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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연기관 전성시대 저무나] 미래형 친환경차 주도권 다툼 시동 

디젤게이트 이후 전기차로 무게중심 이동... 주행거리 한계 등으로 대중화는 시기상조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폴크스바겐 그룹의 ‘디젤게이트’ 이후 미래 친환경차 시장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완성차 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는 미국 테슬라모터스는 내년 말 3000만원대 전기차를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기득권을 쥐고 있던 미국과 일본·독일·한국 완성차 업체들도 앞다퉈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었다. 100년 넘게 운송수단을 책임졌던 내연기관의 시대는 이대로 저무는 걸까. 전문가들은 상당기간 내연기관 자동차와 하이브리드, 순수 전기차가 공존하는 과도기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한다. 디젤게이트 이후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친환경차 시장의 현주소를 진단해 본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비롯한 자동차 업계 CEO들이 8월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만나 간담회를 열고 전기차 투자 활성화 등을 논의했다. / 사진:뉴시스
얼리어답터를 자처하는 신형철(41·자영업)씨는 지난 3월 세컨드카로 BMW의 전기차 i3를 구입했다. 평소 BMW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X6를 타고 다니는 신씨가 i3를 구입한 건 당장 구입할 수 있는 전기차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아내가 출퇴근용으로 사용하기 위한 세컨드카를 찾던 신씨가 처음에 고려한 건 수입 소형 SUV나 크로스오버 차량이었다. 폴크스바겐 티구안, BMW X3, 메르세데스-벤츠 GLC 등이 물망에 올랐다. 처음 집 근처 BMW 전시장에서 i3를 봤을 때만 해도 큰 감흥이 없었다. 껑충해 보이는 디자인이나 투톤(2가지 색깔을 조합한 외장 도색) 컬러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마음을 바꾼 건 시승을 해본 후였다. 미국에서 테슬라 ‘모델S’를 타본 적이 있는 신씨는 i3의 초기 가속성능이 테슬라만큼은 아니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장재 등 BMW 특유의 감성품질도 만족할 만했다. 당장 구입할 수 없는 테슬라와 달리 국내 시판 중인데다 보조금을 모두 합하면 3000만원 대에 구입할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폴크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사건인 ‘디젤게이트’ 이후 친환경 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도 구입을 결심한 이유가 됐다.

‘클린 디젤’ 신화 무너져


5개월 가량 타본 i3에 대한 소감은 기대와 실망이 엇갈린다. 전기차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운전하는 재미가 있지만 주행거리가 짧은 것은 불만이다. 운행 도중 차가 멈춰 견인차량을 부른 적도 있었다. “운전할 때 이질감이 심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 부분은 만족할 만합니다. 다만 생각만큼 주행거리가 나오지 않는데, 신형 모델은 주행거리가 더 길어질 것이라고 해서 너무 일찍 구입한 게 아닌가 조금 후회도 들어요.”

아우디·폴크스바겐 그룹의 디젤게이트 이후 세계 자동차 시장의 판도가 급변하고 있다. 내연기관인 디젤엔진으로도 친환경성과 경제성을 모두 잡을 수 있을 거란 믿었던 ‘클린 디젤’의 신화가 무너지면서다. 1997년 일본 도요타가 첫 하이브리드(HEV, 엔진과 전기모터 모두 사용하는 친환경차) 자동차 ‘프리우스’를 내놓고, 각 완성차 업체들이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외부 충전이 가능한 하이브리드 방식) 자동차를 선보일 때만 해도 전기차는 먼 미래의 일처럼 여겨졌다. 심지어 친환경차의 최종 종착지가 전기차인지에 대한 의심도 적지 않았다.

여전히 순수 배터리 전기차가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지난해 세계에서 팔린 자동차는 모두 8623만대였지만 이 가운데 전기차 판매는 약 56만대로 0.7%에 그쳤다. 물론 판매 증가 속도는 가파르다. 지난 6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내놓은 ‘글로벌 전기차 전망 2016’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전기차 누적 판매대수는 126만대로 100만대를 넘겼다. 2014년 32만4000대가 팔렸던 것과 비교하면 1년 새 70% 가까이 판매가 늘어난 것이다.

