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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선 지금] 늙은 일본의 비애 … ‘간병 퇴직’ 방지 비상 

연간 10만 명 이상 회사 떠나 … 도요타, 3대 대형 은행 등 재택근무제 잇단 도입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일본에선 재택근무 혁명이 확산되고 있다. 그동안 일본에선 파나소닉과 닛산자동차 등 일부 기업이 일찌감치 재택근무제를 도입하면서 그 효과를 입증해왔다. 일본 정부 역시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일손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택근무 확산을 정책적으로 지원해왔다. 지난 6월 세계 최대 자동차 업체 도요타가 전격적인 재택근무 도입 계획을 밝히면서 재택근무는 일본 사회의 큰 화두로 떠올랐다. 보수적인 대형 은행까지 이에 동참하면서 재택근무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됐다.

도요타 사무·기술직 1만3000명 재택근무

도요타는 사무직과 기술직 직원 2만5000명을 대상으로 8월 말부터 재택근무를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입사 5년 이상의 일정 자격을 갖춘 직원에 한해 허용하기 때문에 실제 이용 가능한 직원 수는 절반가량인 1만3000명 정도 될 전망이다. 공장에서 일하는 생산직은 제외된다. 전체 직원 7만2000명 중 18%가 해당한다. 재택근무를 하는 직원은 자신이 원하는 때 일주일에 한번 정도만 사무실에 나오고 나머지 시간은 집이나 외부에서 일하면 된다. 사무실 근무시간을 주 몇 시간으로 할지와 같은 구체적인 사항은 협의 중이다.

도요타는 지난해 4월부터 만 1세 미만의 자녀를 둔 직원에 한해 일주일에 2시간만 출근하면 되는 재택근무를 도입했다. 도요타가 지난 2~3월 재택근무를 한 100여 명의 참가자를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 중 70%는 재택근무를 일주일에 한번 정도 이용했고, 이를 통해 평균 주당 1.4시간을 절감했다. 80% 이상의 참가자가 생산성 향상을 실감했다고 응답했고, 40%는 육아시간을 늘릴 수 있었다고 답했다. 긍정적인 효과가 확인되자 이번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그치지 않고 직원들이 시간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제도를 대폭 확대키로 했다. “육아나 간병에 대한 대응뿐만 아니라 생산성 향상에 목적이 있다”는 게 도요타 측의 입장이다. 직원의 재택근무의 인정 여부는 업무내용을 감안해서 상사가 판단키로 했다. 이를 위해 재택근무 직원들에겐 화상회의가 가능하면서 단말기에 기록을 남기지 않는 클라우드 기반의 PC를 나눠줄 계획이다.

일본의 대형 은행 중엔 미쓰비시도쿄UFJ은행이 7월부터 재택근무제를 본격 도입했다. 대상자는 본부에서 기획업무에 종사하고 있거나 육아·간병을 필요로 하는 은행 직원 약 4000명이다. 회사와 같은 환경에 접속할 수 있고 충분한 보안이 적용된 PC가 배포돼, 일주일에 하루씩 집에서 일하고 있다. 이 은행의 재택근무는 2015년부터 추진해온 일하는 방식 개혁의 일환으로 도입된 제도다. 이전까지 고객의 신용정보를 취급하는 은행에선 일감을 집으로 가져가는 게 금기시돼왔다. 이 은행 인사부 기획그룹 가타야마칸(片山幹) 차장은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처음엔 집으로 가져가서 할 만한 일이 있는가에 대한 회의도 있었다”며 “영업점은 고객과의 대면 업무가 중심이고 본부에서도 종이 자료를 활용한 회의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해 7, 8월 재택근무 시범 실시를 하면서 처음엔 필요성에 의문이 있었던 이 제도의 장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회의 자료 작성이나 데이터 분석 등의 업무는 집에서 더 집중할 수 있고 생산성이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또 재택근무를 시작할 땐 일의 계획을, 마칠 땐 그 결과를 상사에게 보고하는 규칙을 만들었다. 아직 도입 초기여서 이 은행의 재택근무 이용자는 100명 정도다. 전화·화상회의 시스템이 갖춰지긴 했지만 아직은 대면 회의를 하는 문화가 남아있다고 한다. 현 단계에서는 지점 직원에까지 적용하는 건 어려운 상황이다. 인터넷뱅킹 등 비대면 채널 이용이 늘고 있지만 아직도 지점 일은 창구에서의 대면 업무가 주이기 때문이다. 이 은행은 재택근무와 함께 시차출퇴근제도를 실시하면서 직원이 퇴근 예정 시간을 알리는 제도도 새롭게 도입했다. 예컨대 시차 근무 중인 사람은 18시 퇴근 또는 19시 퇴근이라고 적힌 카드를 자신의 책상 앞에 붙여둬서 자신의 퇴근 시점을 부서원들에게 알리는 방식이다.

