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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은 택배 서비스] 싸우고, 훔치고, 속이고… 

택배 늘면서 신종 범죄·갈등 증가 … 대안으로 떠오른 실버택배 눈길 


▎일부 아파트 단지의 택배차량 진입금지를 이유로 택배기사들이 배송을 거부하는 등 택배 관련 사회 갈등이 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택배 차량 진입 금지로 택배사들이 배송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최근 인터넷을 통해 퍼진 ‘택배 반송 스티커’에 쓰인 글이다. ‘걸어서 배송하라는 아파트 쪽 입장에 해결 방법이 없어 반송조치한다’는 내용과 함께 ‘택배기사는 노예가 아닙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갈등은 차량 통행을 막는 고급형 아파트가 늘면서 시작됐다. 지상은 모두 공원처럼 꾸미고, 차는 지하도로 및 지하주차장을 통해서만 다닐 수 있는 아파트 단지다. 아파트 쪽은 모든 차량이 지하통로 및 주차장으로 통행하고 있어, 택배 차량 역시 지상으로 다니지 말라고 요구했다. 택배 차량이 예외가 되면 안전 문제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택배 차량은 해당 아파트 단지의 지하 통로를 이용할 수 없다. 지하주차장 높이가 택배 차량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높지 않아서다. 이에 아파트 측에서는 주차장에 진입 가능한 작은 화물차를 쓰거나 정문에서 내려 손수레를 끌고 각 가정으로 배송하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택배 기사들의 불만이 폭발했고, 공동으로 배송을 거부하고 나서면서 갈등이 증폭됐다. 이 사연은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면서 논란이 더 뜨거워졌다.

택배 서비스가 늘면서 과거에 없던 새로운 사회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이던 택배가 생활의 필수 요소가 되면서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택배 서비스 관련 피해상담은 2010년 9905건에서 2014년 1만4084건으로 늘었다. 그중 절반가량이 ‘계약불이행(불완전이행)’ 및 ‘서비스 품질’ 관련 상담이다. 최근에는 앞선 사례처럼 택배 시비가 개인과 개인을 넘어 집단 대 집단의 갈등으로 번지는 추세다.

택배 피해상담 해마다 늘어


택배를 사이에 둔 갈등은 이해관계가 복잡한데다, 그 원인이 택배산업의 구조적인 문제와 맞닿아 있다. 갈등을 풀기가 쉽지 않은 이유다. 특히 택배 서비스의 수준 저하는 택배산업의 구조와 택배기사의 노동환경과 관련이 깊다. 이들의 소득은 적고 노동 강도는 강하다. 이로 인한 구인난도 심각하다. 이는 서비스의 품질 저하로 이어지고 이게 다시 택배기사 소득 저하의 원인이 되는 악순환이 벌어졌다는 게 택배 업계의 설명이다.

대부분의 택배 기사는 택배회사의 직원이 아니다. 택배회사의 프랜차이즈 지점이라 할 수 있는 지역 영업소와 개별적으로 계약해 배송을 의뢰 받는다. 영업소에서 직접 차량을 마련하고 기사를 고용하기도 하지만 그 수는 적다. 물동량 변동이 심해 직접 고용의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송 업무를 개별 택배 기사와 일종의 외주 형식으로 계약한 후 배송 건당 수수료를 주고 받는다. 결국 택배기사는 고정된 월급을 받지 않고, 근로 기준법의 보호 범위에서도 벗어나 있다.

택배기사의 월평균 순수입은 약 206만원이다. 이마저도 안정적이지 않다. 택배기사 수입의 대부분은 집·배송 수수료이기 때문에 월별 물량처리 실적에 따라 부침이 심하다. 택배 단가가 떨어지면서 수수료 하락 압박도 커지고 있다. 현재 택배회사가 분배해 주는 배송 수수료는 건당 800원꼴이다. 기름값, 보험료, 식비, 차량 구입 및 유지비, 통신비 등 비용은 고스란히 기사의 몫이다. 이들 비용만 100만원에 이른다고 한다. 배송 책임도 기사가 진다. 배송 기한을 지키지 못할 경우 매겨지는 벌금이나 물건을 분실할 때 발생하는 보상책임 역시 택배 기사에게 있다.

