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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택배업계 지각변동] 소셜커머스發 배송혁명에 ‘택배 3강(CJ대한통운·현대로지스틱스·한진택배)’ 긴장 

매출 늘었지만 출혈 경쟁에 수익성 악화 … ‘로켓배송’ 위법성 놓고 쿠팡과 갈등 


▎쿠팡은 상품 판매부터 물류, 배송을 하나로 연결하는 다이렉트커머스 모델을 국내에서 처음 시도했다. / 사진:쿠팡 제공
주부 최선영(31)씨는 ‘쿠팡족’이다. 쿠팡에서 안 파는 제품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걸 쿠팡에서 구입한다. 아이 기저귀나 분유, 남편 옷, 물과 생필품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한달 평균 40만~50만원 정도를 쿠팡에서 쓴다. 오프라인 대비 저렴한 가격과 각종 이벤트, 카테고리별로 잘 분류한 사용자 환경(UI)도 장점이지만 이런 건 다른 소셜커머스도, 다른 온라인쇼핑몰도 갖추고 있다. 딱 하나 쿠팡이 다른 건 바로 ‘배송시스템’이다. 최 씨를 충성 고객으로 만든 키워드 역시 바로 ‘배송’이다.

“쿠팡에서 물 정기배송(별도 주문 없이 생활 소모품을 특정 기간에 맞춰 배송해주는 서비스)을 신청했는데 쿠팡맨이 ‘밤 늦게 미안하다’고 말하기에 제가 더 미안해진 적이 있어요. 원래 물은 워낙 무거워서 기사님들이 힘들어하거든요. 게다가 로켓배송 상품은 정말 빨리 오더라고요. 정확한 배송시간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거나, 배송이 예정보다 늦어지면 미리 문자를 주는 것도 참 좋은 것 같아요.”

최근 택배 업계의 최대 화두는 바로 ‘로켓배송’이다. 로켓배송은 당일 배송도 가능한 빠른 속도와 자사 택배기사(쿠팡맨)의 직접 배송이 특징이다. 쿠팡에서 판매하는 상품은 크게 두 종류다. 쿠팡이 자체적으로 물량을 보유한 상품이 있고, 다른 판매자에게 단순히 연결해주는 상품이 있다. 후자의 경우는 다른 온라인쇼핑몰처럼 일반 택배 업체에 배송을 맡긴다. 하지만 전자는 쿠팡이 직접 배송한다. 당연히 전자의 배송 속도가 훨씬 빠르고, 서비스 품질 관리도 잘 된다. 문제는 돈이다. 국내에서 상품 판매부터 물류, 배송을 하나로 연결하는 다이렉트커머스 모델을 시도한 건 쿠팡이 처음이다. 그런데 이게 가능하려면 자체적으로 물류센터를 보유하고, 배송 인력을 갖춰야 한다.

지난해 3월 쿠팡이 로켓배송을 시작할 때 주변에선 무리라는 지적이 많았다. 판매 업체가 물류까지 직접 한 선례가 없었던데다, 막대한 인프라 투자가 필요한 탓에 비용 대비 효과에 의문이 있었다. 그럼에도 쿠팡은 100명의 쿠팡맨으로 로켓배송을 시작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외로 반응이 뜨거웠다. 특히 20대 여성, 30대 주부 고객들이 크게 호응했다. 빠른 속도와 쿠팡맨의 친절한 서비스에 칭찬이 쏟아졌다. 애초에 쿠팡이 주목한 건 ‘속도’가 아니라 ‘소비자의 경험’이었다. 쿠팡 관계자는 “단순히 물건을 배달하는 게 아니라, 고객이 받는 시점의 만족감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쿠팡의 연이은 혁신 ‘로켓배송→전기차 배송’


