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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에선 지금] 일·가정 양립 묘수 찾으니 회사도 이익 

삼성·롯데·kt·하나투어 등 다양한 근무제 도입 … 습관적 야근 줄고 육아휴직 복귀율 올라 

김경진 기자 kjink@joongang.co.kr

▎하나투어의 선릉 스마트워크센터.
이경애(39)씨는 집에서 오전 6시에 일어나 7시 30분부터 아침 업무를 시작한다. 이씨의 업무는 kt의 114안내센터의 전화를 받는 일이다. 한 시간가량 오전 근무를 한 그는 9살된 큰 아이를 학교에 보낸 후 6살 된 둘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다. 낮 12시까지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고, 점심 식사를 한 후 설거지·청소·빨래 등의 가사일을 한다. 이어 학교와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이들을 맞이해 점심을 먹이고 가정방문 선생님에게 아이들을 맡긴다. 이어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근무를 한 후 아이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한다. 오후 7시 30분부터 12시 30분까지는 야간 근무 시간이다. 하지만 틈틈이 쉬는 시간을 활용해 아이들의 간식을 챙기거나 잠자리를 돌본다.

시간적·공간적 가족 친화 경영


2001년 kt의 자회사인 ktis에 입사한 후 2011년부터 재택근무를 시작한 이씨의 하루 일과다. 그는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어 재택근무를 선택하게 됐다”며 “안심하고 일을 할 수 있어 일에 대한 집중력이 높아져 업무효율이 높다”고 말했다. 그가 일하는 114안내센터의 전체 1200명의 직원 중 400여 명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이 회사의 또 다른 업무 영역인 고객센터 직원 8400명 중 200명도 재택근무 방식을 택하고 있다. kt 관계자는 “고객센터의 경우 여성 비중이 전체 직원의 75%를 차지할 정도로 크다”며 “여성근로자의 큰 고민 중 하나인 육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가정 양립 차원에서 재택근무제를 장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객센터 업무 특성상 우수 직원의 장기 근무 여부가 회사의 큰 경쟁력”이라며 “재택근무 도입으로 우수 직원이 장기간 근무를 할 수 있어 회사 차원에서도 이익”이라고 덧붙였다.

벤처나 중소기업이 아닌 직원 수가 많은 대기업에서도 재택근무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1977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114안내센터에 재택근무를 도입한 kt는 현재 그룹 차원에서 유연근무제를 독려하고 있다. kt 관계자는 “시간적·공간적 의미에서의 스마트워킹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선 시간적 개념의 스마트워킹에는 선택근무제·재량근무제·시차(時差)출근제 등이 있다. 선택근무제는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직원이 희망하는 근무 시간대를 주40시간 이내에서 선택하도록 하는 제도다. 오전 11시에서 오후 3시까지만 필수적으로 근무하면 앞뒤 근무시간은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다. 이 제도를 올 1월부터 7월까지 이용한 사람은 207명(월 누계 기준)이었다. 연구개발과 IT분석·설계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재량 근무제는 같은 기간 69명이 활용했다. 근무 시간을 재량에 따라 배분할 수 있는 제도로 이 제도를 활용하면 일주일에 3일만 근무하는 것도 가능하다. 시차출근제는 영업·고객 서비스 등 고객 접점 부서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유연근무제다.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 오전 11시에서 오후 8시까지 등 세 가지 타입 중 선택해서 근무할 수 있다. 1월부터 7월까지 526명(월 누계 기준)이 이 제도를 활용했다. kt 관계자는 “직원이 원하는 시기와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제때 집중적으로 일해 일과 삶이 균형을 이루는 방향’으로 스마트워킹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장소적 개념의 스마트워킹으로는 재택근무와 이동근무가 있다. kt 관계자는 “노트북과 태블릿,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언제 어디서나 회사 업무 외 사내 복무·복리 관련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다. 이 회사는 가족 사랑의 날을 강화하고 휴일 근무 축소, 연차휴가 활성화 등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kt 관계자는 “일터와 가정의 균형있는 양립을 위해 다양한 가족 친화경영 제도를 운영 중”이라며 “일·가정 양립 지원제도와 여성인재 케어(돌봄) 제도의 두 개 축으로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가정 양립 지원제도는 반차 휴가 제도, 일가양득 캠페인, 안식년 휴가제, 리프레시 휴가 등의 복무 편의제도와 리프레시 휴직, 가족돌봄 휴직 등의 휴직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일주일에 3일 근무도 가능


반차 휴가는 연차를 최대 10회에 걸쳐 분할해 쓸 수 있게 하는 제도로 오전과 오후로 나눠 활용할 수 있다. 일가양득 캠페인은 매주 수요일을 가정의 날로 운영, 오후 6시 정시 퇴근을 유도하는 제도다. 이 캠페인의 일환으로 직원들은 휴일 근무 시 엄격한 승인을 받아야 하고, 반드시 대체 휴무를 사용해야 한다. 안식년 휴가는 장기 근속자를 대상으로 2~3주 간 안식년 휴가를 부여하는 제도다. 리프레시 휴가는 상·하반기 각각 연속된 3일의 휴가를 사용하는 프로그램이다. 가족 돌봄 휴직을 통해선 최소 30일~최대 90일 간의 휴직을 신청할 수 있다.

