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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유 김영사 회장] 회사 살리려 돌아왔다 

검찰서 횡령·배임 고소건 ‘혐의 없음’ 결론 … “직원 사기 진작이 급선무” 


▎김영사의 창업자 김강유 회장은 최근 25년 만에 경영자로 복귀했다.
김영사는 우리나라 출판계의 맏형이다. 김강유(68) 회장이 1976년 창업한 곳으로 지금까지 인문·문학·경제경영·교양과학·철학·아동 등 약 3300종의 책을 발간했다. 국내 서적 중 최다 판매 신기록을 가진 김우중 회장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비롯해 김대중 전 대통령 회고록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장승수 변호사의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등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펴낸 곳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 회사, 지난해부터 시끄러웠다. 약 25년 간 경영을 맡아온 박은주(58) 전 대표가 갑자기 물러나면서다. 갖가지 설이 난무했지만 사건이 수면위로 떠오른 건 2015년 7월 박 전 대표가 창업자인 김 회장을 횡령·배임·사기 혐의로 고소하면서 부터다. 당시 박 대표는 “김 회장이 회사에 손실을 끼쳤고, 경영권을 포기하도록 강요했으며, 그동안 자신의 수입을 김 회장에게 바쳐왔다”고 주장해 충격을 줬다. 그러나 2015년 11월 24일 서울중앙지검 조사 1부는 박 전 대표가 김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고소·고발 건에 대해 모두 ‘혐의 없음’ 결정을 내렸다.

그간 언론 인터뷰를 자제해왔던 김 회장이 입을 열었다. 그는 “이익을 탈취했다는 둥, 사이비종교 교주라는 둥 거짓을 진실인양 유포하는 바람에 회사와 직원들이 큰 상처를 입었다”고 말했다. 12월 23일 김 회장을 서울 가회동 김영사 사옥에서 만났다.

1989년 박은주 전 대표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고 떠났는데.

“외부에 알려진 것처럼 회사를 떠난 적은 없다. 다만, 당시엔 10년 넘게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몸도 마음도 지친 상황이었다. 동시에 회사가 성장하는 단계라 좀 더 적극적인 CEO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경영자라면 사람을 많이 만나고, 술도 좀 마셔야 하는데 내가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다. 당시 박 전 대표의 추진력과 업무 감각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아예 회사를 떠난 건 아니었다. ‘은둔’이라는 표현을 쓰던데, 지방에 머물렀던 시간을 빼면 주기적으로 사무실에 출근해 경영 보고를 받고, 자문을 했다. 나서지 않았을 뿐이다. 책을 기획하는 일도 놓지 않았다. 에릭 시걸의 『닥터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에세이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등은 내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왜 경영 복귀를 결심하게 됐나?

“김영사는 1989년 이후 25년 간 꾸준히 흑자를 냈다. 그러다 2012년~2013년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2014년 초 이사 등재를 하고, 경영 전반을 챙겨보기 시작했다. 여기서 바로 박 전 대표의 비리가 드러났다. 자신의 부동산 투자에 회사 자금을 썼고,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수수료를 가로채는 등 횡령 액수만 175억원에 달했다. 내가 회사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아마 끝까지 몰랐을 일이다. 이 큰 돈을 횡령한 사람에게 경영을 계속 맡길 순 없는 일 아닌가? 법적 절차를 밟을까 생각했지만 회사의 이미지와 그간의 공로 등을 고려해 박 전 대표가 피해액 일부를 변제하고, 물러나는 선에서 마무리를 하려고 했다. 본인도 범죄 사실을 인정하고 합의했다. 그게 2014년 9월이다(실제로 이에 관한 양측의 합의서가 존재한다. 박 전 대표가 퇴직금을 포기하고, 부동산과 주식 등을 통해 변제하는 대신 김 회장이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박 전 대표가 합의를 지키지 않았나?

