는 1년 만에 네 계단이나 떨어졌다. 더뱅커지 편집자 브라이언 캐플런은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영국을 비롯한 유럽 은행이 글로벌 리더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면서 “금융위기 이후 이들 은행이 규모를 축소하고, 본국에서의 수익성 회복에 초점을 맞추면서 영국에 기반을 둔 글로벌 은행의 파워가 약화됐다”고 평가했다

영국 은행이 ‘저무는 해’라면 중국 은행은 그야말로 ‘뜨는 해’다. 중국공상은행(ICBC)은 세계 은행 순위에서 3년 연속 1위 자리를 지켰다. 뒤이어 중국건설은행(2위), 뱅크오브차이나(4위), 중국농업은행(6위) 등 무려 4개의 중국 은행이 글로벌 순위 톱 10에 들었다. 순이익 측면에서는 중국 4대 국유 은행이 1~4위를 석권했다. 이들 4대 은행이 지난해 벌어들인 순이익은 총 18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미국 은행의 1.75배, 영국 은행에 비해선 무려 10배 가까운 수익이다. 중국 은행의 선전은 거대한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해외 금융시장에서 규모와 영향력을 빠르게 확대한 것에서 비롯됐다. 실제로 이번 조사결과 세계 1000대 은행 중 117개 중국 은행이 이름을 올렸다. 이는 지난해 발표 당시보다 7개 늘어난 수치다. 중국은 159개 은행의 이름을 올린 미국을 근소한 차이로 빠르게 뒤쫓고 있다.

비록 중국의 물량 공세에 밀리긴 했지만 미국·유럽계 메가뱅크의 경쟁력은 여전하다. 이들 은행의 강점은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 적극적인 해외 확장, 고객 맞춤형 서비스로 요약할 수 있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직후 상대적으로 재무구조가 견실했던 상위권 금융회사가 유동성 위기에 몰린 주요 금융회사를 인수했다. 미국에서는 JP모건체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웰스파고 등이 이런 방식을 통해 업계 수위로 급부상했다. 유럽에서는 BNP파리바와 산탄데르은행 등이 대규모 인수·합병(M&A)에 적극 나서며 자연스레 해외 영토를 확장해나갔다.

규모·이익에서 중국 은행 대약진

스페인 산탄데르은행은 영국의 4위 은행을 사들여 자신감을 얻은 뒤, 언어가 같은 중남미 은행을 수십 개 인수하면서 몸집을 불렸다. 이 은행은 해외 진출 때 현지에서 CEO와 임직원을 채용하는 전략을 쓴다. 인수한 은행의 현지 고객을 빠르게 흡수하기 위해서다. 스웨덴 한델스은행은 유럽권, 싱가포르 DBS는 동남아권 등 언어나 문화가 유사한 인근 지역은행을 상대로 영토를 확장 중이다. 일본 은행은 상대적으로 소규모의 자금을 이용해 선진 금융회사의 지분을 취득하거나 합작법인을 설립, 전략적 업무 제휴를 꾀한다. 주로 미국계 금융회사의 지분을 매입하면서 그 대가로 투자은행 업무, 위험관리 등 선진 금융기법의 전수, 투자회사에 대한 이사직 획득, 미국 외 지역에서의 업무 협력 등을 취한다. 이와 달리 국내 은행은 여전히 지점 또는 현지법인 설립을 통한 해외 진출만을 고집하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의 서병호 연구위원은 “영업 대상 역시 해외 동포나 해외 진출 한국 기업에 국한돼 있어 현지화에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중국을 제외한 국가 은행 중에서 가장 많은 순이익인 388억 달러를 기록한 미국 웰스파고는 대표적인 소매금융 전문 은행이다. 그럼에도 세계 10대 메가뱅크에 꾸준히 진입한 비결은 전체 이익의 50% 이상을 비(非)이자 부문에서 창출한 덕분이다. 웰스파고은행은 고객 1인당 5건 이상의 교차판매(보험, 펀드 등 비은행 상품 판매)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예·적금고객에게 상품을 팔 때 국내 은행처럼 무작정 캠페인식으로 하는 게 아니라, 고객 특성을 정확하게 분석해 맞춤형으로 제공한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메가뱅크의 고객중심주의는 지역고객과 장기간 지속적 관계를 맺으면서 필요한 금융서비스를 알아서 제공하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한델스은행은 지배구조부터 영업방식까지 철저한 지역밀착형으로 언제나 흑자를 내는 은행으로 유명하다. 독일 코메르쯔은행은 경기에 관계없이 중견·중소기업과 장기간 고객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고객과 오랜 관계를 맺으면 기업의 내용을 자세히 알기 때문에 리스크를 사전에 인지할 가능성도 커진다.

실적 부진한 BOA·도이체방크 대규모 구조조정 예정

체계적인 리스크관리도 메가은행으로 성장한 비결이다. 은행이 위기상황에서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를 점검하는 ‘스트레스 테스트’는 국내에는 몇 년 전에야 알려진 프로그램이지만 JP모건은 이미 1990년대부터 시행해온 위기관리 비법이다. 이를 통해 JP모건은 예금액 대비 대출액 비율(예대율)을 항상 75% 이하로 유지하며 위기대응 능력을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구정한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위기에 살아남은 메가은행을 살펴보면 유독 리스크관리위원회의 권한이 막강하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라며 “우리나라의 리스크관리 담당 임원은 부행장급에 정식 등기이사가 아닌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임기 역시 짧아 권한을 발휘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불안한 글로벌 경제 상황으로 인한 위기감은 메가뱅크라고해서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에 비해서도 실적이 쪼그라든 글로벌 은행들은 몸집 줄이기가 한창이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쓰러진 대형 투자은행(IB) 메릴린치를 인수하면서 한때 업계 1위에 등극한 BOA가 대표적이다. 이 은행은 종전까지 전체 매출의 30~40%를 책임진 투자은행 사업부에서 200명을 감원하기로 결정했다. 독일 최대 은행 도이체방크도 실적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임직원의 약 25%를 줄이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모색하고 있다. 도이체방크는 2만3000여명의 감원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HSBC 역시 지난 6월 전체 직원(26만6000명)의 10% 선인 2만5000명을 감원할 방침을 밝혔다.

- 허정연 기자 hur.jungyeon@joins.com

1310호 (2015.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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