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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 해체-내란 25년 맞은 옛 유고 연방] 민족갈등의 진원지에서 성장의 발원지로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 등 6개 국가로 분리... 코소보는 일부 국가만 독립 승인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한국에서 최근 인기 여행지로 떠오른 크로아티아 흐바흐섬.
유고슬라비아라는 나라가 해체돼 역사 속으로 사라진지 올해로 25년을 맞는다. 제2차 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5년 ‘유고슬라비아 민주연방공화국’으로 건국됐다가 1946년 ‘유고슬라비아 인민공화국’으로, 1963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으로 이름을 바꾼 공산국가를 가리킨다. 1991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구성하던 공화국 중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에 이어 1992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분리 독립을 선언하면서 공중 분해됐다. 세르비아는 몬테네그로와 함께 신유고연방을 이뤘다가 2006년 분리됐다. 2008년에는 세르비아의 자치주로 알바니아계가 다수 거주하는 코소보가 독립을 선언했다.

1차 대전 승전국이 만든 ‘민족자결주의’의 허상: 유고슬라비아는 ‘남슬라브족의 나라’라는 뜻이다. 원래 제1차 대전이 끝나고 건국된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이 1929년에 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유고슬라비아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했다. 오스만튀르크 제국에 속했다가 독립한 세르비아에 오랫동안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 속해 있던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가 합쳐져 생긴 나라다. 1차 대전 뒤 승전국이 ‘민족자결주의’라는 이름으로 패전국으로 다민족국가였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과 오스만튀르크 제국을 해체하면서 생긴 모자이크 국가다. 학자에 따라서는 유고슬라비아를 왕국과 공산국가로 구분하지 않고 1918~1991년 체제만 바뀐 하나의 국가로 보기도 한다. 문제는 남부 발칸반도가 민족문제가 복잡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지역이라는 사실이다. 다민족 국가 유고슬라비아는 현재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 그리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까지 무려 6개 주권국가로 분열했다. 국제적으로 일부 국가로 부터만 독립을 승인받은 코소보까지 합치면 7개 지역이다.

티토 시절엔 미·소의 원조받으며 경제 발전: 이들은 공산 독재자 요시프 브로즈 티토(1892∼1980)의 통치기(1945~80)엔 비교적 조용히 지냈다. 그는 냉전시대에 비동맹을 내세웠다.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벌였다. 그 결과 양쪽에서 원조를 얻었다. 덕분에 유고는 1970년대까지 번영했다. 사회주의 국가 가운데 드물게 국민이 자가용차를 몰고 해외 여행을 즐겼다. 나라가 잘사니 민족문제를 거론하는 사람이 쑥 들어갔다. 하지만, 1980년 지도자가 세상을 떠나고 냉전이 종식돼 이용가치가 없어진 유고는 국제 사회에서 찬밥 신세가 됐다.

