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각자도생(各自圖生)과 파부침주(破釜沈舟)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작년 이 맘 때 어쩌다 중소기업인들의 송년 모임에 합석했다. 돌아가며 소개를 하는데 내 차례가 되었다. 나라 경제를 걱정하느라 가정 경제를 제대로 못 챙긴 경제학자라고 솔직하게 내 소개를 드렸다. 그러자 기업인 몇 분이 내년 경제는 어떻게 될지, 전문가 의견을 들어보자 한다. 경제전망은 내 전문이 아니라고 했지만 분위기가 어색해질까 두려워 주문에 응해야 했다. 그래서 사업을 하시는 분들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을 키워드 삼아서 내년을 대비해야 한다며 말을 꺼냈다.

각자도생은 각자가 알아서 살아갈 방법을 도모한다는 의미다. 경제전망하면 떠오르는 복잡한 수치 대신에 이 사자성어를 꺼낸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 당시 경제가 워낙 어려워서 기저효과에 따른 기술적 반등을 기대하기도 하는데 내년(2016년)에 경기가 나아질 이유가 국내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둘째, 2016년은 정치 리스크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해이다. 우리도 총선을 치러야 하지만 미국, 독일, 영국 등 많은 나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선거가 예정돼 있기 때문에 정치로 인해 경제는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셋째, 어느 나라든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쓸 수 있는 카드가 별로 없다. 설령 수단이 있다고 해도 선거 때문에 엄두를 못 낼 것이다. 그래서 경기가 나아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는 물론이고 정부가 기업을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이라는 헛된 기대를 접고 각자의 역량으로 경제 난국을 돌파해야 한다, 그런 뜻으로 각자도생을 말했던 것이다.

그 일이 있은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물리적 시간의 길이는 세상 누구에게나 공평한 법이거늘, 정치적으로 다사다난한 한국에서는 시간이 세상 어디보다 빨리 흐른다. 불량 정치는 국민의 시간을 앗아가는 도둑이다.

또 다시 연말이 되니 기업인들은 2017년 경영환경이 어떨지, 어떤 자세로 대비해야 할지 걱정이 태산이다.

국내외 경기는 별반 나아질 기미가 없다. 불황 국면이 길어지면서 조선·해운 등 주력산업조차 체력이 떨어지는 징후가 오히려 심각하다. 여기에 새로 시작하는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보호무역주의로 선회하고 미·중 양국간 패권 다툼이 격화하면 우리는 지정학적 위험까지 고조될 수 있다. 더 힘든 상황을 각오해야 한다는 얘기다. 정치 리스크는 어떤가. 내년에는 정치와 정부가 경제의 어려움을 더는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대통령 탄핵과 대선 일정, 그리고 과거 행태를 돌아볼 때 내년에도 정치가 앞전이고 경제는 뒷전일 것이다.

그래서 내년 경영환경에 대한 경제계의 인식이 더욱 결연할밖에 없다. 지난 13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전국 30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내년 경영환경의 키워드로 파부침주(破釜沈舟)를 꼽았다고 한다. 파부침주는 그대로 풀면 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배를 없앤다는 뜻이다. 죽기로 싸우겠다, 지면 살아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의를 빗댄 표현이다. 그만큼 기업인들의 내년도 상황인식과 각오가 비장하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기업인의 바로 이런 자세가 한강의 기적을 만든 원동력이었고, 한국경제를 되살릴 희망이다. 파부침주, 그 표현을 내년도 경영 키워드로 꼽은 중소 기업인들의 선전을 기대해본다.

1365호 (2016.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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