입소문이 퍼지자 로켓배송은 단 1년 만에 쿠팡을 상징하는 브랜드가 됐다. 100명에 불과했던 쿠팡맨은 현재 3500명으로 늘었다. 이 사이 쿠팡은 경쟁 소셜커머스(티몬·위메프)를 멀찌감치 따돌리고 기존 온라인쇼핑몰을 위협하는 강자로 부상했다. 소셜커머스의 출발점인 각종 할인 티켓부터 온라인쇼핑몰의 주력 상품인 생필품까지 취급하는 않는 상품이 없을 정도다. 덕분에 2012년 845억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3485억원으로 급증했다. 올해는 5000억원을 무난히 넘길 전망이다. 김범석 대표가 직접 “더 이상 소셜커머스가 아니다”라고 선언했을 만큼 위상이 달라졌고, 지난 6월 소프트뱅크로부터 국내 벤처 역사상 최대규모인 10억 달러(약 1조10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날개를 달았다.

거칠 게 없어 보였지만 태클이 들어왔다. 택배 업계가 ‘쿠팡의 로켓배송은 불법’이라 주장하고 나선 것. 현행 운수사업법상 운송용으로 허가 받은 차량(노란색 번호판)만 배송할 수 있지만, 쿠팡은 일반 차량(흰색 번호판)으로 배송하기 때문에 불법이라는 것이다. 국내 택배 업체들이 회원인 한국통합물류협회는 국토교통부에 유권해석을 요청했고, 국토부는 “배송비를 부과하고 있다면 위법, 아니라면 상품가격에 배송비가 포함돼 있는지 여부에 따라 위법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다소 애매한 입장을 내놨다.

원래 쿠팡은 원래 9800원 이상인 제품만 무료배송을 하고, 그 이하일 땐 2500원의 배송비를 받았다. 그러나 ‘배송비를 받으면 위법’이라는 국토부 해석을 받아들여 배송비가 무료인 9800원 이상인 제품만 직접 배송을 하기로 지난 5월 방침을 바꿨다. 쿠팡 관계자는 “직접 사들인 물건을 배달하고, 별도의 배송비를 받지 않기 때문에 불법이라 볼 수 없다”며 “로켓배송은 택배가 아닌 쿠팡 고객을 위한 서비스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로켓배송은 위법” VS “택배 아닌 서비스 차원”


