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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한국의 뜨는 스타트업은] ‘빌려주고, 골라주고, 지켜주는’ 서비스 주목 

해외VC·대기업도 투자 늘려... O2O형 사업모델 갈등과 해묵은 규제 개선 난제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국내외에서 스타트업 열풍이 뜨겁다. 경기 침체가 이어지고 첨단기술이 속속 등장하면서 일자리가 줄어든 영향이 적지 않다. 취업전선에서 밀려난 우울한 청춘이 기웃거리기도 하지만 기술과 아이디어로 무장한 젊은층의 도전도 이어지고 있다.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 때문에 투자할 곳을 찾는 돈도 흘러 넘친다.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가 선순환 구조를 갖출 조짐도 보인다. 창업과 투자 규모가 급증하고 있다. 다만, 기존 업종과의 갈등, 정부의 탁상행정식 규제와 지원, ‘쉬운’ 분야로의 창업 편중 등은 고민거리다. 지난해에는 O2O·핀테크 기반의 생활밀착형 서비스가 각광을 받았다. ‘먹고 자고 노는’ 분야의 스타트업이 주목을 받았다. 올해는 ‘빌려주고, 골라주고, 지켜주는’ 분야의 스타트업이 관심을 모을 것으로 보인다.

기업의 베이비붐 시대다. 세계적으로 기업의 신생아 격인 스타트업이 빠르게 늘고 있다. 지구촌 어디에서나 노트북 하나 들고 창업의 길로 들어서는 젊은이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실제 중국에서만 지난해 365만 개의 스타트업이 생겨났다. 하루에 1만 개씩 회사가 생긴 셈이다.

IT 기술의 발달로 과거보다 스타트업에 손쉽게 도전할 수 있게 됐다. 세계적인 첫 벤처 붐인 ‘닷컴버블’ 당시 자본의 10분의 1만 있으면 창업을 할 수 있다. 클라우드서비스를 이용하면 비싼 서버를 두지 않아도 데이터를 필요한 만큼 빌려 쓸 수 있다. 다양한 공개 소프트웨어로 쉽게 인터넷 서비스를 구축할 수 있다. 애플 앱스토어, 구글 플레이 등 소프트웨어 유통 플랫폼 덕에 막대한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글로벌 판매 채널을 확보할 수 있다.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를 활용해 글로벌 마케팅도 쉽게 벌일 수 있다.

중국에선 하루에 1만개의 스타트업 생겨


최근의 스타트업은 성장도 빠르다. 창업 초기 과정을 학습할 수 있는 스타트업 캠프가 늘었고, 전문 엑셀러레이터의 도움을 받기도 쉬워졌다. 초기 엔젤 투자와 크라우드펀딩으로 창업 자금을 모으기도 어렵지 않다. 과거보다 50배 많은 인터넷 사용자와 120배 빨라진 인터넷 인프라가 깔려 있다. 신용카드 사용이 보편화되고 국경을 넘나드는 온라인 구매가 일상이 됐다. 그만큼 넓고 빠른 시장이 열려 있다.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가 잘 깔린 국내에서도 스타트업 창업 열기가 뜨겁다. 카카오·쿠팡·우아한형제들 등 모바일 기반의 서비스가 성공 스토리를 만들었다. 여기에 영감과 자극을 받은 각종 스타트업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스타트업 창업 수는 2010년 이후 꾸준히 늘었다. 지난해에는 약 3만 개의 스타트업이 등장했다. 창조경제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지만 정부의 창업지원 정책도 스타트업 활성화에 한몫했다. 모태펀드를 통해 지난 10년 간 약 380개 벤처캐피털 펀드를 지원하는 등 창업 초기 자금을 지원하면서 마중물 역할을 했다.

창업을 지원하는 공간도 늘고 있다. 특히 서울 테헤란로의 1세대 벤처기업이 판교 등으로 이전한 빈자리에 D캠프·스타트업 얼라이언스·마루180 등 스타트업 지원 허브와 수십 개의 스타트업이 둥지를 틀었다. 지난해에는 구글이 스타트업 지원 공간인 ‘캠퍼스 서울’을 대치동에 2000㎡ 규모로 열었다. 네이버는 개발자 대상의 창업 육성공간인 ‘D2 스타트업 팩토리(D2SF)’를 마련했다. D2SF는 서울 강남역 부근에 1000㎡ 규모로 자리를 잡았다. 이들 공간은 각종 행사와 강연 용도로 쓴다.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털(VC) 사무실로도 활용한다.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 보이는 또 다른 청신호는 초기 투자 회사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성공한 창업자 출신의 스타트업 투자자가 엑셀러레이터나 마이크로VC로 나서는 사례가 늘었다. 본앤젤스벤처파트너스·프라이머·매쉬업엔젤스·퓨처플레이·K큐브벤처스·더벤처스가 대표적이다. 이들이 초기 단계 스타트업에 투자자이자 멘토로 나서 잠재력이 있는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는다. 스타트업 투자자는 단계별로 투자금액 상한선을 정해놓고 있다. 엑셀러레이터·엔젤투자는 보통 3억원 미만, 초기 기업 대상 마이크로VC는 주로 3억~5억원 규모로 투자한다. 그 이상의 규모는 전문 VC가 담당한다.

