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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머니의 한반도 공습 3라운드] 땅→제조업→엔터·금융업으로 끝없는 식탐 

“액수보다 필요한 기업이냐가 중요” … 국내 산업공동화 우려도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
세계 굴지의 기업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는 ‘차이나 머니(China Money)’의 위력이 매섭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해외 인수·합병(M&A) 규모는 1181억 달러(약 142조원)로 사상 최대였다.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제조업을 넘어 엔터테인먼트·IT·금융업까지 넘보고 있다. 중국계 한 가전기업의 임원은 “액수보다 얼마나 필요한 기업인지가 더 중요하다”며 중국의 막강한 자본력을 우회적으로 과시했다. 차이나 머니의 변천사와 타깃 다변화 현황을 살폈다. 차이나 머니의 공습에 ‘성장통’을 앓고 있는 제주도의 오늘과 내일도 들여다봤다.

▎사진:김현동 기자
세계 굴지의 기업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는 ‘차이나 머니(China Money)’의 위력이 매섭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해외 인수·합병(M&A) 규모는 1181억 달러(약 142조원)로 사상 최대였다. 올해도 거침이 없다. 2월까지만 해도 벌써 지난해 기록의 70%를 넘어선 851억 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중국에 넘어간 세계적인 기업만 따져도 GE의 가전부문을 포함해 10개가 넘는다.

한국 기업도 이들의 사정권에 있다. 권도현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선진 기업과 수준 차이는 크지 않으면서 상대적으로 몸값이 싼 국내 기업이 얼마든지 중국 자본의 M&A 대상이 될 수 있고 이미 된 기업도 많다”고 말했다. 글로벌 M&A 시장 조사기관인 머저마켓에 따르면 지난해 홍콩과 대만을 포함한 범 중국 자본은 한국에서 16건의 M&A 거래를 성사시켰다. 금액으론 2014년보다 149% 증가한 19억7500만 달러(약 2조4000억원)에 이른다. 비슷한 거래 규모를 언급한 블룸버그는 특히 보험·기술·헬스케어 업종이 주요 M&A 대상이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한국에서 M&A 금액 2조 넘어


한국에 대한 중국의 외국인직접투자(FDI)도 미국·일본·유럽(EU)을 압도했다. 산업자원통상부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FDI 도착금액은 2014년(3억1300만 달러)보다 465.8% 늘어난 13억8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이와 달리 미국은 같은 기간 5.6%, 일본은 55% 줄었다. 유럽도 13.7% 감소했다.

식탐이 커지면서 식성도 변했다. 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도소매 업종이나 수출 활로를 찾기 위한 해외 투자에 머물렀다. 이른바 ‘중국 자본 1.0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후 ‘2.0 시대’로 평가받는 2010년까지 10%대 경제성장률을 넘나들었던 고도성장기에는 국유기업을 중심으로 에너지·철강·부동산·기계 분야의 해외 투자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중국 경제의 패러다임이 소비 중심으로 변하면서 달라졌다. 중국 정부는 소비 중심의 내수시장과 IT·미디어·금융·통신을 아우르는 신성장산업 육성을 줄곧 강조하고 있어서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관련 기업사냥에 나섰다. 정유신 서강대 경영대학 교수는 “투자 대상이 다변화됐을 뿐만 아니라 투자 방법도 인수·합병, 지분 투자는 물론 지사 설립, 인력 확보, 합작회사 설립 등 다양해졌다”고 분석했다.

특히 한국의 엔터테인먼트·IT·금융에 중국 자본이 쏠리는 모양새다. 배우 이미연·김현주 등의 소속사이자 드라마 [송곳] 등의 공동제작사인 씨그널엔터테인먼트그룹의 최대주주는 중국 기업이다. 초록뱀·FNC엔터테인먼트 등도 최대주주가 중국 자본으로 바뀌었다. 중국 정부가 전략적으로 키우는 반도체 분야에서도 한국 기업 사들이기가 본격화되고 있다. 중국 동심 반도체는 지난해 6월 127억원을 투자해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설계 업체인 피델릭스의 대주주가 됐다. 중국 자본이 들어온 규모로 보면 단연 금융 분야가 많다. 지난해 중국안방보험이 동양생명을 9억6810만 달러(약 1조1650억원)에 인수했다. 더불어 한국에서 영업 중인 공상·중국·건설·교통·농업은행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등으로 위안화 결제가 확대될 가능성에 대비해 한국에서 사세를 확장하고 있다.

중국 자본의 공세가 거세지면서 이들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배구조가 불투명하다든가 대주주가 불미스런 사건에 연루된 사례가 적지 않다. 기술과 인력만 빼가는 ‘먹튀’ 우려도 여전하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선 ‘제2의 대만’ 사태를 우려하는 이들이 많다. [판관 포청천] 등으로 아시아 시장을 이끌었던 대만은 중국의 자본에 잠식당했다. 그 후 제작 노하우를 갖춘 인력이 대거 중국으로 넘어갔고, 배우마저 중국 활동에 집중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만은 한때 지금의 한국처럼 콘텐트 강국이었지만 중국 자본에 밀려 수십 년 간 쌓은 노하우와 인력을 빼앗겼다”며 “중국 자본을 받아들일 때 신중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IT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2002년 중국 BOE가 인수한 TFT-LCD(액정표시장치) 업체 하이디스테크놀로지는 4년 만에 부도를 맞았다. 하지만 BOE는 하이디스의 기술과 인력을 바탕으로 현재 세계 3위 LCD 업체로 성장했다. 한국 보험업을 비롯한 금융 업계로 밀려드는 중국 자본을 보는 금융당국도 “자본에 대한 국적 차별은 있을 수 없다”면서도 잇단 인수 움직임을 부담스럽게 여긴다. 정유신 교수는 “한국 벤처나 중견기업이 팔려가면서 국내 산업의 허리가 사라지는 ‘산업공동화 현상’을 겪을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물론 반론도 있다. 중국 자본에 대한 지나친 거부감은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용준 하나대투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쌍용차·하이디스 등은 개별 기업의 문제로 봐야지 중국 자본 전체를 색안경 끼고 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

1326호 (2016.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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