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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헌의 경제에 비친 세상 읽기] 상식적 의혹의 묵살 ... 인포피아·넥슨·금호·대우조선 그리고… 

금융당국·회계감시인·개인투자자, 비상식적 공시·계약 등 묵살하거나 외면하고 넘어가 

김수헌 글로벌모니터 대표

▎넥슨의 비상장 주식을 뇌물로 받았다는 의혹 등을 받고 있는 진경준 검사장은 긴급체포돼 7월 17일 구속됐다.
정치·사회·경제, 영역을 불문하고 상식 수준을 넘어서는 사건이 차고도 넘친다. 비리의 고구마 줄기를 캐는 일은 대개 상식적 의혹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사건의 실체는 때때로 상상 이상의 모습으로 추악하게 드러난다. 진경준 사건이 그랬다. 지난 4월 초 당시 진경준 검사장(법무부 출입국 외국인정책본부장)의 넥슨 주식 의혹이 막 불거지던 무렵, 몇 사람이 저녁식사 자리를 했다. 진 검사장의 넥슨 주식 매입과 보유, 막대한 매각 차익 획득 과정에 상식과 동떨어진 부분이 꽤 있다는 필자 지적에 동석했던 모 기업 임원은 정색을 했다. “글쎄요. 너무 색안경 끼고 보는 것 아닙니까. 검사라고 해서 비상장주식 못 가질 이유도 없고, 해외 이민 가는 주주가 급하게 내놓은 주식을 지인들과 함께 우연히 사게 됐다고 본인이 다 설명했던데요. 김정주 넥슨 회장과의 학연 같은 것만으로 지나친 의혹을 제기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가벼운 이야기나 하자”는 누군가의 제안에 진 검사장 이슈는 저녁자리 화제에서 멀어졌다.

그런데 석달 후 사건은 어떻게 되었나. 진 검사장은 김정주 넥슨 회장으로부터 10억대 넥슨 주식과 고급 승용차 등을 사실상 뇌물로 받아 120억원대 차익을 얻었다. 그리고 처남 사업체를 지원하기 위해 내사 대상인 기업체를 을러 일감을 얻어낸 혐의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법조 시스템 전반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지만 ‘부도덕한 한 검사의 일탈’ 정도로 치부되는 분위기다. 네이처리퍼블릭 정운호 회장의 해외 도박 사건이 결국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와 검사장 출신 변호사가 연루된 법조 스캔들로 비화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얼마 전 한 코스닥 상장기업이 개미투자자 무덤이 된 사건이 있었다. 필자는 오랫동안 이 사건의 전말을 관찰하고 지켜봤다. 상식적 의혹 제기에 초동 대처만 잘 했어도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공시제도의 허점이 여실히 드러난 사건인데도, 부덕한 경영진과 기업사냥꾼의 합작 비리 정도로 치부되고 있어 안타까운 사건이다.

부도덕한 한 검사의 일탈?


▎진경준 검사장에게 주식을 무상으로 제공한 혐의로 기소된 넥슨 창업주 김정주 NXC 대표가 8월 1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차 공판준비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지난 8월 23일, 금융비리 저승사자로 불리는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가 10쪽에 달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제목은 ‘유망 코스닥 상장사 전현(前現) 경영진 비리 수사결과 발표’. 필자는 이 사건을 ‘외자 유치로 위장한 신종 막장 무자본 M&A’라고 규정한다. 인포피아는 한때 정부가 선정한 ‘월드클래스 300’기업, ‘히든챔피언’ 기업에 뽑힐 정도로 전도유망한 코스닥 기업이었다. 서울대 공대 출신의 창업자 배병우 대표는 회사 주력인 혈당측정기 사업이 예상보다 순탄치 않게 흘러가자, 2015년 3월 동아쏘시오홀딩스(동아제약그룹 지주회사)에 본인 지분 17%를 매각키로 했다. 그러나 경영권양수도 계약은 얼마 안가 깨졌다. 회사 실사 후 동아 측이 지분 인수를 포기했다.

