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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현금 없는 사회] 거스름돈 계좌로 받고 교통카드에 쏙쏙 충전 

 

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
한은, 내년에 ‘동전 없는 사회’ 시범 사업... 스웨덴에선 이미 버스 현금 승차 금지

지갑에서 현금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가장 자주 사용된 결제 도구(결제 건수 기준)는 신용카드(39.7%)다. 현금(36%), 체크·직불카드(14.1%)가 뒤를 이었다. 2014년에는 현금(38.9%)이 신용카드(31.4%)보다 사용 빈도가 높았는데 지난해 처음으로 순서가 바뀌었다. 현금이 최다 사용 결제 수단의 지위에서 물러난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현금 없는 사회(Cashless Society)’가 멀지 않은 미래에 도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결제 건수, 신용카드〉현금〉체크·직불카드


이러자 한국은행이 현금 없는 사회를 위해 본격 준비에 나섰다. 첫 발걸음은 ‘동전 없는 사회(Coinless Society)’다. 한국은행은 2020년까지 편의점에서 잔돈으로 받은 동전을 선불식 교통카드에 충전하는 시스템을 갖추기로 했다. 예컨대 편의점에서 5000원을 내고 4500원짜리 물건을 산다면, 거스름돈 500원을 동전으로 받는 대신 계좌로 받거나 카드에 충전하는 방식이다. 내년 상반기 시범 사업을 시작한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매년 500억원가량을 들여 동전을 만들지만 대부분 저금통이나 책상 서랍에서 잠자는 경우가 많다”며 “향후 이 사업을 편의점에서 약국이나 대형마트 등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미 상당수 사람들에게 동전은 거추장스러운 존재다. 결제 대부분을 신용카드로 하기 때문에 동전을 비롯한 화폐의 설자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어서다. 모임 회비는 모바일 메신저로 보낸다. 지인이나 가족 생일 선물도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상대방 스마트폰에 보내는 선물 쿠폰을 이용한다. 경조사비나 아이에게 주는 용돈, 연말 구세군 자선냄비에 넣는 기부금 등에나 화폐가 필요하다. 그나마 이런 용도에 쓰이는 화폐도 마음만 먹으면 스마트폰 등으로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해외도 비슷하다. 스웨덴이 대표적이다. 이 나라는 현금 없는 사회로의 진척이 가장 빠른 나라로 꼽힌다. 스웨덴의 전체 거래에서 현금 사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2%에 불과하다. 특히 스웨덴의 일상 생활에서 현금은 사실상 사라졌다. 스웨덴의 가게에는 ‘Vi hanterar ej kontanter(우리는 현금을 받지 않습니다)’라는 안내판이 걸려 있는 걸 흔히 볼 수 있다. 교회에서 헌금 주머니도 볼 수 없다. 신자들이 카드로 헌금을 결제하기 때문이다. 버스의 경우 아예 요금을 현금으로 낼 수 없도록 법제화돼 있다. 심지어 은행에서도 현금을 구경하기 어렵다. 오히려 고액의 현금을 예금하려고 하면 테러리스트나 범죄조직 구성원으로 의심받는 일도 있다. 그만큼 일반 사람이 고액의 현금을 소지하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럽다는 얘기다. 네덜란드·노르웨이·호주 등 주요 국가 역시 현금 거래 비중이 뚜렷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만큼 각 정부도 현금 없는 사회를 준비하고 있다. 일례로 프랑스는 지난해 일정 금액 이상의 현금 거래를 전면 금지했다.

각국 정부는 현금이 사라지는 경제 환경을 대체로 환영하고 있다. 우선 현금이 없어지면 지폐나 동전을 제작하는 데 투입되는 화폐 주조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에서 동전을 만드는 데만 540억원의 비용이 들었다. 지폐제조 비용(900억원)을 포함하면 1440억원으로 늘어난다. 화폐 제조 비용 외에도 현금을 운송하고 저장하는 데에도 추가로 돈이 든다. 이런 간접 비용까지 고려하면 ‘현금 경제’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더욱 커진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미국에서 현금 거래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2%를 넘는다.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현금이라는 비효율적인 결제수단만 제거해도 국가 경제가 1% 이상 성장할 수 있다는 의미다.

지하경제도 양성화될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지하경제 규모는 GDP의 10% 수준이다. 한국과 터키, 멕시코 같은 국가의 지하경제 규모는 GDP 대비 30% 내외로 집계된다. 현금이 사라지면 불법적인 거래나 세금 탈루를 목적으로 발생하는 막대한 지하경제가 위축될 수 있다. 이는 정부의 세수 증가로 직결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한국의 지하경제가 양성화되면 정부가 세율을 올리지 않아도 최대 60조원의 세수를 추가 확보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하지만 화폐가 완전히 소멸하긴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여러 부작용이 있어서다. 현금이 없어져 전자화폐로만 결제가 가능하게 되면 국가가 개인들의 거래를 모두 추적할 수 있다. 그래서 개인의 사생활이 지나치게 노출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케네스 로고프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저서 [화폐의 종말]에서 “수백 달러나 이를 약간 넘어서는 거래는 정부로부터 어떤 감시도 받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화폐의 완전 소멸은 모든 거래의 ‘디지털화’를 의미하는 데, 보안 등에 대한 불신이 아직 남아 있다. 실제 대표적인 전자화폐인 ‘비트코인’의 거래소가 해킹당해 수백억원어치가 도난당하는 사건이 수 차례 발생했다. 또 한국의 경우 경조사비나 세뱃돈 등은 현금으로 주고받는 게 ‘인간적’이라는 특유의 정서도 있다. 노인이나 사회 취약계층은 전자결제 시스템에서 소외되거나 새로운 시스템을 이용하는 데 불편함이 클 수 있다. 한은이 우선 ‘동전 없는 사회’ 단계를 밟는 것도 이런 부작용을 고려해서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10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병국 새누리당 의원이“한은이 동전 없는 사회를 구상하고 있는데 아예 곧바로 현금 없는 사회로 나아가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아직은 여건이 덜 성숙된 듯하다”고 답했다. 이 총재는 “한국 사회에서 전자 지급수단이 매우 활발히 사용되고 있지만 현금 없는 사회가 현실화되기 위해선 아직 여러 가지 거쳐야 될 단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디지털화의 부작용 … 개인 사생활 노출, 불안한 보안


그럼에도 이미 시작된 현금 사용 감소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그리고 그 속도는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앞으로는 신용카드마저 필요없게 될 수 있다. 신용카드 대신 스마트폰을 단말기에 대면 결제가 끝나는 삼성페이와 같은 모바일 결제 서비스가 이미 대중화됐다. 동전과 지폐를 대체하고자 하는 디지털통화의 상승세도 눈여겨봐야 한다. 현재 비트코인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유통 중인 디지털통화는 700개가 넘는다. 주요 정부와 중앙은행은 이런 디지털통화를 어떻게 제도권에 끌어들일지를 놓고 고심 중이다. 한국도 금융위원회와 한은 등이 참여한 가운데 디지털통화의 제도화를 위해 관계부처 간 협의를 본격화하기로 했다. 정유신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실제로 보고, 느끼고, 만지는 것에 대해 더 신뢰하는 특성이 있다”며 “모든 화폐가 디지털화 되기는 어려우며 일정 계층이나 특정 거래에서는 실물화폐가 지속적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진단했다. 정 교수는 “그럼에도 여러 분야의 디지털화가 빛의 속도로 빨라지듯 화폐의 디지털화도 상상 이상으로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1363호 (2016.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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