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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수의 ‘돈이 되는 茶 이야기’] 티베트 접수한 중국의 신세대 장차(藏茶) 

장족의 생활필수품 쓰촨성에서 생산... 신공법으로 미주·유럽·동남아로도 수출 

서영수 대한민국 최연소 감독 출신. 미국 시나리오 작가조합 정회원

▎쓰촨성 야안의 차 전문가들은 기존에 사용하던 거친 잎 대신 어린잎을 사용해 다양한 장차와 홍차를 생산해 티베트와 중국 내수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티베트는 평균 해발고도 4900m가 넘는 세계의 지붕이다. 티베트는 독립국가가 아닌 중화인민공화국에 속한 시장(西藏)자치구(自治區)다. 티베트 거주민의 90%에 달하는 장족(藏族)은 중국 정부가 분류한 56개 민족 중 하나로 주요 거주지는 칭장고원·칭하이성·쓰촨성·간쑤성·윈난성 등이다. 시장자치구 면적은 중국 영토의 13%에 달하지만 인구밀도는 1㎢당 2.25명에 불과하다. 중국의 31개 성·시·자치구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270만 명이 거주하는 티베트의 연간 차(茶)소비량은 중국에서 가장 높은 1인당 10kg을 상회한다.

티베트에서 차를 마신 기록은 1400년 전부터다. 중국에서 예물로 가져온 차를 마신 왕과 승려가 먼저 차의 매력에 빠졌다. 윈난성과 쓰촨성에서 만들어진 차가 차마고도(茶馬古道)를 통해 대량 유입되며 티베트인의 생활필수품이 됐다. 특히 쓰촨성 야안 일대에서 만들어져 티베트로 보내는 차를 장족이 마시는 차라는 뜻으로 ‘장차(藏茶)’라 불렀다. 오늘의 티베트인은 ‘밥은 사흘을 굶어도 견디지만 차를 하루만 못 마시면 못 산다’고 할 정도로 차에 빠져있다.

밥은 굶어도 차는 마셔야 하는 티베트인


▎실크로드보다 200여 년 앞서 만들어진 국제무역 교역로 차마고도.
티베트인의 조상은 칭장고원에서 1만 년 전부터 토착민으로 살았다. 장족의 조상은 황금털 원숭이와 바위 신의 결혼으로 탄생했다는 설화가 있다. 티베트고원과 히말라야산맥에 둘러싸인 티베트는 토번이라고 불리던 당나라 때 전성기를 누린 중앙아시아의 강국이었다. 칭장고원을 통합해 왕국을 세운 송찬간포(松贊干布)는 당나라와 우호 관계를 맺으며 당태종의 조카인 문성공주를 왕비로 맞이했다. 결혼 예물로 문성공주가 지참한 3가지 보물 중 하나가 차다.

티베트와 당나라는 실크로드보다 200여 년 앞서 국제무역 교역로 차마고도를 만들어 차와 말을 교환하는 물물거래 형태의 한장차마무역(漢藏茶馬貿易)을 활성화했다. 차는 고원지대에 사는 티베트인에게 기호음료가 아닌 겨울을 나기 위한 생존필수식품이 됐다. 말은 전투에서 상대의 진영을 분산시켜 무력화시키는 전략무기로서 폐활량이 좋은 티베트의 말은 요즘의 탱크와 같은 위력이 있었다. 당나라가 매 년 바치던 공납을 중단한 것을 문제 삼아 763년 티베트 왕, 적송덕찬이 20만 대군을 보내 당나라의 도읍인 장안을 장악해 황제를 입맛대로 임명하기도 했다.

티베트는 당나라에서 요청이 있을 때마다 변방의 절도사들이 일으킨 군사정변을 진압하는 선봉에서 큰 공을 세우며 용맹을 떨쳤다. 몽골에 있는 음산산맥의 천연요새 무천진 분지에서 발호한 무인세력이 세운 당나라가 결국 절도사라는 무인세력에게 멸망한 것을 타산지석으로 여긴 송나라는 무(武)를 멀리하고 문(文)을 숭상했다.