또 다른 대형 은행인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은 7월 말부터 전체 직원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1만8000명을 대상으로 재택근무제도를 새로 도입했다. 그동안 본점과 지점의 약 500명을 대상으로 시범 실시했지만 종합직 전반과 영업 일반직에도 확대키로 했다. 또 미즈호은행도 연내에 재택근무를 도입할 예정이어서 일본의 3대 메가뱅크가 모두 재택근무 체제에 들어가게 된다.

2020년 근로자의 10% 이상 재택근무 목표

일본 기업이 재택근무 도입을 결정하게 된 배경엔 심화되는 고령화가 있다. 국민 4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 일본에선 노부모의 간병을 이유로 하는 퇴직이 급증하고 있다. 연간 10만 명 이상이 가족의 간병 때문에 직장을 그만 두면서 간병 퇴직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05년 간병휴직 제도를 도입해서 휴직 기간에 임금의 40%를 고용보험으로 보전토록 한 데 이어 최근엔 수당을 임금의 67% 수준으로 끌어올리도록 법을 개정했다.

일본 기업으로서는 저출산·고령화로 인재 확보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육아나 간병으로 우수인재가 이탈하는 것을 막는 게 중요해졌다. 따라서 육아·간병과 일을 병행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제도로 재택근무가 부각되고 있다. 초고속 인터넷 보급 등으로 집에서 일할 만한 환경이 갖춰진 것도 재택근무가 확산되는 이유다. 일본 정부는 재택근무용 통신장비 도입이나 클라우드 서비스 이용에 드는 비용을 일부 지원해주면서 재택근무 도입을 장려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주 1일 이상의 재택근무자의 비중을 2020년까지 10% 이상으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2014년 조사에 따르면 일본의 재택근무자는 약 220만 명으로 보급률은 아직 전체 근로자의 3.9%에 그친다.

재택근무가 점차 확산되면서 이에 맞춰 기업 문화나 제도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재택근무는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많은 준비가 필요하고 구성원 간 신뢰관계가 중요한 제도다. 예컨대 원격으로 일을 하는 환경이 회사 차원에서 조성돼야 하고 노동시간 관리를 어떻게 할지도 검토해야 한다. 성과 평가방법이나 인사고과 제도의 변화도 따라줘야 한다. 관리자의 교육과 의식개혁도 큰 이슈다. 컨설팅사 ACT3의 도조노 와카코(堂薗稚子) 대표이사는 일본 경제주간지 동양경제에 실은 기고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재택근무는 오히려 직원들에게 엄격한 제도다. 사용하려면 각오가 필요할 수 있다…(중략)…회사원 시대엔 어쨌든 출근하면 ‘작업하고 있다’고 보고 일정한 급료는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집에서 일한다면 회사는 과정이 아닌 성과만 보게 된다. 이는 근로자에겐 전원이 회사로 출근하는 근무체계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1348호 (201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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