지입 형태의 계약구조 역시 택배기사의 소득을 감소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택배기사는 크게 개별차주와 지입차주로 나뉜다. 개별차주는 본인 소유의 화물차량과 영업용 번호판이 있는 개인사업자다. 이와 달리 지입차주는 영업용 번호판이 없는 경우다. 이들은 영업소나 화물운송 업체로부터 번호판을 빌린 뒤 영업한다. 따라서 지입차주는 별도로 지입료 지출이 발생한다. 택배기사 월평균 전체 지출비의 6% 정도가 지입료다. 한국 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지입차주의 비율은 28.4%다. 2010년 80.7%로 올랐다가 최근 들어 비중이 줄었다. 배명순 한국통합물류협회 사무국장은 “정부에서 2만개가량의 택배 전용 번호판을 새로 발급해 지입차주가 줄긴 했지만, 조사 방법에 따라 비중은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택배기사 일은 많고 버는 돈은 적고


▎아파트 단지나 지역마다 택배 거점을 마련해 물건을 한 장소에 모아두고, 일자리가 필요한 시니어를 고용해 개별 가정에 배송해주는 실버택배가 등장했다. / 사진:CJ대한통운 제공
수입에 비해 일은 힘들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택배기사의 하루 평균 근로시간은 약 13시간이다. 이 가운데 운행시간이 9시간, 4시간은 운행 외 업무시간이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미국·일본의 택배 업체에 비해 근로시간이 4시간 정도 길다. 특히 운행 외 업무시간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 그만큼 배송장 처리와 입력, 집하 등에 시간을 뺏긴다는 얘기다. 임재국 대한상의 연구위원은 “택배회사가 직영으로 영업소를 운영하는 해외에 비해 전산 관련 투자가 적어 발생하는 현상”이라며 “최근 대형 업체 위주로 개선되고 있지만 중소 택배사의 경우 아직 열악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주5일 근무는 꿈도 못 꾼다. 택배기사들의 주5일 근무를 선도적으로 이끌었던 우체국택배마저 토요일 배송을 재개하기로 했다. 고객 민원 증가와 서비스 경쟁력 약화 등 현실적인 어려움을 이기지 못해서다. 이로써 당분간 택배기사들의 토요일 휴무는 어려울 전망이다.

실제로 최근 한 포털사이트 게시판에는 ‘택배기사입니다. 우리 좀 살려주세요’라는 제목의 온라인 청원글이 올라왔다. 본인을 현직 택배기사로 소개한 A씨는 택배 기사의 하루 일과를 상세하게 공개했다. A씨의 글에 따르면 택배 기사는 7시까지 작업장에 도착해 업무를 시작해야 한다. 업무의 시작은 ‘오늘 배송할 물건들 분류하기’. 이 작업은 짧게는 3시간에서 5시간이 소요된다. 보통 택배 분류 작업장은 야외에 있어 택배기사들은 몇 시간 동안 더위 혹은 추위와 싸우며 작업을 해야 한다. 이에 대해 A씨는 “배송도 하기 전에 기운이 다 빠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식사는 거르기 일쑤다. A씨는 “보통 택배기사들은 저녁 한 끼만 잘 챙겨먹어도 ‘잘 먹고 다닌다’는 소리를 듣는다”고 말했다. 일하는 동안에는 빵 하나 먹기도 어렵다. 배송이 시작되면 한 손에는 고객 주소가 적힌 송장을, 한 손에는 휴대폰을 들고 운전 중에도 고객들과 연락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매우 위험한 일이지만, 배송과 동시에 고객과 연락을 취하지 않으면 물건이 많은 날에는 밤 12시가 되어도 일을 마칠 수가 없다고 한다. A씨에 따르면 배송 업무를 하다가 다쳐도 택배기사들은 쉴 수 없다. 대신 배송할 사람을 구하거나 배송 수수료의 몇 배에 이르는 돈을 지불하고 대체 배송 수단인 ‘콜밴’을 이용해서라도 배송 업무를 해야 한다.

