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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박사의 힐링 상담 | 눈치 보기 갈등 극복] 중·허·화 떠올려라 

정도(正道) 가고, 마음 비우고, 분위기 맞추야 

후박사 이후경 정신과의사, 경영학박사, LPJ마음건강 대표

▎일러스트:중앙포토
12년차 과장인 그의 목표는 올해 말 부장으로 승진하는 것이다. 비교적 빨리 과장이 된 그는 한때 오만했었다. 좀 쉬었다 승진할 때쯤 다시 일하면 되겠지 하다가 ‘머리는 좋은데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 ‘이기적이다’ ‘충성심이 없다’ 등의 나쁜 소문이 돌아, 동료·후배들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자각이 들자 다시 회사에 올인했다. 점점 소문이 좋아졌고 작년 과장급 평가에서 1등도 했다.

그에겐 강력한 경쟁자가 있다. 회사에 올인하는 옆 팀 여자 과장이다. 그보다 한참 어린 그녀는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한다. 매일 부장의 점심을 챙기고, 하루에도 몇 번씩 업무보고를 핑계로 부장님 방에 들어가 대화를 하는데, 웃음소리가 잦다.

부장 평가에 따라 승진이 갈린다. 성과만을 따지면 뒤지지 않을 것 같은데, 친밀감을 고려한 전반적인 면에서는 뒤지는 것 같다. 연초부터 벌써 전쟁이 시작됐다. 부장 방에서 웃음소리가 새어나올 때마다, 그와 대화할 땐 거의 웃지 않는 부장이 왜 그녀와는 그리 잘 웃는지 신경이 쓰인다. 무슨 일로 그리 길게 대화를 하는가 싶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부장의 표정 하나하나, 웃으면 웃는 대로, 짜증을 내면 짜증을 내는 대로, 불필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또 그걸 해석하느라 시간을 낭비한다. 또 부장의 언사에도 무슨 배경이 있어 그럴까 하며 자꾸 민감해진다. 하루 종일 부장 눈치만 보고 있다. 너무 불편하고 피곤하다.

성과로는 자신 있는데 친밀감은…

눈치 보기는 남의 마음을 살피는 것이다. 가정생활을 잘 하려면 눈치가 있어야 한다. 눈치 없는 며느리는 소박 당한다. 눈치 보기는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이다. 사회생활에 성공하려면 눈치가 빨라야 한다. 눈치 느린 직원은 도태 당한다. 눈치 보기는 남을 의식하는 것이다. 우리는 시선에 자유롭지 못하다. 남이 하니까, 남이 하는 대로, 남이 시키는 대로 살아간다. 눈치 보기는 남을 배려하는 것이다. 배려는 사회의 미덕이다. 배려하려면 눈치가 필요하지만, 눈치가 있다고 배려하는 것은 아니다.

막 소낙비가 내리려 한다. 시어머니는 바깥에 널린 빨래를 걱정한다. 며느리를 보고 손자 이름을 부르며 이렇게 말한다. “아무개야 이리 와라.” 눈치 있는 며느리는 손자를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빨래를 걷는다. 그런데 눈치 없는 며느리는 손자만 넘기고 빨래는 안 걷는다. 시어머니는 발끈한다. 사실 “아이 나한테 맡기고, 빨래 걷어 와라”라고 말하면 문제가 없다. 한국인은 이중적으로 소통한다. 한국에서 눈치 없으면 가정생활이 어렵다.

사장이 비서에게 말한다. “미스 김, 손님 오셨는데 차 한 잔 가져와. 그리고 어제 얘기한 서류도 가져오고.” 미스 리가 서류 한 뭉치를 가져온다. 사장은 발끈한다. “미스 김, 정신이 있는 거야? 어제 얘기한 것 갖고 오랬잖아? 정말 눈치코치도 없네.” 미스 김이 말한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사장은 한술 더 뜬다. “요즘 애들은 말귀를 전혀 못 알아들어.” 사실 “어제 말한 A서류 가져오라”라고 말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한국인은 정확하게 소통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눈치 없으면 사회생활도 힘들다.

