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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벤처 업계에선 지금] 구글처럼 … 업무도 출퇴근도 알아서 

눈치 안 주고 받지도 않는 시스템 … 사내 메신저로 업무 지시·관리 

박진석 기자 kailas@joongang.co.kr

▎서울 송파구 석촌동 우아한형제들 사무실 입구에 게시돼 있는 ‘2016 새마음 캠페인’ 현수막.
음식배달 애플리케이션(앱) ‘배달의 민족’으로 급성장중인 기업 ‘우아한형제들’의 서울 송파구 석촌동 사무실 입구에는 초록색 현수막이 대문짝 만하게 걸려 있다. 적혀 있는 문구는 간단하다. ‘1. 퇴근할 땐 인사하지 않습니다’와 ‘2. 휴가에는 사유가 없습니다’가 전부다. 각각의 문구 아래에는 ‘퇴근할 때 눈치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맙시다’ ‘휴가 신청 시 사유는 묻지도 말하지도 않습니다’라는 부연설명이 붙어 있다. 성호경 홍보팀장은 “올해부터 시행하고 있는 2016 새마음 캠페인”이라며 “성장이 빠른 벤처기업의 특성상 일이 많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구성원들은 마땅히 누려야 하는 개인시간을 부담없이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LG전자도 벤처기업 시스템 벤치마킹


유연근무의 원조는 대기업이나 금융사가 아니다. 굳이 원조를 따지자면 미국의 대표적 IT기업인 구글이 강력한 후보 중 하나 일 것이다. 유연근무를 대변하는 자유로운 출퇴근은 구글을떠올릴 때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이미지다. 구글이 뿌린 씨앗을 국내에서 가장 먼저 받아 안은 업권도 벤처·중소기업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최근 유연한 조직의 출범을 선언했을 때 내세운 것 역시 벤처기업 벤치마킹이었다. 벤처·중소기업이 국내유연근무의 시발점이 된 건 업권 특성상 재택근무나 출퇴근 시간의 조정 등 유연한 근무가 가능하다는 이유가 크다.

우아한형제들의 기업문화를 좀 더 들여다보자. 이 회사는 지난해부터 ‘4.5일제’ 근무 시스템을 도입했다. 월요일 출근시간을 오후 1시로 늦춰 말 그대로 4.5일만 근무하면 되도록 했다. 토요일과 일요일, 월요일 오전을 더해 2.5일은 휴무다. 적당히긴 여행을 떠났다 올 수 있다. 매주 월요일이면 자녀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줄 수도 있고, 혼자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곁들여 한가로이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수도 있다.

‘지만가’라는 제도도 있다. ‘지만(저만) 집에 갑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줄임말이다. 본인·배우자·자녀와 양가 부모님 생일, 본인 결혼기념일에는 오후 4시에 퇴근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다. 임신 사실이 확인되면 그 때부터 출산 휴가 전까지 매일 2시간 일찍 퇴근 또는 2시간 늦게 출근할 수 있다. 임신부의 남편은 아내의 산전검사일에 재택근무를 할 수 있고, 출산 전 후 2주 동안은 출산휴가도 갈 수 있다. 학부모인 직원들은 자녀의 입학식·졸업식·운동회 등에 별도의 연차를 사용하지 않고도 자유롭게 참가할 수 있다.

다른 벤처·중소기업에서도 유연근무 시스템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서울 사당역 인근에 자리잡고 있는 IT업체 코마스 직원들은 전체 회의가 있는 월요일만 정상 출근하면 된다. 나머지 요일은 본인이 알아서 출퇴근하고 알아서 업무를 본다. 회사 업무 특성상 밤이나 주말에 일하는 직원이 많아 그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도입한 제도다. 이 회사의 주요 고객사인 금융권 등의 서버 관리작업을 하려면 주말이나 야간에 일을 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덕택에 오전 운동을 하고 10시 이후에 천천히 출근하는 직원들도 많다고 한다.