‘택배 가져가라’는 말에 경비원 폭행

이처럼 근로환경이 열악해지면서 일 하려는 사람은 줄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발간한 ‘직종별 인력수급불일치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운전 및 운송관련업’의 미충원율(채용 실패 인원을 희망 구인인원으로 나눈 비율)은 33%에 달했다. 택배나 택시·버스 등 운송회사들이 필요한 인력 10명 중 3명은 구하지 못해 발을 굴렀다는 의미다. 전체 산업 중 가장 높은 수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택배기사는 늘 시간에 쫓긴다. 배송 건당 임금을 받는 배송기사들이 일정 소득을 올리기 위해선 과거보다 더 많은 물량을 처리해야만 한다. 수익을 내려면 야간 배송도 마다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일하는 사람은 갈수록 줄어 당장 하루 할당량을 배송할 시간도 부족하다. 택배차량 진입을 금지한 아파트의 사례에서 택배기사들이 소형차나 손수레로 물품을 나르라는 요구를 거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짐칸이 낮은 소형 차량은 짐을 적게 실을 수밖에 없다. 다시 짐을 싣기 위해선 시간이 소비되고 운행거리도 길어진다. 택배기사들에게 한 번 이동에 얼마나 더 많은 택배를 실을 수 있느냐 여부는 수입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또 해당 아파트 단지로만 가는 짐칸이 낮은 소형 차량을 따로 배정해야 하는데, 이미 10대 중 8~9대 꼴로 짐칸이 높은 ‘탑차’를 쓰고 있어 현실적으로 도입이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갈등을 줄이기 위해 구조적 변화가 수반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대한상의 임재국 연구위원은 “낮은 택배단가를 현실화하고, 택배 발송 업체와 택배 업체 사이의 계약기간을 늘리는 등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통해 택배기사의 처우를 개선해야 서비스 품질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최시영 아주대 물류경영공학과 교수는 “서비스 경쟁을 하지 않고 원가 경쟁에 매달리는 게 국내 택배의 가장 큰 문제”라며 “그 결과 택배 서비스를 제공하는 택배사원들의 생계는 어렵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객에게 서비스의 차이를 인식시키는 등의 노력을 통해 택배 업체의 서비스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택배에 따른 갈등은 ‘발송인-택배 업체-수취인’ 등 당사자만의 얘기가 아니다. 아파트 경비원도 새로운 갈등의 대상이 됐다. 낮에 택배를 받기 어려운 맞벌이나 1인가구가 늘면서 좁은 아파트 경비실에 택배를 쌓아두는 게 일상이 된 영향이다. 이 같은 갈등이 극으로 치달아 살인을 부르기도 했다. 시흥의 한 아파트에서는 경비원이 경비실로 배송된 택배를 주민들이 새벽 시간대에 찾아가는 문제를 놓고 입주민 대표와 언쟁을 벌이다 흉기로 입주자 대표를 찔러 살해했다. 올해 초 광주의 한 아파트에서는 택배물건을 가져가라는 경비원의 전화에 화가 난 30대 입주민이 60대 경비원의 목을 조르고 발길질까지 한 사건도 발생했다.

택배 관련 범죄도 기승이다. 택배 물품 절도 사건이 가장 흔하다. 특히 아파트와 달리 물품을 맡길 곳이 없는 빌라나 주택가에서 이 같은 사건이 자주 발생한다. 서울 송파구에서는 광고 전단지를 돌리는 척하면서 빌라 앞에 배달된 택배물을 상습적으로 훔친 10대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택배 작업장에서 일하며 송장에 스마트폰이라고 적힌 물품만 몰래 빼돌린 경우도 있다. 택배를 악용한 범죄도 생겨났다. 택배기사로 가장해 가정집에 침입한 뒤 저지른 각종 범죄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애먼 택배기사도 피해를 입는다. 서울 광진구에서 일하는 한 택배기사는 “경계하는 고객을 보면 이해는 가면서도 좀도둑·성범죄자 취급을 받는 것 같아 힘이 빠진다”고 털어놨다. 택배를 사칭한 보이스피싱도 증가 추세다. 택배 문자 등을 활용한 사기다. 문자메시지에 ‘택배를 배달할 주소가 기재되어 있지 않아 반송하겠다’는 문구와 함께 ‘사실 확인을 위해 문자에 표시된 링크를 클릭하라’고 하는 수법을 주로 사용한다. 해당 링크를 클릭하면 악성코드에 감염되거나 가짜 인터넷뱅킹 사이트로 연결된다. 방송통신위원회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추석 전후로 보이스피싱 범죄가 7만2000여건 발생했다. 전월보다 93.6% 증가한 수치다. 택배 대목인 명절이 보이스피싱 사기꾼에게도 대목인 셈이다.