필자가 인포피아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있다. 당시 이 회사는 영업흑자로 전환했다는 실적 공시를 냈다가 회계법인 감사를 받은 후 영업적자로 정정했다. 그런데 언론 매체에 밝힌 정정 이유와 필자가 분석해 본 재무제표 내용이 일치하지 않았다. 뭔가 석연치 않은 기업인데다 M&A 이슈까지 있어 지속적으로 살펴보기로 했다. 한달 반 만에, 배 대표는 에이치투에이치파트너스라는 새로운 인수자에게 지분을 넘기기로 했다고 증권시장에 공시했다.

에이치투에이치는 등장부터 미스터리였다. 자본금 5000만 원의 이 회사는 계약 직전에서야 설립등기를 마친데다 주소지를 서울 외곽 단독주택으로 추정되는 건물에 두는 등 의문을 자아냈다. 누가 봐도 페이퍼컴퍼니 수준의 회사였다. 페이퍼컴퍼니를 형식상 M&A의 법적 주체로 내세우는 경우는 흔하다. 일종의 M&A 기법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 이 페이퍼컴퍼니를 지배하는 실제주체는 그 정체가 명백하다. 대개 기업이나 사모펀드(PEF)다. 페이퍼컴퍼니는 초기 인수금융 조달창구로서, 특수목적회사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에이치투에이치라는 회사를 지배하는 것은 이모씨라는 개인이다. 그가 단독이사이자 최대주주다. 회사 자산이라고 해봐야 달랑 자본금 5000만원뿐인 이 개인회사가 250억원짜리 M&A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이건 아주 상식적인 의문이었다. 더구나 지분양수도 계약 이후 진행 상황은 압권이었다. 두 달 동안 7차례나 중도금·잔급 지급 조건이 바뀌었다. 잔금 지급 여부가 불명확한 상황에서 임시주주총회가 열렸다. 이모씨가 대표로 선임되는 등 에이치투에이치 측 인물들로 경영진이 채워졌다.

에이피투에이치 측은 홍콩 투자회사와 300억원의 투자유치 계약을 했다고 언론 매체에 밝혔다. 인포피아 대표에 정식 선임되기도 전인 6월 한 달 동안 이모씨는 ‘믿거나 말거나’식의 뉴스들을 퍼뜨렸다. ‘중국 10만개 의료 판매스토어 운영회사와 제휴 협의 중’ ‘중국판 카카오톡 위챗과 함께 모바일 헬스케어 시장 진출 준비 중’ ‘바이오센스 기술을 활용한 핀테크 보안사업 진출 예정’ 등과 같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말 안타깝게도 투자자들은 결정적인 공시 1건을 놓쳤다. 인포피아 지분 취득자금에 대한 내용이다. 에이치투에이치는 M&A자금 253억원을 전액 차입했다고 밝혔다. 차입처는 이창환 외 3인. 이 가운데 1인은 해외 금융법인이라고 기재했다. 차입 기간은 ‘상환시까지’라고 적혀 있다. 놀랄 일이다. 해외 금융법인을 포함한 3인이 253억원이나 되는 자금을 자본금 5000만원짜리 1인 주주 회사에 빌려줬다. 그런데도 차입자가 갚을 의사가 있을 때 돈을 돌려 받겠다는 계약을 했다는 이야기다. 그마저도 주식 등 아무런 담보 없이.

비상식적인 공시가 걸러지지 않고…


또 한 가지가 있다. 새 경영진이 들어선 후 인포피아가 공시한 2015년 3분기 사업보고서를 보면 특수관계자에게서 40억원을 빌렸다고 적혀 있다. 이 가운데 10억원은 상환했다고 한다. 자금을 빌려준 곳은 (주)억이라는 회사인데, 바로 인포피아 새 대표 이모씨가 경영하는 소기업이다. 40억이라는 자금을 인포피아에 대여해 줄 만한 역량이 안 되는 곳이다. 이건 무엇을 말하는가. 허위 채권채무 계약을 하고 회사 현금을 야금야금 빼가는 수법 아닌가. 이 M&A의 실체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었다. 명동사채를 동원한 무자본 M&A 가능성을 제기하는 내부 고발자도 나타났다. 그러나 감독당국은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이씨 등 무자본 M&A 세력이 회사 자금과 자기주식 등을 횡령하고 회사를 망가뜨린 후에야 증권거래소는 상장폐지를 결정했다. 검찰은 대주주였던 배병우씨가 무자본 M&A 세력과 함께 220억원대 회사 자산을 빼먹은 비리라고 밝혔다.

