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20대 총선 경제공약 분석 | 더불어민주당] 김종인표 ‘경제민주화 2.0’으로 표심 잡기 

노인 기초연금 인상에 수조 원 필요 … 구체적 재원 조달 방안 제시 안 해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3월 14일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들이 ‘D-30 총선 필승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공천뿐 아니라 총선 공약에도 김종인 대표의 생각과 의지가 강하게 반영되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당) 총선정책공약단과 더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 관계자들의 얘기다. ‘반영됐다’가 아니라 ‘반영되고 있다’는 말에 주목해야 한다. 익명을 원한 더민주당 관계자는 “당 정책위원회와 민주정책연구원 등에서 총선 공약을 대부분 만들어 놨는데 1월 중순 김종인 대표가 영입된 후에 바뀐 것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김종인 더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지난 대통령 선거 때 ‘경제민주화’ 담론을 들고 새누리당의 승리를 도운 인물이다. 그런 그가 더민주당 총선 공약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더민주당의 총선 공약을 ‘경제민주화 2.0 버전’으로 볼 수 있는 배경이다.

김종인 대표의 입김 곳곳에 반영

노인 기초연금 공약이 대표적이다.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은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기초연금 20만원을 지급하는 내용의 공약을 발표했다. 김종인 대표의 작품이었다. 그러나 이 공약은 포퓰리즘 논란 속에 소득 하위 70%에 속한 노인에게 월 10만~20만원을 차등 지급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더민주당은 이를 바꿔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2016년 20만원을 균등 지급하고, 2018년까지 30만원으로 인상한다는 공약을 내놨다. 민주정책연구원 관계자는 “단계별로 20만원을 균등 지급하는 것이 기존 입장이었는데 김종인 대표가 30만원으로 올리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더민주당이 2월 5일 처음 발표한 민생복지 공약에는 기초연금 지급액이 30만원이 아닌 20만원이었다. 10만원 차이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수조원이 왔다 갔다 한다. 더민주당에 따르면 2016~2018년 단계적으로 기초연금을 인상해 지급하면 2018년 기준으로 18조7000억원의 재원이 필요하다. 현 제도를 유지할 때보다 6조4000억원이 더 든다. 이에 대해 김종인 대표는 “지난 대선 때도 무슨 돈으로 (기초연금 지급을)하느냐는 얘기가 있었지만 정치적 의지가 워낙 강하니까 시행하지 않았느냐”고 일축했다. 비판도 만만치 않다. 윤석명 한국 보건사회연구원은 “차등 없이 1.5배나 늘려서 주는 것은 미래 세대에 대한 고민이 없는 선거용 포퓰리즘”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은 노인집단의 양극화가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양극화보다 훨씬 심각하다”며 “기초연금을 가난한 노인에게 더 많이 몰아주는 것이 기초연금의 도입 취지에도 맞고 양극화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더민주당이 내세운 ‘더불어 성장론’ 역시 김종인 대표의 뜻이 일부 담겼다는 게 당 관계자들의 얘기다. 더불어 성장론은 20대 총선 공약의 근간이 되는 더민주당의 정책 기조다. 그리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바뀐 당 이름과 ‘라임’을 맞춘 것 외에 새로운 내용은 많지 않다. 더민주당 역시 “더불어 성장론은 당이 지속적으로 추구했던 경제노선”이라며 “경제민주화와 소득주도 성장론, 분수경제론의 연장선”이라고 규정한다.

더민주당이 더불어 성장론의 골격을 완성한 것은 지난해 말이다. 당내 유능한 경제정당위원회가 주도했다. 야권 내에서 논의되던 포용적 성장론과 문재인 대표가 들고 나온 소득주도 경제성장론, 낙수경제와 반대 개념인 분수경제론 등을 종합해 만들었다. 이를 세밀하게 다듬은 것이 김종인 대표라고 한다. 총선공약단 관계자는 “기존 더불어 성장론에 경제민주화 요소가 더해졌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지난 2월 1일 더불어 성장론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더불어 성장은 경제민주화와 소득주도 성장, 분수경제를 이어받으면서 국제적 합의인 포용적 성장에 기반한 한국적 성장 모델”이라며 “불평등 해소와 지역 간 상생을 통해 내수를 확대하고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통해 지속적인 수출 성장을 도모하는 양방향 발전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19대 총선 7대 비전과 유사한 ‘7대 약속’


더불어 성장론의 두 축은 ‘불평등 해소를 통한 성장’과 ‘균형발전을 통한 성장’이다. 더민주당이 차례로 발표하고 있는 20대 총선 공약 역시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더민주당의 총선 공약 3대 비전은 ‘더불어 성장, 불평등 해소, 안전한 사회’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더민주당이 내놓은 7대 약속은 좋은 일자리 창출과 국민이 행복한 민생경제, 상생과 협력의 경제민주화 완성, 사회통합을 위한 한국형 복지국가, 미래 성장동력 확충과 지속가능한 발전, 전국이 더불어 잘사는 균형발전, 안전한 사회 평화로운 한반도, 국민의 인권 보장과 민주주의 회복이다. 19대 총선 때 발표한 7대 비전과 유사하다. 더민주당은 이를 토대로 150개 세부 정책 과제를 차례로 발표할 예정이다.

