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9일 찾아간 성동구의 옛 동네 성수동은 휴가철 때문인지 한산했다. 1960년대 준공업단지로 조성돼 공장이 하나둘 들어섰고 70년대부턴 수제화 관련 업체가 몰리면서 국내 최대 수제화 산업지역이었다. 90년대엔 우리나라 수제화 빅3인 금강·에스콰이아·엘칸토 생산공장이 모두 이곳에 자리하기도 했다. 2012년 서울시에서 지역 산업 활성화 명목으로 ‘수제화 특화산업지역’으로 지정하면서 ‘옛’을 떼어낸 ‘구두거리’로 대중의 관심을 받으며 상권 부활의 시동을 걸었다. 수제화 거리엔 제화 관련 업체 400여 곳이 빼곡히 들어섰다.
문화예술 복합공간 들어서고 건물 신축 줄이어구두 공동 판매장을 늘리고 수제화공원을 조성해 수제화산업을 성수동 주력 산업으로 밀고 있는 성동구청(구청장 정원오)은 최근 무분별한 임대료 상승에 따른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낙후된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이 지역 상권의 부상을 가로막진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때문에 지난해 12월, 성수동의 건물주 52명을 포함해 상가 임차인 등 100여 명이 손을 잡고 수제화 거리, 예술인 공방 등으로 ‘핫한 동네’로 인식되고 있는 성수동 상권을 사람들이 계속 찾아 올 수 있는 곳으로 만들자는 협약을 했다. 지역 예술인과 단체들의 노력으로 유명해지자 일부 상인들이 비싼 임대료 탓에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발생한 데 따른 조치다. 부동산 114에 따르면 2014년 성수동 임대료는 평균 57% 올랐다. 성동구는 지난해 9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지역공동체 상호협력 및 지속가능발전구역 지정에 관한 조례’를 만들기도 했다.옛 동네 성수동이 젊은 동네로 변하고 있다. 낡고 오래된 공장과 창고만 즐비했던 곳에 기존 건물 모습을 살린 문화예술 복합공간과 커피숍 등 상점이 들어서고 있고, 오래된 건물 사이로 1년이 채 되지 않은 듯한 신축 건물이 군데군데 솟아있다. 미국 브루클린의 공장들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에 빗대 최근엔 성수동을 ‘한국의 브루클린’이라 부르기도 한다.인쇄공장·봉제공장·물류창고·자동차정비소 등이 곳곳에 포진해 있는 성수역 뒤쪽 골목에는 대형 신축 건물들이 솟아있다. 지식산업센터다. 정보기술(IT)산업을 기반으로 아파트형 공장으로 ‘성수IT산업개발진흥지구’와 맞물려 지식산업센터가 이 일대에만 10여 곳 이상이 있지만 여전히 여기저기에 센터가 들어서고 있다. 보통 1000명 내외로 상주하는 지식산업센터는 ‘삽 뜨기 전’에 모든 분양이 완료된다. 성수동 3가에서 만난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경기가 어려워 지면서 지리·교통·임대료 등의 입주조건이 아직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해선지 강남에서 넘어오는 수요가 꽤 있다“고 설명했다. 성수동 지식산업센터는 66~100㎡(약 20~30평)대가 가장 인기가 높다. 분양가는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편이다. 구로디지털단지에 위치한 지식산업센터의 평당 분양가가 500만~700만원인데 비해 성수동의 경우는 1000만원 정도다.상주 인구가 늘고 있는 이유는 또 있다. 2014년 인쇄소를 개조해 만든 갤러리카페 ‘자그마치’ 이후 대형 커피숍이 잇따라 들어서고 있다. 지금은 아예 ‘커피거리’로 불린다. 커피거리를 대표하는 곳은 대림창고. 70년대까지 정미소, 90년대엔 공장 부자재 창고로 사용되다 최근 예술행사나 브랜드 론칭 패션쇼 등이 자주 열려 유명해졌다. 3개월 전엔 대림창고 6개동 중 2개동을 임대해 갤러리 카페가 생겼다. 한낮의 열기에 커피거리엔 오가는 사람이 별로 없어 한산했지만 대림창고를 드나드는 손님은 꾸준히 보였다. 카페 관계자는 “하루 1000명 정도 몰린다”며 “주말엔 1만원 입장권을 판매하는데, 평균 1200장 정도 팔린다”고 말했다. 대림창고가 자리한 성수동 카페거리의 다른 커피숍을 들렀다. 카페거리에서 8㎡(약 2.5평) 규모의 작은 커피숍 K를 운영하고 있는 김준식(38)씨의 말이다. “아직까지 대형 커피숍에 비해 손님이 크게 몰리진 않지만 길목을 오가는 사람이 꾸준히 늘고 있다.” 김씨 가게 옆엔 3층 규모의 대형 커피숍이 막바지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있었다. 인근에 위치한 부동산 정남규(67)씨는 “2014년에 인쇄소를 개조해 자그마치라는 갤러리 카페가 들어서면서 커피숍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해 아예 커피골목으로 불릴 만큼 성장했다”고 말했다.다만, 아직 서울의 여느 번듯한 상권만큼 성장하진 않았다. 커피거리 건너편의 수제화 거리 초입에 자리한 부동산 중개업소 주인 정모씨는 “핫플레이스다, 한국의 브루클린이다란 말을 하던데 아직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진 그의 설명이다. “아직은 대림창고와 같은 특정 가게로 몰리는 손님이 상권을 주도하고 있다. 상권에 대한 기대감이 커 임대 문의는 많지만 물건은 거의 없다. 평당 가격이 5~6만원 하던 준공업지역에 공장을 세운 건물주들 입장에서 급할 게 없기 때문이다. 아직 상권이 완전히 활성화됐다고 보기엔 무리다.” 성수동 임대료는 2014년까지 계속 오르다 지난해 30%대 가까이 하락했다. 기대심리가 한풀 꺾인 것이다. 새로운 소비층은 속속 늘고 있지만 아직 큰 변화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말이기도 하다. 유동인구 역시 성수동은 아직 7만~8만 명 수준에 그친다.
상권 입지 다질 콘텐트는 부족지식산업센터와 함께 곳곳에 신축 원룸이 들어서면서 상주 인구는 꾸준히 늘고 있다. 수제화 거리에서 만난 성지수(31·여)씨는 “수제화 관련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주거비가 비싸지 않아 온 김에 원룸을 알아보고 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서울숲이 가깝고 ‘뜨는 지역’이란 인식 때문인지 주변의 갈비골목 상가들이 성수동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도 호재다. 원빈·권상우 등 부동산에 밝은 톱스타들이 일찌감치 이 지역에 투자했다는 점도 관심을 끌게 만든다. 부동산114 상가 통계담당 김민영 연구원은 “성수동은 상권을 형성하는 콘텐트가 부족해 상권 입지를 다지려면 업종의 다양화가 필요하다”며 “카페나 상가가 듬성듬성 위치해 동선이 좋지 않은 점만 봐도 그러한데 동선을 채울 촘촘한 상권이 되려면 기대감을 가지고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