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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박사의 힐링 상담 | 사회공포증 극복] 두려움을 그대로 받아들이자 

공포에 맞서 보면 자신감 커져... 부단한 연습도 필수 

후박사 이후경 정신과의사, 경영학박사, LPJ마음건강 대표

"발표를 하려는데, 갑자기 머리가 하예지고 눈앞이 캄캄해졌어요. 다리가 후들거리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도저히 말이 안 나와 진행을 못하겠더라구요. 5분 동안 세상이 멈춘 것 같았죠. 정말 지옥 같았어요. 겨우 정신을 차리고 말을 더듬으면서 몸이 안 좋다는 핑계를 대고 그 자리를 내려왔어요.” 그는 30대 중반의 대기업 과장이다. 임원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려다 순간 공포가 몰려와 중도하차했다. 중요한 발표라 2주 전부터 준비했는데, 밀린 업무와 과로가 겹친 게 화근이었다. 시작 전 약간 불안했지만 과거 발표 때마다 잘 해서 별 일 없으려니 했는데, 큰 실수를 한 것이다.

그날 이후, 그는 엉망이 되었다. ‘괜찮아’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하는데 잘 안 된다. 작은 회의나 브리핑 계획에도 불안해서,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 든다. 꼼꼼히 준비해서 겨우 마무리 하는데, 찜찜한 기분은 그대로다. ‘다시 그런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자꾸 생긴다. 어쩔 줄 몰라 하던 내 모습, 비웃는 것 같은 사람들의 시선, 뒤에서 욕하는 것 같은 느낌이 떠나지 않는다. 또 다시 발표할 일이 생기면 제대로 해낼 자신이 없다. 더구나 남들 앞에 서는 상황만 떠올려도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힌다. 회식처럼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조차 불편하게 다가온다. 남 앞에 서야 할 일이 적은 부서로 옮겨야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다리가 후들거리고…

사회공포증은 당황하거나 창피한 일을 당한 후 여러 사회적 상황을 피하는 현상이다. 낯선 사람 앞에서 지나치게 긴장하고, 여러 모임을 피하게 되고, 대화할 때 눈 마주치기를 꺼려한다. 발표공포증, 무대공포증, 대인공포증이 있다. 사회공포증이 만연하고 있다. 10명의 대학생 중 4명이 사회적 불안을 경험한다. 평생 유병률은 3~13%나 된다. 발표할 때 한 번쯤 안 떨어본 사람은 없다. 무대에 설 때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낮선 사람을 만날 땐 불편하다.

공포(두려움)란 무엇일까? 우리는 두려움 없이 태어난다. 최초의 공포는 커다란 소리와 높은 데서 떨어지는 것이다. 자라나면서 다양한 두려움이 생긴다. 두려움은 생존본능이다. 위험에 대한 방어기능이다. 공포의 대상은 자연·신(神)·세상·사회로 변화했다. 두려움은 부정감정이다. 두려움은 억압된 공격성에서 온다. 공격성이 안으로 향하면 공포가 되고, 밖으로 향하면 분노가 된다. 두려움은 양가적이다. 사랑이 없는 곳에 두려움이 들어서고, 두려움은 사랑을 통해 극복된다.

공포증은 두려운 상황을 겪은 후 생긴다. 1단계는 예기불안이다. 비슷한 상황에 대해 공포 기억이 떠올라 ‘또 그러면 어쩌지?’ 하는 불안이 일어난다. 다시 시도하다 공포를 겪으면 ‘이럴 줄 알았어!’ 하며 심해진다. 불안은 공포·불안발작·공황으로 이어진다. 2단계는 회피행동이다. 공포증이 일어날 만한 상황을 피한다. 뇌에서 공포 회로로 굳어진다. 3단계는 삶의 제약이 생긴다. 생활반경이 좁아지고, 하고 싶은 것을 못하고, 할 수 있는 것을 안 한다. 자신감·능력·의욕이 떨어져 우울증으로 간다.

