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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불 붙은 법인세 인상 논란, 해외는…] 아일랜드 고성장(7.8%)은 낮은 법인세율(12.5%) 덕? 

선진국은 법인세 인하에 무게 … “기업 사내유보금만 늘었다” 반론도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여소야대의 20대 국회 출범을 앞두고 법인세 인상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수 년째 반복돼온 ‘법인세 인상 논란’이 또 불거졌다. 여소 야대의 20대 국회 출범을 앞두고 야당에서 법인세 인상론을 다시 제기해서다. 야당 측은 조선·해운업 등 일촉즉발의 산업계 구조조정에 드는 자금 5조원을 법인세 인상으로 마련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현행 22%의 법인세율을 기존 25%선으로 되돌릴 경우 4조원이 넘는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정부와 재계는 반발하고 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세금을 여기(구조조정)에 쓰려고 갑자기 올리는 게 좋은 정책인지 모르겠다”며 선을 그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경제 전문가 50인 대상의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4%가 법인세 인상에 반대했다는 자료를 냈다.

세금 탓에 M&A 포기한 화이자


법인세 인상 유보를 주장하는 전문가가 많은 이유는 해외 선진국의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갑론을박 속에서도 법인세율을 지금보다 낮추자는 목소리가 높다. 법인세율이 35%로 아랍에미리트(UAE) 등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높은 미국이 대표적이다. 미국 재계는 “지나치게 높은 지금의 법인세율이 나라 경제 사정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글로벌 제약사인 화이자의 이언 리드 최고경영자(CEO)는 4월 6일(이하 현지 시간) “미국의 불합리한 조세제도에 기업들이 다른 나라 기업과의 경쟁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다른 기업인들도 동조하고 나섰다.

화이자 CEO의 말은 다음과 같다. “외국 기업들은 연구·개발(R&D) 등에 투자하는 비용이 미국 기업보다 많게는 25~30% 적게 든다. 해외에서 번 돈을 미국으로 가져올 때 미국 기업들처럼 세금을 안 내도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많은 세금을 내야 하는) 미국 기업의 투자는 위축된다. 높은 법인세는 기업의 성장 기회를 가로막으며,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앞서 화이자는 보톡스(주름 개선제) 제조업체인 엘러간을 1600억 달러(약 184조원)의 거금을 들여 인수·합병(M&A)하는 협상을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성사 단계까지 갔던 M&A를 돌연 포기했다. 미국 정부가 일명 ‘세금 바꿔치기’에 대한 새 규제안을 내놓아서다. 세금 바꿔치기란 기업들이 법인세 부담을 줄이려고 본사를 해외로 이전하는, 일종의 합법적인 조세 회피를 말한다. 그간 미국에선 높은 법인세 탓에 세금 바꿔치기를 시도하는 기업이 많았다. 미국 재무부는 화이자가 엘러간을 인수한 다음 본사를 아일랜드에 두기로 하자, 이를 세금 바꿔치기 시도로 보고 4월 4일 새 규제안을 내놨다. 이에 따르면 조세 회피를 위한 M&A를 연속해서 진행한 기업이 3년 간 취득한 미국 자산은 인정되지 않는다. 인수한 기업에 대한 지분율이 80%가 넘으면 본사가 해외에 있더라도 미국 기업에 적용되는 법인세를 내야 한다. 이에 화이자는 4600억원가량의 협상파기 위약금을 물고 인수를 포기했다.

화이자가 눈독을 들인 아일랜드는 법인세율이 12.5%로 매우 낮다. 조세피난처를 제외하면 세계 최저 수준이다. 이 때문에 미국과 유럽 기업들은 아일랜드에 많이 진출한다. 기업들로선 조세회피를 통한 비용 절감이 목적이지만, 아일랜드는 내로라하는 기업들의 투자 유치라는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지난해 아일랜드의 경제성장률은 7.8%로 인도(7.5%)와 중국(6.9%)을 앞질렀다. 전년 대비 제조업이 14.2%, 건설업이 8.8% 각각 성장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다국적 기업의 기여분을 제외한 지난해 아일랜드의 경제성장률은 5.7%에 불과했다’며 ‘낮은 법인세가 아일랜드 경제 성장의 중요한 배경 중 하나’라고 보도했다.

거꾸로 미국은 높은 법인세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국제 자선단체 옥스팜은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은 매년 총 법인세수의 25%가 조세회피로 증발하고 있다’며 ‘이런 관행을 정부가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옥스팜은 애플·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의 미국 50대 기업들이 연간 1조4000억 달러 규모 조세회피를 저지르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보고서는 ‘수억 달러 규모의 조세회피가 경제 성장을 방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규제로 기업들의 조세회피를 막는 건 미봉책에 불과하며, 근본적으로는 법인세 인하가 답이라는 시각이다.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올 1분기 0.5%로 2014년 1분기 이후 2년 만에 최저치였다.

주요 선진국들은 법인세를 올리거나 유지하기보다는 내리면서 경제 활성화를 유도하는 데 나서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법인세율은 지난 20년 간 15%포인트 가까이 낮아졌다. 2000년만 해도 40%였던 독일의 법인세율은 현재 29.7%다. 같은 기간 영국은 30%에서 20%로, 캐나다는 28%에서 15%로 낮췄다. 2007년 이후 OECD 회원국인 34개국 중 20개국이 법인세를 인하했다.

일본·영국·호주 등 법인세율 더 낮추기로

영국 정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20년까지 법인세율을 17%로 더 낮춘다는 방침이다. 호주 정부도 30%인 법인세율을 10년 안에 25%로 낮추기로 했다. 일본 정부는 32.1%인 법인세율을 올해 29%대로 인하하기로 했다. 중국 정부는 올 초 첨단기업에 부과하는 법인세율을 15%로 낮추기로 했다. 모두 경제 활성화가 이유다. 이와 달리 세수 증대를 위해 2007년 이후 법인세율을 높인 멕시코·칠레·아이슬란드·슬로바키아 등의 나라들은 아직까지 경제 사정이 좋지 않다. 곽태원 서강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다른 나라보다 기업 유치가 덜 절실하던 독일과 일본 같은 나라도 큰 폭의 법인세율 인하를 단행했다”며 “전 세계가 법인세율 인하 경쟁을 펼치는 때에 한국만 역주행해선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반론도 만만찮다. 경제학자이기도 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한국은 법인세율이 충분히 낮음에도 투자를 이끌지 못하고 기업들의 사내유보금만 늘었다”며 “낙수 효과가 없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1335호 (2016.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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