이 나라를 구성한 여러 민족은 발칸반도에 사는 남슬라브족이란 공통점을 제외하고는 역사·종교·문화·전통이 상당히 달랐다.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는 오랫동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으며 서구 문화권에 속했고 종교도 가톨릭이 우세하다. 세르비아는 오랫동안 오스만튀르크의 지배 아래 있는 바람에 영향도 적지 않게 받은데다 동방정교 신자가 압도적이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다민족 국가 유고 안에서도 특히 다민족인 지역이었다. 다수의 무슬림(이슬람 신자)이 동방정교 세르비아인, 가톨릭 크로아티아인과 함께 사는 지역이다. 같은 남슬라브족이고 언어도 같다. 통혼도 잦다. 정체성만 다를 뿐인데도 서로 섞이지 못한다. 여기에 불가리아와 민족·언어·문화적으로 많이 비슷한 마케도니아인 거주지역이 불가리아를 견제하기 위해 유고슬라비아에 합쳐졌다. 문자도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는 라틴 문자, 세르비아와 마케도니아는 키릴 문자를 사용한다. 1차 대전 승전국에 의해 짜깁기 식으로 만들어진 이 왕국은 2차 대전 중이던 1941년 이탈리아와 나치 독일의 침공으로 사라졌다가 종전 뒤 공산국가로 다시 건국됐다.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은 비동맹 국가의 하나로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실리를 추구하면서 상당한 경제 발전을 이뤘다. 1970년대 중반에는 경제 성장률이 10%를 오르내리며 한국과 더불어 고성장 국가로 국제적으로 유명했다. 한국이 미국 시장에 포니를 수출한 것과 같은 시기에 유고는 유고 및 자스타바 브랜드의 자국산 소형차를 미국에 수출했을 정도다. 다만, 유고는 애프터서비스 같은 자본주의 문화에 익숙하지 못해 미국 시장에서 곧 철수했다. 한국은 시행착오를 인정하고 필사적으로 애프터서비스 망을 정비하고 미국 시장에서 버틴 덕분에 오늘날 세계 5대 자동차 수출국이 됐다. 과거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나 오늘날 한국에서 유명한 관광도시 두보르브니크 등에서 현지인들을 만나 취재한 경험에 따르면 상당수 유고인은 당시 유고 자동차의 미국 수출이 포니의 대미 수출과 같은 시기에 이뤄졌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미국 시장에서 버티지 못했음을 아쉬워했다.


▎1998년 세르비아계가 밀집 거주하고 있는 코소보 북부 미트로비치에서 주민들이 독립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1990년대 민족갈등으로 내란과 독립 이어져: 유고는 2차 대전 당시 공산파르티잔으로 활동했던 독재자 티토가 세상을 떠나면서 윤번제 대통령제를 채택했다.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슬로베니아,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등 서로 다른 민족으로 이뤄진 6개 공화국에서 대통령을 번갈아 내는 제도다. 하지만 연방 내에서 가장 큰 세르비아가 숙적인 크로아티아에서 대통령을 낼 순서가 되자 이를 거부하면서 갈등이 심화됐다. 이 와중에 사회주의 체제의 고질적인 문제인 비효율이 표면화하면서 심한 경제난을 겪게 되자 민족주의가 고조됐다. 독립 선언이 잇따르고 연방은 무너졌다.

경제난 속에서 민족주의의 대두로 연방을 이루던 민족들이 갈등하면서 해체에 이어 내전까지 벌였다. 유고 내전은 1991년 처음 독립을 선언한 슬로베니아와 중앙정부와의 며칠에 걸친 가벼운 전투, 크로아티아 독립전쟁과 지역 내 세르비아계 저항(1991~1995), 인종청소로 얼룩진 보스니아 전쟁(1992~1995), 세르비아의 코소보 내 알바니아계 탄압에 대한 나토의 폭격과 점령으로 이뤄진 코소보 전쟁(1998~1991), 이후 마케도니아의 알바니아계 소요 사태 등 여러 전쟁과 분규로 이뤄진다. 2001년 11월12일 나토의 마케도니아 개입 때까지 10년 7개월을 끈 이 전쟁에서 14만 명 이상이 숨졌고, 400만 명 이상이 집을 잃었다.

내전은 다민족 보스니아에서 가장 격렬했다. 세르비아계 민족주의자들은 세르비아 본국과의 통합을 주장했다. 다른 민족들은 반대했다. 이 때문에 1992~1995년 내전이 벌어졌다. 정체성 차이가 피를 불렀다. 450만 주민 가운데 25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으니 처절한 비극이다.

급기야 인류사적 문제로 비화하자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중재에 나서 1995년 데이턴 평화협정을 맺게 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무슬림·크로아티아 연방과 세르비아계의 스릅스카야공화국(세르비아공화국이란 뜻의 세르비아어다)이 다시 연방을 결성하는 이중 연방 체제의 기묘한 모자이크 국가가 됐다.

