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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3대 명주 수정방 생산현장을 가다] 역사가 빚고 정제한 모순된 맛의 향연 

‘눈·코·입·위(胃)·심(心)’으로 즐겨 … 대륙 넘어 세계의 술로 

청두(중국)=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수수 등 5개 곡물과 술지게미를 섞어 흙구덩이 안에서 90일 간 발효시키면 모래모양의 술이 만들어진다.
술은 문화의 총화이자 역사의 축적물이다. 한 지역에서 수백~수천년 간 내려온 술은 한 민족의 삶과 생활습관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추운 날씨 탓에 곡식을 오래 저장하기 어려웠던 러시아에선 몸을 따뜻하게 달궈주는 증류주 보드카가 발달했다. 더운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유역에선 기원전 4000년께부터 빵을 이용해 맥주를 만들었다. 6000년 역사의 중국은 넓은 영토와 다양한 기후답게 황주·과일주·약주 등 여러 종류의 술이 발달했다. 일찍이 송(宋)나라 시절부터 포도주와 맥주를 즐겼다는 설도 있다. 중국에선 5000여 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주종 중에서도 바이주(白酒, 곡물로 밑술을 빚거나 발효해 만든 중국 전통 증류주)를 최고로 꼽는다. 여러 곡물을 섞어 수십 가지 맛을 내는 것이 ‘화(華)’의 정수를 담았단 평가부터, 문화 용광로인 중국의 모습을 빼닮았다는 설명도 있다. 한국에서 ‘빼갈’이나 ‘고량(高粱)주’라고 부르기도 하는 술이다. 이 중에서도 ‘홍군의 술’로 불리는 마오타이(茅臺)와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이 사랑한 우량예(五粮液), 그리고 원나라 시절의 주조법을 계승한 수정방(水井坊)을 3대 명주로 친다.

5000여 종의 주종에서 바이주가 으뜸


세 술은 각각의 특색이 있어 우열을 가리기는 어렵다. 단 맛과 감칠 맛에선 마오타이가, 혀 끝의 담백함에선 우량예가, 진한 향과 깊은 맛에서는 수정방이 앞선다. 이 가운데 수정방은 산뜻한 맛이 최근 트렌드와 잘 맞아 떨어져 바이주 애호가 사이에서 호감도가 급상승 중이다. 뱃속을 울릴 정도로 맛이 진하고 높은 알코올 도수가 몸을 따뜻하게 해줘 매운 중국 요리와 궁합이 잘 맞는다. 요즘 전국적인 중식 열풍도 수정방의 인기를 거든다. 방민호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수정방은) 목걸림과 잔기술이 없고, 맛이 깨끗하며 말끔하다”며 “중국의 역사가 빚고 역사가 여과한 술”이라고 평가한다. 이에 중국 쓰촨성 청두(成都)의 1만m² 규모의 수정방 박물관을 찾아 제조 공정을 직접 둘러봤다. 수정방이 한국 언론에 생산 공정을 공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 후한 시대 유비가 촉한(蜀漢)의 수도로 세운 청두는 중국 제일의 바이주 생산지다. 습도가 높고 365일 중 300일의 흐리고 눅눅한 날씨가 효모의 번식을 돕는다. 물이 깨끗하고 영양분이 많아 맑고 질 좋은 술을 얻을 수 있다. 이 지역 물은 당나라 시인인 설도(薛濤)가 황실에 진상하던 색종이를 만들 때 쓰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쓰촨에선 바이주를 만들기 좋은 환경 덕에 수정방·우량예 등 수많은 명주가 탄생했다. 바이주는 향과 숙성도·배합 등에 따라 크게 농(濃)향·장(醬)향·청(淸)향·미(米)향 등으로 나뉜다. 농향은 곡물의 단 향이 강한 술이고, 장향은 누룩의 향이 짙은 술이다. 청향은 담백하고 맑은, 미향은 쌀의 향이 진한 술이다. 중국에서 유통되는 80%의 바이주가 농향과 장향이다. 수정방은 대표적인 농향 술이고, 마오타이는 장향의 대표 선수다. 실제 지난 5월 20일 방문한 수정방 박물관에선 입구에서부터 진한 된장 냄새가 풍겼다. 술을 만들기 위해 찐 곡식과 누룩·술지게미의 냄새가 섞인 농향이다. 처음엔 고린내로 느껴지지만 이를 숙성시켜 술을 내면 파인애플이나 사과향처럼 맑은 향이 풍긴다. 양고기의 지방이 누린내를 내지만, 기름기를 빼고 숙성시키면 특유의 향으로 바뀌는 것과 같은 이치다.

