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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수의 ‘돈이 되는 茶 이야기’] 명산+명인이 빚은 중국 10대 명차 

국예차로 지정된 녹차차왕 ‘타이핑호우쿠이’... 은혜 갚은 원숭이 전설로도 유명 

서영수

▎차밭 너머로 운무에 싸인 황산.
중국의 명산 황산이 타이핑(太平)호수와 만나는 곳에서 만들어지는 녹차가 타이핑호우쿠이다. 1900년 왕쿠이청(1861~1909)이 안후이성 타이핑현 호우컹에서 창제한 호우쿠이는 115년이라는 길지 않은 세월 속에서 중국 10대 명차 등극은 물론 녹차차왕 타이틀을 차지하고 국예차(國禮茶)로 지정되어 외국 수반에게 증정되는 명예를 누리고 있다. 수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기라성 같이 쟁쟁한 중국차의 세계에서 신출내기에 불과한 호우쿠이가 빛날 수 있었던 비결은 독특한 외형에 어울리는 우월한 품질과 더불어 풍성한 스토리의 합작이다.

루지앙현에 살다가 전란을 피해 황산 자락에 있는 타이핑현 호우컹에 와서 차농(茶農)으로 정착한 부친을 닮아 왕쿠이청은 차를 만드는 기술과 안목이 뛰어났다. 타이핑현에서는 호우쿠이의 전신으로 인정받는 타이핑지앤차를 정쇼우칭이라는 차농이 1859년부터 만들고 있었다. 왕쿠이청은 좋은 찻잎을 선택하는 선구안과 자신의 기술을 접목해 최고 품질의 차를 선보였다. 운무로 뒤덮인 해발 800m 이상의 다원에서 어린 싹을 감싼 2장의 어린 찻잎을 채취해 가공했다. 살청(殺靑)한 찻잎을 유념(찻잎을 비벼 세포막을 파괴해 유효성분이 쉽게 용출되게 하는 기법)을 거치지 않고 하나하나 손으로 펼쳐서 만들었다. 완성된 찻잎의 양끝은 날렵하지만 몸체는 편평하고 조금도 구부러지지 않은 채 쭉 펴진 독특한 모양을 갖춰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유념 과정 없이 만들어진 차는 다른 녹차와 달리 여러 번 우려낼 수 있었다. 맛과 향도 뛰어나서 타이핑지앤차의 최고봉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왕쿠이청을 왕라오얼이라고 친근하게 불렀고 왕쿠이청은 차를 만드는 기법을 표준화해서 마을 사람들과 공유했다. 난징과 우한 같은 대도시의 차관과 차판매점에서 타이핑현의 차를 선호했다. 그중에서도 왕쿠이청이 만든 차를 으뜸으로 쳐서 우두머리를 칭하는 ‘쿠이(魁)’를 왕쿠이청의 이름에서 따와 왕라오얼쿠이지앤이라 부르며 최고가에 거래했다.

손으로 펼쳐 만든 독특한 외형

왕쿠이청이 사망한 다음 해인 1910년 왕원즈(왕쿠이청의 아들)와 팡난산, 팡시앤꾸이 형제, 창푸롱이 의기투합해 차창을 만들어 호우쿠이라는 이름으로 차를 만들어 팔았다. 1914년 8월 15일에 완성된 파나마 운하 개통을 축하하는 파나마 만국박람회가 191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다. 국제무대에 차를 출품하기로 결정하고 참가 직전에 차 생산지인 타이핑현을 뜻하는 ‘타이핑호우쿠이’라는 이름으로 출전하게 됐다. 창제된 지 15년 만에 차의 정식명칭이 정해졌다. 팡난산이 대표로 참석한 박람회에서 타이핑호우쿠이는 금상을 차지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획득했다.

