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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인사이드 | 통화정책 관점으로 본 시진핑의 중동외교] 달러 굴레 벗을 ‘페트로위안’(위안화로 원유 대금 결제) 시대 노리나 

위안화 위상 강화-유가 안정 윈윈 전략 ... 미국의 중국 압박 대응 주목 

오상용 글로벌모니터 에디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월 19일(이하 현지시간)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을, 23일에는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을 잇따라 만났다. / 사진:뉴시스
summary | 중국의 경제 펀더멘털이 둔화되는 상황에서 나타난 위안화 약세는 중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요인이 됐다. 현재 중국이 처한 상황, 위안화가 처한 상황은 경제와 금융시스템이 취약해져 더 이상 달러를 금으로 교환해줄 수 없었던 1970년대의 달러와 닮아있다. 당시 미국은 ‘키신저 외교’를 통해 중동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시진핑의 중동외교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새해 중국의 정상외교는 중동에서 첫 테이프를 끊었다. 시진핑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이집트 등 중동의 맹주를 차례로 방문하고 돌아왔다. 늘 그렇듯 정상회담은 화려한 수사 일색이다. 성명서에는 다각적인 경제협력과 공고한 연대 등 낯이 익은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시진핑의 중동외교가 글로벌 통화정책의 관점에서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가정의 영역인 만큼 현실화 가능성에 대해서는 섣부른 예단을 피하기로 하자.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왼쪽)/사진:뉴시스
반복되는 장면들: 때는 2000년 8월이다. 당시 일본은행(BOJ)은 18개월 간 유지하던 제로금리 정책을 폐기하고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대장성 관료들의 만류에도 기준금리는 인상됐다. 그리고 7개월 뒤인 2001년 3월 BOJ는 다시 제로금리로 회귀했다. 이로도 모자라 양적완화라는 비상조치도 꺼내 들었다. “좀비기업과 함께 일본 경제의 건전성을 도모할 수 없다”는 하야미 마사루 BOJ 총재의 결단은 7개월 만에 꺾이고 만다. 결과론이지만 당시 하야미는 미국에서 불어온 닷컴 버블 붕괴의 충격파를 과소 평가했거나 일본 경제의 체력을 과신했다.

새해 들어 도쿄 금융가에선 ‘하야미 이벤트’라는 말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미국 연준이 하야미 총재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불안감과 결국 그렇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여기에 해당한다. 연준은 작년 12월 금리를 올렸다. 썩 좋은 타이밍은 아니었다. 미국의 ISM제조업지수가 꺾이고 있었고 중국을 비롯한 신흥시장의 경기 둔화 흐름이 예사롭지 않았다. 유가와 원자재 가격 급락으로 신흥시장 자원 수출국의 어려움도 커지고 있었다. 연준이 이 위험과 전염성을 과소 평가한 것이라면 머지 않아 재닛 옐런 의장도 ‘제2의 하야미’가 돼야 한다.

이런 불편한 목소리들이 나오는 근본 배경은 이렇다. 과거 연준의 금리 인상기 때처럼 미국 경제(미국의 강한 수요)가 신흥국 금융시장의 소동을 잠재우고 나아가 세계 경제를 견인할 수 있는 구도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은 세계 경제에서 비중이 커진 중국과 신흥국의 중력이 미국과 글로벌 경제를 같이 끌어내릴 위험이 커지고 있다.

한 장면을 더 보자. 1971년 닉슨 미국 대통령은 “더 이상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른바 ‘닉슨 쇼크’다. 금과 작별을 고한 순간 달러에 대한 신뢰는 무너졌다. 달러로 표시된 부채가 지속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은 미국 경제 전반에 대한 의구심으로 번져갔다. 그리고 이 불안을 날려버린 결정적 계기는 1975년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선언이다. 4차 중동전쟁의 종식과 함께 OPEC은 “모든 원유대금을 달러로만 받겠다”고 공표했다. 수세에 몰린 사우디 왕가를 미국이 지켜주는 대가로 사우디가 미국에 제공한 반대급부라는 게 통설이다. 금과 작별한 달러가 원유와 결합하면서 기축통화로서 지위를 지켜낸 순간이다.

위안화와 달러 그리고 유가: 지난해 8월 인민은행의 ‘기준환율 산정방식 변경을 통한 위안화 평가절하’, 12월의 ‘실효환율에 기반한 환율 시스템으로 전환’은 달러에 준페그됐던 위안화가 달러와 결별했음을 알리는 선언이었다. ‘위안화는 계속 달러의 가치변화에 딱 달라붙어 안정적으로 움직일 것이라 생각했던’ 시장의 믿음이 흔들린 순간이다. 당국은 점진적인 속도로 위안화 약세를 용인하고 싶었겠지만, 달러와 결별하고 난 뒤의 위안화의 미래(향후 가격)가 어떠할 것인가에 대한 시장의 불안은 가시지 않고 있다.

이미 중국의 경제 펀더멘털이 둔화되는 상황에서 나타난 위안화 약세는 중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요인이 됐다. 현재 중국이 처한 상황, 위안화가 처한 상황은 경제와 금융 시스템이 취약해져 금과 작별할 수밖에 없었던(더 이상 달러를 금으로 교환해줄 수 없었던) 1970년대의 달러와 닮아있다. 당시 미국은 ‘키신저 외교’를 통해 중동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금과 작별한 달러를 원유에 결속시킨 것이다.

