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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에선 지금] 보수적인 은행권도 업무 혁신 진보적 실험 

신한은행, 7월부터 유연근무제 전격 도입 ... 장시간 근로 풍토 바뀔지 주목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지난 7월 25일 문을 연 스마트워킹 강남센터에서 일하는 신한은행 직원들.
“본점까지 출근하는 데 보통 1시간가량 걸렸거든요. 집 근처에 있는 스마트워킹센터에서 근무하게 되니까 가족과 함께 보낼 시간이 늘었습니다. 아침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출근할 수도 있게 됐고요.” 신한은행 인재개발부 방영범 차장은 7월 말부터 서울 역삼동 신한은행 도곡중앙점 1층에 마련된 스마트워킹 강남센터에서 근무한다. 신한은행이 7월 25일부터 시범적으로 재택근무와 스마트워킹센터 근무를 포함한 유연근무제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신한은행에 따르면 재택근무를 이용할 수 있는 직군에 속한 직원은 약 6500명이다. 전체 직원(1만4000여 명)의 46%에 달한다. 단, 재택근무를 하면 은행 내부 전산망에 접속할 수 없기 때문에 전산망을 쓰지 않고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조건 때문에 기획이나 서류작성, 상품개발, 디자인 개발 같은 업무를 하는 경우에 주로 이용하게 된다.

스마트워킹센터에선 반바지·후드티 입고 근무

‘스마트워크’라고 부르는 스마트워킹센터 근무도 대상은 재택근무와 같지만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좀 더 많다. 강남과 죽전, 서울역 인근에 운영 중인 3개의 스마트워킹센터에선 은행 내부 전산망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부에서 기획·연구조사·상품개발 업무를 맡고 있거나, ICT그룹의 분석·설계를 담당하는 직원이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고 집 근처 스마트워킹센터에서 일하면 된다. 센터엔 화상회의 시스템을 갖춘 회의실과 직원들이 쉴 수 있는 휴게실도 갖췄다. 이곳에선 자유롭고 유연한 생각을 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 근무 시 아무런 복장 제한을 두지 않았다. 청바지·운동화뿐 아니라 반바지나 모자가 달린 후드티 등 모든 복장이 허용된다. 영업점 직원 중 외부 섭외를 담당하는 RM(기업담당자)이나 PB(프라이빗뱅커)도 스마트워킹센터를 이용할 수 있다.

은행 영업점 직원은 창구에서 고객을 대면해야 하기 때문에 재택근무나 스마트워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신 출퇴근 시간을 자신의 생활패턴에 맞게 조정하는 자율출퇴근제를 선택할 수 있다. 1만4000여 명의 은행 직원 모두가 필요할 때 이용할 수 있는 근무 형태다. 아이의 어린이집 등원을 위해 출근시간을 미루거나, 해외 파트너의 업무시간에 맞추는 경우, 원거리 주말부부라 월요일에만 늦게 출근하는 경우, 러시아워를 피해 조기 출근해서 업무를 시작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출근시간은 오전 9~11시로 유연하게 설계할 수 있다. 필요에 따라 하루나 장기간, 또는 주기적으로 골라서 신청하면 된다. 신한은행에 따르면 8월 8일까지 유연근무제 이용자는 스마트워킹센터 근무자가 누적으로 383명(하루 평균 30명 수준), 자율출퇴근제가 137명, 재택근무가 14명이다. 은행 측은 보다 많은 직원이 유연근무제를 선택하도록 지점장·부서장들을 독려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우선 올 연말까지 유연근무제를 시범 실시한 후 제도를 보완해나갈 방침이다.

유연근무제 도입에 대해 신한은행은 “스마트근무제는 디지털 시대에 맞는, 시공간의 제약 없이 효율적으로 일하는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한다. 직장어린이집 구축, 전 직원 취미활동 지원 등을 포함한 ‘신한 행복 프로젝트’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보안 문제 때문에 도입이 상대적으로 어렵다고 여겨진 은행에서 재택근무 등 유연근무제를 도입하자 업계에선 주목하고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대기업은 물론 다른 은행에서도 스마트근무제에 대한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인사관리·평가 방식 달라져야

출퇴근 시간과 근무 장소를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는 유연근무제를 은행권에서 최초로 도입한 건 한국씨티은행이다. 한국씨티은행은 2006년 직원만족도 조사에서 ‘내 자신이나 가족의 욕구를 충족시킬 만큼 업무 일정이 탄력적인가’라는 질문에 직원의 32%만이 만족한다는 설문 결과가 나오자 2007년 ‘자율근무제’를 도입했다. 누구든 특별한 사유가 없더라도 부서장에게 ‘자율근무제를 쓰겠다’고 알리기만 하면 이용할 수 있다. 총 근로시간에 변동이 없기 때문에 급여나 복리후생에 부정적인 영향은 없다. 근로자로서는 출퇴근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직무만족도와 근로 의욕, 조직에 대한 헌신도를 높이는 효과도 있다. 특히 은행 직원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의 지속적인 근무를 돕는 데 효과적이다. 한국씨티은행의 경우 도입한 지 이미 10년 째 되면서 실제 자율근무제를 이용하고 있는 인원이 220명, 전 직원의 6%에 달할 정도로 정착돼있다. 한국씨티은행 인사 관계자는 “자율근무제는 일과 생활의 균형을 제공할 뿐 아니라 업무의 집중도와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며 “직원 만족도 조사에서 ‘일과 삶의 균형’ 항목의 만족도가 자율근무제 도입 초기엔 70% 안팎이었지만 현재는 90%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전 한국씨티은행장인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은 지난해부터 은행연합회에도 직원 사정에 맞게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는 유연근무제를 도입했다. 직원들의 업무효율성을 높이고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토록 하기 위한 제도다. 아직까지는 전 직원이 아닌 초등학교 3학년 이하의 어린 자녀가 있는 직원이 대상이다. 기존 출퇴근 시간(오전 9시~오후 6시)을 1시간씩 앞뒤로 조정할 수 있게 했다. 8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8시에 출근하면 5시, 10시에 나오면 7시에 퇴근하면 된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아이가 어린 직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며 “유연근무제를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유연근무제는 직원의 만족과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여성 직원 비율이 높은 편인 은행권에서는 어린 아이를 돌봐야 하는 워킹맘에 대한 효율적인 지원책이기도 하다. 동시에 은행 입장에서는 초과 근무를 줄이는 부수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은행원은 대표적인 장시간 근로 직종이다. 한국노동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은행원은 주 5일 평균 실질근무시간(점심시간 등 제외)은 56시간으로 하루 11시간이 넘는다. 갈수록 은행의 수익성이 감소하고 있다는 점에서 초과 근무 수당 등의 비용을 줄이는 건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강민정 여성고용연구센터장은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서는 장시간 근로부터 해결돼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근무시간 자체가 유연해야 한다”며 “요즘엔 워킹맘뿐 아니라 남성들도 아이를 돌보기 위해 출퇴근 시간을 조절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기업은 유연근무제, 특히 재택근무를 하면 인사평가는 어떻게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다”며 “직무 중심 인사시스템이 갖춰진다면 해결될 문제이지만 아직까지는 유연근무제 이용자가 경력개발이나 승진에서 불이익을 느낄 가능성이 있는게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일하는 방식이 바뀌고 유연근무제가 정착하려면 이에 맞춰 인사관리와 평가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는 뜻이다.

1348호 (201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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