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1) 아침, 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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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는 직선이 없습니다. 해도, 달도, 산도, 강도 모두 곡선입니다. 직선은 대부분 문명의 흔적입니다. 풍경사진을 찍다 보면 예기치 않게 나타나는 직선에 당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파트·포장도로·전봇대 같은 것들입니다. 대부분의 풍경사진가들은 이를 싫어합니다. 곡선과 직선, 원시와 문명이 한 프레임 안에서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떤 이는 산에 있는 “철탑이나 전봇대를 다 뽑아버리고 싶다”며 투덜대기도 합니다. 이들의 머리 속에는 조선시대의 아득한 산수경을 담은 그림 한 폭이 박혀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진은 시대상 반영사진가들은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고 밤을 새워 달립니다. 몇 날, 몇 일 산에서 밤을 새기도 합니다. 그토록 기다렸던 풍경이 나타났는데 불쑥 철탑과 송전선이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다면 김새는 일이겠지요. 이해가 갑니다. 풍경사진을 찍는 이유 중의 하나는 태고적 신비가 가득 담긴 원시적인 자연풍경을 보며 일상에 찌든 몸과 마음을 힐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 더 깊은 산속을 찾아 갑니다.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진가의 미의식과 자연을 대하는 철학입니다. 사진은 시대상을 반영합니다. 21세기에 살면서 몇 백년, 몇 천년 전의 풍경을 고집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리고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찍는 것은 조금만 훈련을 받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있습니다. 프로 사진가의 미의식은 달라야 합니다. 창의적이어야 합니다. 일상적으로 흔히 보는 장면에서 새로운 것,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고 이를 담아내는 ‘미학적 발견’이 있어야 합니다. 평범한 풍경이나 사물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미학적 창조’가 있어야 합니다. 풍경을 해석하는 남과 다른 차별성이 가장 중요합니다.[사진 1]은 해뜰 무렵 울주에서 길을 가다가 찍은 것입니다. 산 허리에 높게 솟은 송전철탑이 눈에 쏙 들어옵니다. 산 너머에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철탑을 비추고 있습니다. 그 아래는 아직 어둡습니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산에서 철탑 하나만 빛을 내며 반짝입니다. 생각나는 말이 있습니다. ‘일찍 일어난 새가 먹이를 얻는다’와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경구입니다. 프레이밍을 할 때 일부러 앞에 전봇대를 넣었습니다. 높이감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진의 주인공인 철탑과의 어울림도 생각했습니다. 높이 솟아 있으니 다른 곳보다 빛을 먼저 받습니다. ‘높이’가 주는 상징성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시로 치면 제유법이라고 할까요.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풍경에서 이른바 ‘경치밖의 뜻(景外意)’이 느껴집니다.중국 송나라 때 산수화가인 곽희가 쓴 회화이론서 [임천고치] 산수훈(山水訓) 편에는 자연 풍경을 대하는 화가의 마음가짐을 이야기하는 글이 있습니다. ‘산수에는 한번 지나가볼 만한 것, 멀리 바라볼 만한 것, 자유로이 노닐어 볼 만한 것, 그곳에서 살아볼 만한 것 등 네 가지가 있다고 한다…(중략)…한 번 지나가볼 만한 것과 멀리 바라볼 만한 것은 그곳에서 살아볼 만한 것과 자유로이 노닐어 볼 만한 것을 얻게 됨만 못하다…(중략)…군자가 임천을 갈망하는 까닭이 바로 이러한 곳을 아름다운 곳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화가는 마땅히 이러한 뜻으로 제작해야 할 것이며, 감상자 또한 마땅히 이러한 뜻으로 그것을 궁구해야 할 것이다(중국화론선집, 김기주 역주, 2012, 미술문화).’역설적으로 말하면 ‘정말 아름다운 경치는 사람이 살 수 있고, 노닐어보고 싶은 곳’이라는 뜻입니다. 이를 오늘에 되새겨 볼까요. 곽희의 자연관을 빌린다면 히말라야의 설산이 아무리 장엄한들 그리고 아프리카의 밀림이 아무리 신비롭다 하더라도 ‘한 번 지나가볼 만한 곳이거나 멀리 바라볼 만한 것’에 불과합니다. 사람이 살 수 있고, 노닐어 볼 만한 곳이 아니기에 아름다운 경치는 아니라는 뜻입니다.여기에 동양미학의 묘미가 있습니다. 산수화가 일관되게 추구하는 정신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입니다. 산수화에는 풍경이 주는 감탄을 넘어 감동을 주는 ‘경치 밖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배우는 철리적 이치 같은 것입니다. 곽희는 이를 이렇게 얘기합니다. “물은 산을 얼굴로 삼고, 정자를 눈썹과 눈으로 삼고, 고기 잡고 낚시하는 광경을 그 정신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물은 산을 얻어야 아름답게 되고, 정자를 얻어야 명쾌하게 되며, 고기 잡고 낚시하는 광경을 얻어야 정신이 넓게 펴져 환하게 된다.”
감동을 주는 ‘경치 밖의 뜻’
▎(사진 2) 분당, 2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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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요. 산수화에는 그곳에서 터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밭을 가는 농부, 고기를 잡는 어부, 나귀에 짐을 싣고 길을 가는 상인, 계곡물에 발을 씻는 선비, 소나무 그늘에서 낮잠을 즐기는 은사의 모습들이 묘사됩니다. 사람을 아주 작게 그리는 것은 대자연의 숭고미를 강조하기 위한 기술입니다. 또 산허리춤에는 정자가 있고, 하천에는 구름다리나 섶다리가 보입니다. 우마차를 비롯해 기와집과 초가집 등 주택도 나옵니다. 이 역시 문명의 흔적입니다. 요즘과 비교한다면 전망대, 자동차, 아파트 같은 것들입니다. 풍경사진을 찍는 데 전봇대나 아파트가 눈에 거슬릴 이유가 없습니다. 예술은 시대상을 반영합니다. 사진도 예외가 아닙니다. 풍경사진을 잘 찍으려면 이를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 풀어내는 미학적인 훈련이 필요합니다.- 주기중 기자 clickj@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