최근 논란이 되는 것은 3월 14일 내놓은 ‘3단계 가계부채 해소 공약’이다. 이용섭 총선정책공약단장은 “국민행복기금이 보유한 1000만원 이하 10년 이상 연체 채권을 즉시 일괄적으로 소각하고 금융회사가 보유한 부실채권 중 저소득·저신용 서민 114만명의 소액 장기채권을 추가 매입해 소각하겠다”고 밝혔다. 더민주당에 따르면 금융채무 불이행자를 포함한 금융채무 연체 취약계층은 약 350만명이다. 더민주당은 금융연구원 자료를 토대로 이 중 114만명은 금융 당국에서도 채무 상환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장기 연체 채권을 소각하고 소멸 시효가 지난 채권 매각과 추심을 금지하자는 것이 공약의 핵심이다. 더민주당은 사실상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채무자의 경제·금융 제약을 풀어 경제 활동에 참여시키는 것이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역대 정부에서도 저소득층 장기 연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정책을 폈다. 하지만 다른 채무자와의 형평성 문제와 도덕적 해이 논란으로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에 대해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저신용·저소득층의 장기 연체 문제를 정리하고 가야 한다는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빚 전체를 탕감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기존 고금리 대출의 이자율을 낮추는 방식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장기 연체를 탕감한다고 가계부채 문제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더민주당의 공약은 근본적인 가계부채 대책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주진형 더민주당 총선정책공약단 부단장은 “외국은 일정 기간 이상 연체가 되고 돈을 못 갚으면 금융회사가 상각하고 처리하는데 우리나라는 10년, 20년이 넘은 채권을 쫓아다니고 그것을 추심 업체에 넘긴다”며 “금융회사가 방만한 대출을 하는 이유는 악착같이 돈을 받아낼 수 있는 게 전제가 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금융회사에 손실 부담을 줘야 가계부채 증가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더민주당은 개인회생절차의 회생 기간을 기존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고 금융회사가 채무자를 상대로 소송을 남발하는 것을 막기 위한 금융소비자보호법을 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저소득층 장기 채무 탕감안 논란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가 3월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달리는 정책의자, 더더더’ 발대식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더민주당이 내놓은 청년 일자리 공약 역시 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더민주당은 정부 주도로 공공부문 일자리 34만8000개를 만들고, 청년고용 의무할당제를 통해 민간 대기업에 25만 2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노동시간 단축으로 11만8000개의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고 했다. 이를 통해 2022년까지 청년 일자리 70만 개를 만들 수 있다는 게 더민주당의 주장이다. 이행 방법은 공기업·공공기관에서 한시적으로 시행 중인 청년고용 의무할당제 할당률을 기존 3%에서 5%로 높이고 이를 대기업에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이 역시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똑같은 내용의 법률 개정안이 19대 국회에 계류 중이다. 더민주당 공천심사에서 탈락해 3월 15일 탈당을 선언한 정호준 의원이 지난해 9월 발의한 ‘청년고용촉진특별법 개정안’이다. 문제는 이 법안이 여러 논란을 안고 있음에도 더민주당이 수정·검토 없이 그대로 공약으로 발표했다는 점이다. 특히 청년할당제를 민간기업으로 확대하는 것은 위헌 시비가 일 수 있다. 2014년 9월 헌법재판소는 공공기관·공기업이 매년 정원의 3% 이상씩 청년 미취업자를 채용하도록 한 법률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위헌 의견(5명)이 합헌 의견(4명)보다 많았지만 의결정족수(6명)을 채우지 못한 것이다. 당시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들이 주목한 것은 헌법이 명시한 차별 금지다. 재판관들은 “연령차별금지는 헌법을 정점으로 하는 우리 법체계 내에서 정립된 기본질서이므로 청년할당제는 우리 법체계 내에서 정립된 기본질서와 모순된다”고 봤다.

