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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세대 모텔 이용 트렌드] 예약은 여성이, 비용은 반반 

노래방·당구장·영화관 대용으로 각광 ... 대학가 모텔에선 취업 스터디도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1. 4월에 결혼하는 강선영(29)씨는 최근 친한 친구들을 모아 ‘브라이덜샤워’ 파티를 열었다. 예비신부를 선물과 수다로 샤워시킨다는 의미를 지닌 브라이덜샤워는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 결혼 전 친구와 함께하는 이벤트로 각광받고 있다. 장소는 강남역 인근의 한 모텔 파티룸을 예약했다. 친구들이 방 안 곳곳에 풍선과 꽃장식을 달고 컵케이크·파스타 등 음식을 차려 파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강씨는 “호텔도 고려해봤지만 여럿이 이용하기엔 비싼 숙박비와 인원 추가 비용이 부담스러웠다”며 “모텔이어도 공간이 넓고, 스파와 노래방 시설이 갖춰져 있어 친구들과 부담없이 놀기 좋았다”고 말했다.

#2.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정상준(34)씨는 지난해 말 서울 인사동의 한 모텔에서 회사 송년회를 했다. 정씨를 포함해 전 직원이 7명뿐인 터라 색다른 연말 분위기를 내고 싶어서였다. 20대 후반~30대 초반인 직원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했다. 50㎡(약 15평) 남짓한 방 안에는 함께 영화를 볼 수 있는 스크린 화면과 당구대도 설치돼 있었다. 이들은 배달음식을 먹으며 밤새 보드게임을 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정씨는 “술을 못 마시는 직원이 있는데 시끌벅적한 술집에 데려가기엔 미안했다”며 “멀리 가진 못했지만 모텔 안에서도 다같이 워크숍 기분을 느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젊은층 파티 공간으로 각광


모텔이 달라졌다. 과거 ‘불륜’ ‘19금’ 등 퇴폐적이고 어두운 이미지에서 탈피해 휴식과 문화가 접목된 놀이공간으로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숙박 애플리케이션 ‘여기어때’가 최근 2년 간 모텔 검색 키워드를 분석한 결과 ‘파티룸’(15.8%)이 연관 검색어 1위에 올랐다. 이 밖에 스파(12.3%)·파티(8.8%)·게임(4.5%) 등 휴식·놀이와 관련된 단어가 10위권에 올랐다. 2014년 1위를 차지한 ‘무인텔’은 6위로 밀려났다. 숙박 앱 ‘야놀자’가 지난해 12월 20~34세 남녀 300명을 대상으로 모텔 대실 이용 형태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모텔을 파티 공간으로 사용한다’고 답한 응답자가 전체의 49.4%(중복응답)로 1위를 차지했다.

적게는 3~4명에서 많게는 10명 이상 수용이 가능한 모텔 파티룸은 객실 안에 노래방·당구대·수영장 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독립된 공간에서 여러가지 활동을 한번에 즐길 수 있어 젊은 세대에겐 새로운 놀이장소로 각광받는다. 여기어때에 등록된 파티룸 수는 전년 대비 30% 가량 늘었다. 최근엔 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한 갤러리형 모텔이나 해외에서 수입한 디자인 가구를 들여놓고 판매도 하는 가구 갤러리형 모텔도 등장했다.

