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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캐피털이 보는 2016 스타트업 기상도] 핀테크·바이오·콘텐트 ‘대체로 맑음’ 

국내 대표 벤처캐피털 35개사 설문 … 투자 규모는 지난해보다 소폭 늘 듯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
세계적으로 스타트업의 거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16년 한국 스타트업계는 어떨까.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회원사를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들은 2016년 한국 스타트업계 전망을 “희망적”이라고 평가했다.

▎3월 22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문을 연 ‘스타트업 캠퍼스’. 국내외 투자사와 액셀러레이터가 입주해 젊은 창업가들을 원스톱으로 지원한다.
제조업 스타트업에 도전해 엑시트(투자 회수)에 성공한 탱그램팩토리 정덕희 대표는 “지난해 스타트업계가 호황이었는데 올해도 지속될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고개를 내저었다. 정 대표는 “올해 스타트업계는 부익부 빈익빈이 심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스타트업계에 대한 투자가 지난해처럼 활발하지 않을 것이란 예측이다. 한국의 스타트업계는 올해 생존을 위해서 엑시트에 치중하거나, 대규모 펀딩을 받기 위해 물밑 작업이 한창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스타트업 투자 과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모바일 결제회사 스퀘어(Square)의 상장 과정에서 공모가가 시장 기대치인 11~13달러보다 낮은 9달러에 그쳤다. 금융동향센터가 펴낸 ‘미국 IT 스타트업 기업 가치의 과대평가 우려 및 향후 전망’(2015년 12월)에 따르면 ‘미국 IT 스타트업 기업들이 IPO 과정에서 거품 우려가 제기되고, 기업 가치가 하락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드롭박스·스냅챗 같은 글로벌 유력 스타트업의 지분 가치가 20% 이상 하향 조정되기도 했다.

지난해 스타트업계는 세계적으로 호황이었다. 하지만 1년 만에 스타트업계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한국에서도 스타트업계가 어려울 것이라는 목소리가 현장에서 계속 나오고 있다. 우려의 목소리가 현실화될까, 아니면 기우에 그칠까. 한국벤처캐피탈협회의 도움을 받아 벤처캐피털(VC)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35곳이 설문에 응했다. 이들은 투자금액 기준으로 전체 벤처캐피털의 7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국내외에서 과열 우려 목소리

스타트업계의 우울한 분위기와 달리 벤처캐피털들은 2016년 투자 분위기에 대해 ‘희망적’이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2016년 벤처업계에 대한 투자 분위기를 어떻게 예상하나’라는 질문에 ‘보통이다’라고 13곳(37.0%)이 답했다. 8곳은 ‘좋을 것(22.9%)’이라고 답변했다. 60% 정도의 벤처캐피털이 올해도 희망적인 전망을 내놓은 것이다. 쿨리지코너인 베스트먼트 관계자는 ‘보통이다’를 선택했다.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분위기가 주춤해지는 경향이 있지만, 지속적으로 투자금이 풀리고 있어서 (우울한 분위기를) 충분히 상쇄시킬 것으로 예상한다”는 이유였다. 소프트뱅크벤처스 관계자도 “정부 주도의 자금이 많기 때문에 급격하게 돈줄이 마르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달리 ‘좋지 않을 것(10곳, 28.6%)’ ‘매우 좋지 않을 것(3곳, 8.6%)’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은 곳은 37%였다. 미래에셋벤처투자 관계자는 “국내 경기가 전반적으로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며 “2015년에 투자가 집중된 바이오벤처 분야에 대해 보수적인 접근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중국 등 해외 벤처캐피털의 투자 위축이 한국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답변한 곳도 있다.

스타트업계 내부의 우려와 벤처캐피털의 전망이 이렇게 엇갈리는 이유가 뭘까. 한국벤처캐피탈협회 이의준 상근부회장은 “스타트업계의 불안감은 심리적인 요인이 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는 세계적으로 스타트업계에 대한 투자 열풍이 불었다. 올해는 조금 줄어들겠지만, 급격하게 식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정부 창업 지원 정책 만족” 60%

2015년 스타트업계는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서 펴낸 ‘Venture Capital Market Brief’(2016년 2월)에 따르면 2015년 1045개 스타트업에 2조858억원의 돈이 몰렸다. 2012년 688개사에 1조2333억원, 2013년 755개사에 1조3845억원, 2014년 901개사에 1조6393억원이었다. 지난해 스타트업 투자액 규모가 예년에 비해 많이 상승한 것. 2015년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급격하게 늘어난 이유에 대해 한국투자파트너스 관계자는 “기존 패러다임을 뛰어넘는 새로운 산업(핀테크, 바이오 신약 등)의 출범과 창업 활성화, 창업에 대한 우호적인 정책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정부의 지원 덕분’이라는 목소리도 많이 나왔다.

