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검찰의 롯데그룹 수사, 왜 지금인가] 권력 누수 걱정인 청와대와 검찰의 이해 맞아떨어진 사정정국? 

레임덕 조짐에 여소야대 국회, 검사장 출신 잇단 비리... 검찰 “비자금 조성-배임 혐의로 수사 중” 

조용탁·함승민 기자 ytcho@joongang.co.kr

▎6월 14일(현지시간) 미국 루이지애나주 레이크찰스에서 열린 롯데케미칼과 미국 액시올의 합작사업 기공식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검찰의 수사와 관련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재계 5위 롯데그룹이 창사 이래 최악의 위기에 직면했다. 검찰의 칼 끝이 롯데그룹 오너 일가를 정조준 하고 있어서다. 검찰은 이미 롯데 계열사가 총수 일가 소유의 부동산을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매입했다는 등의 일부 의혹과 관련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롯데는 오너 형제 간 경영권 분쟁, 가습기 살균제 사태, 면세점 입점 로비 의혹, 홈쇼핑 중징계 등 잇단 악재에 시달렸다. 여기에 최고경영진을 겨냥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굵직한 인수·합병(M&A)과 투자에 제동이 걸렸다.

검찰은 롯데그룹의 기업 인수·합병 과정에서 막대한 비자금이 조성됐다고 보고 있다. 신동빈 회장은 2004년 정책본부장으로 취임한 이래 M&A를 적극 추진했다. 신 회장이 11년 간 성사한 M&A는 모두 36건으로 금액으론 14조원에 달한다. 특히 이명박정부 당시인 2008~2010년 사이 성사한 M&A만 22건에 달한다. 두산주류BG, 기린, AK면세점, 바이더웨이 같은 대형 M&A가 숨가쁘게 이어졌다. 검찰은 인수 주체인 롯데쇼핑·호텔롯데·롯데칠성음료의 M&A 과정을 수사 중이다. 계열사에 대한 부당 지원이나 비자금 조성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서다. 롯데 관계자는 “기업의 장기 비전에 따라 M&A가 진행됐을 뿐, 특혜나 불법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롯데케미칼도 검찰이 주목하는 기업이다. 원료 수입 과정에서 거래 대금을 부풀리거나 과대 지급된 거래 대금 일부를 일본 계열사를 통해 빼내는 등의 방식으로 비자금 창구 역할을 한 혐의다. 이에 대해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사실과 매우 다르다”며 “케미칼 원료 구입 과정에서 롯데그룹이나 롯데케미칼 대표이사가 별도 자금 형성을 지시한 적이 없고, 직원들조차 그런 일을 실행한 바가 없었다”고 말했다.

야권 인사, MB정부 실세 수사 가능성

청와대는 롯데그룹 비자금 수사에 대해 공식 반응을 내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비리가 있으면 검찰이 수사하는 것”이라며 “사정 정국과는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계 5위 그룹에 대한 전방위적 검찰 수사는 대통령 보고 사안일 가능성이 크다. 청와대에서 ‘강력한 대응’을 주문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재계에서는 롯데그룹 수사란 카드가 박근혜정부의 레임덕, 여소야대 정국 등의 난맥상을 돌파할 좋은 카드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검찰 측의 주장은 다르다. 검찰은 당초 지난 4월 총선 직후 롯데 수사를 본격화할 계획이었지만 총선에서 여소 야대의 결과가 나오면서 자칫 검찰을 활용해 국정을 장악하려 한다는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 시기를 늦췄다고 강조했다. 검찰 관계자는 6월 10일 브리핑에서 “(수사) 고민을 하던 와중에 롯데면세점 입점 로비와 관련해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을 압수수색해 보니 조직적 증거인멸을 발견했고, 같은 식의 증거인멸이 롯데그룹도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는 첩보가 감지돼 더 이상 수사를 늦출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청와대의 속내는 무엇일까. 검찰이 비자금을 밝혀 내면 ‘누가 자금을 받아 사용했느냐’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수사는 정치권으로 향하게 된다. 박근혜정부가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해 사정 정국을 조성하고 있다는 얘기가 야권 쪽에서 흘러나오는 배경이다. 제2롯데월드를 허가한 이명박정부의 실세들과 장성들이 표적이다. 롯데그룹이 이명박정부 시절 급성장한 점이 의혹의 대상이다. 야권에선 친노 인사들이 수사 선상에 오를 수도 있다. 과거 롯데에서 6억원을 받았던 안희정 충남지사의 이름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자칫 박근혜정부의 실세에게도 불똥이 튈 가능성이 있다. 신동빈 회장의 최측근인 소진세 대외협력단장과 제2롯데월드 사업을 지휘한 노병용 롯데물산 사장은 최경환 전 경제부 총리와 대구고 동문이다. 대구 아너스 클럽에서 정기적으로 만나온 사이다. 지난 2013년 롯데 세무조사 당시엔 정권 실세들이 롯데를 비호해 추징금 납부에 그쳤다는 소문이 펴졌다. 친박계 내부에선 총선 참패 책임과 KDB산업은행 부실 감독의 핵심으로 ‘최경환 책임론’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결국 청와대에도 부담이 갈 수 있다.