국기도 국가도 제각각이다. 연방기가 있지만 중앙 행사에서나 쓰이고 지역에서는 각자의 깃발을 건다. 연방 국가는 곡만 있다. 가사를 서로 합의하지 못해서다. 지역에선 각각의 가사를 붙여 부른다. 심지어 2004년까지는 군대도 각각이었다. 언어는 서로 똑같지만 공식적으론 서로 다른 걸로 분류된다. 내전 이전엔 세르보크로아티아어가 단일 언어로 간주됐지만 내전 뒤엔 공식적으로 세르비아어와 크로아티아어로 나눠 버렸다. 같은 언어를 말하는 사람의 종족에 따라 서로 다른 언어라고 우기는 나라는 지구상에 이곳 밖엔 없다. 문자도 세르비아계와 무슬림의 키릴 문자와 크로아티아계의 라틴 문자가 혼용된다. ‘3개의 종족, 2개의 문자, 하나의 나라’라는 구조다.

하지만 무슬림이 많이 거주하는 수도 사라예보는 변두리를 제외하고는 키릴 문자가 지워지고 있었다. 세르비아인이 싫다는 뜻이다. ‘알코올 프리’를 선언하는 호텔과 식당도 늘고 있다. 중동 이슬람 국가의 투자가 늘면서 이슬람 문화에 충성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영국의 도시에서 이름을 딴 ‘브리스톨 호텔 사라예보’에서도 술은 일절 팔지 않고 뷔페식 아침 식사는 절반 이상이 케밥, 펠라펠 등 아랍 음식으로 채워지고 있다. 내전은 끝났지만 국가 통합은 요원할 뿐 아니라 무슬림 지역은 갈수록 이슬람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민족갈등이 피를 부른 사라예보는 비이성적인 종족갈등이 어떤 극단적인 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현장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인간 이성의 한계다. 유고슬라비아는 1차 대전 직후인 1918년 국제 사회가 발칸 남부의 여러 슬라브족을 합쳐 만들어준 나라다. 하지만 내전 이후 이 나라의 재통일을 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보스니아는 역사의 아이러니이자 역설이다. 1993년 5월 인종청소와 강간을 저지른 전범을 단죄하기 위한 ‘옛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가 네덜란드 헤이그에 세워졌다. 유럽의 중심부에서 비행기로 한두 시간, 자동차로 달려도 하루면 갈 수 있는 거리에서 참담한 학살과 인권유린이 벌어진 유고 내전은 20세기와 21세기 인류사의 비극으로 남아있다.


▎소련의 브레즈네프 서기장과 유고슬라비아의 티토 대통령(오른쪽).
‘EU행 열차’ 승차한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는 경제 모범국: 이런 유고가 지금은 변하고 있다. 유럽연합(EU) 가입이라는 강력한 유인 요인 덕분이다. 옛 유고 국가 중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는 이미 EU에 가입했다. 이 나라는 성공적으로 자본주의 경제 구조를 이행한 모범국가로 평가받는다.

슬로베니아는 인구 200만 명의 작은 나라지만 국내총생산(GDP) 440억 달러에 1인당 GDP 2만1300달러의 잘 사는 나라다.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와 붙어 있어 서구 경제권의 한 부분이다.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신성로마제국의 한 부분이어서 독일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국민성도 부지런하고 꼼꼼하다. 도시는 깨끗하고 음식은 정갈하다. 독일어와 이탈리아어 가능자가 많아 서구의 기업이 단체 연수를 많이 가는 나라이기도 하다. 알프스의 끝자락에 자리해 개발할 관광지가 무궁무진하다. 겨울 스포츠 강국이기도 하다. 슬로베니아는 아드리아해 항구를 통해 중부 유럽으로 바로 연결되는 지정학적인 이점 때문에 과거 삼성 등에서 물류기지를 건설하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수에즈 운하를 지난 배가 지중해를 관통해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으로 가는 것보다 슬로베니아에 짐을 부리고 이 화물을 차량으로 운반하는 게 더욱 유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슬로베니아는 지리적으로 오스트리아나 이탈리아의 한 지역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유럽의 심장부에 가까울 뿐 아니라 인프라와 국민 교육도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크로아티아는 인구 430만 명에 GDP 500억 달러로 1인당 GDP는 1만1800달러에 이른다. 얼마 전 한국에서 방영된 <꽃보다 누님>에 나온 성채 항구도시 두보르브니크 등 아드리아 해에 접한 유명 관광지가 많은 나라다. 이미 한국에서 인기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다. 유럽에서도 멋진 풍광과 역사적 명소, 낮은 물가, 깔끔한 인프라, 맛있는 포도주로 유명하다. 크로아티아는 아드리아해에 접한 달마티아와 이탈리아 국경 근처의 와인이 이탈리아산과 맛과 향기가 일맥상통하며, 동북부 지역 산은 오스트리아 와인과 비슷하다는 평가를 듣는다. 가격도 비싸지 않아 유럽을 중심으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크로아티아는 과거 유고 시절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코소보와 더불어 주요 와인 산지였다. 크로아티아 역시 슬로베니아처럼 물류 중간 기지로도 활용 가능성이 크다.