벤처캐피털들은 정부의 창업 지원 정책을 높게 평가했다. ‘정부의 벤처 육성 정책 만족도’를 묻는 질문에 ‘만족한다’는 답변이 19곳(54.3%)에 이르렀다. 2곳(5.7%)의 벤처캐피털은 ‘매우 만족한다’는 답변을 했다. ‘정부 벤처 육성 정책 중 높이 평가하는 것’을 묻는 질문(복수 응답 가능)에는 금융 지원(22곳, 62.9%)과 회수시장 지원(11곳, 31.4%)이라고 답했다. 이에 반해 정부 지원 정책 중 가장 불만스러운 내용으로도 ‘회수시장 지원’(16곳, 45.7%)이라고 답한 곳이 절반 가까이 됐다. 벤처캐피털이 가장 관심이 큰 대목이 ‘회수시장’임을 알 수 있다. 이의준 상근부회장은 “투자를 하면 다양한 방법의 출구가 있어야 하는데, 한국의 회수 시장은 규모가 너무 작고 어렵다”며 “이 때문에 투자 회수 시장 지원 정책에 관심이 큰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주도하는 창업 지원 육성정책에 대해서도 벤처캐피털들은 만족감을 나타냈다. ‘정부 주도 벤처육성이 벤처 생태계의 활기를 죽인다는 비판에 대해 동의하나’라는 질문에 ‘동의하는 편이다’라고 대답한 곳은 6곳(17.1%)에 불과했다. ‘동의하지 않는다’ ‘매우 동의하지 않는다’라는 답변을 한 벤처캐피털이 29곳(82.9%)으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올해 스타트업 투자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온라인 설문에 응답한 벤처캐피털들이 올해 스타트업에 투자할 금액 규모로 200억~500억원을 선택한 곳이 13곳(37.1%), 100억~200억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말한 곳이 8곳(22.9%)이다. 500억원 이상을 투자할 것이라고 밝힌 곳도 3곳(8.6%)에 이른다. 올해 투자 규모가 지난해와 비슷하다고 응답한 벤처캐피털은 16곳(45.7%), 지난해보다 늘어날 것이라고 대답한 곳도 12곳(34.3%)이나 된다. 이에 반해 지난해보다 줄어든다고 답한 곳은 5곳(14.3%)에 그쳐, 올해 스타트업 투자 시장 전망은 좋아질 것으로 나타났다.

벤처캐피털이 가장 주목하는 투자 분야는 어디일까. 벤처캐피털들에게 ‘2016년 성장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는 분야’(복수 응답 가능)를 물어봤다. 벤처캐피털 19곳(54.3%)은 핀테크 분야를 꼽았다. 바이오(18곳, 51.4%), 영화·음원 등 콘텐트 분야(16곳, 45.7%), O2O(13곳, 37.1%)가 그 뒤를 이었다. 올해 핀테크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가장 활발하게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스타트업계 활성화를 위해 개선돼야 할 점이 무엇인가’라는 의견을 묻는 질문에 벤처캐피털들은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벤처투자 경력 요건을 대폭 완화해서 심사인력 확보가 용이해야 한다” “글로벌화를 지향할 수 있는 법체계 개정” “기업의 단계와 성장에 따라서 다른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회수 시장 활성화가 필요하고, 조세 감면 혜택을 확대해야 한다”와 같은 의견이 나왔다.

-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

[박스기사] 어떻게 조사했나 - 국내 대표 VC 35개사 온라인 설문


이번 설문은 한국벤처캐피탈협회 도움을 받아 협회 회원사를 대상으로 구글 독스의 온라인 설문 툴을 이용해 조사했다. 각 벤처캐피털을 대표하는 임원이나, 심사역 등이 이번 설문에 응답했다. 벤처캐피탈협회 이의준 상근부회장은 “협회 회원사 중 상위 50여 곳이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곳”이라며 “이번 설문에 응답한 벤처캐피털이 한국을 대표하는 곳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설문에 응답한 이들의 연령대는 40대가 15명(42.9%)으로 가장 많았고, 그 뒤를 이어 30대(37.1%)가 차지했다. 40대가 벤처캐피털 업계를 이끌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설문 조사는 3월 14일부터 4월 1일까지 진행했다.