그러나 택배 업계는 “9800원 이상 제품에도 사실상 가격에 배송비가 포함돼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직접 단속권한이 있는 21개 지방자치단체에 고발장을 접수했고, 10월엔 자가용 유상운송에 대한 행위금지 가처분 소송도 제기했다. 이와 별도로 고발장을 접수 받은 강남구청이 법제처에 위법 여부를 가려달라고 요청한 상태지만 아직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업계에서도 ‘대기업이 이제 조금 큰 벤처기업의 발목을 잡는다’는 의견과 ‘불법이라면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업계의 견제에 움츠러들 만한데 쿠팡은 더 강력한 맞대응을 택했다. 쿠팡은 ‘앞으로 2년 동안 1조5000억원을 더 투자해, 쿠팡맨을 1만5000명으로 늘리고, 대도시 중심인 로켓배송을 전국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11월 3일 기자간담회에 나선 김 대표는 “물류센터·고객센터 직원까지 합해 2017년까지 3만 9000명을 더 고용할 것”이라며 “영업손실 규모는 더 커지겠지만 어차피 장기적인 계획인 만큼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2010년 문을 연 쿠팡은 이제껏 한번도 흑자를 낸 적이 없다. 지난해엔 적자 규모가 1200억원에 달했다. 그럼에도 투자를 더 늘리겠다는 것은 방향 설정이 이미 끝났고, 자신이 있다는 의미다. 그의 구상대로 쿠팡이 지역 거점 물류센터를 통해 지금보다 배송시간을 조금만 더 줄이면 채소나 육류 같은 신선식품까지 취급할 수 있다. 온라인은 물론 기존 오프라인 유통망까지 흔들 수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갔다. 배송차량을 아예 전기자동차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대구광역시와 손을 잡고서다. 쿠팡은 대구에 ‘친환경 첨단 물류센터’를 짓고, 대구는 전기차 관련 기관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전기 화물차량을 개발할 예정이다. 전기차 보급 확산이라는 정부의 정책 방향에 보조를 맞추면서, 불법 배송 논란에서도 한 발 피해가는 묘수다. 이미 쿠팡은 산업부에 전기차 충전 인프라 구축과 국산 전기차 연구개발(R&D)과 관련한 지원 등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택배 업체 입장에선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쿠팡발 자체 배송 열풍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택배시장의 초고속 성장을 견인한 건 온라인쇼핑이다. 2000년 3조3470억원에 불과했던 온라인쇼핑 시장 규모는 10년 만인 2010년 25조2030억원으로 커졌다. 올해는 사상 처음으로 5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과 홈쇼핑이 주춤하자, 모바일이 새로운 대세로 떠오르면서 성장성을 지탱하고 있다. 덩달아 택배 사업도 잘 나갔다. 2010년 3조원 정도였던 택배 업계 매출은 5년 만인 올해 4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2011년까지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온 것과 비교하면 성장률은 다소 떨어졌지만 여전히 택배산업은 유망한 시장이다. 모바일·온라인 쇼핑이 오프라인을 위협하는 강력한 유통 플랫폼으로 자리잡을수록 택배의 몸값도 덩달아 오른다. 국내 택배시장은 5강 체제다. CJ대한통운·현대로지스틱스·한진택배·로젠택배·우체국택배가 물동량 기준으로 전체의 79%(2014년)를 담당한다. 1위는 단연 CJ대한통운이다. 시장점유율(매출 기준)이 33%로 2위 현대로지스틱스(12%)와 3위 한진택배(10%)에 크게 앞서 있다. 원래 물류기업의 주력 사업은 택배가 아닌 ‘CL(Contract Logistics, 계약물류)’이다. 컨테이너를 떠올리면 쉽다. 그러나 최근 들어 택배사업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올 상반기까지 CJ대한통운 택배 부문 매출은 전체의 28.9%로 전년 동기 대비 2.8%포인트 늘었다. 현대로지스틱스와 한진 역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2%포인트, 1.4%포인트 늘어난 29.3%, 32.8%를 기록했다.

그러나 늘어난 매출이 좀처럼 수익과 연결되지 않는다. 국내 택배시장 박스당 평균 단가는 2005년 3000원대가 무너진 이후 줄곧 떨어지고 있다. 2013년 2500원대마저 붕괴돼, 지난해엔 2449원으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물동량이 늘어도 단가가 떨어지니 이익이 늘지 않는 구조다. 조병희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시장이 커지고 있음에도 택배 단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건 경쟁 업체 간 서비스 격차가 크지 않기 때문”이라며 “시장을 주도하는 CJ대한통운도 쉽게 단가 인상을 시도하지 못하고, 이 때문에 양적 성장이 이어지는 기간에도 택배 업체들의 수익성은 오히려 악화됐다”고 분석했다.

