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중국 상하이 JW 메리어트 호텔에서 쑤닝 유니버셜 미디어와 FNC엔터테인먼트 관계자들이 지분 인수 계약을 했다. / 사진:쑤닝 글로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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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주식시장에서 중국계 자금이 보유한 주식 총액은 지난 1월 기준 8조4420억원이었다. 10조원이 조금 넘는 일본과 큰 차이가 없다. 채권시장에서 영향력도 만만찮다. 중국계 자금이 보유한 채권 총액은 17조4360억원으로 1위를 기록한 미국(18조470억원) 뒤를 바짝 쫓았다.지난해 차이나 머니의 한국 공습은 전방위적으로 이어졌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중국의 직접 투자 증가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기업에 대한 중국의 직접 투자 금액(도착금액 기준)은 전년 대비 465.8% 증가한 13억8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미국·일본·유럽발 투자금이 모두 줄어든 것과 대조적이다.
한류 스타 넘어 제작사에도 관심특히 엔터테인먼트·IT업계에 돈이 몰렸다. 지난 3월 9일 여의도에서 열린 장구이필 쑤닝유니버셜그룹(이하 쑤닝) 회장의 투자계획 발표에 이목이 쏠렸다. 그는 “레드로버에 최대 100억 위안(약 1조8600억원)을 더 투자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쑤닝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하루 전인 8일에는 FNC엔터테인먼트와 합자법인(JV)인 ‘상해홍습문화전파유한회사’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쑤닝은 중국의 거대 민영기업으로 자회사 쑤닝유니버셜미디어를 통해 이미 지난해 6월 451억원을 투자해 레드로버의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배우 이미연·김현주 등이 속한 씨그널엔터테인먼트그룹의 최대주주도 중국 화이자신이다.NHN엔터테인먼트도 3월 8일 자사가 보유한 모바일 게임사 웹젠의 지분을 중국 기업에 넘기기로 했다. 재무구조 개선과 현금 유동성 확보를 위해 보유 중인 웹젠 지분 679만5143주를 2038억원에 중국 펀게임에 매각하기로 한 것. 펀게임은 중국 아워팜이 설립한 홍콩의 특수목적법인(SPC)이다. 이로써 중국 아워팜은 웹젠의 2대 주주가 됐다.중국 재벌도 한국 엔터테인먼트 기업 투자에 관심이 많다. 지난해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영화 시각효과 업체 덱스터의 경우 중국 최대 부동산 재벌인 완다그룹 계열 투자사(프로메테우스 캐피탈)와 레노버의 관계사 레전드캐피탈로부터 1000만 달러 상당의 투자를 받았다. TV 모니터를 제작하던 코스닥 상장사 티브이로직은 중국 미디어 대기업 양광세븐스타미디어그룹에 넘어간 뒤 세븐스타웍스로 사명을 바꾸고, 애니메이션 제작 해외 법인 설립에도 나섰다. 증권 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엔 한류스타 등 일부 배우 중심의 투자가 많았다”며 “최근엔 제작사·PD·작가 등 콘텐트 생산 주체에 관심을 두면서 제작 회사에 투자를 늘리고 있는 점이 가장 큰 변화”라고 평가했다.중국 자본의 먹성만큼이나 투자 패턴도 다양해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중국 자본의 투자 목적은 2010년만 해도 단순 지분투자 비율이 80%에 달했다. 당시 16%에 불과했던 경영참여 목적은 지난해 47%를 넘어섰다. 중국 자본의 인수·합병(M&A)이 늘고 있는 가운데 벤처투자, 코스닥 기업 유상증자 참여, 우회 및 직접 상장, 지사 확대 등 중국 자본이 들어올 수 있는 통로가 한층 넓어졌다.제3자 배정 유상증자(기존 주주가 아닌 특정 3자를 신주의 인수자로 정해놓고 실시하는 유상증자) 참여 형태도 늘었다. 지난 2월 11일 SM엔터테인먼트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중국 전자상거래 회사 알리바바 그룹에 총 355억원 규모의 주식 87만 주를 넘기기로 했다. 씨그널엔터테인먼트 그룹도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중국 화이자신을 대상으로 214억5000만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초록뱀미디어의 경우 지난해 유상증자를 통해 중국 DMG그룹으로부터 250억원 규모의 자금을 유치했다.우회상장도 선호하는 방법 중 하나다. 직접 상장보다 절차나 규제가 간소하다는 장점 덕분이다. 지난해 5월 중국 모바일 게임사 로코조이홍콩홀딩스리미티드는 이너스텍을 인수해 코스닥시장에 우회상장한 후 로코조이로 사명을 변경했다. 같은 시기 온라인 교육 업체인 룽투코리아(舊 아이넷스쿨)도 중국 룽투게임즈가 인수해 우회상장을 마쳤다. 인수 후 사업목적을 추가하는 사례도 있다. 국내 블랙박스(영상저장장치) 시장에서 2위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미동전자통신은 지난해 중국 신세기그룹이 최대주주로 올라선 이후 중국 내 영화관 사업을 새로 시작했다.IT 업계도 상황은 마찬가지. 특히 중국 정부가 신성장산업 육성 정책인 ‘제조 2025’을 내걸면서 ‘반도체 굴기’를 위한 노력에 속도가 붙고 있다. 한국 반도체 기업 투자에 관심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4월 중국 반도체 업체인 동심반도체유한공사는 메모리 반도체 전문설계업체인 피델릭스의 최대주주가 됐다. 지난해 11월 중국 칭화유니그룹은 SK하이닉스의 지분 15~20%를 인수하려고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앞으로도 한국 반도체를 비롯한 IT 분야에 중국 자본의 러브콜이 이어질 전망이다. 중국 정부가 반도체산업 육성을 위해 앞으로 10년간 1조 위안(약 18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최대 TFT-LCD 기업인 BOE도 메모리 반도체 시장 진출을 발표했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와의 기술 협력이 쉽지 않자 국내 반도체 기술 인력 확보로 눈을 돌리는 기업도 생겨났다. 삼성전자 1차 협력업체의 한 임원은 “국내 반도체 엔지니어의 경우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중국 반도체 회사로 이직할 수 있다”며 “직원들 사이에 ‘1·3·9조건(1년 연봉을 3년 간 9배 보장)’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돈다”고 귀띔했다.
1년 연봉을 3년 간 9배 보장?중국 자본이 몰린 국내 엔터테인먼트, 중소 IT 기업 대다수는 뛰어난 기술과 노하우에 비해 자본력이 취약한 편이었다. 세계 최대 시장으로 떠오른 중국 진출을 바라는 이들과 한국 기업의 기술과 노하우를 단숨에 확보하려는 중국 자본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 떨어졌다. 김태호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상무는 “회계법인과 협회를 통해 국내 기업 인수를 타진하는 중국 기업의 문의가 지난해보다 70%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쌍용차나 하이디스의 사례에서처럼 ‘기술 먹튀’ 논란이 여전하지만 중국 자본만을 따로 차별할 법적 근거는 없다. 더구나 한·중 자유무역협정(FTA)과 전자상거래시장 단일화 합의로 중국 자본에 대한 빗장이 서서히 풀리고 있다. 중국 자본의 한반도 공습이 더욱 강화될 전망이란 얘기다. 정유신 서강대 교수는 “세제 혜택이나 정책자금 지원 같은 유인책을 통해 중국이 우리 기업을 M&A하기보다 기술제휴·합작법인으로 유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