창업자의 면면도 다양해졌다. KAIST·서울대·포스텍 등 국내 명문대 출신에 해외 유학파 출신 창업자가 가세하는 추세다. 김범석 쿠팡 CEO가 대표적인 사례다. 유학파 창업자는 주로 미국 실리콘밸리의 창업 문화나 기술을 국내에 접목시키면서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최근에는 보스턴컨설팅그룹·맥킨지 등 경영컨설팅 업체나 삼성전자·LG전자 등 대기업 출신의 인재가 스타트업계로 이동하는 움직임도 관측된다.

해외 투자자의 관심도 커졌다. 해외 투자자로부터 거액을 투자 받은 스타트업이 늘었다. 쿠팡은 소프트뱅크로부터 1조 110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옐로모바일·네시삼십삼분 등은 포메이션8과 텐센트로부터 각각 1000억원 넘는 투자를 받았다. 알토스벤처스·사이버에이전트벤처스·500스타트업 등 해외 벤처캐피털도 한국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대형 투자 사례가 늘수록 해외 투자자의 관심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한국식 갈라파고스 규제 곳곳에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인수하면서 개방형 혁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점도 눈에 띄는 변화다. 삼성전자가 스타트업 루프페이를 거액에 인수한 건 상징적인 사건이다. 카카오는 지난해 5월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국민내비 김기사’를 서비스하는 록앤롤을 626억원에 인수했다. 올 들어선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 멜론을 서비스하는 로엔을 인수하면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지금까지는 모든 기술을 직접 개발하는 데 초점을 맞췄지만 최근엔 M&A를 지렛대로 사업영역을 확대하는 분위기다. 삼성 GIC 데이비드 은 사장은 올해 1월 샌프란시스코 팔로알토 사옥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실리콘밸리에서 37건의 투자를 단행했으며 이 중 80%와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모레퍼시픽과 SK는 관련 업종의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개방형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9월 뷰티 하드웨어 스타트업 웨이웨어러블에 투자했다. 국내 차량공유(카셰어링) 서비스 업계 1위 쏘카는 최근 SK로부터 590억원을 투자 받았다. SK는 쏘카 지분 20%를 확보했다. 올해에는 SK네트웍스와 협업 체제를 구축할 예정이다. 중고차 업체 SK엔카와 자동차 정비·수리 업체 스피드메이트, SK엔크린 등 차량 관련 업체들과 연대 서비스를 구축한다는 전략이다.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가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기 시작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우선 활용 가능한 모험 자본과 다양한 분야의 경험 있는 창업자가 부족하다. 특히 ‘시리즈B’ 이상의 대형 투자가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보통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엔젤투자와 시리즈A·시리즈B의 단계로 이뤄진다. 엔젤투자는 아이디어의 프로토 타입이나 베타 버전을 만들기 위한 단계에서 진행된다. 정식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뤄지는 투자가 시리즈A다. 시리즈B는 정식 제품이나 서비스의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단계에서 필요한 자금이다. 국내에서는 규모가 큰 시리즈B 단계의 투자가 아직 부족하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가보지 않은 길’의 곳곳에서 잡음도 생기고 있다. 이른바 ‘헤이딜러 사태’가 대표적이다. 서울대 재학생들이 창업한 온라인 중고차 경매 업체 헤이딜러는 설립 1년여 만에 누적 거래액 300억원을 돌파하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국회에서 온라인 경매 업체도 일정 규모의 주차장 등을 갖추도록 요구하는 자동차관리법이 통과되면서 영업 자체가 불법이 됐다. 엉뚱한 법 개정으로 스타트업이 문을 닫게 되자 ‘한국식 갈라파고스 규제’에 대한 원성이 높아졌다. 급기야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이 신교통·물류사업 12개사 대표를 만나 규제 완화를 약속했다.