전기차 돌풍의 주역은 미국 테슬라모터스다. 2003년 설립된 테슬라는 단숨에 완성차 업계의 ‘게임 체인저’가 됐다. 전기모터로만 달리는 자동차를 생산하는 테슬라는 2008년 첫 양산모델인 ‘로드스터’를 내놨고, 2012년엔 주행거리와 충전속도를 대폭 개선한 프리미엄 세단 ‘모델S’를 선보였다. 지난해 말까지 테슬라 전기차의 누적 판매량은 10만7000대(SUV 모델X 포함). 본격적인 양산설비가 가동된 올해 한 해에만 18만대 이상을 판매할 것으로 예상된다. 완성차 업계에서 지속적인 수익이 가능한 마지노선으로 불리는 연 30만대 판매도 머지 않은 상황이다. 올 상반기 발표한 ‘모델3’는 기본형이 3만5000달러(약 3900만원)에서 시작하는 보급형 모델이다. 2017년 말 출시 예정이지만 벌써 선주문 37만대를 넘긴 상황이어서 테슬라가 완성차 업계의 게임 체인저를 넘어 글로벌 플레이어로 올라설지 업계의 이목이 쏠린다.

폴크스바겐 그룹은 지난해 디젤게이트 이전까지만 해도 세계 완성차 업계의 절대강자였다. 수퍼카(람보르기니)에서 고급차(아우디)·대중차(스코다)에 이르는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갖췄고, 유럽과 아시아·남미를 아우르는 시장 포트폴리오에서도 경쟁사보다 한 수 위란 평가를 받았다. 글로벌 판매량에선 일본 도요타에 근소한 차로 뒤졌지만 폴크스바겐 그룹은 2015년 판매량과 수익성 모두 세계 최고에 오르겠다는 포부를 숨기지 않았다. 지난해 초 발간된 연례보고서에서 마르틴 빈터코른 전 최고경영자(CEO)는 “2018년까지 경제성과 친환경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완성차 업체가 되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상반기 폴크스바겐 그룹은 세계 시장에서 504만대를 판매해 502만대를 판 도요타를 간발의 차로 앞섰다.

게임 체인저 테슬라의 맹활약


▎독일 슈투트가르트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에 전시된 세계 최초의 휘발유 엔진 자동차 ‘페이턴트 모터 카’(위쪽)와 1936년 메르세데스-벤츠가 선보인 세계 최초의 디젤엔진 자동차 260D. / 사진: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제공
빈터코른이 철썩 같이 믿은 건 폴크스바겐 그룹이 자랑하는 TDI(Turbocharged Direct Injection, 터보 직분사) 디젤엔진이었다. 당시만 해도 TDI엔진은 높은 연비에 배출가스까지 적은 ‘클린 디젤’로 알려져 있었다. 뛰어난 디젤엔진 기술을 가졌다고 믿은(혹은 알면서도 속인) 폴크스바겐 그룹으로선 강점을 갖고 있는 내연기관을 포기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폴크스바겐 그룹도 전기차에 대한 투자가 없었던 건 아니다. 아우디는 2012~2014년 세계 최고의 내구 레이스인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R18 e-트론 콰트로’로 3연패를 달성했다. R18 e-트론 콰트로는 V형 6기통 3.7ℓ TDI 디젤엔진이 뒷바퀴를, 75kw 용량의 전기모터 2개가 앞바퀴를 굴린다. 아우디는 이 기술을 바탕으로 PHEV 방식인 A3 스포트백 e-트론 등 양산 하이브리드 모델을 선보이기도 했다. 준대형 SUV Q6 e-트론 개발 계획도 발표했다. 하지만 디젤게이트 이후 아우디의 친환경차 전략은 전면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전가의 보도’로 여겼던 TDI엔진이 희대의 사기극으로 결론 나면서다.

왜 폴크스바겐 그룹은 내연기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을까.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이른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독일은 자타공인 내연기관의 퍼스트 무버였다. 내연기관은 원통 모양의 실린더 내부에 연료를 주입해 폭발을 일으켜 동력을 얻는 기관이다. 내부에서 연소가 일어난다고 해서 내연기관이란 이름이 붙었다. 현대식 내연기관을 처음 선보인 건 독일 기술자 니콜라우스 오토(1832~1891)였다. 독일 기술자들은 현대 내연기관의 양대 축인 가솔린엔진과 디젤엔진도 발명했다. 최초의 가솔린엔진을 개발한 사람은 고틀리브 다임러(1834~1900)였고, 처음 가솔린엔진 자동차 특허를 받은 건 칼 벤츠(1844~1929)였다. 1926년 다임러와 벤츠의 합병으로 현재 독일 고급차의 대명사인 메르세데스-벤츠가 탄생했다. 자동차의 역사가 곧 벤츠의 역사라고 일컫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디젤엔진은 1893년 역시 독일 기술자 루돌프 디젤(1858~1913)에 의해 발명됐다. 발화점이 낮은 디젤 연료의 특성상 별도 점화장치 없이 압축착화 방식으로 폭발을 일으키는 엔진이다. 높은 토크(비트는 힘)로 초기 가속이 좋고 힘이 세서 무거운 짐을 운반하기에 용이하다.