티베트 기마병은 송나라 군대를 대신해 용병으로 활약했다. 송나라는 차를 전매품으로 지정해 재정수입의 25%를 충당해 국방비로 활용했다. 국방비의 대부분은 자국 군사력 증강이 아닌 용병을 사는 데 사용했다. 송나라는 변경지역에 차마사(茶馬司)를 설치해 티베트와 거래하는 차마호시(茶馬互市)를 통제했다. 차마사가 있던 야안에는 차를 티베트로 운송하는 계절이 되면 3000명이 넘는 장정과 2000필에 달하는 말이 모여 파시를 이뤘다. 연간 1만5000에서 2만 필 정도의 말이 거래됐다. 일반 말은 상등품이 차 16kg에 거래됐으며 최상급 전투마는 3배 수준의 가격인 48kg을 호가했다.

티베트는 송나라 말기에 맞붙은 세계 최강 몽골 기마병에 패하면서 국운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몽골이 세운 원나라에 1253년 정복당하면서 지금까지 역사의 질곡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원나라에 국방을 의지하고 정교일치의 신정국가를 표방한 티베트는 형식적인 군대만 유지했다. 종교가 나라를 지켜준다는 신념으로 평화를 추구한 티베트는 근대를 거쳐 현대국가로 독립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티베트는 차산업에서도 중국의 지배를 받고 있다. 티베트 차를 뜻하는 장차(藏茶)를 자급자족하지 못하는 티베트는 중국 쓰촨성 야안의 몽정산에서 만든 중국의 장차를 수입하는 최대 소비시장이다. 장차는 6대 차류에서 흑차(黑茶)에 속하는 발효차로 사변천차(四邊川茶)로 통한다. 장차는 10~20kg에 달하는 무게 때문에 대차(大茶)로 부르며 말에 실어 마방(馬幇)이 운송했던 전례에 따라 마차(馬茶)라고도 한다. 장차의 외형은 벽돌처럼 생겨 매우 단단하게 압착되어있는 강전차(康磚茶)가 전통적인 형태다. 강전차는 채취 시기와 찻잎의 크기에 따라 금첨차(金尖茶)와 강첨차(康尖茶)로 구분한다.


▎신세대 홍차를 마시는 티베트 여인(왼쪽)과 수유차를 마시는 티베트 승려.
티베트인의 차 마시는 방법은 매우 독특하다. 버터나 치즈로 굳힌 야크와 양젖을 차와 함께 걸쭉하게 끓여 마시는 전통적인 수유차(酥油茶) 외에 강전차를 끓여 소금만 첨가해 마시거나 취향에 따라 치즈와 버터를 나중에 넣어 녹여 마시는 청차(淸茶) 방식이 있다.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첨차(甛茶)는 강전차 대신 홍차를 사용해 향기가 좋고 맛이 느끼하지 않고 달다.

티베트 신세대 젊은이들의 취향을 간파한 쓰촨성 야안의 차 전문가들은 기존에 사용하던 거친 잎 대신 어린잎을 사용해 다양한 장차와 홍차를 생산해 티베트와 중국 내수시장을 공략했다. 중국 옌야오장차를 이끄는 장지쉐 대표는 “회사와 학계가 공동 연구한 장차 제조 신공법은 2008년 국가비물질문화유산으로 지정받아 제조기술을 보호받고 있다”며 “티베트는 물론 캐나다·미국·일본·말레이시아·홍콩·대만·유럽에 정식 수출하고 있다”고 신세대 장차를 자랑했다.

기존 거친 잎 대신 어린 잎으로 만들어

티베트차 문화를 상징하는 장차를 티베트가 아닌 중국이 옛날부터 주도해온 역사를 보면 차의 종주국으로서 중국의 행보는 차문화와 차산업을 전략적으로 잘 운영하고 있는 것 같다. 영토싸움보다 치열한 경제 전쟁에서 총성 없이 벌어지는 전투의 살벌함과 민낯을 가려주는 것이 문화의 힘이다. 2013년 시진핑 주석이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카자흐스탄에서 처음 언급하며 “중국은 군사적 야망이 없다. 과거의 실크로드를 재건해 중국의 국가 음료인 차와 차문화를 다시 전하고 싶다”고 한 말을 차 생산국가인 우리도 재고해볼 충분한 이유가 있다.

서영수 - 1956년생으로 1984년에 데뷔한 대한민국 최연소 감독 출신. 미국 시나리오 작가조합 정회원. 1980년 무렵 보이차에 입문해 중국 윈난성 보이차 산지를 탐방하는 등 차 문화에 조예가 깊다. 중국 CCTV의 특집 다큐멘터리 [하늘이 내린 선물 보이차]에 출연했다.

1339호 (2016.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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