우리는 발표 사회를 살고 있다. “현대 경영은 프레젠테이션에 의해 좌우된다.” 발표는 현대인의 필수 능력이다. 어떻든지 잘 해내야 성공한다. 우리는 자기홍보 사회를 살고 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 자기표현이다.” 안 알리면 아무도 안 알아준다. 어떻든지 잘 보여야 성공한다. 우리는 성과주의 사회를 살고 있다. 완벽함은 중요한 능력이다. 어떻든지 실수 하지 말아야 성공한다. 우리는 인정주의 사회를 살고 있다. 학연·지연·인맥이 중요하다. 어떻든지 인정받아야 성공한다.

발표공포증의 원인은 다양하다.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에서 온다. 심신(心身)이 지친 상태에서, 준비 없이 발표하다 생긴다. 내향적이고 완벽한 성격에서 온다. 내향적 사람은 수줍음을 잘 타고, 남에게 보이는 내 모습에 신경을 많이 쓴다. 완벽한 사람은 자기 기준이 높고,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문화적인 요인에서 온다. 한국인은 체면, 눈치 보기, 시선 등에 민감하다. 어린 시절 부정적 감정경험에서 온다. 파괴적 비판 부모로부터 자라, 평가에 예민한 경우다. 조건부 수용 부모로부터 자라, 인정 욕구가 큰 경우이다.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부터 털어내야

자, 그에게 돌아가자. 그에게 탁월한 처방은 무엇인가? 첫째, 두려움을 받아들이자. 우선, 공포에 떨어보자. 어릴 적 선생님 앞에서 부들부들 떨 때를 떠올리자. 밤에 공동묘지를 지나며 벌벌 떨 때를 떠올리자. 공포와 두려움은 마음을 정화시켜 준다. 큰 절에 가면 입구에 무서운 마왕 상이 있다. 신도에게 공포를 일으켜 잡념을 떨치게 하려는 것이다. 방문객에게 두려움을 일으켜 마음을 다잡도록 하려는 것이다. 공포와 두려움은 순수와 경건함을 안겨준다.

다음, 두려움은 더 큰 두려움으로 대체하자. 궁극적으로 내가 심장이 뛰고, 위가 달리고, 폐가 숨쉬고, 피부로 덥혀진 몸이라는 사실에 눈을 뜨자. “내가 두려운 것은 몸이 있기 때문이다(도덕경 13장).” 대상이 있는 무서움에서 대상이 없는 떨림으로 나아가자. 머리 위의 하늘(天)과 발밑의 대지(地)를 실감하게 된다. 깊은 떨림 가운데 천지 운행자의 임재하심에 나를 열어 보자. “천지(天地)가 영원한 것은 스스로를 위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도덕경 7장).”

둘째, 강하게 맞서자. 지친 심신(心身)에서 벗어나자. 신체적 과로와 정신적 피로는 자신감을 떨어뜨린다. 정면으로 돌파하자. 피할수록 공포증은 심해진다. 소량의 베타차단제와 안정제가 드라마틱한 효과를 준다. 한 번 성공하면 그다음은 쉽다. 철저히 준비하고 연달아 도전하자. 누군가의 격려와 지지가 필요하다. 성공 경험이 쌓이면 자신감도 커진다. 아침마다 크게 외치자.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해 낼 수 있다.” 성경에 이런 말이 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셋째, 연습, 또 연습하자. 친구나 가족 앞에서 연습하자. 너무 잘하려 하지 말자. 공포증은 모자란다는 부정적 인식에서 온다. “이 정도는 충분히 잘 했다.” 동료나 상사 앞에서 연습하자. 너무 잘 보이려 하지 말자. 공포증은 주변 평가에 예민한데서 온다. “어느 누구도 나한테 관심 없다.” 소수 모임에서 연습하자. 실수 안 하려고 하지 말자. 공포증은 스스로 정한 높은 기준에서 온다. “한 두 번은 꼭 실수하리라.”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쏟아지는 캄캄한 밤, 산속에서 두 사람이 길을 잃었다. 한 사람은 벼락 칠 때마다 두려워 벌벌 떨었다. 다른 사람은 벼락 칠 때마다 무섭지만 빛을 이용해 길을 찾았다.

후박사 이후경 - 정신과의사, 경영학박사, LPJ마음건강 대표. 연세대 의과대학과 동대학원을 거쳐 정신과 전문의를 취득하고, 연세대 경영대학원과 중앙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임상집단정신치료] [후박사의 마음건강 강연시리즈 1~5권] [후박사의 힐링시대 프로젝트] 등 1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1340호 (2016.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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