주가 폭락과 상장폐지 등으로 피해를 본 개인투자자들은 땅을 쳤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장밋빛 대박의 꿈에 젖어 상식적 의심과 의혹을 외면한 대가를 치른 셈이다.

누군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시가총액 몇백억, 몇천억 정도 코스닥 기업에서나 벌어질 수 있는 일 아닌가”라고. 그렇지 않다. 오히려 시가총액 몇조원대의 굴지 대기업에서도 상식적 의혹 제기는 간간이 묵살 당한다.

비컨과 금호의 의혹투성이 거래 그대로 믿어


현재 재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대우조선이 그렇고, 과거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그랬다. 2008년 8월 ‘비컨(BEACON)’이라는 해외 투자회사가 금호타이어 주식 750만주를 매입하는 일이 있었다. 주당 매입가격은 1만4500원. 당시 금호타이어의 주가는 7000원대였다. 시세보다 무려 두 배 수준의 가격에 금호타이어 지분 10%를 인수한 셈이다. 비컨은 주식매입자금 전액(1억700만 달러, 원화 1100억원)을 연 이자율 4%, 만기 63개월의 조건으로 외부 차입했다고 공시에서 밝혔다. 비컨이 인수한 주식은 금호타이어 2대 주주인 쿠퍼타이어 보유 물량이었다. 쿠퍼타이어는 750만주를 금호 계열사에 매입가격(1만4500원)으로 되팔 수 있는 권리(풋옵션)을 보유하고 있었다. 쿠퍼 측이 풋옵션을 행사하자 비컨이 이를 받아준 모양새가 됐다. 금호로서는 천만다행한 일이었다. 금호가 풋옵션에 응하면 막대한 매입자금 부담도 부담이지지만 시세 7000원짜리를 두 배 수준의 가격에 매입하는 데 따른 손실을 재무제표에 반영해야 할 판이었다. 당시 금호는 유동성 위기설에 시달리고 있었다. 2006년 대우건설 지분 72%를 6조4000억원에 살 때 끌어들인 재무적투자자(Financial Investor)들이 화근이 됐다. 2조9000억원은 금호 계열사들이 빚을 내 조달했고, 3조5000억원은 금융회사, 사모펀드 등의 지원을 받았다.

금호는 FI가 보유한 대우건설 지분에 대해 2009년 말 주당 3만4000원의 가격으로 금호 측에 되팔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당시 대우건설 주가는 1만5000원대. 무려 120%가 넘는 프리미엄을 붙여 풋옵션 가격을 정한 것이다. 이후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대우건설 주가가 하락 일로를 걷자 2008년 상반기부터 벌써 FI 풋옵션 대응자금 등 금호 유동성 문제가 시장에서 거론되기 시작했다. 이런 판국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쿠퍼타이어 풋옵션까지 부각됐다. 이런 시점에 비컨이 구세주로 등장한 것이다.

거래는 처음부터 의혹투성이였다. 시세의 2배 수준인 가격에 거래할 정도로 금호타이어가 전도유망했는가? 그랬다면 쿠퍼 파이어가 지분을 털고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쿠퍼타이어가 금호타이어 2대 주주가 된 것은 전략적 제휴를 맺고 중국 사업 등에서 협력하기 위한 것이었다. 누구보다 금호타이어 사정을 잘 알고 있던 쿠퍼타이어가 서둘러 지분을 정리하고 나가려 했던 만큼 금호타이어 전망은 좋지 않았다.