“그는 합의서 작성 이후에도 꾸준히 회사를 찾아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2015년 3월엔 신사업 아이템을 가져왔다며 프리젠테이션까지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태도를 바꿔 자신이 피해자인 것처럼 인터뷰를 하고, 7월엔 나를 횡령·배임·사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합의서를 무효로 한다는 내용증명을 보내더니 합의서에 쓰여 있지도 않은 ‘새출발 자금(45억원)을 주기로 해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주장까지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사이비 교주’라는 말도 안 되는 이미지를 덧씌웠다. 정말 황당한 일이다.”(※이에 대해 박 전 대표는 회사 자금을 빼돌리거나 유용한 일이 없으며, 합의서 서명 또한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단 검찰이 고소 건에 대해 ‘혐의 없음’을 결정했는데.

“김영사는 문서나 녹취 파일, 증인, 회계자료 등 사실을 밝혀줄 객관적 근거를 이미 확보하고 있다. 검찰에도 제출했고, 충실히 조사를 받았다. 김영사에서 내게 돈을 지급한 건 사실이지만 앞서 말했듯 회사를 떠난 것이 아니라 일을 해왔기 때문에 급여로 받은 것이다. 검찰은 친형이 대표로 있는 한국리더십센터(KLC)에 돈을 빌려준 것도 정당한 절차를 거친 것으로 봤다. 담보를 확보했고, 정해진 이자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가 2008년 말부터 매달 1000만원씩 내 통장으로 입금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그가 법당에 보시를 하겠다며 보낸 것으로 내가 요구한 게 아니다. 당시 박 전 대표의 연봉은 8억원이었고, 난 8000만원을 받았다. 내가 돈이 필요했다면 회장으로 등재하고, 연봉을 더 많이 받으면 될 일 아닌가?”

박 전 대표는 법당에 20년 간 머물며 전 재산을 바쳤다고 한다.

“30년 전 서울대 의과대 학생 2명이 학업 스트레스로 상담을 받으러 왔기에 불교 수행을 권했다. 학교(동숭동)와 수행 장소(명륜동)가 가까웠기 때문에 기거까지 하게 된 건데 나중엔 거의 학사 개념이 됐다. 그 두 명은 이후 의대 교수가 됐다. 여기에 박 전 대표도 함께 기거했고, 그의 남동생도 자주 드나들었다. 그 스스로도 수많은 언론 인터뷰에서 아침 저녁으로 『금강경』을 읽고, 108배를 하며 수행한다고 자랑했었다. 그런 사람이 이제와 법당을 사이비집단으로 몰고 간다. 그리고 전 재산을 바쳤다는 사람이 부동산 자산만 90억원이다. 누구 말을 믿어야 되겠나?”

김 회장이 교주 역할을 했다는 주장도 했다.

“박 전 대표는 법당이 무슨 대단한 종교시설이라도 되는 양 말했는데 그냥 내가 사는 곳에서 가장 큰 방이다. 지금도 이 법당에는 7~8명이 모여 『금강경』을 독송하며 공부한다. 전 동국대 총장인 고 백성욱 박사를 스승으로 모시며 시작된 모임이다. 신도가 7~8명인 사이비 종교가 대체 어디 있나?”

일단 기업 이미지 회복이 시급할 것 같은데.

“이렇게까지 된 이상 법적인 조치를 취하는 게 불가피하다. 주주들의 의견을 수렴해 본격적인 대응에 나설 계획이다. 진흙탕 싸움으로 비춰질까 그동안 자제했지만 이제는 적극적인 회복 노력이 필요한 때다. 인터뷰를 결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우선 투명 경영을 확립해야 한다. 2014년 경영에 복귀한 후 회사의 이익 ‘주주:사원:재투자’에 ‘1:1:1’로 배분하는 것을 공식화했다. 이 방침에 따라 매월 회사의 경영상태와 실적을 전 직원과 공유하고 있다. 직원들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것도 중요하다. 2014년 이익금도 기준에 따라 올해 추석 상여금으로 전 직원에게 지급했다. 회사가 놀이터처럼 뛰어 놀면서 자신들의 행복을 실험하는 공간이 되야 하는데 그동안 이상한 오해를 직원들이 함께 받는 것 같아 너무 안타깝다.”

-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ins.com

1317호 (2016.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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