수정방은 지난 600년 간 명맥이 끊겼다가 14세기 원나라 때 지어진 대규모 양조장 유적이 1998년 발견되면서 양조법이 복원됐다. 유적에서 배양균(효모)이 살아있는 채로 발견된 덕분이다. 중국 국무원은 2001년 이 양조장을 ‘전국중점문물 보호단위(문화재보호구역)’로 선정했고, 2013년에는 유적 위에 박물관을 세웠다. 수정방은 이곳의 수원을 다시 살려 지하수를 끌어올렸고 2000년부터 양산을 시작했다. 수정방은 수정방박물관에서 10%만 생산하며 청두 인근의 두 생산기지에서 나머지 90%를 만든다. 옛 방식을 그대로 살려 포장을 제외한 모든 과정이 1600여 명의 장인의 손을 거친다.

‘흐리고 눅눅’ 바이주 생산의 천혜의 환경


▎1998년 발견된 600년 전 수정방 증류소에선 지금도 술을 생산하고 있다.
수정방은 5가지 곡물의 배합과 효모, 숙성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가장 중요한 재료는 전체에서 36%가 들어가는 수수다. 한국에서 말하는 고량은 중국에서 생산되는 수수의 한 종류다. 수정방은 쓰촨 지역에서 생산한 엄선된 수수와 쌀(22%)과 찹쌀(18%)·밀(16%)·옥수수(8%)·엿기름을 적당히 섞어 술지게미와 함께 찐다. 이를 1.5m 깊이의 흙구덩이에 넣고 90일 간 발효시키면 모래가루 같은 술이 나온다. 흙구덩이에서 술을 꺼내 찜통에 넣고 다시 찌고, 이를 증류해 액체 술을 받아낸다. 술은 많이 나오지 않는다. 대략 6m² 크기의 증류기에서 술을 뽑아도 두꺼운 빨대 크기의 관을 통해 졸졸 흐르는 정도다. 한 통을 다 쪄도 한 항아리를 채우지 못한다. 증류하고 남은 술지게미는 말렸다가 다시 곡물과 함께 쪄 흙구덩이에 파묻는다. 술지게미를 햇빛에 바싹 말리기 위해 이 공장의 천정은 개폐식이다. 술의 맛은 구덩이의 어느 깊이에서 파냈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구덩이의 아래 쪽에서 파낸 술이 도수가 높고 맛이 좋으며, 비싸게 팔린다. 기온이 35도를 넘으면 술지게미가 상할 수 있고 술이 시큼해질 수 있어 구덩이에 온도계를 꽂고 세심하게 관리한다. 처음 생산된 원액은 63~64도로 농도가 짙은데, 이 술을 커다란 항아리에 넣어 4~5년 간 숙성시킨 후 다른 도수의 원액과 섞어 맛과 향을 내면(블렌딩) 완성품이 나온다.

수정방은 흙구덩이에서 90일마다 술을 파내고 블렌딩을 하기 때문에 와인처럼 몇 년 산인지, 위스키처럼 몇 년 숙성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눈으로 투명도와 점도를 살피고, 잔을 기울여 향을 음미하며 마시는 법은 서양 술과 비슷하다. 여기에 추가로 입과 목, 뱃속의 느낌, 그리고 마음의 울림을 읽는 것이 수정방을 즐기는 방법이라고 한다. 수정방 박물관의 시음 코너에서 총 6가지 수정방을 맛볼 수 있었다. 이 중에는 원액도 포함돼 있었다. 손가락 한마디 만한 작은 잔을 45도 기울여 향을 맡으면 새콤달콤한 향이 진하게 난다. 술잔을 들이키면 입안에 폭죽 터지 듯 청량감이 번지고, 이내 입안이 뜨거워진다. 불덩이 같은 술은 위로 내려가서야 잠잠해진다. 바로 또 한잔 들이킬 수 있을 정도로 뒤끝이 없고, 입천정의 고소한 맛은 오랫동안 남는다. 향은 진하지만 혀끝도 가볍다. 뜨겁고 시원한 모순된 맛이 동시에 든다. [춘추전국이야기]를 쓴 공원국 작가는 “탁 터지는 맛과 향 때문에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선 바이주 중 수정방의 가장 인기가 높다”며 “입안의 폭발이 금세 가라앉아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정방을 비롯한 바이주는 오래 숙성할수록 맛과 향이 진하고 도수가 높다. 38도 이하는 향이 옅기 때문에 중국에선 30도 이상만을 바이주로 인정한다. 마오타이(茅臺) 등 장향은 최고 도수가 53도 내외, 수정방 등 농향은 최고 도수가 61도 내외다.

