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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박완서作 [그 많은 싱아는…]의 ‘스놉효과’ 

남과 차별화된 선호 나타내는 현상 ... 과시적 소비 나타내는 ‘베블런 효과’와 일맥상통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스놉효과는 가격이 비싸고, 한정 수량의 고급품일수록 잘 일어난다. 희소성을 높여야 한다는 의미다. 대표적인 것이 명품이다. 때문에 스놉효과 상품은 고객들을 마구 늘리기보다는 적정 고객으로 한정해 잘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비록 속물효과로 번역이 되지만 현대 소비경제에서는 고급 지향적 소비성향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사진:중앙포토
사람은 이기적이다. 나에게 이익이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선악이 바뀔 수 있다.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더라도 나에게 손해가 된다면, 반대로 모든 사람에게 나쁜 일이라도 나에게 선이 된다면 그 유혹은 피하기 힘들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공간, 그리고 한국전쟁을 거친 한반도 주민들은 매번 이런 선택을 강요당했다. ‘친일이냐 반일이냐, 자본주의냐 공산주의냐, 우익이냐 좌익이냐, 친미냐 반미냐’라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서민들에게 대의명분은 사치였다. 생사가 엇갈리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시류에 편승해서라도 살아남는 게 중요했다. 지식인 사회라고 다를 바 없었다. 박완서의 소설 [그 많은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바로 그 시절을 관통한다.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자서전에 가깝다. 박완서는 책 서문에서 “이것을 소설이라 부를 수 있을 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소설 속 ‘나’는 개성역에서 20리 떨어진 시골인 박적골에 산다. 그곳에는 반남 박씨의 집성촌이 있다. 아버지는 일찍 여의었지만, 오빠와 엄마 세 가족은 할머니, 할아버지, 숙부네와 함께 산다. 집안의 기둥이던 할아버지가 동풍으로 쓰러진 뒤 나의 가족들은 서울로 떠난다. 가족이 터를 잡은 곳은 달동네인 현저동이다. 자식 교육을 중시했던 엄마는 나를 산너머 인왕산 자락에 있는 매동국민학교에 보낸다. 학교에서 좀처럼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내가 기다리는 유일한 낙은 박적골로 돌아갈 수 있는 방학이었다. 오빠가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면서 집안 형편이 서서히 풀린다. 그 무렵 우리는 현저동에 꿈에 그리던 집을 마련하게 된다. 나는 숙명으로 진학했다. 일본의 전세가 기울면서 사회적 분위기가 흉흉해졌고, 오빠에게 징용의 위협이 다가온다. 연합군의 잇단 폭격에 경성도 소개령이 내려지고, 가족들은 박적골로 돌아간다. 1945년 초여름 오빠는 결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방을 맞는다.

주인공인 ‘나’의 가문은 그 시대 평범한 시골 양반의 전형이다. 마을 사람들보다 더 배운 양반이라는 것을 내세우나 민족적 자부심이나 역사의식을 갖고 있진 않다. 집을 일으킬 출세가 중요하다.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장손이 조선총독부에서 일하기만을 학수고대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내 나라야 어찌되었던 땅을 파먹고 살기보다 붓대를 놀리며 먹고 살되 그것이 남들이 부러워하는 관청이면 최고였다. 나의 집안은 쏠쏠찮게 친일 인맥의 덕을 본다. 큰 숙부는 집안의 먼 친척이 되는 유명 친일파의 백으로 면서기가 됐다. 작은 숙부도 일본인 가게에서 일하며 장사를 시작한다. 오빠는 총독부를 거쳐 군수 업체인 와타나베 철강소에서 일한다. 일제 강점기, 사회 주류인 친일파와의 인적 네트워크는 가문을 일으켜 세우는 데 큰 기여를 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집안에 대해 서서히 혐오감을 느낀다. 나는 집안의 양반의식을 ‘양반타령’이라고 비하한다.

