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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그 후 경제적 파장은] 경기 침체 속 소비절벽 우려 커져 

 

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추석 전후 대형마트 한우·인삼·과일 판매 줄어... 부적절한 접대 비용은 줄어들 듯

▎김영란법 시행 첫 날인 9월 28일 부산시청 공무원들이 시청앞 돼지국밥집에서 식사 후 계산대에 몰려 각자 식사요금을 계산하고 있다. / 사진:송봉근 기자
한국 사회가 ‘가보지 않은 길’에 들어섰다. 도입 이전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던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 9월 28일 자정을 기해 시행됐다. 정(情)이란 이름의 푸짐한 선물 관행, 학맥과 인맥을 통한 청탁 등은 더 이상 발 붙이기 어려운 사회가 됐다. 대신 각자의 몫은 각자가 지불하는 ‘n분의 1’의 시대가 열렸다. 한국 사회를 송두리째 바꿔놓을 큰 변화다.

사회를 보다 투명하고 깨끗하게 하겠다는 이 법에 취지에는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일반 시민 10명 중 7명이 김영란법 시행에 찬성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하지만 투명사회로 가는 길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특히 경제적 파급 효과에 대해서는 걱정의 목소리가 높다. 긍정적인 취지에도 법에서 정한 구체적인 금지 행위가 모호해 가계·기업·공공 등 경제 주체의 소비심리가 잔뜩 움츠러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미 국내 주요 경제 수장들은 이런 부작용에 대한 염려를 쏟아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8월 9일 금융통화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김영란법이) 중장기적으로 사회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순기능이 예상된다”며 “하지만 단기적으로 일부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수요 위축이 빚어지고 이로 인해 고용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8월 28일 ‘최근 파업 동향 및 대응방안 관계부처 회의’에서 김영란법 시행에 따른 영향에 대해 “처음에는 간과했던 고용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유 부총리는 “어느 식당에서는 단가를 낮추려고 뷔페식으로 바꾼다고도 하는데 그럼 거기에서 일하던 사람이 어떻게 될지 걱정된다”며 “법의 취지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이 없고 기왕 시행되는 것 잘 정착돼야 하지만 당장 마찰적으로 고용 문제가 나오는 건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단기적으로 마찰적 고용 문제 심해질 가능성


무엇보다 한국 경제가 안팎으로 어려운 환경에 놓여있어 김영란법 시행에 따른 충격을 감내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7월 전체 산업생산은 전년 대비 0.1% 줄며 3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7월 설비투자는 1년 전보다 11.6% 급감했다. 설비투자 감소 폭은 2003년 1월(-13.8%) 이후 최대치였다. 같은 달 소매판매는 2.6% 줄며 2014년 9월(-3.7%) 이후 1년 10개월 만에 감소폭이 가장 컸다.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생산·투자·소비 등 3대 주요 지표가 모두 부진한 것이다. 특히 내수 침체가 걱정스럽다. 가뜩이나 수출이 부진한 상황에서 김영란법이 시행돼 소비가 충격을 받으면 내수마저 가라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김영란법 시행으로 연간 11조6000억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음식업(8조5000억원)을 비롯해 선물 관련 산업(2조원), 골프장(1조1000억원)이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봤다. 이 수치가 지나치게 과장됐다는 주장도 일각에서 나온다. 하지만 김영란법 시행 후 소비 위축 분위기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한정식집과 같은 고급 음식점이 업종을 바꾸거나 아예 문을 닫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김영란법의 주 타깃인 공직자들이 외부인과의 만남을 극도로 자제하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화훼업계, 회원제 골프장 역시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선물 관련 산업 역시 타격이 가시화되고 있다. 올해 추석은 김영란법이 시행되기 전이었지만 선물용 한우 판매액 등이 1년 전보다 20% 가까이 줄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농협 5개 유통회사와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등 대형 유통 업체들을 대상으로 한우와 인삼, 과일의 추석 전후 30일 간 판매 실적을 분석한 결과 전체 판매액은 939억4000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004억5000만원)보다 6.5% 감소했다. 특히 가격이 비싼 한우 선물세트 판매액은 309억2000만원으로 1년 전보다 19.2% 급감했다. 김영란법이 적시한 선물 상한액이 5만원인데 한우 선물세트는 이를 지키기 어려운 탓이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에는 판매 감소폭이 더 커질 전망이다.

뿐만 아니라 기업들도 대 언론 홍보를 위한 비용을 줄이려는 모습이다. 한 금융사의 홍보팀 관계자는 “회사의 실적 자체가 좋지 않은데다 김영란법 부담까지 있어 법인카드 한도를 축소하거나 식사 비용을 일일이 기재해 보고해야 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배현기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은 “2004년 접대비 실명제 도입 당시 접대비 규모가 줄었는데 김영란법은 적용 범위가 광범위해 이보다 파급효과가 훨씬 더 클 것”이라며 “무엇보다 그간의 여러 관행이 법으로 규제되면서 이에 따른 단기적인 소비 부진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영란법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장기적으로는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안겨줄 거라는 주장도 있다. 과도한 접대문화에 따른 비정상적이고 음성적으로 사용했던 비용이 생산적인 방향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기업들은 매년 1조원 넘게 접대비 명목으로 룸살롱과 같은 유흥업소에서 돈을 펑펑 썼다. 국세청이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2011~2015년 기업 접대비 지출 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해 전체 법인이 지출한 접대비 총액은 9조9685억원에 이른다. 이 중 유흥업소에서 쓴 접대비는 1조1418억원 이었다. 룸살롱(6772억원)·단란주점(2013억원) 등에서 주로 사용했다. 김 의원은 “접대비를 업무 관련성이 적고 비생산적인 유흥업소에서 지출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이런 관행은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또 고급 음식점 등은 타격을 입겠지만 중저가 식당이나 가격이 싼 선물 관련 업종의 경우 오히려 수혜를 입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실제 농림부에 따르면 올 추석을 앞두고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과일 선물세트 판매액은 515억7000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 증가했다.

만연한 부패 줄이는 계기될 수도

장기적으로 김영란법이 원래 의도대로 한국 사회에 만연한 부패를 줄인다면 한국 경제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지난해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발표한 부패 인식지수에 다르면 한국은 100점 만점(가장 깨끗한 상태)에 56점에 그쳤다. 조사 대상 168개국 중 37위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가운데서는 27위로 하위권이다. 부패 수준이 높을수록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는 건 자명한 일이다. OECD가 올해 발표한 ‘뇌물척결보고서’에 따르면 부패가 만연한 나라는 청렴한 나라보다 해외직접투자(FDI) 유치 확률이 15% 낮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김영란법에 따른 손실 규모가 크다는 것은 그만큼 접대문화의 비정상적인 측면이 컸다는 의미도 된다”며 “장기적으로 이 부분이 투자 등으로 옮겨가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1354호 (201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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