시행착오가 자산 … 성장 가능성 큰 발칸국가: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는 EU 가입 후보국 지위를 얻었다. 현재 가입 협상이 마무리 단계다. 가입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각종 제도를 유럽 표준으로 개혁 중이다. 세르비아는 인구 704만 명에 국내총생산(GDP)이 377억 달러(세계 86위), 1인당 GDP 5267달러(88위)의 가난한 나라다. 오랫동안 세르비아계 유고전쟁 전범을 숨겨주고 있다는 의심을 받아 가입 협상이 늦어졌다. 하지만 주요 전범이 대부분 체포돼 전범재판소로 넘기면서 가입 협상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옛 유고의 중심 국가인데다 도나우강 수운을 이용할 수 있어 투자 유망 국가로 분류된다. 독일에서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를 거친 도나우강이 이 나라를 관통해 루마니아와 흑해로 이어진다. 유럽에서 도나우 강은 라인강과 함께 유통의 혈맥이다. 인구 120만(광역으로 따지면 180만)으로 발칸반도의 대도시인 수도 베오그라드는 도나우강과 사바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다. 워낙 오랫동안 서구의 경제 제제 등으로 경제가 피폐해 오히려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화 등 문화산업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이웃 보스니아의 절반인 스르프스카 공화국과는 실질적으로 같은 경제권을 이루고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인구 200만 명의 마케도니아는 GDP 101억 달러에 1인당 GDP 4935달러의 가난한 나라다. 언어가 비슷한 불가리아나 국경을 맞댄 그리스와 교류를 늘릴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관료들을 만나보면 스스로 ‘발칸 남부의 십자로’라며 인프라 투자를 권유한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EU 가입 신청을 해둔 상태다. 이 나라는 인구 390만 명에 GDP 155억 달러, 1인당 GDP 4029달러로 특히 가난하다. EU가입이 거의 유일한 희망이다. 하지만 국내 통합이 쉽지 않아 난관이 많아 보인다. 코소보도 독립을 제대로 인정받으면 가입 신청을 할 가능성이 크지만 세르비아의 반대를 어떻게 극복할지가 과제다.

여러 가지 난관에도 옛 유고 국가는 높은 교육 수준, 유럽 중심부와의 연결성, 개발 가능성, EU의 인프라 투자 가능성 등 강점도 많다. EU에 가입하면 회원국 간 격차를 완화하기 위해서도 인프라 등 투자가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몇몇 국가들의 나토(북대서양 가입기구) 회원국 가입이 이뤄지면 군사전략 차원에서 미국의 경제 원조와 투자가 대거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아랍·이슬람 국가의 투자가 활발해져 수도 사라예보 시내는 온통 공사판이다. 한국과 관련이 큰 중동 국가와 손잡고 건설 등 분야의 진출을 모색할 수도 있다. 옛 유고 지역은 현재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발전 가능성’을 상징한다.

-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1324호 (2016.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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