파나마 만국박람회를 통해 명품차 인증을 미국에서 처음 받은 호우쿠이는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만났지만 중국 대륙의 운명은 한 치 앞도 가늠하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1913년부터 1935년까지 연평균 500Kg이 거래됐던 차는 생산량과 거래 수요가 점점 감소해 1949년에는 불과 95Kg만이 거래됐을 정도로 호우쿠이의 존재는 유명무실해졌다. 신중국이 대륙을 안정시키면서 호우쿠이의 생산량은 다시 500Kg 정도로 회복됐다.

1955년 중국 10대 명차에 이름을 올리면서 호우쿠이는 명성을 되찾았다. 미국 닉슨 대통령이 1972년 2월 21일 중국을 방문했을 때 저우언라이 총리가 호우쿠이를 국예품으로 증정했다. 호우쿠이의 지명도는 높아졌지만 생산량은 답보 상태였다. 덩샤오핑이 개혁과 개방으로 중국 경제에 활로를 열었지만 1986년까지도 차에 대한 전량 수매권은 국가가 쥐고 있었다. 국가가 차를 수매한 다음 전 인민에게 차를 교환할 수 있는 차표(茶票)를 배급했다. 1987년 국가가 차를 전량 수매하는 정책을 버리자 생산량은 바로 2배로 늘어 1000Kg에 육박하는 호우쿠이가 거래됐다. 호우쿠이의 원산지인 타이핑현이 황산시 황산구로 속하면서 10여개 촌락에서도 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2003년에는 12.6t이 거래되며 비약적인 생산량 증가가 있었다. 거래량의 증가뿐 아니라 2004년에 녹차차왕으로 등극한 호우쿠이는 2005년 경매에서 특등 받은 차 100g이 3000만원에 팔리면서 중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다.

중국의 해를 맞이해 모스크바를 방문한 후진타오 주석이 러시아 푸틴 대통령에게 호우쿠이를 선물한 2007년에는 호우쿠이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치솟았다. 생산량과 판매액은 해마다 20%의 성장을 보였다. 재미난 것은 진품보다 가짜의 유통물량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호우쿠이의 품질은 전통적인 분류법에 따르면 9등급으로 분류하지만 상품으로 취급할 때는 극품(極品), 특급(特級), 1급, 2급, 3급으로 분류한다.

유통량 늘면서 가짜도 급증


호우쿠이가 상종가를 치는 이유에는 명성과 품질 외에도 호우쿠이를 받혀주는 풍성한 스토리가 있다. 1900년을 원년으로 하는 호우쿠이의 짧은 역사를 망각하고 마치 수천 년 전부터 있었던 차로 착각하게 만드는 다양한 버전의 설화가 있다. 사람이 도저히 올라 갈 수 없는 절벽에 있는 차나무에서 찻잎을 채취하기 위해 원숭이를 훈련시켜 차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부터 신혼 첫날밤 여인의 꿈에 등장하는 산신령 버전과 황제가 등장하는 다소 진부한 설화도 있다. 가장 많이 회자되는 전설은 설정과 내용은 다르지만 결국 은혜를 갚는 원숭이로 귀결되는 이야기다. 호우쿠이의 원조 원산지인 호우컹이 원래부터 원숭이의 집단서식지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럴 듯한 소재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도 아닌 원숭이가 은혜를 갚는다는 훈훈한 미담은 사실과 관계없이 호우쿠이에 대한 친근한 매력을 만들어준다. 듣고 싶은 소리만 듣고, 믿고 싶은 내용만 기억하는 사람들의 속성을 파악해 맞춤형 버전이 난무하는 전설의 세계를 비웃을 이유는 전혀 없다.

서영수 - 1956년생으로 1984년에 데뷔한 대한민국 최연소 감독 출신. 미국 시나리오 작가조합 정회원. 1980년 무렵 보이차에 입문해 중국 윈난성 보이차 산지를 탐방하는 등 차 문화에 조예가 깊다. 중국 CCTV의 특집 다큐멘터리 [하늘이 내린 선물 보이차]에 출연했다.

1314호 (2015.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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