한샘개발 콜센터의 여성상담사들은 초등학생 자녀들의 방학기간에 3개월 동안 재택근무를 할 수 있다. 방학 때는 자녀가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어나게 되는데, 이에 대한 육아지원이 없다는 점에 착안해 시행한 제도다. 자녀를 둔 모든 상담사가 혜택을 받는 건 아니다. 2년 이상 근무하고 전문성을 인정받은 상담사만 3개월 재택근무가 가능하다. 상담사는 육아에 대한 고민없이 근무를 계속할 수 있고, 회사 역시 우수인력의 이직을 막는 효과를 거두게 됐다. 이 제도 시행 이후 5%에 달하던 이 회사의 이직률은 2%로 낮아졌다.

정보보호컨설팅 업체인 트리니티소프트는 2013년 본사 사옥을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에서 경기 안양으로 옮기면서 유연근무 시스템을 도입했다. 직원들이 장거리 출퇴근을 하게 되면서 업무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을 내린 끝에 취한 조치다. 먼저 직원 전체의 근무시간을 7시간 30분으로 단축한 후 시차출퇴근제를 도입했다. 출근은 오전 8~10시 사이에, 퇴근은 오후 4시30분~6시30분 사이에 자율적으로 하면 된다.

번역 업체인 파인글로벌은 3년 동안 근무했던 직원이 결혼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게 된 것을 계기로 재택근무 제도를 도입했다. 전체 직원의 70%가 여성인 이 회사는 재택근무도입으로 숙련된 근로자의 이직을 막을 수 있었고, 직원은 경력단절을 피할 수 있게 됐다.

이유식 제조 업체인 에코맘의산골이유식은 직원 개개인의 사정에 따라 맞춤형 유연근무 시스템을 시행하고 있다. 컴퓨터만 있으면 업무가 가능한 온라인 마케팅 담당 직원은 재택근무를 하고, 유통관리 담당 직원들에게는 시차출퇴근제를 적용하는 식이다. 재택근무 직원은 일주일에 이틀만 출근하면 된다.

화장품 제조 업체인 지엠홀딩스는 원격근무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회사의 직원들은 일주일에 1~2일은 자택 등 외부 컴퓨터에서 사내 메신저에 접속해 업무협의를 진행한다. 컴퓨터시스템 개발 업체인 한국비투아컨설팅도 출산·육아·자녀 진학 등 시기를 맞은 직원의 퇴직을 예방하기 위해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업무를 지시하고 관리한다.

벤처기업에서 시작해 이제는 큰 기업이 된 업체들도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의 틀에 박힌 업무문화를 거부한다. 바이오벤처 1세대 기업인 메디포스트도 선구적으로 유연근무 시스템을 도입했다. 오전 8~10시 사이에 출근하면 되는 시차출퇴근제, 주 40시간 근무 요건만 채우면 되는 탄력근무제를 도입했다. 모바일 그룹웨어를 활용한 결재시스템인 스마트워크 시스템도 시행하고 있다. 이 회사에서는 여직원이 육아휴직이나 출산휴가 등을 사용할 때도 전혀 눈치를 보지 않는다. 여성인 양윤선 대표가 출산 후 경력 단절을 좋지 않게 생각해 육아휴직 등을 권장하는 기업문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생산성·직원 만족도 모두 높아져

네이버의 책임근무제도 대표적인 유연근무 시스템이다. 네이버는 2014년부터 출퇴근 시간을 없앴다. 인사, 총무, 복리후생 관련 결재도 70%는 직원 본인의 전결로 이뤄진다. 휴가도 상사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마음껏 갈 수 있다. 카카오는 3년 근속할 때마다 1개월 간의 안식휴가를 준다. 급여가 정상적으로 나올 뿐 아니라 200만원의 휴가비까지 별도 지급된다. 유연근무를 도입한 업체와 직원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라고 한다. 메디포스트 관계자는 “유연근무 실시로 생산성과 직원 만족도가 향상됐다”며 “기업 이미지도 개선돼 이직률이 감소했을 뿐 아니라 우수인재 유치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중소기업의 유연근무제 도입을 적극적 지원한다는 입장이다. 고용부는 최근 유연근무제를 도입하는 중소기업에게 원격·재택근무 등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비용을 지원하기로 했다. 지원 규모는 기획재정부와 협의 중이지만 한 기업당 1600만원 정도를 지원 중인 일본과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라는 게 고용부의 설명이다.

1348호 (201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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