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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본사도 놀란 현지화 혁신] “입점 확정되면 주민센터부터 찾죠” 

지역 고유의 역사·문화 입혀 개점 … 한국에서만 디자인팀 운영 

박성민 기자 park.sungmin1@joins.com

“전 세계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커피 브랜드가 ‘스타벅스’다. 적당한 곳을 찾아서 가게 문만 열면 어느 정도 수익을 올린다. 상가나 쇼핑몰에서는 스타벅스가 들어온다면 두 팔 벌려서 환영한다. 이렇게 쉬운 비즈니스가 또 있을까?”

한국에서 스타벅스가 거둔 성공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말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스타벅스는 글로벌 커피시장에서 막강한 브랜드 파워를 자랑한다. 스타벅스라는 이름 자체가 문화생활의 아이콘이 됐다. 새로 짓는 아파트나 쇼핑몰 분양광고에서 ‘지하철’ ‘마트’ ‘영화관’만큼 자주 언급되는 단어가 ‘스타벅스’다. 어떤 건물주는 ‘건물 1층에 스타벅스가 입점한다’는 허위 정보를 흘려 건물의 공실을 해결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스타벅스 들어온다’ 속이는 건물 주인도


▎서울 소공동 지역의 역사 문화재로 인테리어를 꾸민 스타벅스커피코리아 본점. / 사진:스타벅스커피코리아 제공
그런데 스타벅스가 가진 브랜드 파워는 해외에서만 넘어온 것일까? 서규억 스타벅스 사회공헌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스타벅스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프랜차이즈 커피 브랜드가 많지 않았다. 커피 한 잔을 5000원 내외로 받고 파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지만 잘 극복했다. 지금은 수십 개의 프랜차이즈 커피브랜드가 스타벅스와 경쟁한다. 한국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수없이 연구했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서 팀장이 말한 노력은 ‘현지화’다. 커피 프랜차이즈 천국인 한국에서 생존하려면 한국 시장에만 특화된 것이 필요했다. 선택의 폭은 넓지 않다. 스타벅스가 가진 브랜드 파워는 일관성에서 나온다. 세계 어느 매장에서도 비슷한 맛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 기본을 무너뜨리지 않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의 차별화를 꾀했다.

스타벅스 점포개발 담당자는 “어떤 지역에 입점이 결정되면 가장 먼저 그곳의 주민센터를 찾는다”고 말했다. 그 지역 만의 숨은 스토리를 찾아 매장 콘셉트에 반영하기 위해서다. 스타벅스커피 코리아의 ‘현지화’ 전략을 상징하는 곳이 몇 군데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영어가 아닌 문자(한글)로 간판을 세워 화제를 모았던 인사동점, 매장 지붕을 기와로 꾸미고 서까래와 전통 창호로 인테리어를 한 서울 본점이 대표 사례다. 이마빌딩점(서울 종로구)에는 말(馬)을 주제로 한 인테리어가 눈길을 끈다. 조선시대 궁중의 말과 가마를 관장한 사복시가 있던 곳이라는 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말에 대한 자료와 소품은 문화재청의 자문으로 어렵게 구했다. 지난해 7월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문을 연 센트럴시티점은 ‘도심의 커피 숲’이라는 콘셉트로 매장을 꾸몄다.

스타벅스커피코리아가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케이스로 꼽는 현지화 매장은 경주 보문점이다. 2012년 문을 연 국내 스타벅스 드라이브 스루(Drive Thru) 1호점이다. 스타벅스커피코리아는 경주 보문점을 추진하면서 미국 본사와 진통을 겪었다. 드라이브 스루 1호점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본사의 반대가 심했다. 본사 관계자는 “회사와 집 사이에 입점해 출퇴근길에 커피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드라이브 스루인데, 보문점은 취지와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한국 스타벅스는 “경주가 인구는 적지만 연간 800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 성장 잠재력이 큰 곳”이라며 맞섰다. “한국만의 독특한 드라이브 스루 문화가 정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1년 반 동안의 팽팽한 줄다리기 끝에 스타벅스 커피코리아 주장이 먹혔다. 어렵게 문을 연 경주보문점은 지역의 랜드마크로 거듭났다. “경주 여행 때 꼭 들러야 할 곳으로 꼽는 사람이 있다”는 게 스타벅스 관계자의 설명이다. 매출은 처음 예상한 금액의 3배 가까이 나온다.