일각에선 검사장 출신 홍만표(구속) 변호사가 연루된 법조비리 사건, 진경준 법무연수원 연구위원(검사장)의 ‘126억 주식 대박’ 사건 등으로 전·현직 검사장이 수사선상에 오르자 이를 덮을 목적으로 검찰이 칼을 빼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광철 변호사는 “롯데그룹 수사가 진행되면서 홍만표 전 검사장 얘기가 쏙 들어갔다”며 “이번 수사는 검찰의 이해와 (정국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청와대 의도가 맞아떨어진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신동빈 회장과의 경영권 분쟁에서 불리해진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반격을 위해 검찰에 수사 단서를 제공했는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일각에서는 신동주 회장이 지난해 경영권 분쟁에서 확보한 관련 정보를 검찰에 제보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검찰이 수사 대상으로 삼은 것으로 알려진 혐의 중 일부가 신동주 회장 측의 주장과 겹치기 때문이다. 신 전 부회장 측은 그동안 롯데가 중국과 홍콩 법인에서 1조원이 넘는 손해를 봤다고 주장해 왔는데, 이는 롯데그룹이 해외 투자 과정에서 비자금을 조성했는지를 확인하고 있는 검찰 조사와 궤를 같이 한다.

갑자기 귀국하고 압수수색 때 자신과 신격호 총괄회장이 없었던 점도 우연으로만 보기에는 석연치 않다. 신 전 부회장은 6월 8일 밤 일본에서 급히 귀국했다. 검찰이 대대적인 암수수색을 벌이기 이틀 전이다. 이튿날 신 총괄회장이 숙소이자 집무실인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4층을 떠나 병원에 입원했고, 신 전 부회장이 동행했다.

신 전 부회장 측은 공식적으로 검찰 수사와의 연관설을 부인하고 있다. 경영권 분쟁 당시 고소·고발 과정에서 검찰에 제출한 자료는 재무제표, 지분구조 등 공개된 자료에 불과하다며 현재 진행 중인 검찰 수사와는 상관이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그러나 롯데그룹에서는 신동주 전 부회장이 신동빈 회장에 대한 소송전을 진행하면서 확보한 롯데 계열사 회계장부 분석자료 등을 검찰에 제공했다고 보고 있다. 얼마 전부터 신 전 부회장 측이 검찰을 상대로 롯데그룹의 문제점에 대한 수사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돼 롯데그룹이 우려했다는 소문도 흘러 나온다.

롯데는 ‘읍소와 적극 해명’ 전략으로 대응

롯데는 ‘읍소와 적극 해명’ 전략으로 검찰 수사에 대응 중이다. 롯데 계열사 주요 CEO들은 압수수색 직후부터 기민하게 움직였다. 송용덕 호텔롯데 사장, 이원준 롯데쇼핑 사장 등 주요 CEO들이 압수수색 직후인 6월 11일 계열사별 대책회의를 열었다. 12일에는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황각규 사장, 송용덕 호텔 대표 등이 대책 회의를 열었다. 검찰 수사의 주요 쟁점은 롯데 계열사 간 일감몰아주기와 비자금이다. 오너 일가가 사내 거래를 통해 이익을 챙긴 점과 해외 사업에서의 비정상 거래도 수사 대상이다. 이에 대해 롯데는 대기업의 계열사 이용은 관행이고, 정도의 문제라는 입장이다. 오너 일가 일감몰아주기의 경우 문제점을 알기에 꾸준히 그 규모를 줄여왔다. 해외 사업은 그룹 차원에서 진행한 일로 외부 자문을 받았다며 대응 중이다. 롯데그룹은 이번 사태를 방어할 로펌으로 김앤장을 선정했다.

1340호 (2016.06.2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