요금 더 나와도 고급 객실 인기

스파·호텔·월풀·수영장 같은 검색어도 상위권에 올랐다. 과거 모텔에서 찾기 힘든 시설이다. 최근엔 달라졌다. 고객의 취향에 발맞춰 특색있는 객실을 갖춘 모텔이 늘었다. 모텔 앱에서 ‘호텔’이라는 키워드의 검색량이 증가한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문지형 ‘여기어때’ 홍보 총괄은 “호화로운 시설의 중소형 호텔이 등장하면서 ‘모텔’에서 특급호텔 부럽지 않은 시설과 서비스를 기대하는 이용자가 늘고 있다”며 “숙박앱도 그에 맞춰 고급스럽고 현대화된 제휴점 발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모텔 업계에 따르면 일반실 기준 평균 대실 비용은 2만원 대, 숙박 비용은 4만원 대다. 파티룸·스위트룸처럼 부대시설을 갖춘 객실의 평균 숙박 비용은 5만~6만원 수준이다. 일부 인기 모텔의 경우 연말 성수기에는 비용이 20만~30만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시기에 고급 객실은 ‘없어서 못 빌린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강남 지역에서 2개 모텔을 운영하는 한 관계자는 “방과 연결된 테라스를 만들어 수영장을 설치하는 등 호텔 못지 않은 시설을 갖추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며 “일반실보다 요금이 높게 책정됐지만 호텔과 달리 2명 이상이어도 추가 요금이 없어 비싸다고만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파티룸을 이용하는 고객이 대개 젊은 사람들이다 보니 더치페이가 일상화돼 1인당 비용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나만의 휴식 중시 ‘작은 사치’ 문화도 한 몫


개인의 여가나 문화생활에는 투자를 아끼지 않는 ‘작은 사치’ 문화의 확산도 모텔의 성장을 뒷받침한다. 호텔 같은 시설과 서비스를 갖춘 숙박시설에서 합리적인 가격에 나만의 휴식을 누리는 것이다. 길게 휴가를 내기 힘든 직장인이나 주머니가 가벼운 대학생 고객이 주요 고객층이다. 휴가 기간에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대신 집에서 멀지 않은 숙박시설에서 하룻밤 휴가를 보낸다. 이때 스파·월풀 등의 부대시설이 모텔 선택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처럼 모텔 가격의 호텔, 호텔 부럽지 않은 모텔 시장은 다른 듯 비슷한 이유로 성장 중이다.

대학생 사이에선 공부방으로도 애용된다. 조용한 곳에서 주변의 방해를 받지 않고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낮에 대실 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2만~3만원에 4~6시간 이용할 수 있어 여럿이 함께 쓰면 일반 스터디룸이나 카페보다 가격이 합리적이라는 설명이다. 대학생 박현진(23)씨는 “시험 기간엔 도서관은 물론이고, 학교 근처 카페도 만석이라 친구들끼리 모여 모텔을 잡고 공부한 적이 몇 번 있다”며 “공부하다 지치면 음식을 시켜 먹거나 잠을 잘 수도 있어 편하다”고 말했다. 신촌 대학가 인근 모텔을 자주 간다는 이석현(27)씨는 “면접을 앞두고 친구들과 취업 스터디 모임을 갖기 위해 종종 모텔을 찾는다”며 “공모전 등 여럿이 모여 장시간 토의를 해야 할 때 모텔만큼 좋은 곳이 없다”고 설명했다.

모텔이 ‘불건전한 숙박시설’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활동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면서 호텔과 마찬가지로 시설을 비교하고, 자유롭게 예약하는 소비자도 많아졌다. ‘여기어때’에 가입한 회원 중 절반 이상이 여성(51.8%)으로, 남성(48.2%)보다 많다. 앱의 바로예약 결제를 이용하는 고객의 성비는 여성과 남성 비율이 5대 5로 별 차이가 없다. 오히려 좋은 시설을 고르고, 주도적으로 예약하는 사람은 여성인 경우가 더 많았다.

모텔을 주로 검색하는 시간도 밤이 아닌 ‘벌건 대낮’이다. 실제로 모텔 예약 앱의 일 평균 이용자 수(DAU)를 분석한 결과 오전 10시에서 정오까지 트래픽이 40%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 관계자는 “점심 시간에 휴식을 취하거나 데이트를 하기 위해 모텔을 예약하는 직장인이 많아 낮 시간대에 검색하는 비율이 더 높은 편”이라며 “모텔이 휴식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1328호 (2016.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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