혼자 와도 어색하지 않게 커뮤니티 테이블 제공


▎한국을 상징하는 무궁화를 콘셉트로 디자인한 머그컵.
스타벅스커피코리아의 현지화 전략은 입점과 인터리어에 국한되는 얘기가 아니다. 마케팅에도 현지화 전략이 숨어있다. 한국 스타벅스에는 눈에 띄는 디자인 상품이 많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텀블러와 머그, 보온병 같은 제품이다. 전 세계 스타벅스에는 각 나라 콘셉트에 맞는 제품이 있다. 그러나 한국에는 그 숫자가 유독 많고, 제품의 수준 또한 뛰어나다. 스타벅스커피코리아에는 별도의 ‘디자인팀’이 있다. 전 세계에 진출한 스타벅스 지사 중 독립된 디자인팀을 갖춘 유일한 곳이 한국이다. 나머지는 미국 본사에서 제작한 제품을 들여와 판매한다.

예쁜 디자인의 텀블러나 컵을 수집하는 한국의 문화에 특화된 전략이 필요했다. 디자인팀이 출범한 2013년 스타벅스커피 코리아는 40여 가지의 독자 디자인 제품을 출시했다. 대부분 반응이 좋았다. 갈수록 품목을 늘려서 지난해에는 240여 가지의 제품을 디자인했다. 이제는 스타벅스에서 판매하는 제품의 80%를 한국에서 만든다. 디자인팀이 꼽는 최고의 히트상품은 ‘무궁화 텀블러·머그’다. 이전까지 스타벅스 텀블러 중 가장 인기가 좋은 제품은 ‘사쿠라 텀블러’였다. 일본의 상징인 벚꽃을 콘셉트로 만들었는데, 은은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이 소비자를 매료시켰다. 이에 한국을 대표할 제품으로 무궁화 텀블러와 머그컵을 개발했다. 첫 무궁화 시리즈는 전국 매장에 진열한 지 5시간 만에 품절됐다.

그 밖에도 다양한 현지화 사례가 있다. 혼자서 커피 즐기기를 꺼리는 한국인들을 위해 ‘커뮤니티 테이블’을 마련했다. 일부 스타벅스 매장 가운데 들여놓은 8~12인용 테이블을 말한다. 다수 그룹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좌석을 만들어 혼자서도 어색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한국 사람의 입맛에 맞춘 제품도 꾸준히 개발한다. 제주산 녹차를 이용해 만든 티백 제품, 일부 매장에서 판매하는 떡 같은 식품도 현지화의 좋은 예다. 국내에서는 스타벅스가 최초로 도입한 것으로 알려진 ‘럭키박스’ 마케팅도 화제를 모은다. 텀블러, 커피교환권, 머그컵 등의 제품을 무작위로 묶어서 파는 마케팅이다. 내 마음에 드는 제품을 고를 수 없다는 단점은 있지만 내용물 가치의 합이 구입가를 제하고도 남는다. 새로운 럭키박스가 출시될 때마다 스타벅스 매장 앞에는 ‘행운’을 노리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일부 현지화 전략은 비판의 대상이 된다. 자체 디자인 제품 판매가 대표적이다. 일부러 적은 수량을 출시해 불법 중고거래 시장을 키운다는 지적이다. 대부분의 스타벅스 제품은 한정판으로 출시되는데, 새 제품이 나오면 이를 사재기해 2~3배 가격을 책정해 되파는 사람들이 있다. 다양한 디자인의 텀블러를 제작해 소비자들의 수집 욕구를 자극하는 것도 문제다. 최초 스타벅스에서 텀블러를 내놓은 이유는 1회용 용기 사용을 줄여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상당수 텀블러가 전시용으로 구매되면서 기본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화제가 됐던 럭키박스는 ‘잘 팔리지 않는 제품을 모아 재고를 없애는 수단’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 박성민 기자 park.sungmin1@joins.com

1319호 (2016.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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