박완서의 자서전에 가까워

나의 눈에 자기 가문만의 안위를 생각했던 사람들은 ‘속물’이다. 국어사전을 보면 속물이란 ‘교양이 없거나 식견이 좁고 세속적인 일에만 신경을 쓰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경제활동을 할 때도 나만을 생각하는 속물이 있다. 이른바 ‘속물효과’ 혹은 ‘스놉효과(Snob Effect)’다. 스놉효과란 특정 상품에 대한 소비가 증가하면 그것에 대한 수요가 줄어드는 현상을 말한다. 스놉이란 잘난 척을 하는 사람을 비꼬는 말이다. 남과 차별화된 선호를 ‘속물’로 보는 이유는 부자들의 소비형태와 매우 닮았기 때문이다. 부자들은 자신들이 줄곧 써오던 물건이라도 그것이 대중화가 되면 더 이상 쓰지 않고 다른 상품으로 바꾸는 성향이 있다. 돈으로서 남과 나를 차별화시키려는 과시적 모습이 꼭 속물 같다는 것으로 ‘돈자랑’하는 ‘졸부’라는 의미가 있다. 나와 격이 다른 사람이 같은 물건을 쓰는 것을 참을 수 없어한다는 점에서 조선 말기의 ‘양반의식’과도 닮았다. 스놉효과는 ‘백로효과’로 부르기도 한다. 마치 까마귀가 몰려들면 백로가 멀리 떨어지려는 것과 닮아 보인다는 것이다.

스놉효과는 가격이 비싸고, 한정 수량의 고급품일수록 잘 일어난다. 희소성을 높여야 한다는 의미다. 대표적인 것이 명품이다. 때문에 스놉효과 상품은 고객들을 마구 늘리기보다는 적정 고객으로 한정해 잘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비록 속물효과로 번역이 되지만 현대 소비경제에서는 고급 지향적 소비성향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스놉효과는 1950년 미국의 경제학자인 라이벤스타인이 ‘밴드왜건 효과’를 설명하면서 나온 단어다. 밴드왜건 효과는 다른 사람이 좋아하면 나도 좋아해 수요가 늘어난다. 밴드 앞에서 악대가 연주하면 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이 악대를 쭉 따라가는 데서 연유된 용어다. 만약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LA다저스나 뉴욕양키스를 나도 좋아하게 됐다면 밴드왜건 효과다. 반대로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같은 무명 구단을 더 좋아한다면 스놉효과다.

라이벤스타인보다 60년 앞서 소스타인 베블런은 [유한계급론]에서 “물건의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오히려 늘어나는 물건이 있다”고 밝혔다. 이른바 ‘베블런 효과’다.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줄어든다고 믿었던 전통 경제학자들로서는 충격적인 주장이었다. 베블런이 제기한 ‘유한계급’이 곧 부자를 의미한다. 돈 많고 할 일이 없는 유한계급들은 과시적 소비를 즐긴다는 것을 베블런은 일찍이 꿰뚫어 봤다. 비쌀수록 잘 팔리는 물건을 ‘베블런재’라고 한다.

부자들의 소비행태와 닮아

속물만 모여 사는 것 같았던 나의 집안은, 그러나 오빠가 창씨개명을 거부하면서 변화를 맞는다. ‘창씨개명’을 해야 진급도, 장사도 잘된다는 어머니와 숙부의 주장에 오빠는 “지금까지 견뎠는데 조금만 더 견뎌보자”며 고집을 꺾지 않는다. 소설 속나는 “전형적인 속물의 세계에서 별안간 우뚝 솟은 어떤 정신의 높이를 본 것 같았다”고 평가한다. 오빠는 일본 군수물자 회사에 일한 덕에 자신만 징용을 피한 것에 대배 부끄러워하고, 일제 강점기 관료인 숙부 덕에 자신들만 입에 풀칠하는 것에 대해서도 미안해했다.

소설 속 ‘나’도 속물이다. 서울에서는 시골의 자연을 모른다며 서울 아이들을 무시했고, 시골에서는 서울의 세련됨을 모른다며 아이들을 무시했다. 해방 직후 친일파 가족으로 몰려 폭력을 당할 때도 “당신들도 그렇지 않느냐”며 대들던 나였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오빠는 의용군으로 붙잡혀 간다. 천신만고 끝에 돌아온 오빠가 부상으로 피난을 갈 수 없게 되자 나와 엄마는 함께 1·4후퇴로 텅 빈 서울에 같이 남는다. 다시 인민군이 들이닥칠 것이고 우리 가족의 목숨은 어찌될지 아무도 모른다. 막다른 골목까지 몰리자, 오히려 나의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 공허한 순간을 언젠가 글로 쓰겠다는 생각이 들자 공포가 사라졌다. 빈 집을 털면 식량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떨어져가는 식량 걱정도 안 됐다. 나도 비로소 나만 잘되면 된다는 ‘속물’에서 벗어난다.

-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1328호 (2016.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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