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ey

[자본시장의 리더 | 세계 최대 선물거래소 CME 그룹 에릭 놀란드 수석 이코노미스트] 클린턴 집권하면 달러화 약세 전망 

 

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미 금리 인상 때 위안화 약세로 한국도 간접 영향권...라니냐 닥치면 유가 급등 가능성

▎에릭 놀란드 CME 그룹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10월 6일 서울 여의도 콘라드 호텔에서 2017년 달러 가치와 원유 가격 전망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상장된 파생상품은 모두 31개다. 2008년 구제역 파동이 터지면서 돼지고기값이 치솟자 돈육(豚肉) 선물이 등장했다. 세계 최대 선물 거래소라 불리는 미국 시카고상업거래소(CME그룹)에선 1619개(2013년 기준)의 파생 상품이 거래된다. 적설량을 기초로 한 상품도 거래된다. 1800년대부터 미국의 곡물 유통 중심지인 시카고에서 상인과 농민 간 보증을 통한 선물(先物) 거래를 도입해 세계 최대 선물 거래소로 거듭났다.

세계 최대 선물거래소인 만큼 CME 그룹이 세계 환율과 에너지 자원 흐름을 예측하면 투자자들이 귀를 쫑긋한다. CME 그룹의 에릭 놀란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월스트리트저널(WSJ)·블룸버그통신 등 해외 유력 매체에 자주 인용된다. 지난해 18년 만에 등장한 수퍼 엘니뇨로 농산물 가격이 치솟을 때 WSJ와 인터뷰에서 “강력한 엘니뇨가 왔기 때문에 라니냐도 힘이 세진다”며 “2017년 대두·옥수수·밀 등 곡물 가격이 50% 이상 급등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놀란드는 미국의 대선 이슈로 내년 환율을 예측했다. 우선 베팅 시장에서 70%의 당선 확률을 내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이 당선될 경우 미 달러 가치는 지금과 같이 유지되거나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해 추가 재정 지출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작다”고 말했다. 특히 미국의 부채 규모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250%를 육박하는 상황에서 연방준비제도(Fed)가 통화 정책을 지금처럼 완만하게 유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부채 문제 때문에 Fed의 금리 인상은 올해 한 차례에 밖에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브렉시트 협상 지지부진하면 유로화 약세


뉴욕의 부동산 개발업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면 엄청난 재정 확대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놀란드는 “트럼프는 급진적인 감세안과 군사 비용 지출, 인프라 투자 확대를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만약 트럼프의 정책이 시행된다면 연방 정부의 재정 적자가 커지고, 달러는 강세를 띄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달러 강세는 중국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는 “미 달러가 강세를 띄게 되면 중국 위안화는 평가 절하돼 세계적으로 많은 위험 요소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도 세계 환율 변화에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영국은 2017년 3월부터 브렉시트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시한을 못 박은 상태. 하지만 이탈리아·프랑스·독일·스페인이 올해 말에서 내년 초까지 큰 선거를 앞두고 있어 협상을 책임지는 각국 상대방이 바뀌는 변수가 발생할 수 있다. 놀란드는 “협상이 지저분해질수록 영국 파운드화와 유로화 가치가 모두 달러 대비 약해질 가능성이 크다”며 “지금처럼 원화가 미 달러와 비슷한 기조인 상황에서 한국 수출 업체에는 악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연말에 금리 인상을 하게 되면 한국과 같은 이머징 국가 통화 가치가 떨어질 가능성이 크지 않나”라는 질문에는 “일단 한국은 이머징 국가가 아니다.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지 오래됐다”고 못을 박았다. 그러면서 “미국의 금리 인상에 한국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중국 위안화가 미국 달러와 밀접하게 연동돼 미 금리 인상 후 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놀란드는 “미 금리 인상으로 위안화 가치가 급격하게 하락한다면 원화도 평가 절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위안화 평가 절하는 중국 금융이나 부동산 시장에는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제조업은 살릴 수 있다. 그는 “최근 중국 정부가 재정 정책으로 일시적인 방어는 했지만 위험한 상황”이라며 “올해부터 2020년 사이 언젠가 중국에서 미국 금융위기와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에 대한 언급도 했다. 그는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이 시행됐지만 엔화 가치는 올해 2월 이후 20% 반등했다”며 “예상치 않은 긴축효과가 나와 한국 원화가 엔화에 비해 경쟁력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 중앙은행이 엔화를 약세로 돌린다면 한국 원화 가치가 떨어지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철광석 가격 인상은 중국 위안화와 한국 원화, 미국 달러에 좋은 소식이 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놀란드는 “중국은 한국이나 미국처럼 오래된 빌딩이나 폐차된 자동차를 통해 철을 재사용하지 못해 세계 철광석 생산량의 3분의 2를 쓴다”며 “철광석 가격 상승은 위안화 가치 하락을 막는 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경제 성장의 걸림돌로 지목 받고 있는 저유가는 내년에 개선될 수 있을까. 놀란드는 “당분간 배럴 당 50달러 수준으로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80년대 석유수출국기구(OPEC)에서 감산을 하기로 합의했지만, 사우디아라비아만 이행하고 다른 국가는 따르지 않은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당시 손해를 본 사우디아라비아는 지금까지 계속 증산을 했고 앞으로도 감산할 생각이 없다”며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란과 외교 관계도 단절돼 있는 상태라 대규모 감산은 기대하기 힘들다”고 언급했다.

아프리카·남미 산유국 정세 불안도 유가 변수

각국의 원유 생산량 증가로 재고량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올해 미국의 원유 재고량은 5억5000만 배럴로 2009년 3억 배럴의 두 배 수준에 이르고 있다. 놀란드는 “최근 싱가포르를 방문했는데 많은 원유 저장탱크가 해안가에 정박해 있는 모습을 봤다”며 “세계적인 원유 재고 물량이 유가 하락을 부추길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2015년 4월을 기준으로 미국의 원유 생산량이 고점을 찍고 하락 중이고, 석유수출국기구가 최근 소폭 감산을 결정해 일부 상승 요인도 있다고 밝혔다. 저유가로 경기가 급격하게 나빠진 앙골라·알제리·베네수엘라·나이지리아·리비아·이라크 6개국의 정세 상태도 변수가 될 수 있다. 놀란드는 “전 세계 석유 공급량의 2%를 생산하고 있는 앙골라에서는 에두아르두 두스 산투스 대통령이 80년대부터 집권하고 있다”며 “대통령직 승계 계획이 명확하지 않은데다 나이도 80세에 가까워 정세 불안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알제리도 올해 80세인 압델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2013년부터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데다 건강이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올해 초 야당이 국민소환 투표를 통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퇴진시키겠다는 청원운동을 벌였다. 놀란드는 “6개국의 석유 생산량은 사우디아라비아보다 많다”며 “정세 불안 요소가 터지면 국제 유가는 70~80 달러로 급등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앞서 농산물 가격 상승 요인으로 언급한 라니냐도 유가를 올릴 수 있다. 놀란드는 “겨울이 얼마나 추운가에 따라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난방유 소비량이 달라진다”며 “올해나 내년에 강한 라니냐가 오면 유가는 치솟을 수 있다”고 말했다.

1356호 (2016.10.24)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