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고야의 ‘곤봉결투’를 보고…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의 ‘검은 그림’은 언제 봐도 섬뜩하고 불편하다. 아름다울 미(美)로 시작하는 미술과는 거리가 멀다. 고야의 그림은 인간의 탐욕과 광기를 끔찍한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다. 고야는 18세기 후반의 서양 미술사를 대표하는 화가다. 스페인 궁정화가 시절에 그렸던 카를로스 4세 가족, 옷을 벗은 마하는 널리 알려진 그의 작품이다. 검은 그림은 그의 말년에 세상과 등진 채 집안 벽면에 그렸던 14점의 연작을 일컫는 말이다. 이 그림들은 아들을 먹어 삼키는 사투르누스 그림이 그렇듯이 한결같이 기괴하고 음산하다.

이 중에 곤봉결투로 이름 붙은 작품은 그나마 섬뜩함이 덜하다. 그림을 보면 두 사내가 진흙탕 같은 곳에서 몽둥이를 들고 서로 공격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어두운 배경 저 멀리 하늘 한쪽이 허연 것은 동이 틀 무렵을 말하는 듯하다. 만약 그렇다면 두 사내는 밤새 죽도록 싸웠던 게다. 발은 벌써 무릎까지 진흙에 파묻혀 있다. 이제는 누가 이겨도 수렁을 벗어나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 것 같은 느낌이다.

미술에 문외한인 필자가 이 그림을 유심히 본 까닭은 한국이 처한 상황이 이와 같지 않을까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약 200년 전 고야를 자극했던 스페인의 역사와 시대적 배경은 지금의 한국과는 당연히 다르다. 그럼에도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는 상태에서 정치권이 여야 간, 파벌 간 대립과 갈등을 계속하는 모습은 고야의 곤봉결투 그림과 닮은꼴이다. 고야의 곤봉결투를 우리 식으로 바꿔 표현하면 이전투구(泥田鬪狗)이다. 한국 경제가 위기의 늪에 빠졌다는 진단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2013년 봄에도 한국 경제는 서서히 뜨거워져 가는 솥 안에 앉아 종국에는 저 죽을 줄 모르는 개구리로 비유되기도 했다. 달리 말하면 성장률이 3%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경제가 부진한 것은 경기 순환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되었으며, 구조개혁 없이 이대로 가면 파국에 이른다는 경고성 진단이었다.

시대에 뒤떨어지고 창의적 혁신을 가로막는 불량 규제와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고쳐야 경제 회생이 가능하다는 처방전도 있었다. 그래서 역대 정부가 규제개혁을 줄기차게 주창했지만 결과는 어떤가? 규제 총량은 2003년 7855개에서 2014년 1만 4987개로 계속 증가해왔다. 특히 2014년 7월 이후 국회의원이 발의한 규제 법안 1367개를 조사했더니 2643개 규제 조항이 들어 있다고 한다. 그렇게 제19대 국회는 경제를 살리자는 규제개혁에는 냉담하고 규제 양산에는 열심이었다.

고야의 그림으로 돌아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두 사내는 싸우기 전에 먼저 진흙 수렁에서 벗어나야 했다. 혼자서 힘들면 서로 합심, 협력해서 수렁부터 벗어나야 했다. 싸우느라 때를 놓칠수록 몸은 점점 더 진흙에 묻히며 공멸에 이를 게 뻔하다.

이제 한국 경제는 얼마나 수렁에 잠긴 것일까? 4년 전 19대 국회의 시작 무렵에 발목까지 빠진 상태였다면 지금은 무릎까지 빠져 있을까? 20대 국회는 경제 회생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여소야대에 내년에는 대선일정까지, 벌써부터 정치 과잉이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경제 문제에 관한한 20대 국회는 고야의 이전투구 상황을 피하는 이성과 지혜를 발휘해 주기를 기대해본다.

-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1339호 (2016.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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