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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금융사에 눈독 들이는 중국] 대주주 자격 꼼꼼히 따져봐야 

지배구조 투명하지 않은 기업 많아... 막연한 경계보다 시장원리로 대응을 

이태경 기자 unipen@joongang.co.kr

안방보험·중신그룹·핑안보험그룹·푸싱그룹….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름조차 낯설었지만 이제는 국내 금융회사가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올 때마다 단골 인수 후보로 거론되는 중국계 금융회사들이다. 최근 대주주인 MBK파트너스가 매각 작업에 들어간 ING생명을 비롯해 지난해부터 매각 절차를 밟은 PCA생명·알리안츠생명 인수 후보로도 이들 중국계 자본이 오르내린다. 산업은행의 자회사 매각 방침에 따라 올해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큰 KDB생명도 마찬가지로 몇몇 중국 금융회사가 인수를 원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국내 보험·증권사에 눈독을 들이는 중국계 자본이 늘고 있다.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국내 금융시장에서 빠르게 존재감을 키워가는 대륙의 ‘금융 굴기’다. 2014년 대만 유안타증권의 동양증권 인수가 기폭제가 됐다.

보험·증권사 M&A 존재감 키우는 ‘금융 굴기’

유안타증권이 동양증권 인수에 성공하자 이번에는 중국 본토 기업의 국내 금융권 입질이 본격화됐다. 중국 최대 민영기업인 푸싱그룹은 2014년 3월 LIG손해보험 인수전에 참여했다. 입찰 결과 KB금융지주에 밀렸지만 중국 최대 기업이 국내 금융회사 입찰에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화제가 됐다.

중국 자본의 목표는 날이 갈수록 커지더니 급기야 국내 4대 은행 중 한 곳인 우리은행 인수전에도 뛰어들었다. 매각 입찰이 진행된 2014년 11월 28일, 유일하게 입찰에 참여한 곳이 중국 안방보험이었다. 안방보험은 석 달 뒤인 지난해 2월 국내 8위 생명보험사인 동양생명을 1조10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하며 다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후 지난해 9월 인수를 완료했다. 중국 자본이 국내 금융회사 M&A 시장의 ‘큰 손’으로 떠오른 순간이었다.

중국 자본이 한국 금융회사에 눈독을 들이는 가장 큰 이유는 지리적·정서적으로 중국과 가까운 투자처이기 때문이다. 중국 본토와 비행기로 1시간 거리이기 때문에 유럽·미국 금융회사와 달리 인수 이후에도 자주 오가며 관리할 수 있다. 같은 동북아 문화권인 한국에서 선진화된 금융 노하우를 배워 향후 중국 금융시장에 적용하려는 목적도 있다.

예컨대 현재 중국 보험시장은 저축성보험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병원 치료비를 주는 건강보험이나 사망시 보험금을 주는 종신보험은 아직까지 발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보험 업계에서는 앞으로 중국 경제가 고도성장기를 지나 안정기로 접어들면 한국처럼 건강보험·종신보험 가입자가 늘 것으로 본다. 최근 중국 경제의 불안도 영향이 있다. 진폭이 큰 위안화 환율과 중국 증시에 자금을 투자하는 대신 안정적인 한국 금융시장에서 자산을 운용하겠다는 취지다.

이와 달리 국내 대형 보험사는 매물로 나온 보험사 인수에 소극적이다. 저금리 기조로 수익이 많이 나지 않기 때문에 덩치를 키울 여력이 없다는 논리다. 은행보다 높은 저축성보험의 약정이율을 보험 계약자에게 돌려줘야 하는데 투자처는 마땅치 않다. 2020년 도입되는 2단계 국제회계기준(IFRS4)에 맞춰 자본건전성을 유지하려면 대규모 자본 확충도 해야 한다.

주식시장에선 중국 자본의 영향력이 보험보다 더 크다. 과거 한국거래소의 적극적인 상장 유치로 코스피·코스닥에 상장한 중국 기업이나 중국 자본의 투자를 받은 한국 기업이 많기 때문이다. 제주반도체는 중국 펀드 투자 유치 소식과 철회로 주가가 급등락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6월 중국 자본으로부터 1000억원의 투자 유치를 받았다고 밝힌 뒤 주가가 배 이상으로 올랐다. 하지만 이후 투자금 납입이 지연되고 투자금액도 3분의1 수준인 350억원으로 줄어들자 실망한 투자자가 매도세로 돌아서면서 다시 주가가 크게 내려갔다.

日 자본의 미국 지배 우려는 기우에 그쳐

M&A를 통해서가 아니라 국내에 직접 진출하려는 중국 증권사도 있다. 중국 3대 증권사인 자오상증권은 올해 하반기부터 국내 기관투자가들을 대상으로 중국 주식 등에 대한 중개업무를 시작하기 위해 금융위원회에 투자중개업 예비인가를 신청한 상태다.

이를 두고 지금 같은 속도로 중국 자본이 진출하면 국내 금융시장에서의 ‘차이나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중국 자본에 대한 차별이나 제약은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어떤 나라 자본이든 요건만 갖추면 국내 금융시장 진출을 막을 수 없다”며 “중국 자본을 막으면 세계무역기구(WTO) 자유무역 원칙에 위배될 수 있는데다 국내 금융회사의 중국 진출에도 제약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전문가 사이에서는 중국 자본의 국내 진출이 크게 늘어난 만큼 꼼꼼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대주주로서의 자격이 있는지를 살피는 대주주 적격성 심사가 중요하다. 중국 금융회사는 아직까지 지배구조가 투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말 푸싱그룹은 궈광창 회장이 개인적인 이유로 사법당국의 조사를 받았다. 최근 국내 금융회사 인수 잠재 후보로 자주 등장하는 중신그룹은 지난해 말 자회사인 중신증권의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임직원이 주가조작 혐의로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의 조사를 받았다는 현지 언론의 보도가 나왔다. 전용식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 모기업의 사업 리스크가 한국의 보험회사로 전이돼서는 안 된다”며 “자칫 국내 보험 계약자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국내 기업을 인수하려는 중국 금융회사에 대해 면밀한 감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과도한 경계심은 오히려 한·중 간의 금융 교류 활성화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삼가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최순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1980~1990년대 일본 자본이 미국을 지배한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며 “중국 자본의 한국 진출도 막연한 경계보다는 정확한 규모와 흐름을 파악한 뒤 시장원리로 대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금융회사가 외국 자본에 인수되는 건 저금리 기조로 수익을 내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최 연구위원은 “정부와 금융권이 저금리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금융 성장 동력을 개척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이태경 기자 unipen@joongang.co.kr

1326호 (2016.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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