내연기관은 130여년 동안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컴퓨터로 연료분사와 연소 과정을 제어하는 기술이 등장했고 효율과 내구성도 높아졌다. 하지만 미세먼지와 이산화탄소·질소산화물 등 환경을 파괴하는 배출가스의 위험성이 알려지면서 한계에 봉착했다. 독일 완성차 업체들은 내연기관에 대한 미련을 쉽게 버리지 못했다. 내연기관을 처음 만들고 발전시켰다는 자부심과 오만, 기득권 상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내연기관 종주국’ 독일도 변화의 물결을 맞고 있다. 디젤게이트의 ‘주범’ 폴크스바겐 그룹이 당장 전기차 개발을 위한 청사진을 내놨다. 지난 6월 폴크스바겐 그룹 마티아스 뮐러 최고경영자(CEO)는 ‘전략 2025’라고 명명한 전기차 개발 계획을 발표하고 “2025년까지 30종 이상의 전기차를 개발해 연간 200만~300만대를 판매하겠다”고 말했다.

이미 전기차 전용 브랜드인 ‘아이(i)’를 선보인 BMW가 하반기 PHEV 3종을 동시에 출시한다. BMW는 ‘기다리지 않고 살 수 있는 전기차’ 컨셉트로 테슬라를 직접 겨냥한 광고를 미국 시장에 선보이기도 했다. 메르세데스-벤츠도 전기차 전용 브랜드인 ‘EQ’의 상표등록을 마치고 9월 파리모터쇼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벤츠는 2020년까지 세단 2종, SUV 2종의 전기차를 선보일 계획이다.

화석연료 없인 전기차도 굴러가지 않아


친환경차의 최종 목적지가 어디일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테슬라의 선전과 디젤게이트 이후 전기차가 힘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기술적 과제가 적지 않아서다. 우선 전기를 어떻게 생산하고 보관하느냐가 문제다. 현재의 기술력으론 발전 과정에서 화석연료 사용이 불가피한데, 직접 화석연료를 동력원으로 쓰느냐, 화석연료로 만든 전기를 동력원으로 쓰느냐의 차이일 뿐 결국 마찬가지란 주장이다.

‘탱크 투 휠(Tank To Wheel, 동력저장에서 바퀴까지)’ 단계를 친환경적으로 만드는 건 눈속임이란 반론도 만만치 않다. ‘소스 투 휠(Sourse To Wheel, 에너지원에서 바퀴까지)’로 확대하면 친환경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배터리의 효율도 아직 높지 않다. 테슬라의 주행거리가 400㎞에 달하는 건 대용량 배터리를 장착했기 때문이다. 시스템 전체의 열 효율만 따지면 현재의 리튬이온 배터리는 30% 수준으로 40%대에 도달한 내연기관에 미치지 못한다는 분석도 있다. 전기차가 많아졌을 때 배터리 생산·폐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는 어떻게 할 것인지도 해결하지 못한 과제다.

전문가들은 과도기적 단계로 전기차가 시장점유율을 상당 부분 끌어올리겠지만 친환경차의 최종 승자가 될 것인지는 속단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300원어치의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선 1000원어치의 화석연료를 소모해야 하는 게 현재의 기술 수준”이라며 “수소와 산소의 반응으로 전기를 얻는 수소연료전지차가 궁극적 친환경차라고 하지만 화석연료 소비 없이 어떻게 수소를 생산할지를 해결하기 전까진 정답이 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도 “화석연료가 존재하는 한 내연기관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면서 “과도기적으로 전기차가 시장점유율을 늘려갈 순 있겠지만 당장 십 수년 안에 전기차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주장하는 건 기술적 한계를 도외시한 근거 없는 핑크빛 전망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1349호 (201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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