이 회사는 여성 인재를 보호하기 위해 난임 휴직, 의료비 지원, 단축근무, 산전후 휴가, 출산 지원금 등의 제도도 운영한다. 특히 업계 최초로 2011년부터 육아휴직을 2년 동안 제공하고 있다. kt 측은 “육아휴직 사용 시에도 승진 마일리지를 부여해 평가 불이익을 방지하고 원소속 복귀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결과 남성 직원의 육아휴직 사용 비율은 전체 사용자의 23%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육아휴직 후 복직률도 지난해 기준 99%에 달한다. 이런 성과를 통해 이 회사는 여성가족부로부터 ‘가족친화기업’이란 인증을 받았다. 또 여성인재경영대상 기획재정부장관상을 수상하고, 한국능률컨설팅협회에서 주관하는 한국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에 5년 연속으로 꼽히기도 했다.

하나투어 역시 유연근무제 도입의 선두주자로 평가받는다. 하나투어 측은 “내부 고객인 직원이 즐거워야 고객에게 진정한 행복을 제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토대로 즐거운 직장, 여성이 일하기 좋은 직장을 만들기 위해 2011년부터 유연근무제를 도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나투어의 유연근무제는 재택근무·거점근무·시차출퇴근·재량근무·스마트세일즈 등으로 구성된다. 이듬해인 2012년부터 4년 간 경영목표를 ‘스마트워킹을 통한 균형 성장’으로 정하고 유연근무제를 확대해온 결과, 올 7월 현재 전체 임직원 2357명 중 재택근무자가 142명에 달한다. 시차출퇴근제 이용자 234명, 거점근무자 545명, 스마트세일즈 이용자 302명다. 거점근무는 집과 가까운 사무실로 출퇴근해 시간 낭비를 줄이는 대신 여가 시간을 확보해 삶의 질을 향상시키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근무 부담돼 퇴직한 직원도 재입사

현재 신도림·노원·부평·왕십리·선릉·김포공항·범계·화정·연신내·수원·구리 등 총 11개의 스마트워크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 회사는 내년까지 스마트워크센터를 15개로 확대 운영할 예정이다. 시차출퇴근제는 오전 8시~오후 5시, 오전 10시~오후 7시 등으로 선택 가능하다. 재량근무는 공간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자율적 근무형태로, 개인 용무나 업무 집중이 필요한 경우 주 1일에 한해 활용할 수 있다. 또 영업사원을 대상으로 하는 스마트세일즈는 회사에 들를 필요 없이 집에서 거래처로 자유롭게 출퇴근하는 제도다. 하나투어 측은 “유연근무제 도입 결과 직원들의 병가율이 75% 감소했고, 육아휴직 복귀율도 90%에 이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이 회사는 ‘사유없는’ 연차 결재 방식을 도입해 직원이 자유롭게 연차를 쓸 수 있게 하고 있다. 또 여행사라는 특수성을 반영해 해외 여행 경험을 위한 장기간 연차도 적극 지원한다. 신입사원은 입사 1년 이내에 연차 소진 없이 임직원 여행상품을 이용할 수 있다. 이 회사의 연차 사용률은 2014년 90.3%, 2015년 92.5%로 꾸준히 높아졌다. 이 회사 이수진(31) 대리는 “스트레스로 인한 염증으로 한 달 간 입원치료를 받아야 하는 시점에서 휴직을 고민하고 있을 때, 팀장의 권유로 재택근무를 시작하게 됐다”며 “수원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던 시간을 절약하면서 몸이 빠르게 회복됐고 애사심이 강해져 업무에 대한 집중도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회사 입장에서도 매년 좋은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투어 매출은 2011년 2264억원, 2012년 2592억원, 2013년 2976억원, 2014년 3154억원, 2015년 3600억원으로 꾸준히 늘었다. 이에 비해 퇴사율은 2011년 9.3%, 2012년 9.0%, 2013년 6.4%, 2014년 6.9%, 2015년 5.8%로 감소하고 있다. 홍연석 하나투어 인사부서장은 “유연근무제가 처음 시행될 당시만 해도 실적 악화나 소속감 결여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며 “지금은 퇴사했던 직원이 재입사할 정도로 긍정적인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Work Smart’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09년부터 ‘자율출근제’를 도입했다. 오전 6시부터 오후 1시 사이 임직원이 원하는 시간에 출근해 하루 8시간을 근무하는 제도다. 지난해부터 삼성전자는 기존 제도를 확대한 ‘자율출퇴근제’를 시행하고 있다. 자율출퇴근제란 주 5일 주 40시간 이상씩 근무하되 1일 4시간 이상 근무하는 제도다. 2012년부터 시범 운영을 시작한 후 2014년 7월 디자인과 연구개발직군으로 대상을 확대한 데 이어 지난해 3월부터 생산직을 제외한 전 직군으로 대상을 확대했다. 또 초등학교 6년 이하의 자녀를 둔 임직원 등은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일할 수 있는 ‘재택근무제’를 2011년 5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또 급여가 지급되는 매월 21일을 ‘패밀리데이’로 정해 야근·회식 없이 임직원이 정시에 퇴근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습관적이고 눈치만 보는 평일 야근을 줄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삼성전자는 여름철에 한해 직원들에게 반바지 착용을 허용하고 있다.