청년할당제가 청년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었다. 재판관들은 “청년실업 문제는 노동시장의 구조적인 문제에 근본 원인이 있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청년층을 위한 적정한 일자리를 창출해야 하는데 청년 할당제는 일자리 창출 없이 한정된 일자리를 일부 청년층으로 채우도록 하는 대증적인 처방에 불과하다”는 의견을 냈다. 청년할당제와 관련해 기업경영의 자율성 침해, 노동시장의 자유로운 경쟁 저해, 비 청년층과 청년층의 세대갈등 유발 등의 논란도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정길채 더민주당 노동전문위원은 “기존 청년 일자리 정책이 모두 실패했다면 뭔가 새로운 정책이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것 아니냐”며 “영원히 하자는 것도 아니고 3년 간 한시적으로 시행해 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전문위원은 “청년실업은 청년층만이 아니라 전 세대의 문제이고 때문에 사회와 기업에도 책임이 있다”며 “문제의 본질은 양질의 일자리 부족이기 때문에 대기업이 양보를 할 때가 됐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기금을 향후 10년 간 매년 10조원씩 장기 공공임대 주택과 보육시설 등 공공인프라 확충에 투자한다는 공약에는 정부가 발끈하고 나섰다. 더민주당 측은 “국민연금의 공공투자는 경기 부양과 일자리 창출, 국민연금 지속 가능성 제고 등 1석 3조의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더민주당은 이 공약 보도 자료 맨 앞에 김종인 대표가 쓴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 중 일부를 발췌했다. ‘복지는 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성장동력이다…(중략)…연기금을 증권에 투자해 수익을 높이는 것보다 연금을 계속 불입할 수 있는 사람을 늘리는 게 맞다.’ 총선공약단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공공투자로 주거와 보육 문제가 일부 해결되면 출산율이 높아져 연금제도를 더 튼튼히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은 3월 15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민연금은 수익성과 안정성을 기반으로 수익을 올리는 것이 목표”라며 “애초 의도했던 목적과 달리 사용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야당의 국민연금 공약에 신중론을 제기한 것이다. 정 장관은 “국민의 혈세를 모아 미래 세대까지 다 써야 할 재원인데, 그것을 현재의 공공 목적으로 쓴다는 것은 사회적 합의를 해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문형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역시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국민연금을 동원하는 것은 신중한 고려가 필요한 문제”라며 “안정성과 수익성이라는 기금 운용의 원칙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에 관련 김종인 대표는 “연기금을 사용해 주택이나 보육 시설에 투자하면 그 자체가 한국 경제의 성장 요인”이라며“(국민연금의 공공투자는) 연금에 돈을 넣는 사람이 늘어야 연금도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기 때문에 (국민연금 공공투자는) 장기적으로 주택 문제와 저출산을 해소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재정·복지·조세 개혁으로 재원 조달?

더민주당 정책위원회와 총선정책공약단은 향후 연이어 경제 공약을 발표할 예정이다. 지금까지의 공약을 보면 ‘더불어 성장론’과 함께 ‘적정부담·적정복지 국가’라는 기존 당론의 틀 안에서 공약이 추가될 가능성이 크다. 적정부담·적정복지는 더민주당의 당론이자 복지 전략이다. 민주정책연구원이 제시한 이 개념은 국내총생산 대비 조세 및 사회보험료 부담비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높이고 이를 통해 사회복지 지출을 늘리자는 것이다. 중부담·중복지로 이해하면 쉽다. 이미 발표한 공약인 건강보험료 부과의 상한선 폐지, 중앙정부가 보육예산(누리과정) 100% 담당, 고교무상교육 실현, 자발적 퇴직자 실업급여 지급, 상시 해고기업에 대한 손해배상제 도입, 휴일 포함 1주 52시간 이내 근로 법정화 및 출퇴근 시간 기록 보전의무(칼퇴근법) 등도 이 범위 안에 있다.

문제는 어떻게 공약 재원을 조달하고 국민 부담을 늘리느냐는 것이다. 더민주당은 아직까지 구체적인 재원 조달 방안을 발표하지 않았다. 이 분야는 기획재정부 과장 출신으로 최근 경기 군포갑에 전략공천을 받은 김정우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가 총선정책공약단 재원조달팀장을 맡아 방안을 마련 중이다. 이용섭 단장은 “복지에 필요한 재원은 4대강 사업과 해외자원 개발 등 불요불급한 사업 축소와 법인세 정상화 등 재정·복지·조세 개혁을 통해 조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또한 “조세부담률을 부자 감세가 시작되기 이전인 2007년(19.6%) 수준까지 2%포인트만 올려도 연간 30조원에 가까운 추가 세입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1327호 (2016.03.28)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