짐 둘 곳 없는 실버택배

택배 배송 중 발생하는 개인정보 유출도 새롭게 떠오른 문제다. 택배회사 전산 시스템에는 택배 물품의 이동정보가 기록되고, 소비자가 실시간으로 배송 현황을 추적할 수 있다. 이용자는 택배회사 홈페이지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서 운송장 번호만 입력하면 현재 택배 위치는 물론 도착 예상시간도 알 수 있다. 운송장에는 수취인 이름과 주소·전화번호 등이 적혀 있다. 조금만 눈여겨보면 구매자가 어떤 물품을 샀는지, 제품의 색상과 사이즈가 무엇인지도 알 수 있다. 이 가운데는 혹시나 이웃이나 택배 직원에게 노출되기 꺼려지는 정보도 있게 마련이다. 대구에서는 아파트에 침입해 수천 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범인이 알고 보니 경비실에 쌓인 택배 물품에 기재된 주소를 확인해 빈 집 여부를 판단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이 같은 사회 갈등과 범죄가 반복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한 각종 방법도 나오고 있다. 일부 아파트에서는 아이디어 상품으로 현관문에 설치할 수 있는 무인 택배함이 등장했다. 택배기사가 아파트의 택배함에 택배를 넣어 두면 주민들이 직접 물건을 찾아가는 방식이다. 다양한 크기별 택배함이 있고, 기사가 물건을 넣으면 따로 전화 연락을 하지 않아도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고객의 스마트폰에 통보가 가는 택배함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부피가 지나치게 큰 물건 등은 배송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또 택배함에서 집까지는 고객들이 직접 물건을 운반해야 한다는 게 단점이다.

대안으로 ‘실버택배’도 등장했다. 아파트 단지나 지역마다 택배 거점을 마련해 물건을 한 장소에 모아두고, 일자리가 필요한 시니어를 고용해 개별 가정에 배송해주는 방식이다. 고용 비용은 택배 업체가 지불한다. 비용이 크지 않은데다, 업체로서는 구인난으로 수급이 어려운 택배기사의 배송시간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는 판단이다. 사회적 가치 창출이라는 이미지는 덤이다. 일부 지자체에서 노인 일자리 차원으로 비용이나 공간을 지원해 주기도 한다. 시니어 인력들은 한 개 거점에 7~8명이 근무한다. 신체적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하루 4시간 정도 교대로 근무한다. 배송 거점 인근 근거리 지역에서 하루에 1인당 50~60여개의 택배를 배송하고 물량에 따라 월 50만~150만원까지 소득을 얻는다. 고객 입장에서는 낯이 익은 어르신들이 배송을 해주기 때문에 안심이 된다.

그러나 실버택배 역시 아직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먼저 서비스 품질 개선이 필요하다. 실버택배를 도입한 아파트에 사는 김성근씨는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늦는다고 배송해주는 할아버지로부터 핀잔을 들었다”며 “어르신이라 뭐라 대꾸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배송 외 업무에서 차질을 빚기도 한다. 택배 거점에서 서류 업무를 맡고 있는 한 시니어는 “운송장 전산 입력 등 업무에서 오류가 잦아 택배 영업소에서 주의를 받은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한 택배 업계 관계자는 “다양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완벽하게 통제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택배 거점 마련도 쉽지 않다. 2년 전부터 실버택배를 사업을 시작한 한 지자체 관계자는 “단지가 크지 않은 아파트에 거점으로 사용하던 컨테이너마저 철거되면서 근처 공터에 새 거점을 마련할 때까지 사업에 차질을 빚었다”며 “새 거점이 아파트로부터 멀리 떨어져 예전에 비해 효율이 떨어지고 어르신들도 힘들어한다”고 전했다.

- 함승민 기자 ham.seungmin@joins.com

1313호 (2015.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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