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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 제조업 뭐가 다른가 | 패러다임 변화의 선구자] 죽은 제조업도 살리는 스마트 혁신 

인더스트리 4.0 개념 만들고 표준화 앞장... 지멘스·보쉬의 대변신 


▎독일 보쉬 공장의 직원이 사물인터넷 기술을 활용해 생산공정을 조율하고 있다. / 사진:보쉬코리아 제공
미국·일본·독일처럼 경제대국으로 불리는 나라는 하나 같이 제조업에 강했다. 막강한 노동경쟁력을 갖춘 중국의 부상으로 사정이 달라졌다. 제조업에 위기가 왔다. 많은 전문가가 ‘더 이상 제조업은 미래가 없다’는 진단을 내렸다. 대안으로 거론된 게 정보통신기술(ICT)과 바이오 등이다. 특히 ICT 분야는 최근 10년 동안 눈부시게 성장했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현대인의 삶이 송두리째 달라졌을 정도다.

역설적이게도 ICT의 발전은 제조업에 새로운 기회가 됐다. 최첨단 ICT와 제조업이 만나면서 새로운 형태의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해진 것. 이른바 ‘스마트 매뉴팩처’다. 선진국들은 부랴부랴 세계로 흩어진 제조공장을 자국으로 불러들였다. 미래가 없다던 제조업이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이름도 다양하다. 미국은 ‘Making in America’, 중국은 ‘제조 2025전략’을 걸고 스마트한 공장을 만들고 있다. 한국 역시 ‘제조업 3.0’ 프로젝트로 이 대열에 가세했다.

스마트 매뉴팩처의 선봉장

스마트 매뉴팩처의 선봉장은 독일이다. 2011년 독일의 경제학자들과 독일 정부 관계자들이 제조업에 스마트 기술을 융합하는 ‘인더스트리 4.0’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이듬해 10월 독일 정부가 ‘하이테크 전략 2020’에 인더스트리 4.0을 편입하면서 본격적인 실험이 시작됐다. 정부와 기업·대학·연구기관이 유기적으로 결합해 과거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제조업을 만들기 시작한 것. 독일경제에너지부는 ‘(인더스트리 4.0을 통해) 앞으로 10년간 2500억 유로(약 324조원)의 추가적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인더스트리 4.0에 대해 ‘향후 5~10년 간 연간 비용절감 효과가 900억~1500억 유로, 매출 확대 효과는 200억~400억 유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독일의 대기업 중심으로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인더스트리 4.0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곳이 1847년 설립된 전기전자 전문 기업 지멘스다. 지멘스의 생산현장은 최첨단 연구소를 떠올리게 한다. 빅데이터를 비롯한 클라우드 컴퓨팅, 사물인터넷과 같은 기술을 망라해 제품을 생산한다. 지멘스 생산라인의 기계는 마치 사람처럼 서로 소통한다. 개별 기계가 정보를 생산해 다른 기계에 전송하고,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른 기계는 작업의 종류와 속도를 조절하는 식이다. 일부 소프트웨어를 켜고 끄는 것 말고는 사람이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다. 과거와 비교해 훨씬 더 효율적인 제품 생산이 가능하다. 독일 남부에 있는 암베르크의 지멘스 공장은 1989년 설립돼 지금까지 동일한 규모와 직원 수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25년 전과 비교해 8배 많은 제품을 생산하고, 5배나 많은 품목의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지난해 4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 작은 시골공장을 직접 방문했다. 독일 정부에서도 인더스트리 4.0의 대표 성공사례로 지멘스의 공장을 꼽는다.

전기전자 기기와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보쉬의 생산현장도 눈여겨볼 만하다. 보쉬는 자체적으로 개발한 실시간 데이터 평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솔루션으로 생산방식을 혁신하고 있다. 라인에서 생산되는 부품(제품)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해 클라우드 서버로 보낸다. 클라우드 서버에서는 3차원(D) 영역에서 이 제품을 구동해본다. 가상으로 제품의 결함을 체크하고, 더 나은 생산방법을 고민하는 것이다. 물리적 공간이나 제품 없이 미래를 예측하고 대응할 수 있는 셈이다.

