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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젤차는 어디로] 디젤 게이트 덕에 국산 디젤차 판매 탄탄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국내 시장서 수입 디젤차 비중 감소 … 폴크스바겐은 올 상반기 세계 1위 탈환

지난해 9월 불거진 폴크스바겐 ‘디젤 게이트’는 폴크스바겐에만 타격을 입힌 게 아니었다. 수년 간 치솟던 디젤차 인기도 한풀 꺾이게 했다. 특히 폴크스바겐을 비롯한 수입차 시장을 견인한 디젤차 판매 비중이 전체의 50% 이하로 추락하면서 ‘디젤차 르네상스’가 저물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낮은 유지비와 합리적인 가격을 앞세운 디젤차는 그동안 꾸준히 시장 규모를 키워왔다. 하지만 디젤 게이트를 계기로 반전이 일어났다. 소비자들에게 ‘디젤차=환경오염의 주범’이란 인식이 확산하면서다. 연초엔 미세먼지 논란까지 불거지며 ‘미세먼지 주범’이란 오명까지 썼다. 특히 수입차 시장 성장을 견인했던 폴크스바겐·아우디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란 점도 한몫했다.

디젤차 인증 깐깐해져 수입차엔 악재

판매 비중만 봤을 땐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내수시장에서 디젤차 판매 비중은 49.7%로 지난해 상반기(51.9%) 대비 2.2%포인트 하락했다. 디젤차 판매 비중이 50% 이하로 떨어진 건 2014년 이후 2년만이다. 수입차의 경우 디젤차 위축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수입차 시장에서 디젤차 점유율은 2013년 62.1%를 찍은 뒤 2014년 67.8%, 지난해 68.9%로 매년 비중이 늘어났다. 하지만 올 상반기에 7년 만의 감소세를 나타냈다. 올 상반기 수입차 신규 등록 대수는 11만 6749대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포인트 줄었다. 구체적으로 10월에 팔린 수입차 중 디젤차 비중은 49.5%(1만196대)로 나타났다. 2012년 7월 이후 4년 3개월 만에 처음으로 ‘50%’ 벽이 무너졌다. 같은 기간 가솔린차는 41.7%(8596대), 하이브리드차는 8.6%(1780대)로 집계됐다. 디젤차의 경우 지난해 10월 점유율인 63.5%와 비교해 1년 새 14%포인트 추락했다. 가솔린차는 10.9%포인트, 하이브리드차는 3.1%포인트 각각 점유율을 늘렸다.

디젤차 몰락이 본격화한 건 올해 6월부터다. 1월만 해도 수입차 전체 판매의 68.4%를 차지했던 디젤차 비중은 6월 58.4%로 떨어졌다. 그러다 8월 환경부가 폴크스바겐의 사실상 전 차량을 판매 중지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폴크스바겐 ‘티구안’이나 ‘파사트’ ‘골프’ 같은 인기 차종의 주력 모델은 디젤차다.

디젤차가 주춤한 사이 가솔린차가 비중을 늘렸다. 특히 친환경차인 하이브리드차가 약진했다. 국내 시장에서 올 1월 전체 수입차의 4.1%를 차지했던 하이브리드차는 4월 7.8%로 늘어났다. 10월엔 8.6%(1780대)를 기록했다. 올 1~10월 누적 판매량 기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판매량이 68.8% 뛰었다. 하이브리드차를 주력 판매 모델로 미는 도요타·렉서스의 상승세도 이와 관련이 있다. 렉서스의 올 1~10월 누적 판매량은 8003대다. 벤츠·BMW에 이어 3위에 올랐다. 이전엔 아우디·폴크스바겐의 차지였던 자리다. 렉서스의 대표 하이브리드차인 ‘ES300h’의 경우 올해 누적 판매량만 4598대다. BMW ‘5시리즈’, 벤츠 ‘E클래스’에 이어 판매 3위에 올랐다. 도요타도 ‘프리우스’, ‘캠리 하이브리드’ 같은 하이브리드차가 전체 판매의 50%를 훌쩍 넘겼다. 캠리의 경우 하이브리드차가 가솔린차 판매를 뛰어넘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디젤 게이트 여파로 글로벌 환경 규제 강도가 세졌다. 친환경차 시대로 패러다임 변화를 앞당겼다. 당장은 가솔린차가 부각되고 있지만 장기적으론 친환경차 점유율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디젤차 인증이 빡빡해진 것도 수입차 업계엔 악재다. 환경부 관계자는 “디젤 게이트 이후로 한 번 볼 서류도 두 번 세 번 더 확인한다”고 말했다. 한 수입차 인증 담당자는 “제출해야 할 서류가 적게는 수백 장, 많게는 1000장이 넘어간다”며 “자료 제출 미비를 이유로 연구소에서 서류 보완을 요구할 때가 많다. 체감적으로 (디젤 게이트 이전보다) 서류 준비량이 2배 이상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테스트 강도도 세졌다. 과거엔 서류만 확인하고 ‘OK’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엔 실제로 테스트를 진행하는 경우가 늘었다. 수치가 조금만 틀려도 인증 담당자에게 확인 전화가 걸려온다.