한국 사회는 눈치 보기가 만연하다. 회사 눈치 보느라 야근하고, 연차 휴가는 다 못 쓴다. 상사 눈치 보여 끝나도 제때 퇴근 못하고, 무리한 요구도 받아들인다. 눈치 보기는 술 문화에서 잘 드러난다. 잦은 회식에서 빠지기 어렵고, 윗사람이 권하는 술잔은 거절이 힘들다. 잘 마시면 뭔가 맘에 들어 하고, 못 마시면 뭔가 불편하다. 눈치 보기는 지나친 비교와 의식으로 나타난다. 자녀의 학교 등수, 수입과 재산, 사회적 지위에 민감하다. 눈이 있어 브랜드 있는 옷을 입고, 고기 집에선 혼자 밥 먹기 힘들다.

눈치문화는 집단주의와 유교적 전통에서 온다.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정도에 따라 그래프를 그리면, 한국은 집단 주의 끝 쪽에 위치한다. 나보다 우리를 중시하고, 가족보다 국가를 우선한다. 1997년 외환위기 때의 ‘금 모으기 운동’과 2002년 월드컵의 ‘오 필승 코리아’는 세계인의 화제다. 우리는 옛날부터 예(禮)와 체면을 중시했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예(禮)가 아닌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행동하지도 말라.” 예(禮)가 지나치면 허례가 되고, 체면이 지나치면 위선이 된다.

강함이란 조화 이루되 섞이지 않는 것

약자는 강자의 눈치를 본다. 아이는 어른의 눈치를 보고, 여자는 남자의 눈치를 본다. 부하는 상사의 눈치를 보고, 종업원은 사장의 눈치를 본다. 없는 자는 있는 자의 눈치를 보고, 병든 자는 건강한 자의 눈치를 본다. “강자는 기회를 만들고, 약자는 기회를 기다린다.” 눈치 보기의 덫에 걸린 사람이 있다. 어려서 남의 집에 얹혀살거나, 가난해서 주위 도움을 받으며 자란 경우다. 부모로부터 조건부 사랑을 받으며 크거나, 파괴적 비판이 심한 가정에서 자란 경우다.

자, 그에게로 돌아가자. 탁월한 처방은 무엇일까? 그는 우왕좌왕하고 있다. 내공이 필요하다. 중(中)·허(虛)·화(和)를 떠올려 본다. 첫째, 중(中)이다. 중심(中心)을 잡는 것이다. 매사 조금은 과욕을 부려 보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오자. 정도(正道)를 가는 것이다. 당혹한 상황에서 조금은 흥분해 보고, 바로 초연으로 돌아오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이다. 예상 못한 방해에 부딪쳐 조금은 저항해 보고, 금세 유연해지자. 중립성을 지키는 것이다. 위협에 직면해서 조금은 움츠려 들었다, 다시 태연해지자. 중용에 이런 말이 있다. “강함이란 중립을 지키되 양쪽 극단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둘째, 허(虛)다.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남과 갈등이 생길 때 내 속만을 들여다보자. “내게 욕심이 동했던가? 미움으로 가득 차 하루를 보냈던가? 분노 때문에 에너지를 소모한 것이 아닌가?” 이렇게 해서 내 속만을 가볍고 환하게 한다. “남들은 나를 오해할 권리가 있고, 나는 해명할 의무가 없다. 눈치를 보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내가 누구이기에 남의 마당을 쓸까?” 도덕경에 이런 말이 있다. “욕심이 들어서면 본래 모습이 안 보이고, 욕심에서 벗어나면 현묘한 경지를 보게 된다.”

셋째, 화(和)다. 분위기를 맞추는 것이다. 눈치가 필요하다. 어디서든 앉을 자리 봐가면서 앉아야 한다. 상황에 들어맞는 것이다. 염치가 필요하다. 무슨 일이든 체면을 차리고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공감하는 것이다. 재치가 필요하다. 누구와도 함께 느끼고 상대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 전체와 조화하는 것이다. 운치가 필요하다. 말 한마디라도 우아하고 여운을 남겨야 한다. 중용에 이런 말이 있다. “강함이란 조화를 이루되 섞이지 않는 것이다.”

후박사 이후경 - 정신과의사, 경영학박사, LPJ마음건강 대표. 연세대 의과대학과 동대학원을 거쳐 정신과 전문의를 취득하고, 연세대 경영대학원과 중앙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임상집단정신치료] [후박사의 마음건강 강연시리즈 1~5권] [후박사의 힐링시대 프로젝트] 등 1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1328호 (2016.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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