스타트업은 지금까지 없던 서비스를 들고 나오는 사례가 많다. 이 과정에서 기존 규제와 마찰이 빚어지는 경우가 잦다. 또 유사 업종의 기존 사업자와의 갈등도 생긴다. 자동차 공유 서비스인 우버가 택시 업계의 반발을 사고, 불법 논란에 직면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배달의민족·카카오대리·콜버스도 비슷한 진통을 겪었다. 기존 규제를 고집하면 새로운 스타 기업을 키우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신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선 백지에서 꼭 필요한 규제만 유지하는 쪽으로 규제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안 되는 것만 열거하고 나머지는 뭐든지 허용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정부 규제 전반을 바꿔야 새로운 창업 기회를 늘릴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 같은 논란은 최근 스타트업의 트렌드와도 관계가 깊다. 프랜차이즈 창업에 트렌드가 있는 것처럼, 스타트업도 유행을 탄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화두는 O2O(Online To Offline, 온라인-오프라인 연계)다. 기존의 오프라인 사업 영역에 걸쳐지는 부분이 있는 만큼 관련 규제에 걸리거나 오프라인 사업자의 반발을 사 ‘밥그릇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2010년대 초반에는 모바일 개발사와 SNS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이 많았다. 그러다 지난해부터는 O2O 서비스를 운영하는 업체가 잇따라 투자자의 관심을 모았다. 사실 O2O 서비스는 정의가 불분명하고 경계도 명확하지 않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O2O로 볼 수 있는지 정확하게 답하기 어렵다. 그러나 O2O 범주의 기업이 투자자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건 분명하다.

지난해 국내 스타트업 중에서는 숙박·음식점 관련 서비스 업체가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직방·여기어때·야놀자 등은 대규모 투자 유치로 성장 가능성을 키웠다. 중소형 숙박 정보와 예약 서비스를 제공하는 야놀자와 여기어때가 각각 100억원, 13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부동산 중개 앱 직방과 다방도 투자금 유치와 함께 A급 모델 경쟁을 펼친 대표적인 스타트업이다. 이들은 원룸, 투룸 중심의 부동산 중개 서비스를 제공하며 이용자 수를 빠르게 늘려왔다. 직방은 누적 다운로드 수 1000만 건을 돌파했다. 다방은 600만 다운로드를 넘겼다. 또한 ‘먹방’의 인기와 함께 식신·망고플레이트·다이닝코드 등 맛집 검색 앱도 입소문을 타며 경쟁에 합류했다.

지난해 음식·숙박·콘텐트·뷰티 스타트업 인기


▎2014년 11월 우버 서비스와 렌터카 택시영업 중단, 불합리한 택시악법 철폐 등을 촉구하는 ‘서울택시 생존권 사수 결의대회’가 열렸다. 스타트업 서비스와 기존 사업자 간 밥그릇 싸움이 시작됐다. / 사진:중앙포토
화장품을 비롯한 뷰티 업종 벤처기업도 투자금을 끌어 모았다. 연예인이 동영상으로 화장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우먼스톡은 최근 일본계 벤처캐피털 사이버에이전트와 IMM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총 20억원을 유치했다. 화장품에 대한 사용자의 평가를 토대로 순위를 매기는 애플리케이션 ‘글로우픽’의 개발사 글로우데이즈도 일본계 투자사 자프코아시아와 SL인베스트먼트·신한캐피탈로부터 총 15억원 규모의 초기 투자를 유치했다. 이 밖에 ‘언니의 파우치’를 운영하는 라이클과 화장품 판매 업체 비투링크가 대규모 투자를 받아 성장 가능성을 보였다.

각종 커뮤니티와 SNS 등에서 동영상 콘텐트가 인기를 얻으면서 콘텐트 관련 서비스도 주목 받았다. 모바일 광고와 웹드라마를 제작하는 메이크어스가 202억원의 투자를 유치했고, 프로 게이머들이 소속돼있는 게임 전문 MCN 업체 콩두컴퍼니는 20억원을 투자 받았다. 이 외에도 트레져헌터가 157억원, 샌드박스네트워크와 비디오빌리지가 각각 10억원, 6억원을 투자자로부터 받았다.

올해도 생활 밀착형 O2O 서비스가 각광을 받을 전망이다. 특히 ‘빌려주고, 골라주고, 지켜주는’ 서비스가 소비자와 투자자의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구매하기 부담스러운 제품을 빌리거나 돈을 대출하는 서비스가 대거 등장하고 있다. 핀테크와 빅데이터 기술이 발전하면서 ‘취향 저격형’ 서비스도 영역을 확장하는 중이다. 1인가구가 증가하고 흉악 범죄가 사회 문제로 부각되면서 안전에 대한 수요가 늘었고, 핀테크와 모바일 기기의 보편화로 보안의 중요성도 어느 때보다 커졌다.

-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1320호 (201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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