많은 사람이 스마트 매뉴팩처의 효율성에 주목한다. 새로운 시스템 도입으로 얼마나 더 싸고 빠르게 좋은 물건을 생산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독일 인더스트리 4.0에서 시작된 스마트 매뉴팩처 사업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표준화’다. 이를 선점하기 위해서 전 세계가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표준화된 시스템이 있다면 세계의 수많은 공장에 좀 더 쉽고 널리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하나의 거대한 운영체제가 있다면, 그에 맞는 소프트웨어를 보급하는 일이 쉬워진다. 많은 애플리케이션 개발자가 ‘안드로이드’나 ‘iOS’ 운영체제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때는 표준화를 선점한 국가 혹은 기업이 수많은 거래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요술망치로 제품 만들고 로열티도 챙긴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세계 각국의 기업이 인더스트리 4.0 시스템 도입을 위해 연간 2500억 유로(약 324조원)의 돈을 투자할 것으로 전망했다. 단순히 효율적으로 제품을 생산한다고 해서 이 투자금을 뽑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조금 더 나아가서는 ‘이 시스템 자체’로 돈을 벌어야 한다. 스스로의 생산시설에서 가치를 입증하고, 이 시스템을 다른 나라의 공장에 팔아야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 살펴볼 두 가지 발언이 있다. 지난해 10월 조 케저 지멘스 회장이 방한했다. 한국공학한림원 창립 20주년을 맞은 기념식에 기조연설자로 나섰다. 연설 말미에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한국이 제조업 3.0으로 1만개의 스마트공장을 구축하려는 계획은 실현 가능하다. 지멘스는 이를 적극 지원할 준비가 됐다. 한국에 정말 중요한 것을 함께 만들어 갈 것이다.” 한국의 제조업 3.0 계획을 추켜세우는 듯 하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하나다. 자사의 스마트 매뉴팩처 시스템을 한국에 팔겠다는 것이다.

인더스트리 4.0 덕에 지멘스는 새로운 사업 기회를 잡았다. 과거 수많은 전기전자 제품을 만들던 회사에서, 이를 생산하는 솔루션을 판매하는 회사로 변신에 성공했다. 이미 독일에서는 지멘스를 SAP와 같은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지멘스가, 또 메르켈 총리가 끝없이 ‘암베르크 공장’을 홍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첨단화된 공장을 갖길 원한다면 우리에게 돈을 내고 사라’는 메시지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1월 6일(현지시간) 개막한 2016 CES에 참가한 폴크마 덴너 보쉬그룹 회장도 비슷한 말을 했다. 보쉬그룹의 뛰어난 기술력을 자랑하는 연설 말미에 이같이 말했다. “혁신을 위해서는 생산이 유연해져야 한다. 미래의 공장은 모든 것이 연결돼 있고 스마트하다. 보쉬는 이 분야에서 선도적인 공급 업체이자 인더스트리 4.0의 주요 업체로 유리한 입지를 갖고 있다.”

다시 한국의 제조업 3.0으로 돌아오자. 산·학·연 협업을 통해 1만개의 스마트 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그 다음이 없다. 낡은 공장에 IT기술을 접목하는 인더스트리 3.0의 개념에서 크게 나아진 부분이 없다. 인더스트리 4.0을 이끈 독일은 지난해 6월 새로운 계획을 발표했다. 2012년 정부 계획에 포함해 개발을 장려했는데, 발전 속도가 더뎌서다. 많은 성공사례가 등장했지만 대부분이 대기업이다. 독일 정부는 다시 칼을 빼 들었다. 기존에 민간에 맡겨뒀던 사업을 정부가 나서서 독려하고 있다. 어떤 제품이든 뚝딱 만들 수 있는 요술망치를 개발해 제품을 만들고, 나중에는 그걸 비싼 로열티를 받고 팔고 싶어하는 독일이다. 이런 게 창조경제 아닐까.

- 박성민 기자 park.sungmin1@joins.com

1318호 (2016.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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