비컨의 차입 조건도 의심스러웠다. 2년 가까이 돈을 빌리면서 금리가 4% 수준 밖에 되지 않은 것도 당시 금리 수준으로는 쉬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금호 측은 “쿠퍼와 비컨 간 거래내막에 대해 금호는 알지 못하고, 비컨이 누구인지도 우리로서는 알 수 없다”며 “다만 비컨이 금호타이어 성장성을 높이 평가해 주식을 산 것은 맞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많은 의혹을 안은 이 거래의 진실은 2년 후 밝혀진다. 비컨이 금호타이어 지분을 사기 위해 차입한 돈은 금호타이어 자금이었다. 정확하게는 금호 홍콩법인이 현지에서 JP모건 홍콩법인으로부터 빌린 자금을 비컨에게 다시 빌려준 것이었다. 나중에 금호 측은 비컨으로부터 이 돈을 상환받기 어렵다고 보고, 대손처리했다. 검은머리 외국인을 동원한 자기주식 매입 사기 사건이라고 해야 하나? 결과적으로 시장 투자자, 채권단, 당국 모두가 속았다.

상식적 의문이 드는 거래라면 적어도 당국은 사실 여부를 파악해 봤어야 했다. 해외 투자자가 시세 2배 수준의 가격에 살 정도니 금호타이어가 유망한 모양이라며 뛰어든 개인들은 엄청난 피해를 봤다. 당시 의혹을 제기한 목소리가 소수 있었지만 ‘설마 금호 정도 기업이 장난질을?’이라는 반박에 묻혔다. 금호는 결국 어떻게 되었나.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등 인수했던 기업을 모두 토해내야 했다. 대우건설은 산업은행 소유로 넘어갔고 대한통운은 CJ그룹에 매각됐다. 주요 계열사들도 채권은행이나 사모펀드로 넘어갔다. 그룹은 두 동강이 났다. 다들 아다시피 지금 박삼구 회장은 금호그룹을 재건하겠다며 여기저기 자금을 끌어대느라 동분서주하고 있다.

대우조선 사태는 아직 진행 중이다. 청문회를 하느니 마느니, 누구 누구를 증인으로 부르니 마느니 한참 정치권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2014년 현대중공업이 수조원의 해외 부실을 정리하느라 막대한 당기순손실을 낼 때 대우조선은 이익을 냈다. 조선업 불황으로 수주 가뭄에 시달리며 조선 업계가 악몽의 한 해를 보냈지만, 유일하게 수주 목표를 홀로 초과 달성했다. 저가 입찰 의혹이 일었지만, 대우조선의 탁월한 기술력과 경쟁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설명에 의혹은 사그라들었다. 보수적이던 선사들이 신기술 도입을 검토하면서 대우조선해양이 대박 행진을 이어갔다는 찬사도 쏟아졌다. 당시 고재호 사장의 탁월한 경영수완이 주효했다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보니, 이 모든 것이 5조원대 분식회계로 귀결됐다. 당시에도 대우조선을 분석하는 이들 가운데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이미 해외플랜트 사업 부실 때문에 2013년~2015년까지 드라마틱한 실적 그래프를 보여줬다.

“조선 업체의 해양플랜트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대우조선의 해양플랜트 손익을 좀 더 정밀하게 들여다봐야 하는 것 아닌가? 현대중공업은 7조원 해양플랜트 사업에서만 1조3000억원의 충당금을 적립했는데, 10조원의 대우조선은 안전한가? 7조원이 넘는 미청구 공사금액 가운데 회수가능한 금액은 과연 얼마나 될까? 망갈리아조선소, 드윈드(Dewind) 등 자회사들의 부실은 재무제표에 정상 반영되었는가?”

썩어가던 대우조선의 성과급 잔치를 허용한 대주주 산업은행, 금융당국, 회계감사인이 이런 의문과 의혹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물론 거대 조선사 경영진이 작심하고 분식을 하고 부실을 숨길 경우 회계감사인이 이를 포착해 내기란 정말 어렵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그것이 어렵지 않도록 감사시스템을 만들고, 공시를 포함한 제도적 감독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대우조선은 부도덕한 경영진이 저지른 비리 수준이 아니다. 안팎 모든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상식적 의문과 의혹이 묵살당하면 이런 일은 또 일어난다.

필자는 국제경제와 금융시장을 분석하는 미디어&리서치 ‘글로벌모니터’ 대표를 맡고 있다.

1353호 (201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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