택배 단가 하락에 수익성 갈수록 악화


경쟁이 너무 치열해 나눠먹을 파이가 줄어드는 전형적인 레드오션이다. 이 와중에 소셜커머스 등 고객들이 이탈하는 건 택배 업체 입장에선 상상하기 싫은 일이다. 가뜩이나 쇼핑 트렌드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만약 다른 온라인쇼핑 사업자들도 직접 배송을 하겠다고 나서면 수요 감소가 불가피하다. 그러나 윤희도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CJ대한통운 등 대형 택배 업체들이 최근 당일배송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확대할 채비를 갖추고 있어 이들을 잘 활용하면 로켓배송에 못지 않은 빠른 배송 시스템을 확대할 수 있다”며 “택배업이 물류창고 확보, 운영 시스템 도입, 영업용 배송차량 확보, 직원 채용 등 고정비 투자가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 직접 배송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유인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어쨌든 쿠팡 때문에 업계 판도가 요동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업계 4위 로젠택배가 매물로 나왔다. 로젠택배의 대주주인 베어링프라이빗에쿼티는 JP모간을 주간사로 선정하고, 현재 매각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회사만 놓고 본다면 매력적이다. 로젠택배의 매출은 2012년 1908억원에서 2014년 2636억원으로 38% 증가했다. 영업이익도 같은 기간 64억원에서 207억원으로 늘었다. 8~10% 정도의 꾸준한 영업이익률도 장점으로 꼽힌다. 게다가 로젠택배는 매출 1000억원 정도인 KGB택배 지분 72.2%를 보유하고 있다. 한꺼번에 물류회사를 두 곳을 품에 안을 수 있는 기회다. 3000억원 전후로 예상되는 매각가 역시 큰 부담은 아니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일단 동종 업체 중에서 나서는 곳이 없다. 현대로지스틱스나 한진택배가 로젠택배를 인수할 경우 단번에 2위로 올라서고, 장기적으로 CJ대한통운도 위협할 수 있다. 그러나 두 회사의 방침은 ‘노(NO)’다. 유력한 후보였던 현대백화점도 ‘인수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9월 현대홈쇼핑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동부익스프레스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최근 매각 가격 등에서 이견을 보여 인수가 무산됐지만, 오래 전부터 정지선 회장이 물류에 큰 관심을 보였던 터라, 로젠택배 인수에 나서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현대백화점 또한 인수 의사가 없다는 입장이다.

택배 업계와 대립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쿠팡이 물망에 오르기도 했지만 김 대표가 직접 나서 ‘택배업체 M&A는 없다’고 밝힌 상태다. 그나마 지난해부터 택배사업 진출을 모색해 온 농협 정도가 후보로 꼽히지만 농협 관계자 역시 “조건을 살펴봐야겠지만 아직까지는 확정된 것이 없다”고 밝혔다.

‘탈 택배, 탈 한국’ 다른 길 가려는 CJ대한통운

2000년대 초까지 30곳 이상이던 우리나라 택배 업체 수는 현재 15곳 정도로 줄었다. 윤희도 애널리스트는 “2010년까지 택배 업계의 M&A는 주로 동종 업체끼리 이뤄졌는데 가격 경쟁력이 없는 업체들이 문을 닫으면서 큰 회사에 흡수되는 구도였다”며 “그러나 2011년 이후엔 베어링프라이빗에쿼티와 오릭스 같은 사모펀드에 매각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처음엔 살아 남은 업체들 간에 덩치 키우기 경쟁을 했지만, 이제는 규모보단 수익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상위업체들은 M&A 대신 사업 조정과 해외 진출에 더 힘쓰는 분위기다. CJ대한통운은 해외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입장이다. 양승석 CJ대한통운 부회장은 지난 5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해외 시장 확대, M&A, 신사업 개척을 통해 2020년까지 현재의 5배 수준인 25조원의 매출을 달성하겠다”며 중기 목표를 밝힌 바 있다. 그는 구체적인 구상으로 국방 물류와 원자력발전소 해체 사업 등을 꼽았다. 수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군수 물류의 민간 이양이 확대될 것으로 보고 이 시장에 뛰어들겠다는 의미다. 원전 해체 사업 역시 2050년 1000조원 규모로 성장할 유망 시장이다.

해외에선 중국과 베트남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CJ대한통운은 현재 중국 대형 물류회사와 합작사 설립을 추진 중이고, 상하이와 심양에 대규모 물류센터를 짓고 있다. 지난 2월 2조원 규모의 싱가포르 물류회사 APL로지스틱스 인수에 나섰다가 실패했지만 앞으로도 괜찮은 매물이 나오면 언제든 뛰어든다는 계획이다. 롯데와 오릭스로 대주주가 바뀐 현대로지스틱스는 ‘퀵 서비스’ 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고, 3강 중 택배 부문 매출 비중이 가장 큰 한진은 그동안 부진했던 해외 시장에서의 외형 확대에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ins.com

1313호 (2015.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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