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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석의 ‘의예동률(醫藝同律)’] 음양의 조화 돋보이는 약연 

한의학에선 음식과 약·질병약재·체질의 관계 중시 

윤영석 한의학 박사. 경희대 한의과대학 외래교수

▎약재를 가루로 낼 때뿐만 아니라 즙을 만들 때에도 사용한 약연.
한방에서 쓰는 의약기 중에는 음양(陰陽)을 구분하고 성(性)을 상징하는 것이 꽤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약연(藥碾)입니다. 여성의 자궁을 형상화한 약연의 몸통에 남성을 의미하는 연알을 올려놓습니다. 여기에 막대를 끼우고 이를 마찰해서 약재를 갈아냅니다. 약재를 가루로 낼 때뿐만 아니라 즙을 만들 때에도 사용했습니다. 약연의 몸통에 부귀다남(富貴多男) 같은 기원문을 적은 것도 간혹 볼 수 있습니다.

약연은 대부분 돌이나 무쇠로 만들었습니다. 부드러운 약재를 갈았던 박달나무로 된 것도 있고 드물게는 종이로 된 약연도 볼 수 있습니다. 약연은 나룻배 모양으로 양쪽 끝이 들려지게 해서 약재를 갈아낼 때 가속이 되어 갈아내기 쉽도록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약연은 연알이 불룩하고 튼실하게 생긴 반면에 일본이나 중국의 약연은 두께가 얇고 갸름하게 생겼습니다.

자궁 형상화한 몸통에 남성 의미하는 연알 올려

약초는 날로 씹어 먹는 것보다 바짝 말린 다음 끓여 마시거나 가루로 만들어 복용하는 편이 효과가 좋습니다. 약재를 갈거나 빻는 과정에서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독이 제거될 수도 있고요. 한약재를 곱게 갈아내어 꿀이나 물이나 술, 밀이나 쌀로 만든 풀로 함께 뭉쳐놓으면 환약이 되고 물을 넉넉히 넣고 2~3일 정도 계속 끓이면 고약이 됩니다. 이렇게 하면 약재가 변질이 안 되고 보관과 휴대가 간편해 질 수 있습니다. 또한 여러 가지 약재를 섞어 함께 가루로 만들어 복용하면 효과를 높일 수 있고 소화도 잘 되게 됩니다.

그런데 한약을 복용할 때 가루음식을 터부시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금기시하는 가루음식의 대표 격은 밀가루와 녹두가루입니다. 밀가루는 냉성(冷性) 식품이라 몸이 찬 소음인이 자주 먹으면 소화가 안 되고 생목이 오르기도 합니다. 특히 찬물을 좋아하는 어린이는 설사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소화가 잘 되고 몸이 찬 체질이 아니라면 한약 복용 중에 굳이 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피할 이유가 없습니다. 녹두나 숙주나물에는 한약의 성질을 부드럽게 하는 완화작용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음식물 알레르기나 약물 부작용에는 녹두를 가루로 내어 물에 타서 마시거나 달여 마셨습니다. 술을 마실 때에 녹두빈대떡을 안주로 먹으면 다음날 숙취가 훨씬 덜 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녹두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작용 때문에 약효를 감소시킬 수 있다고 보아 예로부터 한약 복용 시에는 녹두를 금기시한 것입니다. 그러나 한약을 복용 중이더라도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녹두 빈대떡이나 숙주나물을 먹어도 약효에 큰 지장은 없습니다.

밀가루 외에 한약 복용 중에 금기시하는 것이 돼지고기입니다. 사실 돼지고기는 우리 음식에서 없어서는 안 될 식품입니다. 얼마나 인간과 밀접했으면 집(家)이라는 글자에 돼지(豚)를 의미하는 한자가 들어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중국 당나라 때 사람인 손사막(孫思邈)이 지은 [천금요방(千金要方)]이란 책에 ‘돼지고기를 오래 먹으면 묵은 병이 나타날 수 있고 풍(風)이 생길 수 있다. 근육과 뼈에도 좋지 않다’라고 한 것을 보면 당시에도 돼지고기를 많이 먹지 못하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후에 발간 된 한의서에 보면 ‘풍에 관련된 병에는 계저주면(鷄猪酒麵)을 금한다’라 하여 중풍처럼 병명에 풍(風)이 들어간 환자들에게는 닭고기·돼지고기·술·밀가루를 먹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들 음식을 많이 먹으면 열과 풍을 성하게 하기 때문(生熱動風)에 순환기 계통의 병이 생길 수는 있지만 너무 멀리하면 병에 대한 저항력이 감퇴되는 것은 물론, 병후 회복에도 좋지 않습니다. 고혈압이나 동맥경화, 담도질환이 심하고 몸이 냉한 체질의 사람이 아니라면 한약 복용 중이라도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닭고기나 돼지고기를 먹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특히 소양인(少陽人)이라면 한약 복용 중의 돼지고기 섭취는 권장할 만합니다.

금기 음식도 적당히 먹으면 큰 문제 없어

음식과 한약과의 관계는 예로부터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의식동원(醫食同源)이라 하여 약과 음식은 뿌리가 같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한약재가 음식으로부터 파생되었습니다. 한의학에서는 약과 음식과의 관계를 다섯 가지로 나눕니다.

첫째, 약과 음식이 만나서 서로 효과를 올려준다(相須): 삼계탕의 인삼은 닭고기의 효능을 올려주고 닭은 인삼의 더운 성질을 완화시켜주기 때문에 열체질인 사람이 먹어도 별 탈이 없게 해줍니다.

둘째, 주재료의 맛과 효능을 높여 준다(相使): 수정과의 계피는 곶감의 맛을 더 깊게 해주고 많이 먹었을 때에 나타날 수 있는 체기를 방지해 줍니다.

셋째, 서로 작용해서 독성이나 부작용을 억제해준다(相畏): 살구는 개고기의 효과를 감소시키는 반면에 살구씨앗은 개고기에 체하는 것을 방지해줍니다. 보신탕집에서 입가심용으로 살구씨앗을 주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넷째, 음식과 약이 잘못 만나면 독성이 나타나거나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相反): 정향과 울금이란 약재가 섞이면 부작용이 생깁니다. 부추나 파를 꿀과 함께 먹어도 안 좋습니다.

다섯째, 한약을 먹을 때 음식을 잘못 먹으면 약효가 감소될 수 있다(相惡): 녹용을 복용할 때 김을 많이 먹으면 녹용의 조혈 효과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또한 소고기는 우슬이란 약재와, 돼지고기는 길경과, 개고기는 마늘과는 맞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한의사는 질병과 안 맞는 음식, 약재와 안 맞는 음식, 체질과 안 맞는 음식, 음식 서로 간에 안 맞는 음식을 판별해서 금기 음식으로 정해줍니다. 그러나 한약 복용 중에 금기 음식으로 표기되었어도 너무나 먹고 싶다면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먹어도 큰 문제는 없습니다. 음식에 대한 과도한 스트레스는 삶의 질뿐 아니라 복약의 의지를 떨어뜨리기 때문입니다. 먹고 싶은 것을 적당히 먹게 하면서도 병을 고치는 의사가 좋은 의사일 것입니다.

윤영석 - 경희대 한의과대학을 졸업했다. 한의학 박사. 경희대 한의과대학 외래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면서 7대째 가업을 계승해 춘원당한방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한의학 관련 유물 4500여점을 모아 춘원당한방박물관도 세워 관장도 맡고 있다. 저서로는 [갑상선 질환, 이렇게 고친다] [축농증·비염이 골치라고요?] 등이 있다.

1339호 (2016.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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