이처럼 과거와 현재를 대비시켜 보면 몸소 중동을 방문한 시진핑의 행보는 상당히 흥미롭다. 시진핑은 중동 맹주들과 만남을 통해 달러와 결별한 위안화를 원유와 결속시키는 대장정에 오른 것일까. 물론 시진핑의 이번 중동 정상외교는 표면적으로 에너지 안보강화와 신(新) 실크로드 전략(일대일로 정책)의 주요 관문인 중동과의 협력강화에 방점이 찍혀 있다. 특히 경제 제재에서 벗어나 개방되는 이란 시장을 선점, 중국에서 남아도는 과잉 설비와 재고를 소진하고 싶다는 욕구도 강했을 거다.

다만 얄궂게도 지금의 정세는 과거의 장면과 계속 오버랩되고 있다. 현재 중국 위안화와 중동의 유가는 유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연준의 통화정책 전환 탓만 할 수 없지만 연준에 의해, 강해진 달러에 의해 고통이 증폭된 게 사실이다. 유가 약세는 달러 대비 원유 가치의 하락이며, 위안화 약세 역시 달러와 비교한 중국 화폐 가치의 하락을 의미한다. 달러로 표기된 원유 가격이 하락하면서 중동 산유국은 재정난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외환보유액도 계속 줄고 있다. 중국과 중동이 한배를 탔다고 서로를 인식하기 좋은 여건이지 않은가.

더구나 중국은 사우디와 이란의 최대 원유 고객이다. OPEC 전체로도 이제 최대 고객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다. 미국의 셰일혁명과 (중동외교의 전환점을 가져온) ‘오바마 독트린’ 그리고 최근 미 의회의 원유 수출법 통과로 미국과 중동, 특히 미국과 사우디의 이해관계는 계속 꼬이고 있다.

한발씩 물러선다면: 물론 시진핑과 중동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페트로달러와 페트로위안의 공존시대’가 열린다 해도 이는 상당히 먼 훗날의 이야기가 될 거다. 당장 이런 세상이 도래하면 글로벌 경제와 금융시장에 미칠 파장을 가늠하기 어렵다. 가상 시나리오로 오는 3월부터 OPEC이 원유 결제 대금을 위안화로도 받기로 했다고 치자. 당장 미국의 카운터 액션(걸프만 미 함대의 무력시위)이 상당할 것이다. 중국으로서도 기회임과 동시에 단기적으로는 모험일 수 있다. 중국은 달러 없이도 자국 화폐를 찍어 원유를 사들일 기회를 잡게 되지만, 중동 국가들이 이렇게 받은 위안화를 외환시장에다 냉큼 팔아 달러로 바꿔가면 글로벌 시장에서 위안화의 하락 압력은 단기적으로 더 가팔라지고 만다.

물론 대(對)중국 교역에서 흑자를 내는 중동 국가들이 교역으로 생긴 위안화를 외환시장에 팔지 않고 중국 자산시장(중국 국공채)에 투자하기로 협약을 맺는다면 중동과 중국은 서로가 더 많은 피를 섞게 될 것이다. 이 경우 국제 교역에서 달러 결제 수요는 급감하고 위안화 결제는 그만큼 늘어나며, 미국 국채시장의 주요 수급 기반이던 차이나머니와 오일머니가 동시에 줄어드는 상황도 빚어질 수 있다. 다만, 이 작업은 중국이 위안화로 수입 대금을 치르는 것뿐만 아니라 수출 대금을 위안화로 받는 게 순조롭게 진행될 때, 궁극적으로는 제3국들 사이의 교역에서도 위안화 결제가 통용될 때 큰 탈이 없다. 인민은행은 이를 위한 인프라(CIPS: 중국국제결제시스템)를 구축한 상태고, 위안화 역시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 바스켓 통화에 포함돼 명분을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단기간 내 국제 교역결제의 관행이 바뀔 리 없다. 지금처럼 위안화에 대한 대내외 신뢰가 흔들리는 상황에선 더 그렇다. 또한 그렇게 흘러가는 걸 가만히 보고 있을 미국도 아니다. 달러질서가 흔들리면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막으려 들 거다.

다만, 시진핑의 사우디 방문 직후 부리나케 존 케리 미국 국무부 장관이 사우디로 달려간 것을 보면 미국으로서도 시진핑의 중동 행보가 신경 쓰이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해 중국의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AIIB) 발족과 일대일로 전략, 위안화의 IMF SDR 편입을 바라보며 미국은 달러질서에 흠집을 내는 중국이 눈엣가시였을 거다. 그래서 자본 유출과 위안화 소동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국을 이번 참에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싶은 유인 역시 클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면 중국뿐만 아니라 중동의 경제와 금융 시스템, 나아가 신흥시장 전반을 함께 힘들게 만들 것이다. 미국이 ‘우리의 힘을 보여주겠다’며 (빠른 금리 인상을 통해) 달러를 더 강세로 몰아가면 당장 미국 경제가 힘들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연준의 통화정책에서, 달러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중국과 중동의 욕망만 더 강해질지 모른다. 버티던 중국이 위안화 환율을 놔버리기라도 하면(급격한 약세를 용인하면)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은 상당한 시련을 겪어야 한다.

따라서 시진핑의 이번 중동외교는 ‘국제 통화정책의 관점’에서 보자면 타협 혹은 공조를 위한 일종의 전술적 행보에 가깝다. 시진핑과 중동의 밀월이 당장 달러의 굴레를 끊지는 못해도 최근 가해지고 있는 굴레의 강도를 느슨하게 만들 수 있다고 계산했는지 모른다. 연준은 2001년 3월의 BOJ가 되고(옐런은 제2의 하야미가 되고), 덕분에 위안화 소동도 진정되는 한편 국제 유가는 바닥을 치는 형태로….

미국이 받아들일까. 남중국해와 한반도를 둘러싸고 양측의 마찰이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어쩌면 미국의 소비경기가 꺾이기 시작할 때쯤에야 국제사회는 공조다운 공조를 보일지 모른다.

- 오상용 글로벌모니터 에디터

1321호 (2016.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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