90일 발효, 4~5년 숙성, 블렌딩 거쳐


▎수정방의 대표 모델 중 하나인 웰베이. 병 하단의 오목한 6각면에 각각의 그림이 새겨진 독특한 디자인을 자랑한다.
수정방은 병의 생김새도 독특하다. 3개의 자물쇠를 빼 케이스를 열면 술은 투명색 병에 담겨있다. 병 하단은 6각형으로 오목하게 파여 있는데, 특이하게도 안에는 재털이가 들어있다. 쓰촨성에서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담배를 권하는 풍습이 있어 서로 술잔을 기울이며 흡연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6각면에는 당나라 시인 두보와 촉나라 시절 성도의 모습 등 제각각 다른 그림으로 새겨져 있다. 수정방은 이 디자인으로 2000년 세계적인 디자인 시상식인 뫼비우스어워드에서 상을 받았다.

수정방은 만드는 방법이 까다롭고 대부분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탓에 웬만한 위스키보다 가격이 비싸다. 국내 면세점에서 일반적으로 접할 수 있는 모델은 10만원 안팎이며, 가장 비싼 제품인 ‘Yuan(원)’은 한 병에 1260만원에 팔린다. 2014년 스페셜에디션으로 제작된 ‘원(元)·명(明)·청(淸)’ 시리즈 중 원은 수천 만원 대에 판매되기도 했다. 고가임에도 중국에서 높은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해 9억 위안(약 163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다. 현재는 중국 정부의 사치품 억제 정책 등으로 주춤하지만, 글로벌 시장으로 외연을 넓히며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13년 세계 최대 주류회사인 영국 디아지오가 수정방을 인수한 덕에 글로벌 시장 확대 전략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기대된다. 수정방은 서구 소비자와 바이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칵테일 개발 등 다양한 시도를 벌이고 있다. 바이주의 톡 쏘는 듯한 향에 서구 소비자들이 거부감을 가질 수 있어서다. 혼합주 개발 등 여러 노력을 벌인 덕에 지난해 미국 뉴욕에선 한 개인이 바이주 칵테일 바를 열기도 했고, 영국에선 시음행사가 매년 개최되기도 한다.

한국 시장에서도 입지를 강화한다. 한국은 수정방 해외 매출의 40%를 차지하는 큰 시장이지만, 한국 시장 전체를 보면 비중은 아직 미미하다. 한국에선 연태고량주가 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5만원 안팎의 저렴한 가격과 어느 중국 식당에서라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 호응을 얻고 있다. 수정방은 연태고량주가 장악하고 있는 한국에서의 입지를 키우기 위해 호텔·레스토랑 등 유통채널을 확대하고, 제품 라인업도 기존에 웰베이(38·52도)·클래식(61도)·포레스트그린(52도)·스칼라에디션(54도)에 신제품 레드포춘(52도)을 추가할 예정이다. 수정방은 국내 주류숍이나 백화점에선 20만원 안팎, 호텔·레스토랑에선 60만~70만원가량에 판매되는 고가의 제품이며, 프리미엄 전략은 당분간 유지할 계획이다.

디아지오차이나의 영업담당 임원 티안 청은 “수정방의 전통적 가치와 현대적 감각을 해외에 알리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특히 해외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한국에서의 활약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수정방은 또 모조품 방지를 위해 ‘무선주파수인식’(RFID) 태그를 부착하는 등 제품의 신뢰 제고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청두(중국)=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박스기사] 댄 해밀턴 디아지오 中 증류주 사업부문 대표 - “한국의 프리미엄 시장 공략”


글로벌 주류 회사인 디아지오가 수정방의 세계화에 첫발을 뗐다. 수정방의 가치를 널리 알려 멕시코의 데킬라나 러시아의 보드카, 일본의 사케 같은 세계적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시장 진출의 가장 중요한 교두보는 한국. 바이주 시장이 날로 성장하는 한국에서 수정방의 가치를 시험해보겠다는 계획이다. 댄 해밀튼(38) 디아지오 중국 증류주 사업부문 대표를 만나 해외 진출과 한국에서의 사업 계획을 들어봤다.