제도 도입 못지 않게 인식 전환 중요

롯데그룹도 유연근무제도를 도입 중이다. 지난해 10여 개 계열사가 우선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해 지난해 말 전 계열사로 확대했다. 총 5가지 근무 형태 중 임직원이 원하는 타입을 선택할 수 있다. 출근은 오전 8시부터, 퇴근은 오후 5시부터 각 30분 단위로 선택이 가능하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지난 9월부터 기업문화개선위원회를 발족시켜 조직 자긍심, 일하는 방식, 경직된 기업문화 등 집중적으로 개선이 필요한 과제를 선정하고 개선 방안을 수립하고 있다”며 “유연근무제 역시 일하는 방식 개선을 위해 도입된 제도”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인식 전환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도영 고용부 고용문화개선정책과장은 “기업도 장기간 근무하고 야근하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시간적·공간적으로 유연한 근무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실제 조직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고, 숙련된 인력의 이탈이 줄어드는 등의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다만 이 과장은 “기업들이 제도 개선에 치중하기보다는 실제로 조직원들이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 편히 제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내부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대한상공회의소 역시 최근 300개 회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기업의 유연근무제 도입 실태 조사를 통해 “유연근무제도를 도입한다고 모든 기업이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면대면 업무방식과 장시간 근로관행 등 기업문화를 개선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스기사] 외국계 기업에선 지금 - 유연근무로 해외 본사와 시차 자연스레 사라져

“외국계 기업 직원들은 한달 내내 여름 휴가를 가더군요.” 부러움 섞인 국내 한 제조 업체 직원의 얘기다. 법적으로 보장됐다는 휴가를 가려고 해도 상사 눈치를 봐야 하는 한국 기업문화와는 너무 다르다. 외국계 기업은 본사가 해외에 있어 국내 기업의 분위기와 차이가 있다. 한국에 진출하면서 자사의 근무 제도를 이식했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IBM·P&G·유한킴벌리 같은 외국계 기업들이 1990년 대에 유연근무제를 한국 자회사에 본격적으로 들어왔다. 90년대는 주5일 근무제가 시행되기 전이다. 토요일에도 일을 해야했던 한국 근로자에게 유연근무제는 낯설 수밖에 없는 제도였다. 유한킴벌리는 94년에 출퇴근 시간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는 시차출퇴근제를 도입했고 99년에는 현장출퇴근제를 마련해 직원들이 굳이 사무실에 들어오지 않아도 필요할 경우 업무 현장으로 출근할 수 있도록 했다. 또 2012년 5월에는 재택근무제를 도입했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는 2007년 8월부터 출퇴근 자유제, 탄력근무제, 원격근무 등을 시행했다. 또 한국P&G도 자율 출퇴근제와 재택근무를 활용 중이다. 8시간 근무 범위 내에서 근로자가 오전 8~10시 사이에 출근시간을 정할 수 있다. 2012년에는 주1회 재택근무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외국계 기업이 유연근무제를 빨리 도입한 이유는 또 있다. 시차 때문에 본사와 업무를 진행할 때 밤늦게 또는 새벽에도 일을 해야 한다. 실제 미국 밀워키에 본사를 둔 존슨콘트롤즈오토모티브코리아는 이런 애로사항을 해결하고자 2011년부터 탄력근무제를 본격적으로 시행했다.

이처럼 합리적 근무 문화는 회사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기반이 될 수 있다.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유한킴벌리의 경우 2012년 재택근무제 등의 도입 이후 직원의 직무 몰입도가 76%(2010년)에서 87%(2013년)로 높아졌다. 대외 이미지 제고에도 크게 도움이 되고 인재를 끌어모으기도 용이하다. 실제 상당수 국내 기업 근로자와 구직자는 외국계 기업으로의 이직이나 취업을 선호하고 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올해 4월 20~30대 직장인 15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6.4%가 “기회만 된다면 외국계 기업으로 이직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1348호 (201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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