가솔린·하이브리드로 대체까지는 시간 걸려

그렇다 보니 통상 1주일~1달쯤 걸리던 인증 심사 기간이 3개월 넘게 이어지기도 한다. 볼보의 경우 지난 3월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XC90을 공개하고도 5월에서야 환경부 인증을 통과해 7월부터 판매에 들어갔다. 지난해 인증을 신청했지만 아직까지 인증을 받지 못한 브랜드도 있다. 피아트크라이슬러는 지난해 10월 환경부에 지프 체로키 디젤 모델 인증을 신청했지만 자료 제출 미비를 이유로 아직까지 보류 상태다. 지난해 2분기엔 81개 수입 디젤차가 인증을 통과했지만 올 2분기엔 25개만 인증을 받았다. 6월엔 1개도 인증을 통과하지 못했을 정도다.

디젤차 판매 비중이 줄었지만 판매량 자체가 움츠러든 건 아니다. 디젤차의 올 상반기 판매량은 33만6896대다. 지난해 같은 기간 판매량(32만1172대)보다 4.9% 증가했다. 수입 디젤차에 비해 국산 디젤차가 받은 타격이 상대적으로 작았기 때문이다.

폴크스바겐 사태 후폭풍으로 디젤차 인증 기간이 길어졌는데도 신차는 꾸준히 시장에 나왔다. 1월 기아차 ‘올 뉴 K7’ 2.2디젤과 르노삼성차 ‘SM3 dCi’를 필두로 20종 이상의 디젤차가 쏟아졌다. 게다가 환경부 재인증을 기다리고 있는 폴크스바겐도 시장에서 철수하는 대신 반격 채비를 갖추고 있다. 내년 상반기엔 베스트셀러인 티구안·골프 신차를 출시할 계획이다.

세계적으로도 폴크스바겐은 상반기 512만대를 판매해 도요타(499만대)를 누르고 판매 1위에 복귀했다. 디젤차 배출가스 조작 파문과 차 판매량이 따로 놀고 있는 셈이다. 세계적으로 디젤차 위세가 꺾이지 않는 건 자동차 업체들의 신차 개발 주기와 맞물려 있다. 보통 업체들은 5~7년마다 차체·엔진을 바꾸는 완전변경(풀체인지)을 진행한다. 막대한 비용·인력을 투입해 새로 개발한 엔진을 가능한 많은 차종에 얹는다. 지난해 디젤 게이트가 터졌지만 업체들이 수년 전부터 수천억원을 들여 개발해온 디젤차를 버리긴 어렵단 얘기다.

배출가스 문제만 없다면 적은 배기량으로 높은 회전력(토크)을 내고 연비가 높은 디젤차의 강점은 여전하다. 소비자 구매 성향이 바뀌지 않았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SK엔카닷컴이 지난 8월 성인 1848명을 대상으로 연료 종류별 선호도를 설문한 결과 디젤차가 35.4%로 1위였다. 이어 가솔린차(29.4%)·하이브리드차(22.8%) 순이었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상황에서 기존 디젤 엔진을 가솔린·하이브리드 엔진으로 완전히 대체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지난해부터 계속된 저유가도 디젤차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김필수 교수는 “냉정히 말하면 타격을 받은 건 디젤차가 아니라 폴크스바겐”이라며 “디젤차가 단기간에 급격히 쇠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362호 (2016.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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