호주 출신인 해밀튼 대표는 수정방을 중국만의 술을 넘어 세계의 술로 키우겠단 포부를 밝혔다. 그는 글로벌 회계법인 KPMG에서 일하며 인도·일본·싱가포르 등 아시아 지역 기업 인수·합병(M&A) 전문가로 활약했으며,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일하기도 했다. 디아지오에는 2011년 합류해 2013년부터 중국 증류주 부문 대표를 맡고 있다.

수정방의 해외 사업 현황과 진출 계획은.

“전체 매출의 90%가 내수, 10%가 수출이다. 현재 32개국에 수출 중이며 한국이 40%로 가장 비중이 크다. 아직 시작 단계지만, 세계 바이주 시장은 330억 파운드(약 57조원)나 돼 기회가 많다고 본다. 디아지오가 가진 강점을 이용하면 새로운 고객을 유치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별로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을 세워 접근할 생각이다.”

미국·유럽 시장은 벽이 높아 보인다.

“현재 미국과 캐나다·이탈리아·독일을 비롯해 일본·싱가포르·홍콩에 수출하고 있다. 대중적인 시장에 진출할 때는 고객의 니즈를 정확히 분석해야 한다. 그래서 ‘올드패션드’라는 칵테일을 개발·전파해 서구 소비자의 거부감을 조금씩 줄여가고 있다. 뉴욕에 바이주 바가 생겼는데, 디아지오는바의 주인·바텐더와 협업해 대중들이 즐길 수 있는 맛을 고민 중이다. 또 영국에서 시행 중인 칵테일 주간을 이어가는 한편 상설 매장을 운영해 볼 것이다. 수정방의 역사와 가치도 잘 전달할 계획이다. 수정방은 중국 요리와 잘 맞는 술이라 앞으로 확장 가능성이 크다.”

해외 진출 때 참고하는 브랜드가 있나.

“다른 브랜드·경쟁자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국가별 전략을 세우고, 역사적 가치를 전달할 뿐이다. 현재는 수정방의 장인정신과 예술성을 강조하고 있다. 변검 공연을 동반한 마케팅 등 중국의 고급 아이템으로 자리잡기 위해 노력 중이다.”

해외 시장 공략을 위해 수정방의 알코올 도수를 낮출 계획은.

“아직 변화를 줄 단계는 아니다. 현재는 좋은 제품을 소개하고 소비자들의 선택을 기다릴 뿐이다. 다만 시장의 요구가 있다면 가능성은 열려 있다. 디아지오가 수정방을 인수하고 나서 쓰촨의 지역 특화 상품으로, 대나무 숯으로 필터링한 이노베이션 제품을 내놓은 적은 있다.”

중국 정부의 사치품 규제가 해외 진출로 이어졌다는 시각도 있다.

“수정방은 접대용으로 만든 술이 아니다.

디아지오가 가진 큰 규모의 시장을 활용하고자 해외에 진출하는 것이다.”

마오타이 등 경쟁 술에 비해 강점은.

“술 자체가 뛰어나다. 2014년 샌프라시스코 어워드에서도 큰 상을 받았다. 또 병과 포장의 수준·질이 높다. 포장에 전통과 역사, 브랜드 스토리를 모두 담았고, 디자인 상도 수상했다.”

한국 시장 공략 포인트는.

“수정방은 중저가 제품과는 다르다. 최고급·최상위 고객에게 접근하는 것이 우선이다. 현재로선 대중화보다는 고급 브랜드를 유지할 것이다. 한국엔 높은 가치를 지향하는 고객이 많다. 또 최근 중국 음식의 인기가 높아 더욱 확장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의 음주 문화가 저도주로 바뀌고 있지만, 도수에 연연하기보다는 품질에 집중하는 한편, 맛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마케팅에 집중할 것이다.”

한국의 고급 소비자 사이에서 수정방은 아직 유명 브랜드는 아니다.

“핵심 소비층을 공략하기 위해 호텔과 고급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브랜드를 알릴 것이다. 수정방의 맛을 어떻게 살릴지, 브랜드 가치는 어떻게 키울지 조금 더 고민해보겠다.”

1337호 (2016.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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