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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현의 바둑경영] 한국산 아닌 한국류로 경쟁력 높이자 

한국적인 독창적 풍취 담아야... 바둑에선 ‘한국형 정석’ 유명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한국적인 것이 가장 경쟁력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흔하게 듣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을 실감하고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일자리 창출이 어렵고 글로벌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는 요즘 상황에서 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한국적인 것이 경쟁력이 있다면 그것을 살리는 전략을 찾아보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겠는가. 바둑에서 세계를 휩쓴 ‘한국류 정석’을 살펴보며 한류 활용 전략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

한류 열풍의 의미: [대장금] [겨울연가] 같은 드라마가 해외로 보급되면서 ‘한류 열풍’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우리 탤런트와 가수들이 큰 인기를 끌며 해외 공연을 많이 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국내로 들어오는 외국인 관광객도 늘어났다. 나중에는 ‘의료 한류’와 같이 다른 분야에서도 한류란 말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류란 말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인이 만들고 한국에서 만들어졌으니 한류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의 토양에서 한국 사람이 만들었다면 한국의 상품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은 ‘한국산’이지 ‘한국류’는 아니다. 한류는 ‘한국적인’ 스타일을 가리킨다. 따라서 단순히 한국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류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삼성의 갤럭시폰, 현대차 같은 한국산 제품을 한류라고 부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한류’라고 부르려면 한국적인 문화적 색채가 들어있어야 한다. 외국인이 볼 때 한국적인 독특한 풍취가 있어야 진정한 한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독창성을 발휘할 때 한국적인 것의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바둑에서의 한류: 진정한 한류의 본질을 알아보기 위하여 바둑을 예로 들어보자. 사실 한류란 말은 1990년대 초에 바둑에서 먼저 나왔다. 한국 기사들이 만들어 낸 정석에 외국인들이 ‘한국류’ 즉 ‘Korean style’이라는 말을 붙여준 것이다. 이후 일본의 바둑잡지에서는 ‘한국형 정석’이라는 칼럼을 연재했다. 이창호와 김성래 프로기사가 공동으로 저술하여 서양에 수출한 바둑책에는 ‘Korean Style of Baduk’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한국판 정석이 코리안 스타일이라고 불린 것은 단순히 한국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은 아니었다. 일본이나 중국에서 만들어졌다고 일본류나 중국류로 부르지는 않는다. 한국류 정석에는 다른 나라의 것과는 다른 독창적인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이다.

[1도]와 같은 모양에서 흑1에 둘 때 백2로 흑돌의 옆구리에 붙인 수가 한국류 정석의 원조다. 어찌 보면 좀 당돌하고 격식에 어긋한 듯한 이 수가 색다른 정석을 만들어냈다. [2도]에서는 여러 가지 상품이 파생되어 나왔다. 흑3에서 흑11까지의 수순으로 이루어진 정석도 나왔다. 그런데 이 정석은 기존의 정석에 비해 색다른 느낌을 준다. 백2와 6의 두 점을 잡히고 귀의 흑 한 점을 잡는 거래방식이 자유분방하다. [정석대사전]에 있는 수많은 정석 중 이런 식으로 처리된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새로이 나타난 정석에는 뭔가 독특한 요소가 있었고 외국인은 그것을 ‘한국류’라고 불렀다. 일본의 어떤 기사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류는 묘하다. 모양은 투박해 뵈는데 고추장맛 같은 매운 맛이 있다.” 전문적으로 말하면 한국류는 바둑의 모양과 이론을 중시하던 기존의 바둑풍을 초월한 실제주의적인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 기사들은 어떻게 이런 독창적인 한류 상품을 창조하게 되었을까? 여기에는 우리의 전통문화가 담겨 있다. 즉 우리 조상들이 즐기던 ‘순장바둑’의 얼이 스며들어간 것이다. [3도]처럼 미리 바둑돌 17점을 배치해 놓고 두는 방식을 순장바둑이라고 한다. 1937년 이전까지 한국에서는 이런 양식의 바둑을 두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순장바둑은 돌의 배치로 인해 모양이나 이론을 따지기보다 실제 상황에 적합한가에 초점을 맞추는 특징이 있다.

순장바둑의 이런 특징이 현대의 한국류 정석에 반영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한국인만이 구사할 수 있는 독특한 맛이 내포되었기에 한국류로 불린 것이다. 이러한 한국식 바둑을 구사하며 우리는 일본이 주도하던 세계 바둑계를 정복했다. 그렇게 보면 우리 조상들의 문화가 반영된 한국류로 글로벌 최강이 된 셈이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경쟁력이 있다는 말을 입증한 좋은 예가 아닐까.

한류 상품의 개발: 다른 분야에서도 바둑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한류 상품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적인 풍취를 가진 한류에 대한 관심이 적다. 우리는 대부분 IT나 첨단기술 등으로 승부를 하려고 한다. 세계 어디서나 만들 수 있는 상품으로 경쟁을 한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비한국적인 것으로 경쟁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한 영역에서 연구와 개발을 해서 경쟁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만 집중하는 것이 문제다. 한국적인 내음이 나는 상품으로도 경쟁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경쟁력이 있다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적인 것을 살리려면 우리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활용해야 한다. 우리의 전통을 돌아보면 한글·판소리·왕조실록·김치·장영실·이순신 등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것이 많다. 이런 자랑스런 유산을 깊이 있게 연구해야 한다. 이것들을 활용한 상품을 만든다면 돈도 벌고 한국의 문화도 알리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기업가들은 이것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겠는가 하고 의문을 표할지 모른다. 이에 대해서는 외국에 한국 문화를 좋아하고 알고 싶어하는 요구가 있다는 점을 얘기할 수 있다. 서양에 판소리 동호회가 있고, 외국 학자들이 한글의 우수성과 이순신 장군의 위업을 더 위대하게 평가하고 있다. 이런 니즈를 기회로 활용하면 수익창출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길은 많을 것 같다. 우리의 전통을 활용해 문화콘텐트, 제품, 관광상품, 교육체험, 이벤트 등으로 만드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 요즘 흔히 말하는 ‘원소스 멀티유스(one source, multi use)’로 한국류 상품을 다채롭게 개발할 수 있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경쟁력이 있다고 하면서도 비한국적인 것으로 경쟁하는 우리의 현황을 살펴보았다. 한국적인 상품으로 세계를 제패한 바둑의 사례를 벤치마킹해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보도록 하자.

정수현 - 1973년 프로기사에 입단한 후 1997년 프로 9단에 올랐다. 제 1기 프로신왕전에서 우승했다. 한국프로기사회장, KBS 일요바둑·바둑왕전의 해설자를 역임했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둑 읽는 CEO』 『반상의 파노라마』『 인생과 바둑』 등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

1327호 (2016.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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