설문에 답한 회사: DSC인베스트먼트, IMM인베스트먼트, SL인베스트먼트, TGCK, 네오플럭스, 대덕인베스트먼트, 대성창업투자, 동문파트너즈, 마그나인베스트먼트, 마젤란기술투자, 미래에셋벤처투자, 미시간벤처캐피탈, 산수벤처스, 서울기술투자, 서울투자파트너스, 센트럴 투자파트너스, 소프트뱅크벤처스, 아이디벤처스, 에스브이인베스트먼트, 에스비아이인베스트먼트, 에스제이투자파트너스, 에이치큐인베스트먼트, 에이피엘파트너스, 유니온투자파트너스, 유니창업투자, 이수창업투자, 이후인베스트먼트, 지앤텍벤처투자, 케이큐브벤처스, 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 키움인베스트먼트, 티에스인베스트먼트, 포스코기술투자, 한국투자파트너스, 한화인베스트먼트(가나다 순)

[박스기사] 이의준 한국벤처캐피탈협회 상근부회장 - 단기 투자성과 조급증 버려야


한국을 대표하는 벤처캐피털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에 대해 한국벤처캐피탈협회 이의준 상근부회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 부회장은 “투자에 대한 단기적인 성과를 바라는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설문결과를 보고 느낀 점은.

“투자자들이 의욕적이고,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벤처캐피털은 거시 경제와 미시경제를 모두 살펴보게 마련이다. 경제 상황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회 전반에 나타나는 불안심리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벤처캐피털이 전한 것이다. 다른 분야에 비해 스타트업계는 상황이 나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스타트업계는 올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벤처캐피털들은 희망을 이야기했다.

“스타트업계가 느끼는 불안감은 당연하다. 하지만 스타트업계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계속 좋아지고 있다. 정부의 지원제도나 세제 혜택, 투자 시스템 같은 것이 계속 나아지고 있다. 외국계 투자자가 한국에 많이 들어오는 이유다. 스타트업계가 가지고 있는 불안감은 환경적인 요인보다 심리적인 요인이 크다. 지난해 한국 스타트업계는 호황을 누렸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그랬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조금 덜하겠지만, 급격하게 투자 분위기가 얼어붙지는 않을 것이다.”

스타트업의 밸류에이션(가치평가)이 너무 높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름을 밝힐 수 없지만, 고평가 된 스타트업이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한국 스타트업계가 미국처럼 엄청난 투자를 받아서 거품이 생길 정도는 아니다. 한국은 과거 벤처 버블을 경험했다. 이런 경험 탓에 정부와 투자자도 투자할 때 세밀하게 살피고 있다. 한국 스타트업계의 거품론은 막연한 불안감이다.”

올해 정부가 모태펀드 예산을 책정하지 않았다. 정부가 한 발 빼는 것 아닌가.

“중소기업청에서 ‘지금까지 정부가 투자해서 회수한 재원과 남은 재원으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고 해명한 바 있다. 이 때문에 그런 목소리가 나오는 것 같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과 스타트업계의 성장 곡선이 급격하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과거처럼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고액이 아닌 소액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만큼 투자 분위기가 뜨겁지는 않겠지만, 보통 이상은 될 것이다.”

박근혜정부의 지원 정책에 대한 만족감이 상당히 높다.

“나도 놀랐다(웃음). 스타트업 지원에 대한 정부의 어젠다가 다른 분야와 달리 차별화됐고 성공했다고 본다. 벤처캐피털들은 정부의 규제 철폐 노력도 인정하고 있다. 심지어 중소기업청은 없애야 할 규제가 있으면 알려달라고 우리에게 요청할 정도로 적극적이다. 정부가 고용문제를 해결하고, 신산업 분야의 돌파구를 만들기 위해 스타트업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스타트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한국 산업에서 벤처캐피털의 역할은

우선 투자의 본질이 뭔지 봐야 한다. 10개 스타트업에 투자해 한 곳이 성공하면 대단한 결실이다. 다수의 실패가 있어도 성공적인 모범 사례를 만들면 된다. 창업과 투자의 본질은 같다. 한국 사회는 짧은 시간에 성과를 내는 것이 투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에서 알리바바가 왜 탄생했나. 투자자들이 위험을 감수한 덕분이다. 창업 후 5년 동안 생존할 수 있는 비율이 40%에 불과하다. 스타트업이 최소한 ‘죽음의 계곡’을 건널 수 있을 때까지는 투자를 해야 한다. 금융권은 투자가 아닌 대출에 그친다. 투자자만큼 스타트업을 꼼꼼히 살펴보고 생사고락을 같이 하는 이들은 없다. 투자 성과에 대한 조급함을 빨리 버려야 한다.”

1331호 (2016.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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